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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셰프 로랭·푸드 칼럼니스트 미령 맛을 탐하다

글·이미령 | 사진·로랭 달레

입력 2013.12.16 16:43:00

어느 늦가을 토요일 오후, 전라북도 진안에서 찾아온 페이스북 닉네임 ‘낭만농부’ 김영일 씨와 의심 많은 프랑스인 셰프 로랭이 의기투합했다. 낭만농부의 식재료와 로랭의 요리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토요일 오후 6시 30분.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르 셰프 블루’ 앞에 있는데 저녁 식사하러 왔거든요. 레스토랑 문은 언제 여나요?”

낯선 목소리였다. 아마도 로랭의 쿠킹 스튜디오(르 셰프 블루 코리아)를 레스토랑으로 잘못 알고 있는 듯했다.

“실례지만 그곳은 매일 음식을 준비하는 식당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지금 고속버스터미널 앞 길이 정체돼 차가 서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몇몇 사람들이 의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오늘 식사가 안 되는 건가요?”

수화기 너머 낯선 목소리가 거듭 확인했다.

“예. 저희는 예약에 의해서만 코스 요리를 준비하고 있어서요. 오늘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수화기 너머로 “식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라는 말이 들려왔고, 잠시 후 중후한 목소리의 장년 남자가 전화를 대신 받았다.

“저는 전라북도 진안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하고 있는 김영일이라고 합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낭만농부’였다. 그는 진안에서 ‘깊은샘블루베리농장’을 운영하며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 언젠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블루베리 농장을 조성하면서 체리, 사과, 산유수, 대추를 재배하고 양봉은 물론 가을배추, 토종닭과 달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시중에 유통되는 닭과 자신이 정성을 다해 키우는 닭을 비교해보라고 했다. 싸라기, 몽근겨, 어분, 채소를 골고루 먹이고 골짜기에서 자유롭게 운동시키는 닭의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자신했다. 한번은 내가 페이스북에 “요즘 제대로 된 상추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푸념하자 당장 자신의 텃밭에서 재배한 상추 맛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일단 먹어보고 판단하라며 당장 식자재를 보내겠다는 것을 만류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 농부 일행 4명이 어느 날 갑자기 로랭의 쿠킹 스튜디오 앞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식사하러 온 손님에게 식사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말하려니 참으로 곤란했다. 그럼에도 이 상황에서 그냥 돌아가라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최대한 빨리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그렇게 ‘낭만농부’와 직접 대면했다.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농부는 자연이 잘 일하도록 돕는 사람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주고받으니 페이스북을 통해 활발히 교류했던 사이라 마치 오랜 지기들처럼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들은 식사를 준비할 수 없다는 우리의 설명에 대단히 실망하는 듯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커피 기계조차 없는 스튜디오에는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 우리는 옆집 몽카페에서 커피를 사와 대화를 나눴다.

로랭과 나는 한국에 온 뒤 그처럼 농사에 큰 열정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났다. 낭만농부는 농사에 대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처럼 시종일관 준엄하고 심각한 어조로 자신의 농사 철학을 설명했다.

“자연 존중, 생명 존중이 우선이어야 하는 거예요. 자연이 잘 일하도록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모든 농산물들이 저절로 자랍니다. 농부가 할 일은 그것뿐이에요. 자꾸 땅을 혹사하고 독약을 치고 못살게 구니 거기에서 뭐가 제대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혹시 ‘빈곤한 만찬’이라는 책 아세요?”

그는 ‘Tous Gros Demain(모두가 뚱뚱한 미래)’가 원제목이라고 했다. 한국 농부가 나와 로랭이 읽어보지도 않은 프랑스인 저자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신기했다.

“제 농사 인생을 바꿔버린 책이에요. 프랑스 농공학자 피에르 베일이 썼는데, 이 책을 본 뒤 프랑스와 프랑스 식자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낭만농부는 가축 여물통까지 들여다보라는 저자의 주장에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왜곡된 먹이사슬’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겉으로만 풍성한 먹을거리에 꼭 필요한 영양소는 계속 빈약해지고 균형이 깨져버려 건강에 위험한 식탁이 된다는 것이다.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1 농부 김영일 씨와 로랭이 함께 준비한 ‘농부와 셰프의 만남’ 디너가 10월 31일 ‘르 셰프 블루 코리아’에서 열렸다.

2 4 전북 진안에서 ‘낭만농부’ 김영일 씨가 키우는 각종 농작물과 닭.

3 건축가였던 김영일(58) 씨는 3년 전 건강한 식자재를 생산하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내 배덕희(59) 씨와 전북 진안에 터를 잡고 ‘깊은샘블루베리농장’을 세웠다.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농부가 그런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땅을 지키고 먹을거리를 지키고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생태계가 무너지면 인간은 아플 수밖에 없어요. 자연을 파괴하면서 어떻게 우리 몸에 이로운 음식들을 만들 수 있겠어요? 수십 년간 산업화다 뭐다 해서 대량생산에 쫓기다 보니 소비자의 판단력마저 상실돼 쓰레기를 먹고도 잘 먹었다고 착각하죠.”

‘빈곤한 만찬’에서 저자는 모유 성분까지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저자는 모유에 함유된 불포화지방산 중 심장 혈관 계통, 당뇨병, 알츠하이머 등 많은 질병에 효험이 있다는 오메가 3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오메가 6만 기형적으로 늘어났다고 지적해요. 오메가 6가 많이 함유된 가공식품을 과다하게 섭취해 영유아 비만이 엄마 배 속에서부터 진행된다는 얘기죠..”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뭔가 곰곰 생각했다.

“사람만 그런가요. 소, 닭, 돼지도 마찬가지예요. 사료로 옥수수랑 콩만 먹여서 그래요. 옥수수나 콩은 유전자 조작이 된 것들이 많고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이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낭만농부의 농장에 가보고 싶어졌다. 시간과 노동, 비용이 더 많이 들어도 자연을 최대한 존중하며 농사를 짓고 닭을 치는 것이 가능할까. 그가 키운다는 닭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알이 탱글거리는 블루베리를 먹어보고 입안에서 기분 좋게 아삭거린다는 상춧잎을 씹어보고 싶었다.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1 크루통 위에 얹은 가지 요리와 화이트소스로 만든 수프. 2 오이 위에 살짝 얹은 프랑스식 멸치절임소스 등을 선보인 아뮤즈 부슈. 3 본식 후에 내는 프랑스식 그린 샐러드. 4 크림소스를 이용한 프랑스식 닭찜과 닭 간, 모래주머니 등을 이용해 만든 콩피. 5 후식은 알자스식 미르티유 타르트와 로랭이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 마들렌과 피낭시에를 내놓았다.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로 가다

3시간 30분 이상 운전을 해야 도착하는 진안의 농장에 가자는 내 말에 로랭은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듯 물었다(로랭은 늘 의심부터 하는 데카르트 후손이다). 하지만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워했다. 농장과 닭을 지키는 흰둥이 개들(서희와 장군)은 늠름했고, 여러 가지 채소가 탐스럽게 자라는 가운데 블루베리 나무들이 요염했다. 한마디로 낭만농부의 아담한 농장은 동화 속처럼 아름다웠다. 배춧잎을 자유롭게 갉아먹다가 아주머니에게 혼이 나 기겁을 하고 도망치는 장닭과 씨암탉의 모습에 박장대소하며 여느 프랑스 시골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로랭을 보며 그가 이미 낭만농부와 친구가 됐음을 알았다. 우리 안에 갇혀 성장 호르몬제와 각종 항생제에 뒤범벅된 사료를 먹으며 비대해진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앉아서 졸고만 있는 양계장 닭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로랭과 내게, 이처럼 자유롭게 닭을 키우는 농부가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됐다.

낭만농부의 닭들이 먹는 사료는 당장 그것으로 사람이 먹을 죽을 쑤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가지, 호박, 오이 등 채소에 멸치나 건어물, 싸라기, 겨는 물론 블루베리까지 갈아 넣은 영양식을 이 농장의 닭들은 매일 먹고 있었다. 닭장을 뛰쳐나와 개나 주인에게 혼쭐이 나면서도 기회만 나면 텃밭에 자라는 채소를 몰래 갉아먹거나 여물통에 자유롭게 올라 앉아 배가 터지도록 쪼아대는 자유로운 닭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런 닭들이야말로 우리 식탁 위에 올라와 ‘감사 기도’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렇게 정성껏 키운 닭을 구입하려면 가격이…?”

조심스럽게 닭의 값을 물었다.

“우리 닭은 크기가 들쑥날쑥이라 작은 놈, 큰 놈 자연이 만드는 대로인데 보통 2kg 정도 나가는 닭이 5만원이지요.”

“5만원? 너무 비싸네요.”

“절대 비싼 게 아니에요. 서울로 택배를 부치는 데만 1만원 이상 듭니다.”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낭만농부는 농장에 와서 닭 값을 흥정하는 사람에게 그냥 동네 할인 매장에 가서 포장된 닭고기를 사라고 권유한단다. 사실 그렇다. 이렇게 제대로 키운 닭 한 마리로 10인분의 요리를 만들 수 있으니 싼값에 대량으로 사서 먹고 남은 것을 버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예를 들어 살코기로는 본식을 만들고, 뼈는 육수로 고아 수프를 만들고, 간이나 모래주머니(닭똥집) 등은 볶아서 샐러드를 만드니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다. 나중에 로랭이 실제 요리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진안의 큰 닭 2마리면 10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낭만농부는 당당했다. “싫으면 사지 말라 하죠. 내 닭은 제값 받고 팔렵니다.”

그의 말을 로랭에게 통역해주자 “프랑스 브레스 지방 농부들 같다”며 웃었다. 참고로 프랑스 브레스 지방 가금류산업위원회에서는 식용 가축의 종자 보호와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www.pouletbresse.com). 두 곳의 다른 점이라면 낭만농부의 닭은 개인이 지키고, 브레스의 닭은 프랑스 정부가 보호하고 지켜준다는 것이다.

로랭은 농장을 둘러본 뒤 “유레카”를 외치며 한국에서 이런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다면 요리를 해볼 만하다고 했다. 그리고 르 셰프 블루 코리아에서 ‘농부와 셰프의 만남’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10월 31일로 날짜도 정해졌다. 식자재는 낭만농부가 전라북도 진안에서 직접 들고 오기로 하고, 로랭은 생산된 지 이틀이 넘지 않은 재료들을 가지고 프랑스식 코스 요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초청인은 20명. ‘농부와 셰프의 만남’ 이벤트의 메뉴는 다음과 같다.

진짜 맛과 가짜 맛의 대결

‘농부와 셰프의 만남’ 디너는 대성공이라 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게다가 소위 미식가라는 사람들조차 진짜 닭 육수와 닭 육수 맛을 내는 큐브의 맛을 감별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실제로 그날 참석한 사람의 50%는 토종 닭 육수가 맛있다고 했고, 50%는 큐브가 맛있다고 했다. 사실 판매되는 닭 육수 큐브는 생물리학자, 화학자, 식품영양학자, 행동심리학자, 뇌의학자, 식품공학자, 마케팅 전문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맛이기에 중독성이 없을 수 없다. 이런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닭 육수 맛을 내는 조미료가 진짜 닭 육수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장 발작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클렌부테롤을 먹여 키운 돼지, 공업용 황산구리에 절인 오리 알, 하수구에 버려진 폐유를 다시 걸러내 식용유로 유통시키는 ‘하수구 식용유’, 모발에서 뽑아낸 아미노산액을 이용해 만든 간장 등 중국 쪽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상황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단 우리 부부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각 가정마다 좋은 식재료를 사다 집에서 요리를 해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대형 마트에서 사온 완제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끊여서 먹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농부와 셰프가 의기투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는 좋은 식재료를 가려내는 안목과 그런 음식을 감별하는 혀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럴 듯하게 맛을 흉내 낸 가짜 음식에 우리의 건강을 맡길 수밖에 없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깐깐한 ‘낭만농부’와 의심 많은 프랑스 셰프의 만남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 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고 현재 한국에서 쿠킹 스튜디오 ‘르 셰프 블루 코리아’를 운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 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3년 12월 6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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