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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제주 조천

비극은 기억과 수명을 공유한다

글&사진 · 남기환 여행작가

입력 2015.05.07 14:11:00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7주년 되는 해다.
그 역사 속에는 오랜 시간 침묵으로 아파했던 일이 있다.
그리고 피해자이면서 죄인인 듯 그늘에 숨겨졌던 사람들도 있다.
작가 현기영은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적지 않은 시간 ‘4·3 폭동’으로 읽혀야 했던 ‘제주 4·3 사건’과 그 난리를 겪은 한 여인의 삶은 이 역사를 재평가하려는 그 어떤 말과 선언들보다 강렬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제주 조천
폭도로 불린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 ‘나’는 조부의 제사를 맞아 8년 만에 고향인 제주 북촌리에 내려갔다가 ‘순이 삼촌’이 죽었다는, 그것도 평소 자신이 일하던 밭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순이 삼촌(제주에서는 가까운 동네 어른이나 친척의 경우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 부른다)은 죽기 한 달 전까지 1년 동안 주인공의 집안일을 거들며 함께 서울에서 지냈던 터였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결벽증이자 일종의 공포증이 있었다.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콩을 훔쳤다는 오해를 받은 어느 날 경찰서에 가서 시비를 가리자는 말 한마디에 꽁꽁 숨겨왔던 그 공포증이 되살아난다. 증상이 심해진 순이 삼촌은 주인공의 아내와 잦은 다툼을 벌였고, 급기야 다시 제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런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조부의 제사에 모인 어른들은 그녀의 죽음을 놓고 두 패로 갈린다. 갈등의 본질은 4·3 사건, 그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한 집단 학살의 하나로 기록된 ‘북촌리(바로 주인공의 고향이다) 사건’이었다.

어른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토벌대의 편을 드는 축과, 진상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 중반임을 감안할 것)는 축으로 나뉘어 서로를 성토한다. 혹은 적지 않은 이들은 그냥 조용히 덮고, 숨죽이고 살아가자는 의견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순이 삼촌이 감내해야 했던, 정확히는 제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었을 그 시간들이 드러나며 4·3 사건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순이 삼촌’은 이 4·3 사건을 축으로 약 3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에서는 마을 주민들(그리고 대부분의 제주 도민들)이 남로당 무장대와 우익 경찰들 양쪽 모두의 ‘시달림’을 견디지 못해 산으로 숨어 들어가는 정황도 그려진다. 그들이 왜 산으로 가야 하는지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제 몸 하나 피신하는 동안 당시 경찰과 군은 ‘피신자’ 혹은 ‘공비’라는 죄목을 이들에게 씌워 그 가족들에게까지 고문과 학살을 자행했다. 순이 삼촌은 그 모든 정황을 겪어낸, 소설에서는 4·3 사건의 일련의 상황을 대신 전하는 화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4·3 사건 당시 무차별 총격에 쓰러지던 마을 주민들 틈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순이 삼촌에게는 이른바 ‘경찰 회피증’이 있었다. 이는 그녀로 대신 되는 제주 도민들이 4·3 사건을 겪으며 모진 고초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설 전개의 시점에서 ‘그 일’이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살 후 시체가 쌓여 있던 탓에 탄피며 유골 조각이 발견되는 고구마밭에서 김을 매어왔던 순이 삼촌의 모습을 통해 아직 아물지 않은, 그래서 속 깊이 숨겨 두어야 했던 상처를 작가는 은유하고 있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제주 조천
1949, 제주 조천으로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이 197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게재한 ‘순이 삼촌’은 우리 사회가 제주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좌익 세력의 무장 폭동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에 짓눌려 있을 당시 큰 충격을 안겼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재조명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제주 출신이고, 4·3 사건의 비극을 직 · 간접적으로 겪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제주와 제주 사람, 제주의 아픔에 대해 유난히 애틋하고 물기 어린 그리고 사명감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왔다. 제주도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벌어졌던 민족의 수난, 민중의 역사를 담아 경종을 울려온 것이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 운동을 다룬 ‘바람 타는 섬’ 등이 그 연장선에 있다.

‘순이 삼촌’은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일대를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가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1949년의 비극과 굵직한 연결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도민 3만 명이 모인 독립만세기념대회의 경찰 탄압에 이어, 남로당 제주도당의 1948년 4월 3일 무장 대응에서 촉발됐다. 그러나 이는 남로당이라는 정치 조직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1년여간 갖은 고문과 폭력에 시달린 제주 도민의 저항이 더해지면서 제주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경찰과 군인들은 민간인을 적 혹은 ‘빨갱이’로 간주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 가족 중 누군가를 총살하는 상황을 지켜보도록 한 뒤 부모 형제가 죽어 나가는 순간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게 하는가 하면, 할아버지와 손자를 불러내 서로 뺨을 때리도록 강요하다 급기야 총살시키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시인 고은의 시 ‘오라리’에서도 언급됐다. 비극의 이유를 두고 ‘광기’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일이 ‘순이 삼촌’의 결정적 배경이 된 1949년의 북촌리 사건이다. 이 마을을 지나던 군 병력 2명이 남로당 무장대의 습격으로 숨지자 토벌대와 군은 마을 주민을 북촌초등학교에 불러 모은다. 그리고 경찰 가족 등 이른바 우익 가족은 따로 분류한 뒤 운동장과 인근의 옴팡밭 등에서 나머지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사살했다. 이때 죽은 주민의 수가 3백 명에 이른다. 민가 4백여 채도 순식간에 불에 타 사라졌다. 소설 속 순이 삼촌도 이 사건을 겪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고 그 충격에 평생을 시달렸던 것이다. 이때가 1949년 1월 17일(음력 12월 18일). 북촌리는 음력 12월 18일에 제사 안 지내는 집이 거의 없다는 소설 속 정황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제주 조천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제주 조천
1 2 3 4·3 사건 당시 학살이 자행됐던 북촌 초등학교는 이후 한동안 폐교됐다가 다시 문을 열었다.

4 너븐숭이 4·3 기념관에는 폐교로 졸업장을 받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명예 졸업장이 전시돼 있다.

5 평화를 기원하는 글과 그림을 담은 돌들이 애기 무덤 주변에 줄지어 세워져 있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제주 조천
북촌리로 걸어 들어가며

북촌리 사건의 현장을 알리고 주민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곳이 조천읍 북촌리 입구에 자리한 ‘너븐숭이 4·3 기념관’이다. 단정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노출 콘크리트 양식의 기념관은 세련된 외관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곳에는 당시 북촌리 사건과 4·3 사건 등에 관한 이해를 돕는 여러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북촌리 사건의 과정과 피해, 비극 등에 대해 상세히 전하고 있다. 기념관을 들어서서 곧장 접어든 추모관에서는 마치 신위인 듯 당시 사망한 주민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채 걸려 있는 만장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념관 오른편에 실제 학살이 자행됐던 장소를 그대로 보존해두었는데, 여기서 ‘애기 무덤’과 마주하게 된다. 무덤이라고 뚜렷한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돌무더기 정도다. 학살에서 죽어간 영유아들을 당시 제대로 묻지 못하고 대충 돌무더기를 쌓아 가묘처럼 만든 곳이다. 전해진 바로는 20여 기의 무덤이 한데 모여 있었다고. 실제 4·3 사건 당시 10세 이하 어린이가 전체 희생자의 5.6%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북촌리라고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왜, 무엇을 위해 이 아이들까지 죽여야 했는지 하는 의문도 무의미할 지경이다. 그저 충격에 가슴과 머리는 멍해지고 한참을 서서 발걸음을 떼어내지 못할 뿐. 사람들은 작은 비석인 듯 투박한 돌에 저마다 평화를 기원하는 글과 그림을 담아 무덤 주변에 줄지어 세워놓았다.

애기 무덤 옆으로 소설 ‘순이 삼촌’의 주요 대목을 적어놓은 비석 같은 석판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추모 공원이 자리한다. 공사 중이거나 제대로 정비가 안됐나 싶어 보이지만, 이건 다분히 의도된 조형물이다. 그 비석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그날 총격으로 쓰러져간 주민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조형물에 생명이 있는 듯 숨 막히게 다가왔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기념관 뒤로는 곧장 북촌리 마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초입에는 최초 북촌리 사건이 시작된 북촌초등학교가 있다. 잠시 초등학교 교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문 기둥에는 학교의 간략한 연혁이 적혀 있는데, ‘1949년 2월 10일 4·3 사건으로 폐교’라는 글귀가 또렷하다. 앞서 기념관 안에서 당시 폐교로 인해 북촌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한 주민에게 수여된 명예졸업장의 비밀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마을과 야트막한 돌담으로 구분된 교정은 이제 세련된 러닝 트랙이 깔린 잔디 구장을 갖게 됐다. 그러나 당시 군인들이 주민들을 겁박하며 총을 난사했을 교단으로 시선이 멈춘다. 이윽고 주민들이 끌려 갔을 법한 밭들이 학교 돌담 너머로 펼쳐진 광경에도 시선이 머문다. 이곳에서 공포에 질려 운동장에 웅숭그리고 있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또 한 번 마음이 저릿해온다. 저 밭 어딘가에서 무수한 주민들이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의 책임을 추궁당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휴’ 하는 긴 한숨 뒤 학교를 빠져나와 마을로 발길을 이어갔다. 문득 조금 전 기념관 뒤 위령탑 앞에 한참을 서서 북촌 포구의 바다를 바라보던 어르신이 떠올랐다. 춘추를 어림잡아보니 당시의 기억이 또렷할 법하다. 사실 그 어르신을 붙들고 당시의 얘기 몇 마디 들어볼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어쩌면 그는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다. 무책임하게 옛 상처를 들춰내는 이방인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북촌리 마을에서 만난 주민 한 명,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형제, 옴팡밭 한 뙈기 그 어느 것 하나 쉬 지나칠 수 없던 여정이었다.

마음의 치유를 위해 걸었던 사려니숲길

여느 여행과는 분명히 다른 감성으로 다 왔던 북촌리를 벗어나 만약 마음을 달래고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하다면 ‘사려니숲길’을 권한다. 사려니숲길은 걷기 좋은 길이다. 걷기 좋은 길이라면야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져 해외에 수출(?)까지 하는 제주 올레길이 떠오르겠지만 그 못지않게 제주의 속내를 깊이 호흡할 수 있는 이 사려니숲길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사려니’는 제주 말로 ‘신성함’을 의미한다. 숲이 아름다움을 넘어 신성하고 신비하기까지 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지는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다. 조천읍 교래리 1112번 도로변에서 시작해 사려니오름까지 15km의 거리를 걷다 보면 북촌리에서 마주했던 비극에 저렸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온갖 소음은 사라진 채 끊임없이 흐르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간혹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이들이 나누는 낮은 대화가 점령한 숲길. 급한 경사도 없고 완만히 이어지는 길 좌우로 눈이 시큰해질 만큼 진한 녹음과 숲의 그늘이 이어져, 저 숲 속으로 들어가면 영영 되돌아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유난스러운 상상이 더해진다. 조릿대며, 서어나무, 때죽나무, 졸참나무 같은 나무 이름을 두루두루 외워두지 않더라도 대체 얼마의 시간을 살아왔는지 헤아리기도 힘든 숲을 마치 늘 곁에 두고 봐 왔던 양 살갑게,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이다. 사려니숲길은 천천히 걸으면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닐게 되는, 시간의 마법에 절로 걸려들게 하는 길이다.

다시 현재로

4·3 사건 동안 사망한 제주 도민의 수가 최소 3만에서 많게는 8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3만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제주 인구가 30만 명이니 전체 제주 도민의 10분의 1이라는 엄청난 수가 죽어간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4·3 폭동’과 ‘폭도’라는 불명예를 쓰고 오랜 시간 살아야 했다.

작가 현기영 역시 ‘순이 삼촌’을 발표한 후 어디론가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70년대 후반은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으니 충분히 그랬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런데 지금이라고 당시를 제대로 말하고, 추모하고, 위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사건은 서서히 잊힌 것은 아닐까? 그렇게 4·3 사건이 잊히고 있다면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읽고 제주 조천읍 북촌리로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순이 삼촌들과, 순이 삼촌이 목숨을 건졌던 옴팡밭과, 죽일 자와 살릴 자를 분류했던 학교 운동장과, 죽어서 빼곡히 남겨진 사람들의 이름이 있으니까.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제주 조천
☞ Travel Information

너븐숭이 4·3 기념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3길 3

주차 및 관람 요금 무료

문의 064-783-4303

사려니숲길

찾아가기 제주공항에서 제주시청과 제주대학교를 지나는 5 · 16 도로를 타고 가다가 1112번 도로로 좌회전하면 사려니숲길 이정표가 보이고 여기서부터 걷기 길이 시작된다. 사려니오름 등 일부 구간은 예약을 해야 걸을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할 것.

탐방 예약 및 문의 064-730-7272, 064-732-8222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5월 6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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