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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천재 서장훈의 예능 도전기

글·진혜린|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14.05.16 10:23:00

‘골리앗’ ‘국보급 센터’라 불리던 농구 선수 서장훈이 2013년 초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화려한 이력만큼 은퇴 후의 활동에 대한 관심 또한 컸다. 그는 1년간의 휴식기 끝에 예능 프로그램 ‘사남일녀’로 모습을 드러냈다. 포스트 강호동을 꿈꾸나 했더니, 정에 약한 남자의 따뜻함이 엿보인다.
농구 천재 서장훈의 예능 도전기
1990년대 농구 열풍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서장훈(40)이 내뿜었던 카리스마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코트 위의 탱크 같았고, 저돌적이며 거칠었다. 거기에 세심하고 깐깐한 이미지가 더해져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시크한 남자’로 기억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남일녀’ 촬영 현장에서 만난 그와의 첫 대화에서부터 ‘어라? 의왼데?’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빈틈이 많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첫 질문은 이상민 감독의 제의에 관한 것. 최근 이상민 감독이 삼성 썬더스의 사령탑으로 발탁되면서 새로 영입할 코치로 서장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져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그는 “공식적인 제안은 아니었고 상민 형이랑 친하니까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 것 같다. 지금 ‘사남일녀’ 촬영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 코치한다고 그만둘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답했고, “은퇴 후 지도자에 대한 계획이 있었을 것 아니냐”의 질문에는 “계획 같은 건 없다. 진짜 무계획”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가 예상한 캐릭터대로라면 철저하게 계산된, 세심한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대략적인 플랜조차 없다는 게 놀라웠다.

“제 유일한 꿈은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되는 거였어요. 다른 꿈이 없었거든요. 그걸 이뤘는지는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고, 어쨌든 (농구 선수로의 활동이) 끝났잖아요. 그 다음에는 절실한 꿈이 없어요. 40년 동안 운동을 하면서 철저하게 짜인 계획에 맞춰 살았으니까, 이제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술 마시고 싶을 때 좋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편안하게 사는 게 좋아요.”

그는 거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든 둥글둥글한 답변에 이어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삶의 여유”라며 많은 것을 내려놓은 듯 ‘해탈’한 느낌을 줬다. 언제부터 이렇게 여유가 있었냐고 물으니 “나이 먹어서 그렇다”며 어르신 같은 표정을 지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피할 작은 그늘을 찾아 엉성하게 서서 인터뷰를 하는데, 장구리 전체를 통틀어 그를 폭 감쌀 그늘을 만들 만한 건물이 없었다. 햇살에 눈살을 찌푸린 그는 여전히 차가워 보였지만 꾸미지 않은 솔직한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사실은 제작진이 계속 하자고 하셔서, 그냥 하는 거지 예능인이 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이 프로그램은 보람 있고 취지가 좋아서 동참한 거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능인으로서의 목표나 꿈이 없기 때문일까. 그가 방송에 임하는 태도는 프로그램 멤버로서의 책임감에 더 가까웠다.

“행여 출연하는 어르신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잖아요. 어르신들 대하면서 버릇없이 구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즐거운 경험을 하셔야지, 오히려 힘들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보시면 알겠지만 모든 제작진이 고군분투를 하는데, 대충 할 수도 없는 거고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죠.”

말 많고 웃음 많은 키 큰 동네 형

농구 천재 서장훈의 예능 도전기

‘사남일녀’ 스태프들은 서장훈에 대해 늘 투덜거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 많고, 솔직하고, 속정 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 차례의 짧은 인터뷰를 마친 후, 그와 다시 마주 앉은 건, 해가 뉘엿뉘엿 질 때였다. 인터뷰 장면을 목격한 ‘사남일녀’의 이정아 작가는 “서장훈이 실제로 보면 잘생겼다. 서울 남자, 그것도 강남 남자 같다”며 추켜세웠고, 강영선 PD는 “강남에 살긴 하는데, 강남 초등학생 같은 느낌”이라며 농을 했다. 서장훈은 예의 무상무념한 표정으로 “아이~ 왜그래”라면서 믹스 커피를 휘휘 저었다. 이번이 겨우 다섯 번째 촬영이지만 주거니 받거니 하는 농담에서 친근한 정이 묻어난다.

그 또한 농구 할 때 자로 잰 듯 깐깐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그냥 키 큰 동네 형’이라며 털털하게 웃는다.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시작해 중학생 때 농구로 전향한 후 지난해 은퇴하기까지 그는 늘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옴짝달싹 못하며 살았다. 늘 상대팀의 견제 대상 1순위였고, 승리의 환희보다 부담감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운동하는 사람 다 그렇다”며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허리, 무릎 할 것 없이 고질적인 퇴행성관절염을 달고 산다.

그 때문에 ‘무계획’이라는 그의 ‘계획’이 지금의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취미도 소일거리도 굳이 만들지 않고, 그저 ‘쉬고, 쉬고, 쉬고’ 싶을 만큼 그는 오랜 기간 농구에 모든 정열을 불살랐다. 오죽하면 한밤중 “집에 있냐? 나와서 술 한 잔 하자!”는 전화를 받고 외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삶의 여유’로 다가오니까.

“많이 허전하고, 아쉽기도 하죠. 예전에 더 잘 했어야 했다는 후회는 평생 가져갈 것 같고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냥 덤으로 주어진 삶이에요. 제가 오랫동안 농구에 몸담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국 농구에 이바지할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요. 그러면 그때, 또 제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야겠죠.”

그래서 그의 요즘 공식 업무는 오로지 ‘사남일녀’ 뿐이다. 방송 촬영을 하면서 “나는 어떤 아들인가”를 돌아보게 됐다는 서장훈. 혼자 사는 집 근방에 위치한 부모님 댁에 들러 밥 먹는 게 일상이지만, 부모님께 살갑고 다정한 아들은 아니었다고. 촬영차 가상 부모를 만날 때마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부모님께도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유 있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할 거예요. 내 맘대로 사는 게 지금의 목푠데, 그것이 나이에 걸맞게 인간적인 성숙이 함께 됐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경험을 통해서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싶고요.”

여성동아 2014년 5월 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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