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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안나 목소리 성우 박지윤

“아버지 딸로 유명해져서 기뻐요”

글·김민주 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디즈니 제공

입력 2014.03.14 11:27:00

영화 ‘겨울왕국’은 더빙판이 오리지널판을 능가할 정도로 훌륭하다는 극찬을 받으며 성우들에게까지 관심이 쏠리게 하고 있다. 그 중심에 탤런트 박용식 딸, 박지윤이 있다.
‘겨울왕국’ 안나 목소리 성우 박지윤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눈의 여왕으로 변신하면서 부른 노래 ‘Let It Go’, 동생 안나가 언니의 방 앞을 서성이며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노래 ‘같이 눈사람 만들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인기곡으로 떠올랐다. 관객들은 ‘더빙을 한 성우가 노래를 직접 부른 게 맞을까?’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월 중순,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한국어 더빙판 안나 역의 목소리 주인공 성우 박지윤(37) 씨를 만났다.

박씨는 이미 ‘공주와 개구리’의 샬롯, ‘라푼젤’의 라푼젤 목소리를 연기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님 전문 성우’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탤런트 故 박용식 씨의 딸이기도 하다.

그가 ‘겨울왕국’ 성우 오디션을 본 것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심신이 최악일 때라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친김에 노래 오디션까지 보게 됐고 그 역시 합격해 안나의 노래 파트까지 맡게 됐다. 엘사의 경우엔 연기는 성우 소연이, 노래는 뮤지컬 배우 박혜나가 맡았다. 박지윤이 성우임에도 노래에 자신 있게 도전한 이유는 성악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겨울왕국’은 노래하는 부분이 유난히 많았어요. 대사 녹음은 5시간, 노래 녹음은 4시간 정도 걸렸죠. 보통 애니메이션의 한 캐릭터를 더빙하는 시간이 2시간 정도인 것에 비하면 엄청 공이 많이 들어간 거예요.”

다른 배역들의 녹음까지 모두 마친 완성본을 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평소 칭찬에 인색하던 남편(성우 정형석)도 이날만큼은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씨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딸이 공부로 성공하길 바라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자신의 장래희망을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자신이 원했던 실용음악과를 선택하는 대신, 아버지가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악을 택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로부터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남들 앞에 서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성우는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녹음을 하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았죠. 그마저도 처음에는 용기가 없어서 도전을 하지 못했어요. 이후 방송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3년에 걸쳐 성우 시험에 응시했는데 5번이나 떨어졌죠. 2005년 3년 만에 KBS 공채에 합격했는데 정말 기뻤어요. 6명을 뽑는데 1천5백 명의 지원자가 몰렸거든요.”

아버지는 처음 딸이 “성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도 없고, 매달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도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본인이 연예계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마음고생을 딸에게만큼은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도 아버지에게 말씀을 안 드렸는데, 아버지가 먼저 ‘너 합격했다면서 왜 말을 안 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셨지만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을 많이 갖고 지켜보셨던 거예요. 지금 이렇게 제 이름이 검색어 1순위에 오르고,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가족 위해 희생하면서도 내색 않던 아버지

‘겨울왕국’ 안나 목소리 성우 박지윤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탤런트 고 박용식 씨는 엄하지만 자녀들을 가슴 속 깊이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박지윤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바쁜 모습이었다. 박씨는 그런 아버지를 엄하고 무섭게 생각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탤런트 누구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고 한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의 딸이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늘 조심히 행동하고 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

“제가 어른이 되고 보니 아버지가 가족에게 든든한 나무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에게도 늘 ‘결혼을 했으면, 가장 중요한 게 가정이다’라고 삶에 대한 기본 마음가짐과 자세 등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프고요.”

박용식 씨는 캄보디아에서 영화를 촬영하던 중 유비저균에 감염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동안 멍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치료가 가능한 패혈증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숨 쉬는 게 힘들어서 기관 내 삽관 치료를 한다고 했는데, 못 깨어나시고 그대로 돌아가셨어요.”

그는 아버지가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1980년대에 방송 출연을 정지당하고, 오토바이에 참기름을 싣고 다니며 10년 동안 기름 장사를 하면서도 아버지는 자녀들 앞에서 힘든 내색 한번 안 했다고 한다.

“형제가 셋 다 사립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렵다고 느껴본 적도 없고, 오히려 ‘우리 집이 그럴 만한 여유가 되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힘든 건 본인이 혼자 다 짊어지고 사셨던 것 같아요. 장례식에 오셨던 아버지 지인들도 ‘너희 아버지 참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는 이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최선을 다했고 배우라는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정말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그 말을 직접 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하늘을 향해 한번 미소를 짓던 그가 아버지에게 못다 한 인사를 전했다.

“아버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요. 제가 결혼을 하고 나서 아버지와 친해진 것 같아서 정말 좋았는데….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잘 살고, 엄마도 저희가 잘 모실게요. 저희 걱정 그만하시고, 하늘에서 푹 쉬시면 좋겠어요. 사랑합니다.”

장소협찬·카페26(070-4132-6341)

여성동아 2014년 3월 6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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