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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연기 변신, 당황하셨어요? 최지우

“새로운 캐릭터에 겁먹지 않고 도전했다는 점에서 뿌듯해요”

글·문지연 TV리포트 기자 | 사진·뉴시스 제공

2014. 01. 15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초조하지 않다. 더 과감하고 진지하게, 진짜 승부수를 던질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공주는 드디어 배우가 됐다.

연기 변신, 당황하셨어요? 최지우
“그것은 명.령.입.니.까?”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박복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 같았던 연기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잊히지 않는 배역이 또 있을까. 눈물 연기의 여왕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모습까지 숨겨놓고 있었을 줄이야. 바로 배우 최지우(39) 이야기다.

드라마 종영 직후 어느 비 오는 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카페에서 최지우를 만났다. 발랄한 미소를 머금은 채 걸어오는 그의 첫인상에서 느껴진 것은 ‘카리스마’가 아닌 ‘풋풋함’이었다. 로봇 같던 ‘복녀님’을 상상했던 기자의 “까다로울 줄 알았다”는 말에는 사춘기 여고생처럼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이 정말 마흔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 톱 여배우가 맞단 말인가?’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던 찰나 그의 웃음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저를 까다롭다고 생각하나 봐요. 실제론 전혀 안 그런데. 잘 웃고 장난도 잘 치죠. 저랑 이번에 촬영을 같이한 ‘수상한 가정부’ 제작진이 촬영이 끝난 뒤 종방연에서 저한테 ‘보던 거랑 다르게 성격이 좋다’고 하던데요? 제 이미지가 그런가 봐요. 하하.”

알고 보니 최지우는 ‘수상한 가정부’ 촬영 현장에서도 요주의 인물이었다. 문제적 의미가 아닌 귀여운 사고뭉치 이미지. 특히 제작발표회에서 이성재는 최지우의 실제 모습을 낱낱이 폭로하며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의 빵을 뺏어 먹고, 촬영장에 소품용으로 비치된 비타민을 몰래 꺼내 먹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액션에 스릴러까지



‘수상한 가정부’로 2년 만에 지상파 드라마에 복귀했던 최지우에 쏠린 시선은 ‘대체 멜로 퀸이 왜 저런 역을?’이었다. 하지만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회를 거듭할수록 완벽한 박복녀가 돼가는 모습을 보며 ‘최지우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보내는 이들까지 생겼다. 함께 연기했던 이성재도 “그동안 그저 예쁜 멜로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을 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함께하면서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을 정도.

그렇다면 최지우 본인의 생각은 어땠을까. 완벽한 ‘이미지 변신’이었다는 기자의 말에 최지우는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처음부터 내게 딱 맞는 역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안 어울렸냐?”고 되묻는 여유를 보여줬다.

“사실 작품 들어가기 전 우려의 시선이 있었던 걸 잘 알아요.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죠. 그리고 작품이 끝난 지금은 뿌듯해요. 많은 분들이 인정해주셨으니까요. 액션에 스릴러까지, 저 스스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고요. 이런 게 바로 성취감 아닐까요?”

극 중 자신의 스토커였던 송종호와의 액션 연기도 시선을 모았다. 게다가 요리, 청소, 빨래, 마술에 코믹한 덩크슛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복녀님’ 캐릭터는 그가 지금껏 해보지 못한 연기임에 틀림없었다. 주위 시선도 바뀌었다. 최지우를 ‘수상한 가정부’ 전과 후로 나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정도로 그의 연기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반짝이는 스포트라이트와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여배우로서의 숙명이다. 하지만 최지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언제나 예뻐야 한다’는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덜었단다. 이유는 절대 예쁠 수 없는 박복녀의 캐릭터 때문. 남편의 유품인 투박한 남성용 가방부터 워커, 일자 팬츠와 패딩 점퍼가 박복녀 의상의 전부인 데다 여기에 맞춰 메이크업도 최소화했다. 밤샘 촬영이 이어졌던 탓에 민낯에 가까운 얼굴까지, ‘여배우에게 가혹했던’ 촬영 현장이 최지우에게는 어땠을까.

“사실 2회 때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밤샘 촬영 탓에 피곤했는지 쌍꺼풀은 두세 겹으로 겹쳐 있었고, 눈도 아래로 푹 꺼져 있었죠. 피부 관리를 못 받은 것은 물론이고, 씻는 것도 사치였어요. 잠을 자는 것에 급급하니 비주얼은 애초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예뻐 보이는 역은 이미 많이 해봤고, 이번 작품에서는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결혼 안 하느냐고? 아직은 글쎄”

연기 변신, 당황하셨어요? 최지우

골드미스 최지우가 연말을 보내는 법은? 그는 혼자서 극장에 가거나 드라마 다시보기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평소 최지우는 패셔니스타였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카메라와 대중 앞에 서면 매번 ‘완판녀’로 등극했던 것. 하지만 ‘수상한 가정부’로 인해 그 왕좌에서 잠시 내려오게 된 것에 대해 일말의 섭섭함도 없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어떻게 365일 예뻐요”라고 말하는 최지우에게는 이제 성숙함까지 깃들어 있었다.

예쁘지 않아 더 아름다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보다. 하지만 박복녀 역이 너무 강렬했기에 다시 청순녀로 돌아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 역시 쿨했다.

“캐릭터가 변했다고 해서 이전에 했던 멜로 연기를 다시 못하게 될까, 걱정은 하지 않아요. 오히려 조금 더 폭이 넓어졌다는 느낌이 훨씬 크죠. 더욱 폭이 넓은 작품들을 받아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웃음) 새로운 역일지라도 저를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많이들 놀랐다고 하시던데요?”

최지우는 ‘수상한 가정부’를 통해 아역들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그 전까지 작품에서는 딸은커녕 조카도 없었다. 그 때문에 아역들과 함께하는 촬영장은 매일이 신기함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의외로 편안했어요. 하지만 가끔은 예상치 않은 문제들이 생겨 당황하기도 했죠. 잠과의 싸움이 대표적이었어요. 현장 여건상 늦게까지 촬영해야 하는 날이 많았는데, 그럴 땐 아이들이 졸음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저도 그런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에 안타깝더라고요.”

그럼에도 아역 배우들을 보며 든 생각이 ‘여우처럼 잘한다’였다. 감정을 잡고 연기하는 모습은 그가 봐도 신기할 정도였다고. 최지우는 특히 4남매 중 막내 강지우(혜결 역) 양과 정이 많이 들었다.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은 촬영 내내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다. 그는 더군다나 지우 양의 엄마와 자신이 동갑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최지우는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는 강지우에게 끝까지 ‘언니’라는 호칭을 세뇌시켰다고.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팬들이 자꾸 결혼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혜결이와의 모습이 자주 카메라에 잡히니 ‘미래의 최지우를 보는 것 같다’는 얘기도 하시고…. 제 나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결혼은) 모르겠어요. 좋은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안달복달하며 좋은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조급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웃음)”

여배우의 싱글 라이프, 왠지 화려하고 우아할 것 같다고 하자 최지우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못 했던 여행도 다니고 바쁘게 보내려고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주의라 밤에 혼자서 영화관을 찾는 일도 잦을 듯해요. 요즘 ‘꽃보다 누나’가 재밌다던데 ‘꽃보다 할배’부터 차근차근 보려고요. 하하.”

주름이 아닌 눈빛에 주목하는 나이

연기 변신, 당황하셨어요? 최지우
최지우의 2013년은 그야말로 변화와 도약의 한 해였단다. 한 해를 돌아보며 별점을 매겨달라는 질문에는 “어우~ 그런 거 진짜 싫어~”라는 애교 섞인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배우 생활을 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스스로를 평가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다.

“솔직히 연기력에는 후한 점수를 못 주겠어요. 그래도 새로운 캐릭터에 겁먹지 않고 도전했다는 점, 그리고 촬영하는 동안은 거기에 푹 빠져 있었다는 점에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최지우는 인터뷰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밝은 미소를 유지했다. 누구보다 알찬 한 해를 보낸 그에게 새해를 맞는 소감을 물었다.

“연기력이나 눈빛에서 조금 더 깊이가 있어졌으면 좋겠어요. 왜 사람들은 여배우의 주름에 심각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요? 주름이 아닌 눈빛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평소 ‘진짜’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기자지만 최지우에게는 이 말을 원 없이 써야겠다. 마흔을 앞둔 여배우의 적당한 자신감과 적당한 겸손, 그리고 적당한 재치를 가진 최지우는 그야말로 ‘진짜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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