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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를 하나

‘지성’의 아이콘 김진애·조국이 답했다

글·김유림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14.09.15 17:47:00

지난 7월 말 인생의 영원한 화두인 ‘공부’에 대한 열띤 강연이 이어졌다.
‘왜 공부해야 하냐’고 삐딱하게 묻는 현대인들에게,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김진애 박사와 조국 교수가 명쾌한 해답을 안겨줬다.
학교 졸업한 지 십 수 년이 지났어도 가끔 꾸는 꿈이 있다. 기말고사 날 늦잠을 자 시험을 망치는 꿈이다. 이 꿈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사춘기 시절 공부가 주는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를 통감할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공부를 해야 할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필수 코스가 아닌,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얘기처럼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재밌고 흥미로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김진애(61) 박사와 조국(49) 교수가 서울 광화문 KT올레홀을 찾았다.

‘건강한 공부생태계’ 만들려면

우리는 왜 공부를 하나
첫 번째 연사로 나선 김진애 박사는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김진애너지’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이다.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MIT 건축학 석사 및 도시계획 박사이자 전 국회의원인 그는 1년에 한권씩 꾸준히 책을 쓰며 진정한 ‘공부의 맛’을 음미하는 ‘공부 예찬가’. 강연이 시작되자 늠름한 발걸음으로 무대에 올라선 그는 대뜸 관객들을 향해 ‘공부’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내 그가 제시한 공부(工夫)의 어원은 ‘功扶’. ‘성취하다(세우다)’와 ‘돕다’라는 말이 합쳐진 것이다. 또한 그가 생각하는 공부의 목적 역시 ‘착하고 유능하기 위함’이다. 즉 혼자만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각자가 생각하는 선한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에 꼭 한번 독해져야 하는 시기가 있다.

“제가 ‘고3 때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고 하면 자녀들과 함께 온 학부모들이 엄청 좋아합니다(웃음). 저는 1남 6녀 중 셋째 딸인데, 어린 시절부터 남자들에게 치이지 않으려면 여자도 돈을 벌어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1년을 공부에만 몰두했더니 정말 얻는 게 있더라고요. 성적이 올라간 건 물론이고 공부가 주는 희열을 덤으로 맛봤죠. 독해져야 할 때 독해지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란 말입니다. 여러분도 1년이 길면 1백일 정도 먼저 해보세요. 그런 시간이 이어지면 남들은 이해 못해도 나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그렇다고 그가 ‘공부벌레’였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공부로 날려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저 ‘잘하는 척’ 했을 뿐이라고. 다만 그가 다른 아이들과 달랐던 건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점이다. 김진애 박사는 “어릴 때 위인전을 무척 좋아했는데, 사실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치고 공부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왜 공부를 하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 미처 보고 나서야 어느 순간 공부가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공부가 놀이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공부를 연애라고 생각해요. 연애할 때 어때요. 한번 빠지면 그 사람밖에 안보이잖아요. 일생을 공부와 연애한다는 생각으로 산다면 삶이 한결 행복해질 겁니다.”

그는 평소 새벽 4시에 일어나 7시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책을 보고 글을 쓰고, 뭔가를 연구하기에 그때만큼 좋은 시간이 없다. 이런 습관은 30대 때 처음 만들어졌는데, 당시 김 박사는 둘째를 낳고 육아에 치여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자 궁여지책으로 아이들이 자는 새벽 시간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후 내 인생에서 ‘공부’는 평생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끝으로 그는 ‘공부생태론’을 주장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무한경쟁 사회는 공부를 최고의 수단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잘못됐다는 것. 김진애 박사는 공부는 ‘근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공부가 근사한 것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공부생태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독수리나 사자가 되기 위해 피터지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원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는 것. 그는 “토끼여도 되고, 들풀이어도 된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각자의 역할과 존재감이 있다. 그것이 공존할 때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는 ‘나만의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

우리는 왜 공부를 하나
김진애 박사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다. 진보 진영의 대표 학자로 손꼽히는 조 교수는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울산대와 동국대를 거쳐 2001년부터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요즘도 끊임없이 공부한다. “공부가 곧 직업”이라는 그의 말처럼 조국 교수는 교단에 서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을 교수실에서 보낸다. 이번 강연에서도 그는 여러 공부 중에서 왜 특히 법을 공부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학자로서 그가 생각하는 공부의 목적은 바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복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자기주도적 태도가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먼저 조국 교수는 “공부의 시작은 자기 자신의 ‘별’을 찾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했다.

“‘공부’하면 다들 지긋지긋하죠? 우리 사회가 입시·성적·대학 등을 공부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제 경험상 행복은 성적순이 분명 아닙니다. 제 대학 친구와 고등학교 친구들을 비교해봐도 금방 답이 나와요. 중요한 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각자의 별이 있습니다. 크기와 밝기가 다 다를 뿐이죠. 자기 별이 무엇인지 모르면 남의 별만 보게 됩니다. 자기 마음의 별을 저 별에 맞추려고 할 때 불행해지는 거예요. 가장 먼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설레는지를 알면 누가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돼 있어요.”

그의 지적대로라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입시제도가 압도적 다수를 패배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첫 수업 시간에 매번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전교 1 등 안 해본 사람?”. 그 다음으로 던지는 질문은 “법조인과 조용필 중 누가 더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나”이다. 참고로 그는 어떤 훌륭한 법조문보다 조용필의 노래가 더 위대하다고 믿는다.

“율곡 이이와 이순신을 비교하면, 이이는 13세에 첫 장원급제를 했고 이후 9번의 과거에서 전부 장원급제를 했을 정도로 역사를 통틀어 유래가 없는 인물입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무과에 계속 떨어지다가 서른두 살이 돼서야 합격했어요. 그것도 12등으로요. 그랬던 이순신이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했습니다. 이처럼 이이의 역할이 있고, 이순신의 역할이 있음에도 우리 모두는 자식들에게 이이처럼 되라고만 합니다. 아이의 마음에 어떤 별이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없어요.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가 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고3 때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드를 접하면서다. 당시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조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제도와 법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법은 다양한 꿈과 욕망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붕어빵 찍어내듯 사람을 찍어내왔다”고 꼬집었다.

“우리는 지금의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후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내 아이가 자유롭게 꿈을 꾸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격려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제가 법을 공부하는 이유도 그런 복지국가 완성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여성동아 2014년 9월 6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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