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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실 여성가족부 전 차관의 후배 워킹맘을 위한 훈수

“딸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세상 위해 불량 엄마로 산 세월, 이젠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해요”

글·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5.03.17 13:17:00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도 해야 하고, 틈틈이 어린이집도 들여다봐야 하며, 직장에선 ‘유리천장’도 깨야 하는 당신. 잠시 숨을 돌리고 이복실 전 차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엄마로,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복실 여성가족부 전 차관의 후배 워킹맘을 위한 훈수
이복실(54) 여성가족부 전 차관은 지난해 7월, 3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며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첫째는 일하느라 지난 세월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두 딸에게 따뜻한 밥 지어주기, 둘째는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경험한 일들을 책으로 엮는 것이었다. 지난 1월 출간된 그의 저서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카모마일북스)에는 워킹맘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충과 회한, 대한민국의 모든 일하는 여성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 그리고 여성가족부에서 추진해온 정책의 뒷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스물세 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에 발을 내디디고, 결혼해 두 딸을 낳고 키우면서 차관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엄마와 여자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대학 3학년 무렵 친구의 권유로 고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동기들끼리 ‘이복실이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하루 종일 화장실을 가나 안 가나’ 내기가 붙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과 동시에 합격의 영광을 얻은 그는 교육부 행정사무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 한 달 만에 남편은 훌쩍 유학을 떠나버렸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동시에 해내기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마저 곁에 없는 상황이니 그는 순식간에 싱글맘, 워킹맘이 돼 고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처럼 육아휴직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보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아니라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모두 육아전쟁에 동원됐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두 딸은 툭하면 “일하러 안 가면 안 되냐”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 욕심 때문에 직장에 나가는 거잖아요. 엄마는 우리보다 엄마의 명예가 더 중요해!”라며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말이 비수가 돼 가슴에 꽂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자도 일을 해야 경제권을 가질 수 있고, 남녀평등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가 얼마나 간절하게 원해서 시작한 일인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언젠가는 딸들도 알아줄 거라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리고 그의 바람은 이뤄졌다.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지켜본 딸들은 이제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그가 차관직을 내려놓았을 때도, 책을 내겠다고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 도서관과 카페를 오가며 글을 쓸 때도 딸들은 “우리 엄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그를 격려해주었다.



여성 정책은 이해하고 보듬으며 가는 사회통합정책

이복실 여성가족부 전 차관의 후배 워킹맘을 위한 훈수
여성가족부는 일·가정 양립과 양성 평등, 청소년 역량과 건강한 성장 지원, 건강한 가정 만들기 등을 위해 2001년(당시는 여성부) 출범했다. 여성 인력 활용의 걸림돌을 없애고, 일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주요한 과제 중 하나였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에 앞서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부터 팔을 걷어붙여야 할 때도 적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처음 생겼을 때 여성 과장 한 분이 육아휴직을 신청했어요. 신설 부서라 일할 사람은 적고 업무는 많으니 위에선 난색을 표했죠. 그때 동료가 윗분께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여성부에서 육아휴직을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어느 부처에서 이용하겠느냐고요. 우리도 못하는 걸 다른 부처에 활성화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냐는 얘기에 윗분도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그의 딸들은 밖에서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얘기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여성가족부 흉을 보는 이들과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때가 생기기도 했다. 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 대부분은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일을 페미니스트들의 구호를 쫓아가는 정도로만 여겨 제대로 이해하거나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기에 생긴 오해가 아닐까 싶어요.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일이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제가 여성가족부 보육정책국장으로 일할 때, 제 딸이 여성가족부를 욕하는 선배들에게 그런 얘길 했대요. 나중에 아이를 낳고 나서 어디에 맡길 건지, 출산과 육아로 인해 단절된 경력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그런 범죄로부터 어떻게 여성들을 보호할 것인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일이라고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닥칠 일을 고민하는 부서란 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대요.”

이어서 그는 퇴임사에서도 언급했던, 길고양이 ‘하니’ 이야기를 꺼냈다. 3년 전 남편이 데려온 아사 직전의 길고양이 하니는 그에게 ‘그냥 싫은’ 존재였다. 그러나 막상 데리고 살아보니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었다.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덕분에 식구들은 더 끈끈한 유대감과 공감대를 갖게 됐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을까. 그가 고양이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다. 여성가족부를 떠나며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 선입견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

여성가족부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 사회에서 남성들을 밀어내고 여성들만을 위한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부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의 정책은 언제나 남성과 여성이 모두 행복하게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중시한다는 인상을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아이가 아파도 다른 핑계를 대고 병원에 다녀오라는 식의 충고였는데, 그때 참 마음이 아팠어요. 여성들이 불행한 가정에서 남성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직장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해요. 일을 하다 보면 어영부영 시간만 때우고 퇴근하려는 남자 직원들도 있는데 유독 워킹맘에게만 냉정한 것은 우리의 직장 문화가 잘못됐기 때문이겠죠. 근무 시간을 집약적으로 활용하고, 쓸데없는 야근과 회식을 줄이는 것이 단지 여성만을 위한 배려는 아닐 겁니다.”

그는 올해부터 숙명여대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가족정책을 강의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차세대 여성 리더들을 양성하는 일도 준비하고 있다. “여성이라고 봐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은 그가 강단에서 후배들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픈 얘기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나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 부서에 여성은 나 하나로 충분해’라든가 ‘나 외에는 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여왕벌 심리’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생각은 여성 스스로에게도 부담일 뿐 아니라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책이 스스로를 세상에 세우는 첫 번째 시험대였다고 말한다. 30년 공직생활을 내려놓고 새로운 모습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순간이다.

디자인·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3월 6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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