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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의 남자’ 인재진의 블링블링한 인생

글·구희언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나승열 제공

입력 2014.06.17 11:20:00

지난해 10주년을 맞은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 세계적인 축제로 우뚝 서기까지는 이 남자의
노력이 있었다. 인재진 감독이 들려주는 찌글찌글한 청춘의 기억과 재즈 가수인 아내 나윤선 이야기.
‘자라섬의 남자’ 인재진의 블링블링한 인생
‘자라섬의 남자’ 인재진의 블링블링한 인생
‘모든 만남에는 즐거움이 있다. 만나서 즐겁지 않으면 최소한 헤어져서라도 즐거울 테니까!’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중)

해마다 20만 명 이상이 찾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하 자라섬페스티벌)의 총감독 인재진(49). 그를 만나러 가던 날은 햇살이 퍽 좋았다. 최근 낸 책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마음의숲)의 인용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그는 한여름 같은 날씨에도 싱글벙글하며 카메라 앞에서 점프하고 포즈를 취했다.

책에는 ‘성공의 무대를 만든 위대한 실패의 기록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찌글찌글하기 그지없는’ 청춘사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자라섬페스티벌을 맨땅에서 일궈내기까지의 여정, 아내인 재즈 가수 나윤선과의 이야기가 담겼다. 공연 기획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부딪히고 깨져가며 얻은 노하우도 들려준다.

“지난해 자라섬페스티벌이 10주년을 맞았어요. 지난 10년을 정리하고 싶었죠. 인생을 돌아봤다기보다는 잊었던 것들을 기억해낸 시간이었어요. 기획자란 무엇인가, 기획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정의를 다시 내려볼 수 있었죠.”

인 감독은 고려대 영문과에 진학해 밴드부에 들어갔지만 악기 다루는 능력보다 학교 앞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공연 협찬을 받고 연주자 섭외를 하는 데 더 재능이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는 광고사부터 언론사, 비행기 조종사 시험까지 도전했지만 죄다 쓴잔을 마셨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의류 회사에선 6개월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열 살 위 팀장의 모습을 보며 ‘10년 뒤 내 모습이 저렇겠구나’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던 것.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못 견디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예측 가능한 미래를 더 못 견뎌했다. 지금도 나의 1년 후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신난다’고 적었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남자

이후 공연 기획자의 삶을 택한 그는 ‘누구도 안 해본 재즈 프로그램을 기획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인 그는 1998년부터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을 인수해 재즈 전용 극장인 ‘딸기극장’을 세웠다. 2001년 핀란드 포리재즈페스티벌에 갔다가 인구 8만 명의 도시에 20만 명의 관객이 몰리는 진풍경을 본 그는 우리에게도 이런 축제가 필요하다 직감하고 수년간 포리를 방문하며 경험을 쌓았다. 아직 자라섬페스티벌이 기획도 되지 않은 시기였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오게 마련이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특강을 하던 그는 재즈 페스티벌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자리에 있던 경기 가평군 공무원이 후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가평에서도 재즈 페스티벌을 할 수 있을지” 물은 것. 그는 한달음에 가평으로 갔지만 공연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그 공무원은 “비가 오면 잠기는 섬이 있는데, 거기라도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간 곳이 자라섬. 당시만 해도 방치된 채로 통일된 이름도 없던 황무지였다. 인 감독은 무의식중에 외쳤다. “우와, 여기 정말 멋지네!” 그렇게 자라섬과 인 감독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자라섬의 남자’ 인재진의 블링블링한 인생

도회적인 이미지의 재즈 축제를 방치된 섬에서 연다는 인재진 감독의 열정에 관객은 응답했고, 자라섬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했다.



‘자라섬의 남자’ 인재진의 블링블링한 인생
2004년 9월 폭우와 함께한 첫 회 관객은 2만여 명. 지난해 10회 축제에는 27만여 명이 자라섬을 찾았다. 공무원들의 사비까지 빌려가며 축제를 준비한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완만 보면 외향적인 것 같지만 그는 사교적인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내성적인 쪽에 가까워요. 붙임성 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람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각인각색이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은 개별적으로 중요하다는 거죠. 사람을 항상 진심으로 대하려 해요.”

그가 말하는 기획자란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지 않는 공통의 목적을 위하여 관계된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주는 이다. 자라섬페스티벌 전까지 ‘흥행업계 마이너스의 손’ ‘희귀음반 전문 제작자’라는 별명을 달고 살던 그는 “지금은 반짝반짝하지 않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전문가란 특정 분야, 자기 주제에 관해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이미 저지른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에 100% 공감해요. 그간 ‘뻘짓’을 많이 했는데, 현장성이 강한 일을 하는 사람에겐 그런 시행착오가 큰 자산이죠. 그런 면에서 예술가는 타고나는 천재가 있지만 기획자는 천재가 없다고 봐요. 기획자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지죠. 소위 말하는 흥행업자의 동물적인 감각조차도 부단한 트레이닝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그의 인생이 피기 시작한 건 자라섬페스티벌 4회를 맞으면서, 더 확장하자면 나윤선을 만나면서다. 2000년대 초 프랑스 ‘재즈 인 마르시악’과 핀란드 ‘포리재즈페스티벌’에서 안면을 익힌 나윤선과 인 감독. 이후 아티스트와 기획자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2010년 결혼했다. 연애할 당시는 인 감독이 한창 찌글찌글하던 시절. 그는 “아내도 내가 이런 줄 알았고, 나 역시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농담처럼 빚 갚으면 결혼하자고 했죠. 실제로 다 못 갚고 결혼했지만(웃음). 아내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질적인 것에 쿨하다는 거예요. 서로의 일에 대해 잘 알았기에 비전을 공유할 수 있었고, 그게 물질적인 것보다 우선했던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이 여자가 음악을 얼마나 멋지게 할 수 있고, 어떻게 될지 알았기에 현실적인 문제는 뒤로 미뤄둘 수 있었던 거죠.”

인생의 분기점은 아내 나윤선과의 만남

많은 사람들은 그가 ‘before 자라섬’과 ‘after 자라섬’으로 나뉜다고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인생 분기점은 ‘before · after 나윤선’이다. 인 감독은 오랫동안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기 가평에서 아내와 5년째 살고 있다. “연휴 내내 가평에서만 있었다. 돌담 쌓은 거 보수하고, 하얀색 회벽 다시 칠하고, 고춧대 세워주고 상추 따서 고기 구워 먹고 차 마시며 보냈다”는 그에게서 여유가 느껴졌다.

“여기 살다 보니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자동 정리돼서 좋아요. 자연에 가깝게 산다는 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것 같아요. 흥행업에 종사하던 사람이라 항상 더 큰 걸 찾게 마련인데, 그런 생각도 없어졌고요. 전에는 큰 거 한 방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이젠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면서 허황된 생각을 덜하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죠.”

그는 “아내는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함께 지내며 이런 삶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아티스트는 자연과 가깝게 사는 게 맞는다는 입장인데, 아내도 동의해줬어요. 은퇴하면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맘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젊어서 시작할수록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요.”

나윤선에게도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은 “인재진을 만난 것”이다.

“아내는 전 세계 투어로 바빠서 항상 호텔에 산다고 말할 정도예요.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어하는 데다 아무리 베테랑이어도 무대에 오르기 전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안정감을 줬다고 말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야, 나윤선이 인재진이랑 결혼하고 더 음악 활동 멋지게 하네’라고 하지만, 제 도움은 정말 일부분이에요. 언제가 될지 몰라서 그렇지, 실력이 뛰어난 아티스트는 결국 빛을 보게 돼 있어요. 아내는 성실성과 예술성을 갖춘 아티스트였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그는 “아내는 인간적으로도 멋지다”며 말을 이었다.

‘자라섬의 남자’ 인재진의 블링블링한 인생
“아내 덕에 저도 배려심 많은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아내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많은데, 그게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는 사람이에요. 무대에서는 신들린 여자 같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티스트지만 일상에서는 굉장히 여성적이고 수줍음도 많이 타거든요. 함께 오래 살았지만 갈수록 느낌이 고급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귀티가 난달까? 나이 들면서 더 멋져지더라고요. 아네트 베닝을 좋아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아내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칭찬하라고 판을 깔아주니 오글오글하네요.”

그는 책에 ‘기자들로부터 가끔 ‘다시 태어나도 나윤선과 결혼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썼다. 그걸 보니 괜스레 또 물어보고 싶었다.

“인생에서 제일 큰 행운이라 생각하니까요. 벌써 아내 이야기할 때 제 표정이 다르잖아요(웃음). 전 절대 아내에게 화내지 않아요. 함께 외출하기로 했는데, 오전 11시에 출발하자 하면 절대 그 시간에 못 나가요. 차 타고 2km쯤 가면 여자들은 대체로 휴대전화를 놓고 오거나 가스불을 켜놓고 오더라고요. 그래도 화내지 않고 대신 ‘휴대전화를 놓고 왔구나. 그래도 사랑해’라고 말하죠. 왜냐하면 어차피 가지러 갈 거, 짜증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거든요. 그럴 바에야 ‘그래도 사랑해’라며 즐겁게 갔다 오는 거죠.”

부부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뭐가 문제인지 말로 해주지 않으면 남편들은 그걸 모른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구체적인 감정 표현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혼 생활 팁을 알려줬다.

아직 공연 기획만큼 재밌는 것 못 찾아

인생 모토는 행복하게 살기. 그는 “모든 사람의 가치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공연을 기획할 때는 관객뿐 아니라 무대 뒤 스태프까지 즐거워야 한다”고 했다. 직원들에게도 “매일 행복하라”고 강조하는 그는 “자유방임에 의한 자력갱생이 가능한 기획자 양성을 꿈꾼다”고 했다.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학부장으로 재직 중인 그의 수업은 강의 평가가 좋기로 유명하다. “원맨쇼라는 점에서 특강도, 공연도 같은 느낌”이라던 그는 “학생들이 자기가 뭘 할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교 4학년 학생들 상당수가 아르바이트와 대학 생활을 병행해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에게 물으니 ‘문화, 예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더라고요. 그렇다면 커피숍 아르바이트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남는 시간에 돈이 덜 되더라도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하세요. 돈이 덜 벌리면 덜 쓰면 돼요. 다만 ‘뻘짓하지 말라’는 거죠. 제가 많이 해봐서 잘 알거든요. 뭘 할 건지 정확히 알고, 관련된 일을 해나가면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뭘 하고 살까. 이런 고민을 성인이 되고 직장을 가진 뒤에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그걸 찾는 데 소극적이더라고요. 모든 걸 경험할 수 없으니 책도 읽고 여행도 다녀야 되는데 맨날 앉아서 인터넷만 하니까…. 몸으로 부딪혀서 경험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요새 학생들은 정보를 모으는 건 귀신 같은데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데에는 서툴러요. 제가 학교에서 ‘개그콘서트 유행어 앙대요는 왜 성공하는가’ 같은 쓸거리를 주는 이유도 많이 보고 한 줄이라도 생각을 쓰길 바라는 마음에서거든요.”

그는 “글 쓰는 연습을 좀 더 해서 찌글찌글한 이야기 말고 블링블링한 이야기를 한 권 정도 더 쓰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이 순간은 내 생애 가장 반짝반짝한 타이밍”이라던 그는 10월 열리는 제11회 자라섬페스티벌에서도 총감독을 맡아 재즈 선율로 가평의 가을밤을 수놓을 예정이다.

“자라섬페스티벌 감독은 20회까지만 맡을 생각이에요. 원래 칠순까지 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앞으로 10년만 더 하고, 멋지고 재밌는 일을 찾을 생각이에요. 공연 분야가 아니라도 관계없어요. 더 재밌는 게 있으면 당장 그만둘 거예요. 다만 아직은 이보다 더 재밌는 걸 못 찾았어요.”

참고도서·‘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마음의숲)

여성동아 2014년 6월 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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