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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디자인하는 남자 정구호

글·진혜린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국립극장 제공

입력 2014.01.15 17:11:00

하고자 한다면 하지 못할 일은 없다. 대한민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공연 연출을 하고 젓갈까지 손수 만들어 김치를 담그는 그런 것들.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가능하다는 발상이 정구호가 가진 천재적 재능이 아닐까.
생각을 디자인하는 남자  정구호
하얀색 도포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리고, 긴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허공을 휘젓는다. 8명의 남성 무용수가 진달래를 지르밟듯 한 동작 한 동작에 호흡과 의미를 부여하며 군무를 이룬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가 영상이 돼 흐르는 듯한 정갈함과 아름다움. 진부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세련되고 모던한 움직임이다.

12월 6일부터 8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한국무용 ‘묵향(墨香)’. ‘묵향’은 매·난·국·죽 사군자를 테마로 세상을 바라보는 군자의 시선을 담은 춤이다. 한국 무용가 최현(1929~2002)의 ‘군자무’를 윤성주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안무를 맡아 재현해냈다. ‘묵향’에 대한 평가는 호평 일색. 한 평론가는 “우리나라에 여행 온 외국인들이 꼭 봐야 할, 한국적이면서도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공연”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공연의 연출가는 최근까지 제일모직 여성복사업부 전무로 일한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51)다. 그는 ‘묵향’ 공연의 의상뿐 아니라 음악, 무대 디자인을 비롯한 총연출을 맡았다. 패션 디자이너와 공연 연출가 사이의 거리감을 꼼꼼하게 채운 그의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구호’는 정구호가 아니다

여성들의 위시 리스트 중 하나인 ‘KUHO(구호)’는 1997년 정구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패션 브랜드다. 개인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는 드물게 2003년 정구호가 제일모직에 입사할 당시 인수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제일모직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고급스러운 소재에 독창적인 디자인, 튀지 않는 모던함으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구호는 매출 70억원에 불과했던 ‘구호’를 10년 만에 매출 900억원으로 성장시키는 한편, 지금까지 제일모직 산하 브랜드를 기획·론칭·운영하며 제일모직 여성복사업부를 업계 최고로 성장시킨 핵심 인물로 손꼽힌다.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으며, 2001년 ‘쌈지’의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그였기에 2013년 11월, 10년 만에 제일모직을 떠난다는 소식이 돌자 패션계가 술렁였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운영자로서 능력을 고루 갖춘 그를 탐내는 곳이 어디 한둘일까? 하지만 그가 ‘실직자’가 된 후 처음으로 선택한 공식 업무가 바로 ‘묵향’ 공연 연출이었기에 그는 숱하게 ‘왜?’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제일모직을 ‘왜’ 그만두었으며, ‘왜’ 공연 연출을 하느냐고 말이다.

“실업자에게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늦은 나이에 안정적인 자리를 내려놓고 나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 일을 평생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무라는 자리도 제가 일한 것에 대한 ‘감사한’ 보상이었지만 그것이 영원히 제 것은 아니잖아요. 매년 퇴사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저 또한 그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 너무 늦게 회사를 나오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죠.”

제일모직을 그만둘 날을 정해놓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 생각의 방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다고나 할까. 단지 그에게는 본업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회사 임원으로서의 큰 방 외에도 수많은 방이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방은 무용, 연극, 건축, 화장품, 영화, 인테리어, 음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저는 절대 회사 업무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어요. 야근을 하더라도 그날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죠. 집에 오면 그때부터는 저만의 시간인 거죠. 업무에 대한 상념과 고민을 접어놓고 다른 것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기분 전환이자 취미이자 다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돼주었어요.”

그는 그것이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생길 때마다 꾸준히 도전해온 그만의 ‘외도’였다.

영화 ‘정사(1998)’ ‘텔 미 썸딩(1999)’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황진이(2007)’ 등에서 의상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로 활약했으며, ‘스캔들’과 ‘황진이’로 대종상영화제에서 의상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물론 호주 시드니의 ‘르 코르동 블루’에서 요리사 자격증을 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뉴욕의 한 일간지가 ‘뉴욕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톱 10’으로 꼽을 만큼 잘됐단다. 이 밖에도 인테리어나 화장품 관련 사업, 기업 카운슬링 등 그가 해왔던 수많은 영역들이 널리 포진돼 있다.

“보통 패션 디자이너들이 한 회사에 근무하는 기간은 길어야 2년인데, 저는 10년이나 있었으니 너무 오래된 거죠. 지금까지 회사에 근무하면서 계속 창작 활동을 해온 셈이잖아요. 앞으로는 순수 창작 분야에서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요.”

많은 것을 이룬 직장 생활이었지만 17년을 자식처럼 키워온 브랜드 ‘구호’를 제일모직에 남겨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구호’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흔히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반대로 주인의식은 갖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거라고 생각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주인의식 대신 책임의식을 가져야죠. 데드라인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자신이 받은 만큼의 성과를 내야 하거든요. 그리고 대가를 받고 만들어낸 성과물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하죠. ‘구호’는 이미 2001년에 다른 회사에 영입된 적이 있었고, 그 후 제일모직으로 옮겨온 후에도 제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미련은 없어요.”

생각을 디자인하는 남자  정구호
공연 연출가 정구호

생각을 디자인하는 남자  정구호
그가 가진 생각의 방 중에 아주 오래전부터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공연 예술에 관한 사랑과 관심의 방이다. 하지만 사랑과 관심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순수창작 무용계가 갖는 전문성이다. 비전문가들이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랄까. 공연 혹은 무용과 관련된 과목 한번 수강한 적 없는 정구호가 그 단단한 빗장을 어떻게 열었을지 궁금했다.

“무용은 안성수 안무가와의 인연으로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는 의상을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무대 디자인에 관여하다가 연출 작업에 참여하면서 점차 영역이 넓어진 거죠. 기간을 따진다면 18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아주 천천히 긴 호흡으로 진행돼온 과정이지 어느 날 갑자기 공연 연출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에요. 만약에 그랬다면 엄청난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요?(웃음) 지금까지는 무용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죠. 그러다 2013년 4월 국립발레단의 ‘포이즈’가 워낙 큰 무대이다 보니 주목을 받게 되면서, 패션 디자이너가 무용 공연 연출도 한다며 깜짝 놀라더라고요.”

본업을 패션에 두고 있는 한 다른 것들은 결국 기분 전환을 위한 ‘취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취미든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자격증을 따거나 공부를 해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업’으로 돌아왔던 것. 지금껏 현대무용만 관여해오던 그가 ‘묵향’으로 처음 한국무용을 연출하면서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들어본 산조 음반만 수십 장이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했던가. 이 때문에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 번에 네댓 개의 브랜드를 통솔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공연 연출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성사시키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패션계 또한 ‘투 잡’을 허용할 만큼 녹록한 곳이 아니니까.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아~ 피곤해’ 하며 누워 있느냐, 무엇인가를 다시 해보려고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회사 일 외에 프로젝트를 맡으면 그것도 하나의 일이 돼버려서 업무가 과중된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두 가지의 각기 다른 일이 서로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전의 업무를 다 비워버리고 다른 일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를 푼 거죠.”

1년 내내 컬렉션 준비만으로도 벅찬 디자이너에게 밤샘 작업은 기본이다. 물론 그 또한 그런 작업 환경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치지 않았을까?

“누워 있으면 피로가 풀리나요? 회사 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동료와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한들, 결국 그것도 일의 연장선상이잖아요. 스트레스를 받았던 곳에서 벗어나야죠. 평소 관심 갖던 분야에 대해 공부하거나 그 분야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퇴근 후 시간을 꼼꼼하게 사용했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잤지만 그마저도 아까울 만큼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에디슨이 말하지 않았던가. 천재는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는 파김치가 돼 집으로 돌아와 제2, 제3의 전문 분야를 만들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되풀이했다. 수다 떨고 회포를 푸는 술자리나 커피 타임은 갖지 않는다. ‘볼일’이 없으면 약속도 잡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관계는 넓어지고 신뢰는 쌓인다. 비즈니스로 맺어진 관계는 훌륭한 성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을 해나가면서 같이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신뢰를 쌓느냐가 중요하죠. 그게 쌓이다 보니 계속 제안이 들어왔어요. 공연 연출을 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무용계에 계신 분들은 제가 이 일을 오래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평론가 상도 받았고요. 제가 관여했던 공연을 보고 ‘포이즈’ 작업을 맡겼고, ‘포이즈’ 무대를 보고 국립극장 단장님이 ‘뭔가 해봅시다’ 해서 ‘묵향’까지 이어졌죠.”

공연계에서 비전공자인 그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나 인테리어, 화장품 등 그가 손댔던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를 찾는 이유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일단 일을 시작했다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다른 분들에게는 치열하고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진지하게 해야 하죠. 충분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죠. 또 비전공자인 제게 기대하는 것이 분명 있거든요. 기존에 해왔던 것과는 다른 시도를 원하는 거죠. 지금까지와 똑같은 방법, 똑같은 시선이라면 이 분야에 더 전문성을 갖춘 분이 하는 게 맞거든요. 무용계에 종사하는 분들과는 다른, 제가 바라보는 관점을 원하시는 거죠. 보통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외부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니까요.”

물론 그를 향한 공연계의 시선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국 밥벌이의 문제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꿈꿔온 과업의 기회를 빼앗는 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묵향’ 공연을 앞두고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마치 공연 연출로의 전업으로 비칠 수도 있다.

“2014년 여름에는 국립무용단 ‘단’ 재공연이 계획돼 있고, 2015년까지 공연이 잡혀 있는 상황이에요. 기회가 주어지고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한다면 계속하게 될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이 또한 기존에 해왔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지, 풀타임 직업으로 가질 생각은 없어요.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구상한 일 중에서 물리적으로 할 수가 없어서 못 했던 것들을 해볼 생각이에요.”

정구호의 아이디어 뱅크

생각을 디자인하는 남자  정구호

브랜드 ‘구호’ 2012년 봄/여름 패션쇼.

긴 시간 그의 업무 프로세스를 들으면서도 그가 여러가지 일의 전문성을 모두 섭렵했다는 대목은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로(더욱이 겸손하기까지 했다) 기자를 이해시키기 위한 단어와 예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그가 패션 디자이너이자 대기업 운영진으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또 다양한 분야에서 그를 찾는 이유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는 한 번도 직원들에게 화를 낸 적이 없으며, 함께 일하는 사람을 위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방법과 수단을 바꿔가며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리 부하 직원이라도 제가 그분들을 가르치거나 지시하려고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저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으면 일의 능률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죠.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려면 이해와 설득이 필요해요. 반대로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결국 제가 이해를 못 시킨 셈이니까 끝까지 노력해야죠. 화를 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거예요.”

정구호의 인내심 덕분으로 오랜 대화 끝에 기자와 그는 동시에 무릎을 쳤다. 정구호는 왜 사람들이 자신의 다양한 업무의 진행 과정을 신기하게 바라보는지 깨달았고, 기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미를 취미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패션 디자이너 중에 재봉틀을 다루지 못하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저도 재봉질을 하진 못해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캐드(CAD)도 전문가 수준으로 다루지는 못하죠. 공연 연출을 하면서도 조명과 무대 장치, 기계 설비 등 기술적인 부분은 해결할 수 없어요. 제가 공연 안무를 전반적으로 컨트롤하겠다고 했으면 공연 연출을 하진 못했겠죠. A부터 Z까지 제가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보다 그것을 더 잘하는 전문가들에게 제 아이디어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전달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뿐이죠. 제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처럼 쉬운 것은 없어요. 무슨 제안을 받을 때 전화 통화를 하면서 혹은 대화하는 과정에서, 공연 연출에 있어서는 하나의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가 다 떠올라요. 그 아이디어를 제가 직접 현실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신선할지 호기심이 발동해 ‘여성동아’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기자의 개인적인 취미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막상 질문을 받았을 때는 배시시 웃더니,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질문이 이어지기 전에 그 해답을 내놓았다. 새로운 접근 방법과 시각, 그리고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그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순간이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다른 점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는 것 같아요. 단순한 취미라면 자기 혼자 하는 거니까 누구를 이해시킬 필요가 없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대화법으로 이야기를 해야 해요. 결과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는 것도 꼭 통과해야 할 단계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면 다시 해보면 되는 거고요. 물론 그 분야의 다른 사람들이 했던 작업과 내 작업의 차별성을 찾아내면 그것이 아이덴티티가 되고 브랜드가 되는 거죠. 작은 규모의 창업이라도 이 과정을 거쳐야 실패를 피할 수 있죠.”

나 혼자 ‘제대로’ 산다

생각을 디자인하는 남자  정구호

짧은 저고리에 항아리처럼 한껏 부풀려진 치마, 그리고 고름을 없앤 ‘묵향’의 의상. 90%의 전통에 10%의 변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모던한 느낌을 가미한 정구호의 독특한 해석이다. 염색하기 전 무명의 고유색인 소색과 먹색을 주된 의상 콘셉트로 두고 꽃분홍, 녹색, 노란색 등 각 테마에 맞는 컬러 포인트를 주었다. 무용수가 입은 의상은 먹이 되고 무용수는 붓이 돼 움직이며 동양화를 그리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일이 취미이자 직업이자 기분 전환인 이 남자. 그래서 아직 혼자 사는 그의 일상생활은 MBC ‘나 혼자 산다’의 출연진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밥 한번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집 안 물건들이 빨랫대로 변신하는 전형적인 ‘혼자 사는 남자’의 모습. 그러나 정구호는 확실히 달랐다. 얼마 전 김장을 했는데, 혼자 20포기나 담갔단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부근에 위치한 마당 딸린 단독주택에서 고무장갑 끼고 직접 했다. 그 많은 걸 어찌 혼자 먹을까?

“주변 사람들한테 조금씩 주기도 해요. 저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 밥을 꼭 차려 먹거든요. 밑반찬에 메인 메뉴를 만들어서 제대로 먹어요. 아마도 제가 하는 모든 일 중에 가장 잘하는 게 요리인 것 같아요. 다섯 살 때부터 했던 일이라 숙련도도 가장 높죠. 그래서 업으로 삼고 싶지 않기도 해요.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오래된 레시피를 재현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아요. 할머니가 만들었던 그 맛을 살려내기 위해 젓갈도 직접 만들고 고추도 직접 빻고 좋은 배추를 산지에서 직접 골라 저리고 양념을 만드는 모든 방법을 정식으로 따져서 김치를 담그죠.”

그의 김장독에서 배춧잎 한 장 꺼내 돌돌 말아 입에 쏙 넣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식당을 열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더 이상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쯤이 될 것 같다고 한다.

다 갖춘 이 남자, 왜 아직도 혼자일까?

“아직까지는 일이 더 좋아요. 저는 결혼의 적령기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게 상대방이잖아요. 제일 마음에 들고 평생을 함께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사람을 아직 못 만났거든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아이도 낳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죠(웃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아이를 낳는 것이 옳지 않나요?”

얼마 전 친구에게 “너 나중에 뭐 될래? 끝이 어디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제 쉰을 넘긴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하고자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가 “넌 입 밖에 꺼낸 것은 모두 다 하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소년. ‘디자이너’는 용납되지 않았던 평범한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그의 꿈을 지원했던 것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상상 능력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것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불가능이란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는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공연이든, 영화든, 혹은 비즈니스든 상관 없다. 아직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경쟁 회사에 취업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패션을 내려놓을 생각도 없다. 가능성이 있는 곳에 곧 그의 아이디어가 샘솟고 있으니까. 그가 열어 갈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가 아닐까.

여성동아 2014년 1월 6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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