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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Seoul vs Paris vs New York

‘르 셰프 블루 코리아’ 드디어 문을 열다

셰프 로랭·푸드 칼럼니스트 미령 서울 정착기

글·이미령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13.11.15 15:06:00

서울에서 살아보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도 로랭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이도 로랭이었다. 쿠킹 스튜디오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우리는 결혼 16년 동안 할 부부싸움을 지난 몇 달간 다 해버렸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르 셰프 블루 코리아’를 오픈하던 날, 로랭은 청명한 한국의 가을 하늘 같은 미소를 지었다.
‘르 셰프 블루 코리아’ 드디어 문을 열다

1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문을 연 쿠킹 스튜디오 ‘르 셰프 블루 코리아’. 2 요리 준비에 한창인 셰프 로랭.



벌써 2년 전이다. 2011년 9월 여성동아로부터 뉴욕의 ‘정식당’을 취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무렵 정식당은 오픈도 하기 전에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소개될 만큼 큰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로랭과 나는 9월 14일 임정식 셰프와 인터뷰를 하고, 식당이 문을 연 다음 날인 9월 17일 다시 찾아가 시식을 했다. 정식당은 2012년 미슐랭 별 하나를 획득하고, 올해 미슐랭 별 두 개를 거머쥐었다. 일 년에 별 하나씩을 단 셈이다. 세계 컬리너리 업계에서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사이 우리 부부는 뉴욕 생활을 잠시 접고 서울로 왔고 벌써 일 년이 돼간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이 기적 같다. 로랭의 한국 정착은 쉽지 않았다. 아니 너무 어려웠다.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아 힘든 것은 당연하다 쳐도 매일 먹는 음식, 인간관계,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이 그를 괴롭혔다. 처음 겪은 한국의 겨울이 혹독하다 싶었는데 올여름은 더욱 잔인했다. 뉴욕의 사계절을 경험한 그에게 서울은 너무 춥고 너무 더웠다. 서울살이가 힘들수록 그는 뉴욕을 그리워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했다. 서울 하늘이 늘 회색이라며 우울해했다.
식자재를 사러 가서도 어느 시장에나 단일 품종만 있다고 불평했다. 음식 맛이 여기나 저기나 다 같다며 투덜댔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생소한 지역을 여행할 때마다 항상 좋은 면만 보고 즐거워하던 긍정적인 로랭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불평할 때마다 “나도 처음엔 프랑스에서 적응하기 어려웠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했지만 어느샌가 나도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누가 서울에 오자고 했어?”라고 따지며 말다툼을 벌였다.

결혼 생활 16년 만에 찾아온 위기
사실 서울에서 살아보자고 한 사람은 로랭이었다. 뉴욕 생활 6년이 되자 자신감이 붙었던 것이다. 뉴욕에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2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한 내가 로랭보다 더 걱정하고 주저했을 정도로 로랭은 서울로 갈 계획을 세우며 들떠 있었다. 그런데 서울 생활이 한 달도 안 돼 그의 불평이 시작된 것이다. 일을 할 때도 그는 마지못해 하는 듯 빛 꺼진 눈을 껌뻑이며 어슬렁거렸다. 웃음도 잃었다. 열정 없이 억지로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때로는 철저히 준비하고 완벽하게 해내고도 불만족스럽다며 스스로를 학대했다.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였다.
결국 3월 말, 로랭은 뉴욕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싸우는 데 지쳤다. 결혼 16년간 해야 할 부부싸움을 몇 개월 동안 다 해버린 것 같았다. 나는 한국에 남겠다고 했다. 계획한 일들이 있는데 갑자기 중단하고 그를 따라 뉴욕으로 갈 수 없었다. 로랭은 이미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에 연락해 다시 돌아와서 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사실 그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었기에 영사관은 로랭의 복귀를 환영했다. 4월 말, 5월 8일부터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에서 근무하라는 계약서가 집에 도착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는 로랭이 뉴욕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슬펐다. 화가 났다. 그가 뉴욕으로 떠나면 우리는 결혼 16년 만에 처음 떨어져서 산다. 늘 붙어 다니며 무슨 일이든 함께했는데 서울까지 와서 이렇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럴 거면서 왜 서울에 오자고 노래를 불렀어?”
화가 치밀어 그에게 따졌다. 그는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뉴욕행을 포기했다. 며칠 잠도 못 자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영사관에는 큰 폐를 끼치고 말았다. 셰프 구하는 것을 중단하고 로랭만 기다렸는데 안 가겠다는 통보를 받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한국에 남겠다는 아내 때문에 뉴욕행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무슨 결정을 내리든지 심사숙고하는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는 영사에게 긴 편지를 보내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로랭이 한국에 남기로 하자 나는 다시 바빠졌다. 우리는 쿠킹 스튜디오를 열기로 했다. 6월 초 집 근처에 자그마한 장소를 물색해 계약하고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르 셰프 블루 코리아’ 드디어 문을 열다

1 앙트레를 내기 직전 음식 서빙 순서에 대해 의논하는 로랭과 이미령. 2 로랭이 뉴욕의 프랑스영사관 셰프로 근무하던 시절 만들었던 메뉴판. 4 로랭이 손님들에게 오늘의 메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쿠킹 스튜디오 시작도 못하고 향수병 걸린 로랭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지옥이 될 줄은 몰랐다. 로랭의 완벽주의와 공사하는 사람들의 ‘빨리빨리’ 스타일이 부딪히면서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20일이면 끝난다는 공사가 두 달이 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로랭이 점점 말이 없어졌다. 여름 무더위가 계속되자 로랭은 아침에 눈을 뜨면 “숨을 쉴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먹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잘 먹지도 않고 어쩌다 먹으면 토하기까지 했다. 무섭게 말라갔다.
“당신 향수병에 걸린 것 같아. 고향으로 가. 프랑스에서 푹 쉬면서 생각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고. 아니 우리 뉴욕으로 다시 가자. 한국에서 하려던 일은 수업료 내고 좋은 공부했다고 생각하지 뭐.”
우리의 한국 생활이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가 싶었다. 로랭을 위로하는 나의 마음도 찢어지는 듯 아팠다. 결국 로랭은 프랑스로 떠났다.
“이 스튜디오 자리를 다시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어보았으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우리 대신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사이 월세는 계속 들어가니 보증금을 날리게 될 테고, 인테리어 비용은 당연히 못 돌려받고, 새로 구입한 주방 기기들은 헐값에 중고로 팔아야 하고.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은
물론,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이 공중으로 증발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사람부터 살아야 하니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프랑스로 떠난 로랭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란 생각에 나는 예정됐던 외부 강의 일정을 하나씩 취소했다. 8월 말에는 나도 한국을 떠난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우리 부부의 한국 정착은 철저한 실패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로랭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나타난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한번 해보자. 노력할게.”
모든 일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루어진다. 마음이 원하지 않는 일은 아무리 해도 안 된다. 불행해질 뿐이다. 반대로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다 이루어진다. 프랑스에서 휴식을 취하며 무슨 내적 변화가 있었는지 몰라도 돌아온 로랭은 스튜디오 오픈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특별히 즐거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불평불만을 터뜨리거나 우울해하지는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법인을 세워 준비하고 영업 허가를 받고 신고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이를 위해 관공서에 드나들고 교육을 받으며 ‘르 셰프 블루 코리아’ 오픈을 준비했다. 포기하려다 다시 시작한 우리에게 잠시라도 쉴 시간은 없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The point of no return)’로 들어섰다는 절박감이 오히려 힘이 됐다.



‘르 셰프 블루 코리아’ 드디어 문을 열다

3 식사 전 밸류가든 회원들이 세미나를 하는 모습.



‘르 셰프 블루 코리아’ 드디어 문을 열다

1 웰컴드링크로 제공한 상그리아. 와인에 소다와 레몬즙을 희석해서 만든 음료. 2 오이 위에 서양가지와 캐비아를 얹은 카나페. 3 토마토 브로콜리 앤초비 수프.



한국의 식자재 이용한 프랑스 코스 요리
9월 2일 로랭의 테스트 키친, 르 셰프 블루 코리아가 문을 열었다. 뉴욕의 르 셰프 블루는 프라이빗 케이터링 서비스를 하는 회사였지만, 서울의 르 셰프 블루 코리아는 쿠킹 스튜디오로 이용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을 하고 싶지는 않아. 뉴욕에서처럼 프라이빗 케이터링 서비스를 하는 것은 아직은 이른 것 같고. 미각 교육이나 조리 교육에 중점을 두고 가끔 이벤트를 하는 거야. 예약으로 하루에 한 팀만 받아 프랑스 정통 코스 요리를 준비하는 거지. 한국산 식자재를 이용한 레시피를 계속 연구할 거야. 마음이 맞는 파트너들과 협업도 하고. 올해 말까지 해보고 정말 적응하기 어려우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로랭의 머릿 속에는 앞으로의 계획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공중분해 될 뻔했던 르 셰프 블루 코리아가 이렇게 문을 열다니 감개무량했다. 오프닝 파티 이후 일이 쏟아졌다. 외부 강의 일정 틈틈이 쿠킹 스튜디오에서의 디너 행사를 준비했다. 로랭은 조력자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고 싶어했기 때문에 하루에 한 팀 이상 예약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예약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해야 했다. 로랭의 음식을 한번 먹어본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다. 좋은 식자재를 이용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인정받고 싶다는 로랭의 진심이 통한 걸까? 기뻐하는 로랭을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9월 30일에는 밸류가든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르 셰프 블루 코리아에서 디너 겸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참석자는 22명.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을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로랭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어린이들에게 사회 경험과 사회 학습 기회를 제공해주는 단체야. 공동체의 감수성을 키워주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고. 정원 가꾸기를 통해 공감 교육을 한다는 취지가 참 좋잖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했다. 그렇게 정성껏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한 행사가 성공적이 아닐 수 없다. 르 셰프 블루 코리아도 밸류가든의 친구가 됐다. 르 셰프 블루 코리아는 이런저런 일정으로 꽉 찬 10월을 보내고 있는데, 특히 10월 말에는 흥미로운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전라북도 진안에서 만난 농부 김영일 씨를 모셔올 생각이다. 김영일 씨는 어느 날 불쑥 스튜디오로 찾아와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토종닭을 프랑스 요리에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런 인연으로 로랭과 나는 진안의 농장을 찾아갔고, 그가 사육하는 토종닭, 채소, 블루베리를 보고 반했다. “프랑스 농부들처럼 자존심과 자부심이 대단한 농부”라며 로랭은 감탄했다.
“한국 시장에서 파는 재료들이 별로라고 투덜대더니 찾아보니까 괜찮은 식자재들이 있잖아. 앞으로 식자재 여행을 다니자고. 진안에서 만난 농부처럼 자연의 섭리에 맞게 바른 식자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야.”
내 말에 로랭이 코를 긁적거렸다. 할 말이 없을 때 그가 하는 버릇이다. 10월 말, 진안의 농부가 직접 생산한 식자재들을 들고 오면 로랭은 그 식자재를 이용해 프랑스 코스 요리를 준비한다. 로랭이 늘 꿈꾸던 ‘셰프와 농부의 만남’ 이벤트다.
이제 로랭이 콧노래 부르며 서울의 아침을 시작한다. 한국의 가을은 진정으로 눈부시다. 아름다운 하늘에 환상적인 날씨! 나도 덩달아 설렌다. 희망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르 셰프 블루 코리아’ 드디어 문을 열다

4 직접 만든 마요네즈를 곁들인 새우 칵테일. 5 메인 요리는 비네그레트 소스를 얹은 베이비 그린 샐러드와 으깬 감자, 부르기뇽(와인을 넣은 쇠고기 스튜). 6 디저트는 샹티이 크림을 얹은 과일 칵테일.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르 셰프 블루 코리아’ 드디어 문을 열다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 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르 셰프 블루 케이터링(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고 각종 매체에 음식 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3년 11월 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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