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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스물 아홉 유아인

글·진혜린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4.04.15 16:31:00

유아인이 마흔 살 유부녀를 사랑하는 스무 살 청년이 됐다. 실제 열아홉 살 많은 김희애가 ‘밀회’에서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될 상대 여배우다. 엄청난 나이 차에 관심이 집중돼 있을 때, 유아인은 여기서 ‘나이’를 빼자고 했다. 그러면 사랑만 순수하게 남게 된다고 말이다. 그것이 스물아홉의 유아인이 보여주고 싶은 사랑일 테니까.
순수의 스물 아홉 유아인
유난히 웃음도 많고, 쑥스러움도 많았다. 열아홉 살 연상의, 누나라고 하기에 버거운 나이 차인 상대 여배우가 “순수하다, 섹시하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신에 대해 평을 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꼬았다. 연상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귀엽게 보일 수밖에. 하지만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움츠렸던 등을 꼿꼿이 세우며 눈빛부터 번뜩인다. 영화 ‘완득이’에서는 학생이었고 ‘깡철이’에서는 아들이었던 유아인이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거치더니 jtbc 월화드라마 ‘밀회’를 통해 치정·격정 멜로의 주인공으로 굵은 남자의 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갈 데까지 가는 파격 멜로

‘밀회’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고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마흔 살의 커리어 우먼과,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스무 살 천재 피아니스트의 사랑을 그린다. 아무리 연상 연하 커플이 유행한다지만, 파격적 설정에 우아함의 결정판인 김희애와 소년의 눈빛을 지닌 유아인이 호흡을 맞춘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불륜=막장’공식을 갈아엎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방송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작품의 연출을 맡은 안판석 PD는 “스무 살 미혼의 청년과 마흔 살 유부녀의 사랑이라고 하면 마흔 살 먹은 여자가 돌 맞을 일이죠. 그걸 가만히 두겠어요? 하지만 다른 문맥으로 보면, 안전하게 윤리적으로 살아온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결국엔 겉보기에 좋은 삶을 위해 더럽게 머리를 굴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게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요”라며 ‘밀회’가 그려나갈 ‘불륜’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다 해도 한창 트렌디 드라마에 빠져 있어도 무방할, 젊은 배우에게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하지만 유아인에게는 조금 다르다. “배우 이미숙과 25금 파격 멜로를 찍고 싶다”고 말한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니, 그가 스무 살 연상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불륜’연기를 한다는 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오랜 숙원을 드디어 이루는구나 싶을 정도. 벼르고 별러 선택한 작품이니만큼 ‘불륜’이라는 사회적 금기를 어떻게 ‘사랑’으로 그려나갈지 유아인의 활약이 궁금할 뿐이다.



순수의 스물 아홉 유아인
▼ 본격 치정, 격정, 도발 멜로드라마다. 작품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작품에 끌리게 된 요소가 ‘좋은 대본’이라는 건 가장 기본적인 것 같고요. 감독님을 뵙고 나서 마음의 결정이 크게 섰던 것 같아요. ‘이 작품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떤 연기가 더 좋고 나쁘다는 것을 떠나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 드라마 안에서 펼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이전 드라마에서는 기능적인 연기를 수행하고, 발현되면서 부딪치고 커나가는 배우의 위치라 힘들었다면 이번 드라마는 좋은 것에 대한 취향이 맞는 사람과 일할 수 있겠다는 데 큰 끌림이 있었죠. 제가 좋아하는 1번과 감독님이 좋아하는 1번이 같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그런 예감은 더욱 좋아졌고요.

▼ 김희애의 러브콜을 받았다고 들었다.

캐스팅 과정에서 전화를 하셨어요.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주 기분 좋은 대화였죠. 저를 불러줬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기분 좋은 사람과 수준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은 대화가 된 것 같아요. 저에게 김희애 선배는 어렵고 베일에 싸인 게 아니라 솔직하고 진솔하고, 그것이 연기에 묻어나는 것 같고, 아주 매력적인, 그래서 저절로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 요즘 연상연하 커플이 흔하다. 차별화된 포인트는 무엇인가.

가장 자연스러운 포인트는 ‘피아노’라는 매개체가 있다는 거죠. 여주인공 오혜원(김희애)은 박제된 새 같은 느낌이에요. 거기에 입김을 불어넣으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수 있는. 결국 멋진 남자 이선재(유아인)를 만나 마음속에 봉인돼 있던 순수한 사랑이 봇물 터지듯 발현되는 거죠. 피아노라는 매개체, 그리고 순수한 교감과 18금 교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게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열아홉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어색하지 않다는 점 또한 작용할 것 같아요.

▼ ‘18금의 교감’이라면, 애정 신의 수위는 어느 정도인가.

벌써 키스 신은 소화했고요(웃음). 저도 (김희애) 선배도 껄끄러움이야 있겠지만 ‘할 수 있어, 뭐 어때?’라고 마음을 열어 놓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색함을 이겨나가는 몇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어디까지 써주실지는 모르지만 갈 데까지는 가봐야죠.

순수의 스물 아홉 유아인

‘밀회’ 제작발표회에서 유아인은 “불순한 마음없이 제대로 연기를 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상대 배우와 나이 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나.

지금껏 세대 차가 많이 나는 분들과 같이 작업한 경우가 많았어요. 저 또한 제 세대를 정확한 코스로 살아오지 않았고, 배우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어서 크게 어색하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아주 편하고, 좋아요.

▼ 연상과의 사랑, 어떻게 생각하나.

만약 남자가 여자보다 열아홉 살 더 많다고 하면 ‘도둑놈’이라고 말하는 정도로 끝나는데, 여자가 더 많을 경우에는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잖아요. 남녀가 서로 욕망의 대상이 되는 데는 세대 차가 없는 것 같아요.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까지는 김희애 선배와 유아인 후배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제가 선배를 여자로 바라보게 되고, 저 또한 소년일 때도 있고 남자일 때도 있지만 순수한 인간으로 그녀 앞에 서게 되는 것 같아요.

앳된 얼굴에 진지한 눈빛을 가진 배우

기자가 유아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그가 드라마 ‘반올림’에서 옥림(고아라)의 남자친구로 출연하고 있을 때였다. 경북예고 서양학과를 중퇴하고 서울로 상경한 열아홉 살의 유아인. 그때의 수첩을 들춰보니 당시 팬들의 질문을 받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샤워 순서나, 첫사랑에 대한 답변이 풋풋하다. 간장게장과 초콜릿을 좋아한다든지, 살찌는 건 노력해도 안 된다든지, 아홉 살 때 축구를 하다가 철재에 찔려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든지 하는 열아홉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눈길이 머문 것은 이제 막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는 배우로서의 진중한 자세였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배경에 대해 “인생을 걸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 아니 선택한 거”라던 그의 이야기에 기자는 ‘앳된 얼굴에 진지한 눈빛을 가진 배우’라는 수식어를 달아놓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게 없다. 앳된 얼굴과 진지한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기 때문에. ‘반올림’으로 올랐던 스타덤에서 스스로 내려와 스타가 아닌 배우의 길을 걷고자 했기에 ‘미소년’ 이미지를 소비하는 안전하고 평탄한 길을 걷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쌓아왔던 필모그래피는 그마다 하나의 도전이었고 승부였으며, 그런 면에서 ‘밀회’ 또한 스물아홉 살의 배우에겐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 지금까지 거친 반항아 역을 많이 해왔다. 이번에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청년이다.

다소 거칠고 독기를 품은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야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웃음). 그동안 어떤 오기를 가지고 선택했던 것이 ‘반항’이라면 제 몸에 딱 맞는 캐릭터는 바로 선재예요. 그래서 선재로 서 있는 순간이 아주 편안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아주 편하게 말하고 숨 쉬고 표정을 내보내면 되니까요. ‘그래 나는 순한 양이었지’ 하면서 아주 즐겁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 배역에 관한 한 ‘노력파’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를 직접 연주할 정도면 엄청난 연습이 필요했을 것 같다. 원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소양이 있었나.

모차르트, 베토벤을 구분하는 정도였죠. 뭘 들었겠어요(웃음). 안단테를 잘 몰라서, ‘이거 천천히 치면 되는 거지?’ 할 정도로 문외한이었어요. 그런데 음악적 구성과 요소들, 그리고 밸런스는 연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한 마디, 두 마디가 모여 한 곡을 구성하는 것이 연기와 닮았거든요. 제 손끝으로 음악을 구현해낼 수는 없지만 최근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음악가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것 같았고요.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연기나 음악이나 마찬가지더라고요.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 워낙 ‘소년’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만큼 동안이다. 그 비결이 궁금하다.

선재가 실제 제 나이보다 어려 보여야 해서 촬영할 때마다 ‘스무 살 같아?’하고 확인해보곤 한답니다(웃음). 그래도 제가 동안인 것 같기는 해요. 갓 데뷔했을 때는 그게 콤플렉스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적으로도 또 배우로서도 (동안이라는 것 때문에)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비결이라면 순수한 마음을 갖고 살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런 표정을 짓게 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또 그에 맞는 표정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 지금의 모습도 애교가 넘친다. 촬영 중에도 애교를 부리는 편인가.

(웃음) 저는 실제 애교가 있거나 살가운 스타일은 아니에요. 감독님이나 스태프, 혹은 후배들에게 먼저 말 건네는 편도 못되고요. 그런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많은 분들이 말을 걸어주시는 현장 분위기라 많이 행복합니다.

▼ 군 입대 전 마지막 드라마인가? 남자 배우에게 군 입대는 큰 기로가 될 것 같은데, 심경이 어떤가.

류승환 감독의 영화 ‘베테랑’이 남아 있어요. 아직 군 입대 시기가 명확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로는 ‘밀회’가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런 점에서 ‘밀회’가 저에게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다소 불순한 마음으로 작품을 선택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한 방 터뜨리겠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연기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성동아 2014년 4월 6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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