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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된 강원래 첫 인터뷰

“선이를 가지면서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어요”

글·김지영 기자|사진·조영철 기자, 엘컴퍼니 제공

입력 2014.11.14 13:26:00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 후 부부의 연을 맺은 강원래와 김송. 이들이 일곱 번의 시험관아기 시술 실패를 경험하고 마침내 지난 6월 부모가 됐다. 아빠를 빼닮은 아들을 얻기까지 이들 부부가 겪은 좌절과 눈물, 그리고 웃음이 넘치는 육아 이야기.
아빠 된 강원래 첫 인터뷰
아빠 된 강원래 첫 인터뷰
“오빠 착상 됐대. 임신이래.”

“진짜? 설마.”

지난해 10월 12일, 강원래(45)·김송(42) 부부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둘의 수정란이 김송의 자궁에 착상됐다는 내용이었다. 시험관아기 시술을 집도한 의사는 “이쯤 되면 임신 성공률이 80%를 넘지만 100%라고 확신할 수 있는 피 검사가 끝날 때까지 소문 내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은 2001년 혼인신고를 하고 2003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이들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이 같은 전화를 받아본 적 없는 이들 부부는 예감이 좋았다고 한다. 이전에는 모두 착상 단계에서 실패해 낙담하기 일쑤였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얼마 후 임신이 확실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부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꿈만 같던 그 일은 6월 11일 현실이 됐다. 3.95kg의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난 사내아이는 태명인 ‘선물’의 앞 글자이자 ‘베푼다’는 의미를 지닌 ‘선(宣)’이라는 이름을 달고 부모와 조우했다. 강원래와 김송도 아들 강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임신 후 선이를 향해 두 사람이 각기 쓴 편지들을 모아 9월 말 책으로 엮어낸 ‘우리 사랑 선이’가 그것. 출간 10여 일이 지난 10월 6일 오후, 이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서울 강동구 자양동의 한 카페에 홀로 모습을 드러낸 ‘선이 아빠’ 강원래는 “선이를 돌보느라 송이가 정신이 없다”며 “송이 목소리는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을 참고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선이 아빠가 돼서일까. 그의 말투는 여전히 투박했으나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와 나긋나긋해진 매너, 상대를 배려하는 세심함에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2000년 11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나 2005년 ‘클론’ 5집 ‘내 사랑 송이’로 휠체어를 타고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 2011년 장애인 공연단체 ‘꿍따리유랑단’ 단장으로 활동할 때 만났던 강원래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좌절 거듭한 끝에 마음 비우면서 품게 된 아들

이들 부부는 2001년에도 한 권의 책을 발간했다. 평소 감정 표현에 서툰 강원래를 가시 돋친 장미에, 학창 시절부터 10년 넘게 강원래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김송을 선인장에 빗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장미를 사랑한 선인장’이라는 책이었다. ‘우리 사랑 선이’는 두 사람이 공동 저술한 두 번째 저서다. 이 책에는 이들 부부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잊지 못할 추억들과 장애의 시련에 이어 시험관아기 시술에 거듭 실패하며 겪은 위기의 시간들, 선이를 임신한 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겼다. 강원래는 “한 매체로부터 육아일기를 칼럼 형식으로 연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차라리 우리끼리 틈틈이 쓴 글을 모아 책으로 내면 선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고 책을 낸 동기를 밝혔다. 아들 이름을 ‘선’이라 지은 것도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하와이에 사는 송이 친구 집에 놀러간 적이 있어요. 그곳 해변에서 찬란한 태양을 보다가 아이 이름을 ‘선(Sun)’이라고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이는 우리가 교회에 다니니까 ‘베풀 선(宣)’자를 쓰자고 했어요. 규선, 원선, 혜선, 선호, 선희 하며 ‘선’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떠올리다가 그냥 ‘선’이라고 이름을 정했죠. 내 이름의 ‘원’과 김송의 ‘송’하고 어감이 비슷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아빠 된 강원래 첫 인터뷰

강원래와 김송이 ‘절친’ 홍록기, 구준엽, 박미경과 함께한 만삭 기념 촬영. 이들 부부는 선이를 낳기 전날인 6월 10일에도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포즈로 마지막 만삭 셀카를 찍었다.

선이는 이들 부부가 8번째 시험관아기 시술에 도전해 얻은 7전8기의 결실이었다. 그토록 바랐지만 마음을 비운 뒤에야 비로소 품게 된 선물 같은 아이라 태명도 ‘선물’이라 지었다.

김송은 강원래와 혼인신고를 한 2001년부터 아이를 갖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교통사고 후 남편의 정자 활동이 예전 같지 않아 2세를 향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걸 수 있는 방법은 시험관아기 시술뿐이었다. 남편보다는 아내에게 더 고통스러운 시술이었지만 김송은 ‘원래 오빠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으로 기꺼이 몸을 맡겼다.

하지만 2001년부터 시도한 시험관아기 시술 결과는 이들 부부를 점점 절망에 빠뜨렸다. 김송은 “2005년까지 5년간은 시험관아기 시술 실패에 따른 상처와 아픔, 원망, 낙심의 감정들이 나를 지배했다”며 “내 자신보다 더 사랑해서 남편과 결혼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몸도 마음도 지쳐 모든 원망을 남편에게 쏟아내며 도저히 해서는 안 될 몹쓸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강원래도 “송이의 말들로 상처를 입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한번은 송이가 시험관아기 시술에 실패하고 나서 교회에서 간증을 했어요. ‘원래 오빠는 바람둥이고, 남자 구실도 못하고…, 그런데 그게 다 내 잘못이다’ 하고요. 태어나서 남자 구실을 못 한다는 말을 송이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이가 그렇게 말하니까 제게 큰 상처가 됐죠. 시험관아기 시술에 처음 실패했을 때도 ‘내가 오빠 때문에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며 원망하더라고요. 저도 ‘내가 원해서 장애인이 됐느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한 사고로 이렇게 된 걸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고 억울해했고요.”

반려견 ‘똘똘이’ 키우며 부부 위기 넘겨

김송은 2006년 두 차례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2008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고 실패하면 그만하자”는 강원래의 말에 용기를 얻어 또 다시 시술에 도전했지만 이 역시도 이들 부부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후 5년 동안 두 사람은 임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김송은 신앙생활에, 강원래는 그가 만든 장애인 공연단체 ‘꿍따리유랑단’ 활동과 방송 일에 몰두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김송은 “마음을 비우기 시작한 2006년부터 시험관아기 시술에 성공한 2014년까지는 감사와 평안의 시간”이라며 “남편의 아픔과 부족함을 신앙의 힘으로 덮게 됐고, 그 가운데 착하고 잘났다고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내 모습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결혼생활의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시술을 포기한 후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일등공신은 6년간 이들 부부와 함께 살다가 암으로 올 초 생을 마감한 반려견 ‘똘똘이’였다. 가수 구준엽과 박미경, 개그맨 홍록기처럼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절친’이 아닌 사람에게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강원래도 느닷없이 한 식구가 된 ‘똘똘이’에게만큼은 각별한 정을 내줬다.

“똘똘이는 내가 장애인으로 다시 사회활동을 하며 힘들고 지쳐있을 때 우연찮게 찾아와 위안을 주고 웃음을 되찾아줬어요. 우리 부부에겐 자식이나 다름없었죠. 똘똘이는 제가 부르면 항상 달려왔어요. 죽어가는 순간에도 ‘똘똘아’ 하고 부르니까 꺼져가는 생명줄을 잡고 일어나려 애쓰더라고요. 똘똘이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돼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강원래와 김송은 올해 똘똘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아들 선이를 새 식구로 맞았다. 선이를 잉태하게 한 8번째 시험관아기 시술은 강원래의 권유로 이뤄졌다.

“한동안 주위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시술보다 입양이나 우리 형 혹은 아버지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해보라고 권했어요. 하지만 저로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그러다 뒤늦게 향학열이 발동해 2012년 사이버대인 서울문화예술대에서 연극을 통한 아동 심리치료에 관해 공부하던 중 ‘여자는 임신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죠. 아내에게 ‘한 번 더 해볼래?’ 하고요. 이후 가망이 있다는 병원을 찾아냈고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술에 도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온 거예요.”

아빠 된 강원래 첫 인터뷰

선이가 탄생한 후 연예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 강원래는 꿍따리유랑단 단장과 라디오프로그램 DJ를 겸하며 연극 무대에 올릴 여섯 편의 희곡을 동시에 집필 중이다.

처음 임신 소식을 접했을 때 김송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고, 뱃속 아기를 위해서라면 아픈 프로게스테론 주사도 거뜬히 맞을 거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후 김송은 10주간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맞았다. 엉덩이가 굳어서 떨어져나갈 듯 아팠지만 아이를 생각하며 이겨냈다. 강원래 역시 아내로부터 임신이 확실하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씩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며 “그 순간 암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떠난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윤택이가 오래전부터 클론 레퍼토리를 가지고 업소에서 일해 평소 잘 알고 지냈어요. 그 친구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죠. 세상을 떠나기 전 윤택이에게 ‘아이 보니 좋으냐?’고 물었더니 ‘이제 죽어도 소원이 없어. 아기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그러더라고요. 저도 송이 뱃속에 내 아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런 마음이었어요.”

“선이가 이름처럼 베풀며 지혜롭게 살았으면…”

처음 병원에서 착상됐다고 알려왔을 때 그는 ‘누구에게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지? 하는 기쁨 반, ‘혹여 잘못되는 건 아닐까? 다시 검사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 아내 김송에게도 늘 조심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칫 잘못해서 유산하면 어쩌나 싶어 어디를 가든 조마조마했다. 그러다가 제왕절개 수술 전날 김송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안 그래도 노산인 데다 허리디스크를 앓아 산모의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가 김송을 태운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강원래는 “뭘 해도 나는 안 되는구나 싶고, 아내와 이이가 잘못될까 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며 “병원에서는 아내가 죽더라도 아이는 산다고 했는데 다행히 둘 다 무사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6월 11일 오전 8시 30분, 김송은 서울 강남 차병원 수술실에 들어간 지 20분 만에 선이를 낳았다. 강원래는 자신을 쏙 빼닮은 선이를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고 한다. “신기했고, 점점 더 신기해진다”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이아빠가 된 것이 실감났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아니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선이가 얼마 전 백일이어서 백일사진까지 찍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대한민국 아빠 70%가 그렇다더라고요. 아이가 기고 걷고 이 정도가 돼야 아빠다, 하는 생각이 든대요. 지금은 선이가 주로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고, 기거나 걷는 단계가 아니어서 그런지 제가 꼭 제3자나 4자 같은 느낌이에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태담을 자주 들려줬는데 오히려 그때는 내가 아빠인 줄 아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제 목소리에 반응을 했거든요.”

임신 중 김송도 태교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시시때때로 동화책을 읽어주고, 이따금 아빠가 부른 노래도 들려줬다. 그래서일까. 선이는 지금도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생글생글 웃는다고 한다. 강원래는 선이가 웃는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을 그 증거로 내밀었다. 동영상 안에서 선이는 정말이지 세상에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김송은 요즘 육아의 재미에 빠져 있다. 아이 목욕은 물론 기저귀를 갈아주고, 눈을 맞추며 놀아주고, 선이에게 젖을 물리거나 분유를 먹이는 일까지 그의 차지다. 그럼에도 지칠 줄 모르는 모성애를 발휘하며 자나 깨나 선이 생각뿐인 열혈 엄마다. 강원래는 “나만 잘 자는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다”며 “선이가 태어난 뒤 부부 간에 대화가 늘었지만 지금도 살가운 애정표현에는 서툴다”고 했다.

“제가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애정표현을 잘하지 못해요. 저도 혼자서 막 자랐어요. 무관심도, 관심도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요. 전 앞으로도 지금처럼 조금은 무뚝뚝하고 투박한 방식으로 사랑할 거예요. 저희 부모님이 그랬듯이 선이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안 할 거예요. 다만 이런 얘기는 꼭 해주고 싶어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해낼 거야, 반드시 이룰 거야’라며 혼자만 고집부리며 죽기 살기로 덤벼들기보다 친구들이나 동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이뤄갔으면 좋겠다. 만약 ‘해냈다. 해내서 기쁘다’거나 ‘힘들었지만 잘 안 됐다. 그래도 다시 또 해보자’라는 결심이 선다면 ‘그게 바로 꿈을 이룬 거야’라고요. 선이가 그렇게 꿈을 이뤄가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엄마 김송의 바람도 거창하진 않았지만 의미깊다.

“아이를 가졌을 때 토끼 꿈을 꿨어요. 희고 작은 애완용 토끼였는데 하도 예쁘게 생겨서 손으로 만지려고 하니까 토끼가 내 손가락을 깨물더니 떨어지지 않는 꿈이었어요. 깨어난 뒤에도 꿈이 생생하기에 토끼 꿈을 검색해보니 토끼는 어질고, 지혜롭고, 순한 동물이더라고요. 선이도 앞으로 욕심과 경쟁을 펼치며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이름처럼 베풀며 어질고 지혜롭게 살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14년 11월 6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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