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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경훈의 서울 헐뜯기

“녹지 대신 상업 공간 늘려야 서울을 살릴 수 있어요”

글·김지은 자유기고가|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입력 2014.07.15 15:27:00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의 저자 이경훈 국민대 교수가 서울을 향해 또다시 도발을 시도했다. 그의 신간 ‘못된 건축’에 담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관한 불편한 진실, 그리고 대안을 들어본다.
건축가 이경훈의 서울 헐뜯기
사람들은 흔히 건축가의 집 울타리 너머를 동경한다. 집 안 구석구석 감탄사를 일으키는 기발한 상상력이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커다란 보물 창고, 햇살 부서지는 통유리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그곳.

그런데 이 남자는 반대다. “우리 집은 북향인데요?” “시끄럽게 떠드는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죠.” 그는 가뜩이나 삭막하고 빡빡한 서울이란 도시에서 공원을 ‘내쫓아야’ 한단다. “아파트 단지에 정원이 왜 필요해요. 공원을 조성하는 건 도시를 단절시키는 행위입니다.” 한 술 더 떠 마을버스와 방음벽, 남향 아파트, 각종 방, 걷기 힘들거나 재미없는 거리, 청계천 루체비스타, 새 모델하우스…, 이런 익숙한 것들이 서울을 망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을 맡겨도 될까?

건축가 이경훈(51) 교수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이다. 2011년,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란 책으로 서울을 잘근잘근 씹더니 이번에는 ‘못된 건축’(푸른숲)으로 서울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건축물들에 대해 쓴소리를 퍼부어댔다. ‘녹색도시’ ‘친환경’ 구호가 도시를 망친다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얼핏 귀에도 들어오지 않던 얘기들인데 하나하나 이유를 듣고 보니 공감이 간다. 그런데, 정말 서울은 도시가 아닌 걸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 교수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으로 발탁된 것은 우연이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를 읽은 박원순 시장이 그에게 자리를 제안한 것이 계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서울을 바라보는 박 시장과 이 교수의 견해가 아주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출발부터가 흥미롭다. 예를 들어,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는 박 시장의 생각에는 그도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런데 ‘걷고 싶은 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는 꽤나 큰 차이를 보인다. 박 시장의 생각처럼 공원을 조성하고 도시농업을 장려하는 건 참으로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의견이다. 오히려 공원이고 논밭이고 다 없애고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만들어야 걷고 싶은 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그걸 두고 되레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니, 그런 생각이야말로 개발지상주의에 찌든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닌가 되묻고 싶어졌다.



“도시의 기준이 뭘까요? 인구가 5만 이상이면 ‘시’로 지정되니까 도시인 걸까요? 1990년대에 화성읍과 화성군 등을 합해 화성시로, 연평도와 같은 섬들까지 모두 인천광역시로 귀속시켰습니다. 어부들도 이제는 도시민이 된 거죠. 우리나라 인구의 90%가 도시민인 겁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생각하는 ‘시티 라이프’를 구가하는 사람은 불과 5%도 되지 않을 겁니다.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면서 도시민이라 생각하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는 도시를 ‘비농업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이라는 정의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도시는 도시로서의 기능이 있고 농촌은 농촌으로서의 기능이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시에 살기를 원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가 농촌화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남산, 관악산, 북한산…, 서울만큼 산이 많은 도시도 드물죠. 서울 도심 어디에서나 산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서울에 자꾸 녹지를 만들겠다며 덩치만 키워갑니다. 덕분에 도시적 연결성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형편이죠. 제가 재직하는 국민대만 해도 바로 뒤에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내에서 보리를 재배하고 있죠. 그런 잘못된 대표적인 예가 종묘 앞 세운상가 자리에 만들어진 논입니다. 종묘를 낡은 세운상가 건물이 가리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하더니 그걸 부수고 논을 만들어놓더란 말이죠. 1천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짓입니까. 종묘를 조망할 수 있는 도시 건축물이나 종묘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원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생뚱맞게 논을 만든 걸까요.”

건축가 이경훈의 서울 헐뜯기

1 남대문 주변의 조감도. 주변의 건물들이 국보 1호 남대문을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뽐내고 있다. 2 이경훈 교수는 종로구 율곡로 옛 한국일보 자리에 새로 지은 트윈트리타워를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착한 건축물로 꼽았다. 병풍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주변의 동십자각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도시다워야 한다

서울시는 2012년 ‘마을공동체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서울도시농업 원년 선포식을 가졌다. 그 덕분인지 요즘엔 서울 시내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들도 쏠쏠히 늘어나고, 우리 동네에서 재배한 농산물이라며 내다 파는 이들도 간혹 눈에 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서울시의 이러한 도시관에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도시에 녹지를 늘린다, 농지를 만들어 도시농업을 육성하겠다 하면 굉장히 친환경적이고 도덕적으로도 옳은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하지만 도시농업은 대도시의 기능과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도시는 주변의 전원을 착취하면서 생존하는 특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하나의 도시를 서포트하기 위해서 필요한 농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하죠. 그런데 그걸 도시 안에 집어넣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서울 시내에 자꾸만 농지를 만들고 텃밭을 가꾼다고 해서 서울시에 거주하는 인구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질까요? 도시가 이런 식으로 계속 불어나는 건 위험합니다. 오히려 도시는 도시답게 콤팩트하게 구성하고, 나머지 공간의 본디 자연은 제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친환경적인 겁니다.”

농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농지가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닌 곳에 억지로 끼워 넣어 도시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그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도시는 저열하고 나쁘다’는 인식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친환경, 녹색성장 등의 가치가 대두되면서 사람들은 어느새 도시에 살고 싶어하면서도 도시가 마치 인간의 비도덕적인 가치의 산물인 것처럼 여기는 이중적 가치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들이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조성하는 ‘트렌드’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도시민의 특성상 낮에는 일하러 가느라 아파트 단지가 텅 비게 마련이고, 결국 그 공원은 죽은 공간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그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도 ‘아파트 주민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공간’인 정원 때문에 먼 거리를 돌아가거나, 쳐다만 보고 지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야기된다. 심지어 대부분의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시간대엔 아파트 정원이 한낮의 싱그러운 풍경이 아닌 어둡고 무서운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주차장은 모두 지하로 숨어버려 인적조차 드문 그곳을 지나갈라치면 혹여나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을까 겁부터 나게 마련이다. 결국 아무도 이용할 수 없는 불필요한 곳을 만들어놓고 ‘친환경 공간’이라 우기면서 아파트 값만 올리는 게 배려심 없는 서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도시 주거를 해결하는 건축적인 방법으로 ‘도시적 건축’을 제안한다. 도시가 도시다워지려면 녹지 공간과 공원이 아닌 상가가 즐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한다. 전원도시가 저밀고층의 형태라면 도시적 해법은 고밀저층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전원도시의 대표적인 예는 영화 ‘로보캅’의 배경이 됐던 미국의 디트로이트, 그리고 반대로 도시적 형태를 지닌 예는 프랑스 파리다. 그는 우리가 이상적인 도시 형태라 믿었던 디트로이트가 최근 재정 부도 위기에 몰렸을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 비해 범죄율도 2~3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난 사실을 지적하며, 미국의 많은 대도시들이 비슷한 이유로 높은 범죄율에 시달리다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프랑스 파리처럼 땅과 가까운 건축물이 조밀하게 모여 있는 도시가 사람과 사람, 장소와 사람을 긴밀하게 하고 도시인으로 사는 특권을 누리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건축가 이경훈의 서울 헐뜯기

파리 도심의 아파트는 고밀저층으로 도시적 주거 형태의 전형이다.

작은 상점들이 걷고 싶게 만든다

파리는 중심부 전체가 5층 이하 건물로 이뤄진 전형적인 고밀저층형 도시다. 용적률(1층부터 꼭대기까지, 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은 300%지만 건폐율(대지 면적에 대한 평면적 건축 면적 비율)이 60%라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파리의 사람들은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장을 보고, 그러는 사이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진정한 도시인’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산다. 물론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북쪽으로 향한 집에는 해가 들지 않는 방도 있고, 나무가 울창한 정원은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반문한다.

“집이 남향이라고 해서, 집 안에서 대낮에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죠? 집 앞에 정원이 있다고 해서 그 정원을 돌보고 즐길 시간은요? 그건 이미 도시인의 삶이 아니지 않나요?”

늦은 시각까지 불을 켜놓고 영업을 하는 상점들이 도시의 범죄를 자연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제인 제이콥스의 이론은 그가 생각하는 도시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도시의 상점들은 거리를 지키는 보안등이자 청소부다. 상점의 주인들은 가게에 불을 켜 거리를 밝히고, 사람들을 걷게 만들어 범죄율을 낮춘다. 상점 앞을 청소하며 거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자연 정화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존하고 싶다면 자연과 최대한 떨어져 모여 살아라.’ 이것이 1950년대 미국의 도시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한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저자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이다.

물론 서울에도 도시다운 면모를 갖춘 거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서울의 걷고 싶은 거리로 ‘가로수길’을 꼽는다. 요즘은 그 특징이 많이 퇴색했지만 가로수길은 키 낮은 상점들과 카페가 즐비하고, 인도 위로 자동차가 주차하는 기형적인 모습도 없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거리를 즐기는 전형적인 도시의 형태인 것이다.

공원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잔디와 흙이 깔려 있고 숲이 우거진 곳만이 공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돌이나 나무로 바닥을 깔고, 작고 아담한 나무 몇 그루로 조경을 한 공간이 오히려 도시 공원으로서의 자격을 가진다. 도시는 나쁘고 자연은 옳다는 이분법적 논리가 아니라, 도시와 자연의 차이 또는 도시와 농촌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그가 말하는 ‘착한 건축’은 시작된다.

건축가 이경훈의 서울 헐뜯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좌)와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우)는 역사적 공간에, 대지의 모양에 맞게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DDP의 건축적 가치는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에서도 가장 고급스런 주거 공간으로 통하는 센트럴파크 사우스는 센트럴파크 남쪽에 위치한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유명인들이 모여 사는 그 동네는 전형적인 북향 마을이다. 센트럴파크 사우스에서 센트럴파크를 바라보려면 자연스럽게 북쪽을 향할 수밖에 없다. 압구정동의 아파트들이 북쪽으로 근사하게 한강이 흐르고 있는데도 그 풍광을 포기하고 남향으로 돌아앉아 있는 것과 매우 대비된다. 도시에는 ‘남향’이라는 조건을 포기하고서도 가질 수 있는 다른 가치가 많다. 무엇을 택할 것인가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싶지 않다면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게 맞다.

그 또한 그런 이유로 최근 한남동의 북향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란하고 수다스러우며 도시적인 이웃’들이 살고 있어 매우 만족스러운 동네다. 편한 차림으로 갈 수 있는 카페가 여섯 곳이 넘고 식당과 주점도 열 군데가 넘으며 대형 마트를 뒤집어 뿌린 듯 슈퍼마켓, 빵집, 피자 가게, 미용실, 아이스크림 가게, 옷 가게, 약국, 철물점, 피아노 학원과 목욕탕까지 즐비하다. ‘우리 동네’라는 따뜻한 느낌이 피어오르는 정경이다. 이 동네로 이사하면서 그는 자동차로 다니는 걸 포기했다. 차를 운전하며 다니는 것보다 골목길 따라 ‘삐뚤삐뚤’ 주차된 차들 사이로 걷는 게 빠르고 편해서다.

다름을 인정하는 ‘착한 건축’

도시가 가진 특징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한 사례는 우리에게도 있다. 최근 동대문에 새롭게 문을 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바로 그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건축 설계 방법을 연구하던 그가, 도시와 도시 건축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기 시작한 것도 DDP의 전문위원과 자문을 맡으면서부터다. 뉴욕에서 공부를 하면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니며 그가 체득했던 진정한 도시인으로서의 삶이 연구의 성과로 발현된 것도 이즈음부터일 것이다. 그는 어딘가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려는 지인들에게 ‘삐뚤삐뚤한 건축물들을 잘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반듯하게 지어진 건물보다 삐뚤삐뚤하게, 주어진 땅의 모양에 맞게 지어진 건물이 많은 곳일수록 활기차고 도시답다.

그는 DDP를 이해하려면 오스트리아의 제2도시 그라츠의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곳과 DDP가 기괴하다거나 낯설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두 건물 모두 역사적 의미가 강한 공간에 지어졌기 때문인데, 얼핏 보면 두 건축물 모두 도시의 역사성을 단절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천년의 고도인 그라츠에서 온통 유리로 반짝이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마치 외계의 건물처럼 낯설다. 하지만 그는 도시의 건축물은 보다 멀리 내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공 당시 역사적 맥락을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던 쿤스트하우스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 ‘역사와 미래의 만남’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건축가 이경훈의 서울 헐뜯기
DDP의 역사성 역시 그렇게 평가받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동대문운동장은 사실 일제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던 1926년 히로히토 왕세자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성곽이 있던 동산을 허물고 지형을 파괴하면서 만든 고약한 건축물이다. 반면 DDP는 인근 도로와의 경계선을 건축 형태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로 삼았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와 마찬가지로 불규칙한 모양의 대지 구석구석까지 건물로 채워 도시적 건축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뿐만 아니라, 성벽으로부터 도심을 향해 완만하게 올라가는 형태로 조형미를 완성했다. 심지어 지하철이 다니는 구간은 건물을 들어 올려 지하철역을 오픈시키고 지하 광장을 만들었다. 이러한 대지 맞춤형 설계는 개성과 창의성, 그리고 기술적 대담함을 갖춘 21세기형 건축물을 완성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건축가나 도시계획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기 딱 좋다. 하지만 도시와 건축물을 바라보는 그의 삐딱한 시선은 그만큼 건축에 대한 고민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접근 방식을 모색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떤 부분은 부딪히고 어떤 부분은 독려해가면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건축가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의 몫이다.

건물주가 되는 건 쉽지만 건축주가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사는 것과 빈 땅에 새로 건물을 올리는 건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건축주에게 좋은 건축가를 만나는 것만큼 다행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에도 좋은 건축가들이 필요하다. 좋은 건축가란 어떤 사람인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좋은 건축가는 건축주가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수용하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신뢰와 자신감도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건축가는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21세기에는 19세기나 20세기가 아닌 21세기의 건물, 나아가 22세기에도 빛이 날 건물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일러스트·푸른숲 제공

여성동아 2014년 7월 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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