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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너무나도 유쾌한 주상욱

글·김명희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뉴시스 tvN 제공

입력 2013.09.17 09:42:00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깨알같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데 왠지 밉지 않다.
야심에 눈먼 ‘실장님’ 연기를 할 땐 결코 몰랐던 주상욱의 반전 매력&인생.
유쾌한 너무나도 유쾌한 주상욱


KBS 드라마 ‘굿 닥터’에 출연 중인 김민서에게 주상욱(35)과 함께 작업하는 소감을 묻자 “개구쟁이같이 장난을 많이 쳐 선배가 있으면 현장이 즐거워진다. 연기할 땐 카리스마도 있고 멋진 분”이라며 웃었다. 이를 유심히 듣던 주상욱은 “웃으며 이야기하니까 농담 같지만 전부 사실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후로도 인터뷰 내내 그의 ‘잘난 척’은 여러 번 반복됐다. 겸손이 미덕인 세상에 인터뷰에서 대놓고 자랑질이라니….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진공청소기로 우울한 기운을 훅 빨아들인 것처럼 산뜻한 느낌이었다. 김민서의 말이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었던 것이다. 반듯한 이목구비와 탄탄한 몸, 자신감에 유쾌함까지 갖춘 이 남자 주상욱. 그동안 스치듯 수많은 작품에서 만나왔기에 익숙한 듯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를 잘 모른다.

양날의 칼, 실장님이라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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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이다. ‘그저 바라보다가’ ‘자이언트’ ‘파라다이스 목장’ ‘가시나무새’ ‘신들의 만찬’까지, 얼추 살펴봐도 출연 작품의 절반 이상이 실장·팀장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드라마에서 ‘실장님’은 주로 남자 서브 주연, 그러니까 잘생겼지만 주인공을 하기에는 살짝 매력이 부족한 남자 배우에게 주어지는 배역이다. 재벌 부모의 후광으로 회사에 입사해 요직에 앉고 그 배경을 이용해 여자 주인공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주지만 여주인공은 결국 사랑을 택해 떠나는 게 그가 거친 작품들의 공통된 수순이었다.
물론 실장님 배역의 시작은 그의 귀공자풍 외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배우에게 특정 이미지는 독이 되기도 한다. 같은 캐릭터, 같은 연기, 같은 이미지…. 시청자들이 식상해하는 만큼이나 그 자신도 답답했다고 한다. 주상욱은 최근 오락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실장님인지 아닌지만 보고 한 작품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배우들은 새 작품 섭외가 들어오면 ‘어떤 배역이냐’ ‘주인공이냐, 아니냐’를 묻는데 저는 ‘또 실장님이야?’라고 묻곤 했어요.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비슷비슷한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보통 실장님은 (여주인공에게 차이고 나서) 유학을 떠나는데, 그 전에 사무실 책상에 걸터앉아 명패를 만지는 장면이 있어요. 여주인공에게 뺨을 맞거나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 설정도 비슷비슷해요. 저도 모르게 그런 것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더라고요.”
틀에 박힌 캐릭터에서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를 맡게 해달라는 주문이 통했는지, 주상욱은 최근 종영한 OCN 드라마 ‘특수수사 전담반 TEN2(이하 텐)’에서는 연쇄 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잃은 형사 여지훈 역을 맡았다. 여기서 주상욱은 냉정한 형사가 충격적인 사건으로 심적 변화를 겪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 ‘지훈앓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굿 닥터’에서 실력파 소아과 의사 김두한 역을 맡아 배우로서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왕이나 의사 역을 해보고 싶었어요. 왕은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고 의사는 예전부터 의학 드라마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굿닥터’ 대본을 보는 순간 ‘작가님이 나를 위해 썼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무조건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냉정한 성격 등은 전작인 ‘텐’에서의 형사 여지훈과 겹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형사에게 흰 가운 입혀놨다는 말 듣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더니 머리에 5백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원형 탈모가 생겼어요. ‘이거 큰일 났다’ 싶어 동료들에게 고민을 얘기했더니 다들 대수롭지 않게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동안 그렇게 연기에 대한 고민을 안 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웃음).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데 어느 정도 치료가 돼서 머리카락이 빠졌던 부분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올라오고 있어요. ‘나 진짜 의사가 된 것 아니야?’ 싶을 정도로 배역에도 적응이 됐고요(웃음).”

유쾌한 너무나도 유쾌한 주상욱

지금까지는 폼 잡는 ‘실장님’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주상욱. 알고보면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성격이다.





당구장, 예식장, 발레파킹…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주상욱은 올해 데뷔 15년째를 맞았다. 모델로 활동했던 옛 여자 친구를 따라 용돈 벌이 삼아 광고를 찍은 게 계기가 돼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훤칠한 키와 외모 덕분에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그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무명 시절 주차장, 당구장, 예식장, 주유소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런 고달픈 삶을 겪은 덕분에 그에겐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그 또래의 배우에게선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남자다움이 있다. 그것은 인상 쓸 때만 생기는 이마의 굵은 주름처럼 언뜻언뜻 드러나지만 숨길 수 없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비로소 오랜 무명 생활을 청산한 그는 당시 한 토크쇼에 출연해 그 시절의 어려움에 대해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려야 했다. 그런데 군 제대 후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소득을 계산해보니 1년에 9백60만원, 한 달로 따지면 80만원 정도 됐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발레파킹 일을 할 때는 누구한테나 반말을 들어야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꼽는 가장 힘들었던 아르바이트는 마라톤 대회 코스 그리기. 주상욱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1m마다 바닥에 표시를 하는 거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42.195km를 달리면 허벅지에 피멍이 들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이 시절 갈고닦은 체력 덕분에 주상욱은 지난해 ‘남자의 자격’ 출연 당시 철인 3종 경기(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에 도전해 3시간 58분의 기록으로 멤버 중 1등을 차지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견디며 스타의 꿈을 키웠지만 금방 찾아올 것 같던 기회는 잡힐 듯 잡힐 듯 하다가도 멀어져가곤 했다. 오디션에서 최종 합격한 후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대사 연습을 하며 촬영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배역이 갑자기 다른 배우에게 넘어가기도 했고, 출연이 확정돼 액션 스쿨에서 무술 연습까지 한 작품 역시 출연이 무산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시련이 굳은살이 돼 맷집을 키울 수 있었고, 웬만해선 얼굴 붉히지 않는 무던한 성격 덕분에 좋은 인연도 많이 만들었다. ‘굿 닥터’ 연출자인 기민수 PD와도 그런 우여곡절 끝에 신뢰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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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수 PD와는 2009년 ‘그저 바라보다가’라는 작품을 함께했는데, 당초 기획했던 것과 달리 황정민 선배와 김아중 씨의 러브 라인이 부각되면서 제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죠. 저는 그런 작품이 너무 많아서 아무렇지도 않은데, PD님은 줄곧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웃음). 그래서 ‘오작교 형제들’ 때도 출연 제의가 왔으나 시간이 안 맞아서 못했고, 그러다 이번 작품으로 다시 뵙게 됐죠.”
그러고 보면 주상욱에게서 느껴지는 유쾌함의 근원은 밑바닥 경험이 아닌가 싶다. 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 맨 꼭대기에 올라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그 안에서 끊임없이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주상욱은 ‘굿 닥터’ 예상 시청률에 관한 질문에서도 일단 크게 질러놓고 봤다.
“시청률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커요. 우선 첫 회 시청률이 두 자릿수였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전작 드라마 ‘상어’와 비슷하게 출발해도 괜찮고요. ‘황금의 제국’ 제작 발표회 당시 손현주 선배가 ‘우리 드라마 4회까지만 봐달라’고 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굿 닥터’는 2회까지만 봐주세요. 그다음은 정말 자신 있습니다. 물론 낮은 시청률로 시작해서 상승세로 이어가는 것도 괜찮지만요. 시청률 20%가 넘으면 제가 광화문 광장에서 프리 허그를 해드리겠습니다.”
‘굿 닥터’는 첫 방송 이후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데 현재 스코어는 19%. 조만간 주상욱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망가진 모습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천생 배우
인터뷰를 하면서 관찰한 바로는 그가 코미디를 해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허당인 남자 주인공도 괜찮고, 시트콤에서 지질한 동네 백수 역도 ‘역대급’으로 소화해낼 것 같다.
주상욱은 그러잖아도 ‘개그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돼 인터뷰를 마친 후 곧바로 녹화하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개그콘서트’ 많은 코너 중에서도 하필 ‘버티고’에 출연하게 됐다”며 그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했다. ‘버티고’는 여러 남성 출연자들이 개그우먼 허안나에게 맞으면서 버티는 가운데 웃음을 유발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주상욱은 “허안나 씨가 어제 연습을 하면서 ‘실제로 맞아보실래요?’라고 묻기에 ‘녹화 때 맞겠다’고 했다. 참 내가 별짓을 다하고 있다”며 장난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개그콘서트’ 녹화장에서 여러 번 NG를 내며 허안나의 매운 손맛을 톡톡히 봐야 했다. 주상욱은 좀 고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의 ‘별짓’을 볼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를 해도 좋을 만큼 그는 끼가 충만한 배우다.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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