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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캘리그래피 작가 종횡무진 조달환

글·구희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4.06.17 10:45:00

인터뷰는 한 명과 했는데 여러 명을 만난 기분이었다.
만남만으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배우, 조달환으로의 여행.
배우+캘리그래피 작가 종횡무진 조달환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이날을 앞두고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성웅 이순신’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4월 27일 광화문 KT빌딩에 그림을 걸었다. 가로 25m, 세로 50m의 대형 천에 그려진 이순신의 초상 옆에 우직한 필치의 ‘이순신’ 캘리그래피가 보였다. 배우이자 캘리그래피 작가인 조달환(33)의 작품이었다. 그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에는 캘리그래피 작품과 다양한 재질의 종이, 펜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연기 외에도 캘리그래피 요청이 여럿 들어와 일이 없을 땐 이곳을 자주 찾는다던 그는 “기자님과 이야기하며 받은 순간적인 느낌을 적어봤다”며 이름을 써서 깜짝 선물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캘리그래피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소통을 많이 하면서 작업해야 해서 다 받지는 못해요. 주로 출연한 작품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말이 통하면 작업으로 이어지곤 하죠.”

캘리그래피 개인전을 열고 글로벌 기업 코카콜라와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조달환. 영화 ‘공모자들’, 드라마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이하 ‘감격시대’) ‘천명’ 등 알 만한 작품 타이틀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6월 열릴 ‘The Voice’ 콘서트 타이틀은 돈을 받지 않는 대신 그만큼의 금액을 쾌척하는 식으로 재능 기부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재능 기부를 많이 하더라고요. 누굴 돕는 마음보다도 내가 가진 걸 나눠주는 그 자체가 재밌대요. 그래서 저도 해봤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 타이틀 작업은 좋아서 하는 거라 돈을 받지 않아요. 웃긴 게, 드라마 ‘천명’은 수천 번 썼는데 처음에 쓴 게 됐어요. ‘감격시대’는 한 번에 OK를 받았죠. 코카콜라 작업은 3개월 동안 했는데, 굉장히 결과물이 뿌듯했어요. 캘리그래피는 손가락에 먹을 묻혀 쓰기도 하고, 붓펜부터 만년필까지 잡히는 필기구는 다 써요. 나무젓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이외수 작가로부터 힌트를 얻어 젓가락에 먹을 찍어서 쓰는 것도 즐기는데, 투박하면서도 정직하고 멋을 못 부리는 게 좋더라고요.”

지금 충무로에서 바쁜 배우를 꼽으라면 분명 그는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2001년 SBS 드라마 ‘허니허니’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 14년 차인 그에게 2013년은 연극, 영화, 드라마, 예능, 전시까지 많은 일을 한 해였다. 촬영을 마쳤거나 촬영 중인 영화 5편(‘레드카펫’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맨홀’ ‘상의원’ ‘기술자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KBS에서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감격시대’에서는 신정태(김현중)가 각성하는 계기가 된 카리스마 있는 풍차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고, ‘우리 동네 예체능’(이하 ‘예체능’)의 ‘탁구’편에서 동물적인 운동 실력으로 재조명받았다. 특히 예능 출연 이후엔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했다. 그전까지는 영화 ‘공모자들’, 드라마 ‘천명’ 등에서 악랄한 역할을 주로 맡았지만 이제는 푸근한 동네 형 같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었어요. 2000년 초반에 군대에서 무릎을 다쳐 수술을 두 번 하고 트라우마가 생겼지만 운동 자체는 좋아해요. 스펙터클한 운동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게 탁구예요. 땀을 잔뜩 흘리고 얻는 쾌감이 그만이더라고요.”

최근 몸무게가 늘었다는 그는 탁구를 다시 시작한 지 3주 정도 됐다고 했다.

“밤샘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체력이 떨어져서 다시 탁구채를 잡았어요. 동호인들이 모이는 탁구 바에서 게임을 즐기죠. 판사, 변호사부터 치킨집 사장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탁구채만 쥐면 계급장 떼고 순수하게 게임에 몰입해요. ‘예체능’ 출연하기 전엔 그냥 즐기면서 했는데, 요즘엔 저랑 치고 싶어하는 분들이 느셨어요(웃음).”

‘예체능’ 출연은 그의 터닝 포인트였을까. 그는 “직업적인 면이나 활동의 방향성에 있어서는 분명 터닝 포인트”라며 “인생관에서의 터닝 포인트는 제대하고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을 하면서 오달수 선배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닮아가려 노력한다는 그는 “오달수 선배를 만나고 처음으로 남자에게 설렘을 느꼈다”고 했다. 오해는 말자. 진심으로 한 인간에게 감동받은 걸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너는 누구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 죽을 때에야 알지 않을까요. 여자친구 만나면 닮아가고, 좋아하는 선배 만나면 닮아가려 노력하는 것 같아요. 곁에 있으면 닮더라고요. 페라리 몰고 롤렉스 차고 비싼 와인 먹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좋다는 걸 알았어요.”

연애와 여행을 사랑한 남자

배우+캘리그래피 작가 종횡무진 조달환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기억력과 인물 모사 스킬에 놀랐다. 오달수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면 오달수가 되고, 한석규와의 영화 촬영 이야기를 할 때면 한석규가 되는 그와의 인터뷰는 충무로 스타 여럿을 만나는 배우 투어 같았다. 2012년 오달수와 함께 출연한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을 봤다고 하자, 2년 전 공연이었음에도 곧바로 야스오에 빙의해 대사를 줄줄 읊었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으로 배우를 꼽았대요. 답이 없다면서요. 연기자는 오디션으로 선별이 불가능해요. 발성을 기준으로 할지, 발음으로 할 건지, 외모나 인간미 또는 매력으로 할 건지 기준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어려운데, 제가 살아온 30여년 삶의 연출력과 직·간접 경험이 연기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아요.”

방송에서 난독증을 앓고 있다고 밝힌 그는 영화나 드라마 대본 리딩을 할 때 어려움이 있지만 남들 몇 배의 노력으로 극복해낸 진정한 ‘노력파’다.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연기. 그렇다면 연기의 비결은 그의 삶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연애와 여행”이라고 했다.

“내 인생 말고 다른 인생을 디테일하게 살아볼 수는 없잖아요. 그걸 해볼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한 연애를 할 때 같아요. 상대가 뭘 좋아하고, 뭐에 짜증 내고, 알레르기는 있는지, 마법에 걸린 날은 언제인지까지도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연애하면 자연스럽게 연기가 늘고 깊어지더라고요.”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연애 스타일이 달라진다”고 했다.

“제 인생은 목표와 계획대로 되기보다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 같아요. 연애란 건 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알아보는 과정이더라고요. 상대방이 깨끗한 거울인 거죠. 내가 이런 거에 질투하고 이런 걸 못 참는, ‘이런 인간’이구나 성찰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일상을 여행하듯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토양부터 음식, 사람, 시선, 물, 공기까지 다른 걸 경험하면 몸이 깜짝 놀라면서 감성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여행 가서 좋다고 느낀 순간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싫잖아요. 여행은 인생에서 0.1% 비중인데 거기 너무 빠져버리면 나중에 돌아와서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결국 일상에서의 여행을 즐기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결국 사람에의 여행이에요. 자연을 닮은 사람. 꼭 시골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서울에도 많아요. 그런 사람을 만나며 그때그때 여행하는 거죠. 촬영장 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진짜, 어떻게 표현이 안 되는데 제 몸의 세포들이 소름 끼쳐하고 헛소리를 삐약삐약 해요(웃음). 누군가를 만날 때의 설렘, 여행하는 느낌 덕에 좋아하는 선배와 친구를 만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배우+캘리그래피 작가 종횡무진 조달환
개봉을 앞둔 작품들에서는 변화무쌍한 조달환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심 공포 스릴러 ‘맨홀’에서는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역을 맡았고, ‘레드카펫’에서는 에로 영화감독 정우(윤계상)와 함께 일하는 감성 풍부한 로맨티시스트 촬영감독으로 나온다. 그는 “에로 영화를 찍지만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손예진, 김남길과 함께한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는 장사정(김남길)이 이끄는 산적단 막내 산만 역으로 철봉(유해진)과 티격태격하며 투박한 액션과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으로 유해진 선배를 만난 것도 큰 소득이었어요. 선배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안 바뀐다’고 하니 선배가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만 바꾼다’면서 ‘세수하고 샤워한 물 모아서 빨래하고,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 나라도 안 쓰면 그만큼이라도 절약되고, 일자리가 하나라도 늘지 않겠냐’는 거예요. 그런 말 한마디, 자연을 좋아하는 모습, 건강한 삶과 생각,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중요한 건 지금, 순간의 뭉클함

배우+캘리그래피 작가 종횡무진 조달환

올해는 캘리그래피 작가와 배우로 종횡무진하는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줄도, 캘리그래피 작가가 될 줄도 몰랐다”던 그는 “미래의 일은 잘 모른다. 앞으로보다는 지금 어떻게 즐겁게 지낼지 고민을 훨씬 많이 한다. 순간적인 느낌, 순간적인 선택에 집중한다”고 했다.

“저라고 우울하지 않겠어요? 누구나 우울하고 짜증 나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잘 극복하는 게 좋은 배우가 되는 길 같아요. 우리처럼 힘든 직업도 없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재밌는 직업도 없어요. 가장 안 좋은 직업이자 가장 좋은 직업이기도 하죠. 인생은 열반에 이르고 천당에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매사 즐겁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죽기 전 ‘지구별 여행 재밌게 잘했다’ 싶으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그는 ‘가난한 것이 비극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라는 피천득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빚도 많지만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에 돈을 쓰기도 많이 쓴다. 돈 쓰는 게 재밌다”고 했다.

“20년 돈 모아서 집 살 거 30년 모아 사자는 주의죠. 돈은 빚이라고 오달수 선배에게 배웠어요. 선배가 ‘계좌에 돈이 쌓일 때 그게 내 거라 생각하면 빚이 된다. 돈은 혼자 버는 게 아니다.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들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얘기하셨죠. 그래서 계좌를 분리해서, 써야 할 데에는 확실히 써요. 그러니 맘도 편하고, 어차피 나눌 거라 생각하면 돈 쓰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아, 물론 예전보다는 모으는 비율이 높아졌어요. 고생하신 어머니께 효도도 해야죠.”

과거와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는 지금, 순간의 뭉클함에 감사하려 노력해온 그에게 “조달환의 2014년은 어떨 것 같냐”는 퍽 어려운 질문이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그는 “네팔에 ‘조달환 도서관’ 1천 개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목표’냐고 물으니 ‘방향’이라고 정정해 줬다. 그는 여행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후원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되는 이 영화는 수익금의 일부를 네팔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짓기 프로젝트 후원금으로 쓴다. ‘왼손 고백’(가제)이라는 캘리그래피 책도 준비 중이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던가. 범죄 수사에도 쓰이는 필적학에 굳이 대입하지 않더라도, 우직한 이 남자의 고백은 뜨겁고 진실했다.

여성동아 2014년 6월 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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