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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 김상진 감독의 ‘겨울왕국’ 뒷얘기

글·구희언 기자 | 사진·디즈니 제공

입력 2014.03.14 11:56:00

‘Let It Go~ Let It Go~.’ 요즘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리지 않고 흥얼대는 이 노래는 월트 디즈니의 3D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삽입곡 ‘Let It Go’다.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으로는 유례없는 9백만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의 매력은 뭘까.
디즈니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 김상진 감독에게 제작 뒷이야기를 들었다.
디즈니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 김상진 감독의 ‘겨울왕국’ 뒷얘기
아마도 디즈니의 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원제 ‘Frozen’)은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깬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내에서 9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겨울왕국’의 인기는 가히 전 지구적이다. 작품은 개봉 한 달 만에 북미에서 2억3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종전의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 수입 기록이던 ‘라푼젤’(2011)의 2억 달러를 갈아치웠다. 3월 2일 열리는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주제가상 등 총 2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고, 앞서 열린 제7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이런 메가 히트작이 만들어진 데는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힘이 있었다. ‘겨울왕국’ 배급사인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코리아에 따르면 이 작품에 참여한 국내 아티스트는 김상진, 케빈 리, 유재현, 변동주, 최영재, 이현민, 장 리 등이다. 대다수가 디즈니의 전작 ‘라푼젤’ ‘주먹왕 랄프’에 이어 ‘겨울왕국’에서도 환상의 호흡을 맞췄다.

특히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인 김상진 감독은 1995년 디즈니에 입사해 약 20년간 ‘라푼젤’ ‘볼트’ ‘공주와 개구리’ ‘치킨 리틀’ ‘타잔’ 등 굵직한 작품을 도맡아온 베테랑이다. 스크립트에 글로 묘사된 등장인물을 시각적으로 디자인하고, 2D로 그려진 디자인을 CG로 만드는 과정까지 책임지는 중책을 맡고 있다. ‘겨울왕국’에서는 디즈니 최초의 자매 캐릭터인 엘사와 안나의 어린 시절, 자매의 부모인 왕과 왕비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주연 배우들의 다채로운 얼굴 표정 역시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지금은 올해 말 나올 마블 코믹스 원작의 3D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 6’의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로 일하고 있다.

디즈니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 김상진 감독의 ‘겨울왕국’ 뒷얘기

애니메이션 흥행의 역사를 다시 쓴 ‘겨울왕국’.

디즈니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 김상진 감독의 ‘겨울왕국’ 뒷얘기

김상진 감독은 엘사와 안나의 어린 시절과 자매의 부모를 디자인했다.

▼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겨울왕국’ 작업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요.

이미 캐릭터 디자인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얼굴 표정을 좀 더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위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라푼젤’을 제작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애니메이터들이 원하는 모든 표정을 가능하게 하고, 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죠.



▼ 엘사와 안나를 디자인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차별화를 했나요.

엘사와 안나는 닮았으면서도 다르게 생겨야 했고, 나이 차도 있어야 했지만 너무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게 해야 했어요. 무엇보다 각 캐릭터의 고유한 성격에 맞는 표정을 만들면서 두 사람 다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했죠. 가령 엘사의 웃는 표정은 안나보다는 좀 더 절제되고 섬세하게 만들었고, 안나의 표정은 대체로 크고 다양한 편이었죠.

▼ 초기에 나온 엘사의 디자인을 보면 검고 짧은 머리에 눈이 뾰족한 게 지금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요. 원래 엘사를 악역으로 하려다 바뀌었다는 소문도 있는데, 변화의 이유가 있나요.

제작 과정 중에 스토리가 계속 고쳐져요. 엘사의 설정뿐 아니라 많은 부분이 여러 차례 바뀌던 차에 엘사도 바뀐 거죠. 결정적인 이유는 엘사가 부르는 ‘Let It Go’라는 노래 때문이었어요. 그 노래를 듣고 감독과 프로듀서가 캐릭터 설정을 바꾸게 됐죠.

▼ 다양한 표정 연출을 위해 따로 하는 게 있나요.

책상 위에 거울을 두고 스스로 표정을 지어보곤 해요. 물론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표정을 참고하는 건 당연하고요. 그 외에도 얼굴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해부학적 자료들도 많이 찾아보고, 옛 디즈니 영화들의 무궁무진한 자료를 많이 참조합니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은 디테일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직접 겪어본 디즈니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이렇게 사소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그게 지금까지 디즈니를 지탱해온 힘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디즈니 영화는 한 번만 봐서는 화면에 있는 수많은 디테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두 번, 세 번 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답니다.

▼ 이번 작품에도 한국인 스태프가 대거 참가했는데,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각자 분야가 달라서 일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가끔씩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땐 같이 나가 식사하면서 회사 내의 이야기를 공유하곤 하죠(웃음).

▼ 그동안 창조한 캐릭터 중 제일 애착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요.

‘라푼젤’의 ‘고델’이 제일 애착이 가요. 엄마 역할이지만 악녀이자 마녀잖아요. 복잡한 캐릭터인데 다른 캐릭터들보다 수많은 버전을 거쳐서인지 매우 오래 걸렸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어요. 어느 기사에선가 역대 디즈니 영화의 베스트 악당 Top 10을 선정했는데 당당히 2위에 올랐어요.

▼ 2D가 아닌 3D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뭘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엄청난 디테일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것과 극도로 섬세한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적록색약으로 미대 진학을 포기했는데, 최고의 애니메이터가 되기까지 시련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미대를 못 간 것에 대한 실망감이 컸어요. 대학 전공인 경제학에 재미도 못 붙이고 4년을 보냈죠. 그래도 틈틈이 재미 삼아 그림을 계속 그렸어요.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건 포기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디즈니에서 일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길게 보고 차근차근 기초부터 단단하게 실력을 키워나가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디즈니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고 느끼는 점은 기초가 취약하다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아티스트와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들의 포트폴리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그보다 나은 걸 보여줘야 하거든요. 아주 특출한 재능을 지니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실력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겨울왕국’ 흥행 포인트 3

기존 디즈니 공주와는 다른 매력

‘겨울왕국’의 중심은 왕자와 공주도 아니고, 공주와 남자의 사랑도 아니다. 디즈니 역사상 최초로 공주 자매가 주연으로 등장하며, 이 공주님들은 디즈니표 공주의 전형성을 뒤틀고 ‘새로운 공주상’을 정립했다. 마법으로 얼어버린 안나를 구원하는 건 왕자의 키스가 아닌 언니 엘사의 눈물이라는 점도 기존 디즈니 작품들의 클리셰를 깨부순다.

귀에 착 감기는 매력적인 넘버

주인공이 부르지 않은 노래가 작품의 대표곡이 된 것도 이례적이다. 임팩트 있는 장면은 엘사 차지지만 전개 시점이나 분량을 보면 주인공은 안나에 가깝다. 그럼에도 성문을 박차고 나온 엘사가 숲 속에 자신만의 얼음 궁전을 지으며 노래하는 대목은 작품의 최고 명장면이 됐고, ‘Let It Go’는 수많은 뮤지션들의 입으로 불리었다. 원곡을 부른 이디나 멘젤은 뮤지컬 ‘위키드’에서 초록 마녀 엘파바 역을 맡았는데, 국내 번안곡을 부른 뮤지컬 배우 박혜나도 뮤지컬 ‘위키드’에서 같은 배역을 연기했다.

미키 마우스부터 라푼젤까지, 디즈니의 팬 서비스

드라마나 영화에만 카메오가 있는 게 아니다. 안나가 엘사를 찾는 과정에서 들른 상점 속 물건들 사이에 숨은 미키 마우스를 발견했다면 매의 눈으로 인정. 안나가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를 부르는 장면의 식탁 위 초콜릿 접시의 모습은 ‘주먹왕 랄프’의 슈가러쉬다. 엘사의 대관식날 성문이 열리자 신이 나 달려가는 안나의 맞은편으로 ‘라푼젤’의 주인공 라푼젤과 연인 유진이 걸어온다.

여성동아 2014년 3월 6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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