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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비범한 사진, Jordan Matter

야구 선수, 카메라로 홈런 치다

글·권이지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사비나미술관 제공

입력 2013.09.13 15:02:00

사람들로 가득한 횡단보도에서 점프하는 커플, 길 위에서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키스하는 커플. 사람이 중력에서 해방된 1000분의 1초를 포착한 조던 매터의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와우!’ 하고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평범한 일상 비범한 사진, Jordan Matter

자신의 작품 ‘Training’ 속 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한 조던 매터. 그는 촬영 후 땀을 흘리며 “내가 모델들에게 너무 힘든 요구를 했다. 반성하고 있다”고 농을 던졌다.



하얀 수선화 꽃밭 위에 사람이 떠 있다(‘Light as a Cloud’).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리를 높게 든다.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다(‘Stoller Boogie’). 이다지도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사진의 배경은 지하철 역, 극장, 도서관, 광장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공간이다. 작품 속 인물의 몸짓과 표정에는 위트가 가득하다.
이런 작품들을 탄생시킨 조던 매터(47)는 최근 미국에서 ‘핫한 포토그래퍼’로 꼽힌다. 그의 사진집 ‘Dancers Among Us’는 2012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2012 반스앤노블(미국 서점)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존 힐 전 예일대 사진과 교수, 마틴 개서 스위스 사진 박물관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도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6월 말 한국에서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시공아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진집이 번역, 출간된 데 이어 9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에서 ‘Dancers Among Us :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린다.
7월 말 개인전 오픈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그를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났다. 훤칠한 키에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녔는데, 꼭 만화 ‘개구쟁이 데니스’의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도 처음이라는 그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묻자 “전통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이 대조되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한국인들이 내 작품에 좋은 반응을 보여 준 점에 대해 감사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매터는 이번 한국 방문 중에 발레리나 김주원과 함께 서울역, 경복궁, 남산 한옥마을 일대에서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하는 동안 김주원이 매터에게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이 “한 번 더”였다고 한다. 그는 김주원에 대해 “댄서로서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사람”이며 “나와 작업한 어떤 댄서보다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협업에 대한 감도 있고, 아이디어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야구 선수, 배우 그리고 카메라를 잡게 한 예술가의 피

평범한 일상 비범한 사진, Jordan Matter

1 ‘Taken’.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에 위치한 시에스타 비치에서 찍은 사진으로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며 찍다 습격을 받을 뻔했다. 2 ‘Under the Boardwalk’. 고난도 포즈로 키스를 하는 두 사람은 실제 연인이다.



매터의 작품이 극적인 이유는 작업 방식에 있다. 그는 인간이 중력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1000분의 1초를 담고자 한다. 하지만 카메라의 연사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한 번만 셔터를 누른다. 적게는 한두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 반복해 작업한다. 모델은 전문 무용수로 와이어나 트램펄린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점프하고 동작을 취한다. 매터는 그 자신도 함께 뛰거나 누워서 점프 동작이 더 높게 보이게끔 촬영하며 가장 극적인 순간을 보여주려 한다.
극적인 순간은 작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도 몇 차례 있었다. 사진 전공자가 아니었던 매터는 대학 시절 야구 선수로 활동했고, 졸업 후에는 뉴욕 맨해튼에서 배우로 지냈다. 직업을 여러 번 바꾼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가 아니었고, 몇 차례의 좌절이 있었다.
매터는 자신이 예술적인 측면으로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음을 인정했다. 그의 증조부 아서 B. 칼스는 화가이자 교육자였고, 조부인 허버트 매터는 사진가 겸 디자이너로 예일대 사진과 교수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손자에게 암실을 구경시켜줄 만큼 열성적이었다. 조모인 메르세데스 칼스 매터는 미국의 존경받는 화가이자 뉴욕 스튜디오 스쿨의 창시자. 아버지 알렉스 매터는 영화감독, 어머니 폴라 페이튼은 패션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술가보다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는 지독한 연습 벌레였지만 경기에 나서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타석에만 서면 몸이 얼어붙었던 것. 샌타모니카 칼리지 대학 야구팀에 들어갔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었고, 크게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에서만 경기에 투입됐다. 그러던 중 주전 2루수였던 동료가 부상을 당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게 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그 자리에서 홈런을 날렸고, 그의 인생에도 ‘결정적 순간’이 나타났다. 이 홈런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됐고 덕분에 그는 리치먼드 대학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곳에서 매터는 또 다른 결정적 순간으로 꼽은 지금의 아내 로렌을 만났다.
“만일 주전 2루수였던 친구가 다치지 않았다면 저는 홈런을 치지 못했을 겁니다. 제 인생은 늪으로 빠졌을 거고요. 제 삶을 구한 결정적인 홈런이죠.”
하지만 그는 프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야구를 그만뒀다. 그다음 선택한 것은 연극. 피는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뉴욕의 맨해튼으로 떠났다. 배우가 돼 주로 연극 무대에 올랐지만 톱스타는 되지 못했다. 생계형 배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매터 부부는 여행을 떠나 산을 오르던 중 아름다운 경치를 만났다. 이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이날을 계기로 사진을 배우게 됐고, 그의 인생을 뒤바꾼 큰 사건이 됐다.
“사진 교실에 등록해 처음으로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인화한 순간 큰 충격을 받았어요. 야구 선수였을 때, 배우로 살았을 때 느껴보지 못했던 열정이 그 속에 숨어 있었어요.”
그는 대학 시절 감명 깊게 봤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전시를 떠올렸다. 왜 그 전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는지 되짚어봤다. 그리고 그는 브레송을 롤 모델 삼아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인물 사진은 찍을수록 만족감이 들었다.



평범한 일상 비범한 사진, Jordan Matter

1 ‘Stoller Boogie’. 출산으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 은퇴한 캐린 웬츠와 그의 딸. 캐린은 이 사진을 위해 무려 64번이나 점프했다. 2 ‘Double Take’. 남자 무용수의 표정이 위트 있다. 3 ‘She Said Yes’. 소품까지 직접 구해 올 만큼 열정적으로 임한 무용수 캐리와 1백 번 넘게 점프한 캐스린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저는 브레송의 작품 중에서 와인 병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년의 사진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소년을 보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그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지거든요. 그만큼 브레송의 사진에는 이야기가 다양해요. 제 사진에도 이야기를 담고 싶었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당연히 부담이 따를 것 같았지만 “내가 만일 회사원이었다면 고민이 많았을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그는 “야구 선수도, 배우도 모두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라 더 쉽게 도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매터는 자신에게 예술가의 피를 넣어준 부모님에게 고마워했다. 또한 먼 길을 돌아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응원해준 아내 로렌과 아들 허드슨, 딸 세일리시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진 속에 담긴 ‘뜻밖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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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Light as a Cloud’. 29번의 공중제비로 얻어낸 소중하고 유일한 한 컷이다.



조던 매터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프로젝트 ‘Dancers Among Us’는 우연히 받은 한 통의 이메일로 시작됐다. 2009년 3월 미국의 유명 무용단인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 소속 댄서 제프리 스미스는 매터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이메일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스미스의 무용 공연을 보고 함께 작업하던 중 댄서들의 건강함과 아름다운 몸짓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 그들을 보고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았고, 그들과 함께라면 일상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스미스는 매터의 이야기를 듣고 동료 단원들을 설득했다. 제안을 들은 몇몇 댄서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매터는 댄서들과 여러 가지 대화를 하며 콘셉트를 잡아나갔다. 댄서들은 몸에 딱 붙는 레오타드 대신 평상복을 입고 길 위로 나섰다. 2009년 봄에 시작된 첫 작업은 뉴욕을 배경으로 여름까지 계속됐다. 결과물을 본 댄서들도 모두 만족해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의 이 작업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홍보를 위해 블로그에도 올려봤지만 반응이 미미했다. 그러던 2010년 봄 사진 전문 잡지 ‘포토 디스트릭스트 뉴스’ 블로그에 그의 작품 ‘Rain dancer’가 소개됐다. 입소문이 온라인을 통해 퍼졌고, 하루 블로그 방문자가 70만 명이 넘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니 저명인사가 된 것이다. 언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무용수들의 협업 요청도 이어졌다.
이 폭발적인 반응 덕분에 매터는 뉴욕을 벗어나 미국 전역에서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도시를 먼저 정하고 나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 댄서 모집 공고를 올리고 이력서를 받았다. 톱 댄서건 무명 댄서건 상관없이 그들의 사진과 추천서, 열정을 보기로 했다. 가장 큰 선정 기준은 ‘적극적으로 연기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인가’다. 모델이 정해지면 그는 약속 장소에서 만나 댄서와 함께 걷거나 드라이브를 하며 주변을 살핀다. 그의 작품에 가장 큰 밑바탕이 되는 작업이다. 그는 “돌아다니다 보면 그 장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 이야기가 곧 작품이 된다”고 설명했다.
“영어에 세런디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습니다. ‘뜻밖의 재미’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저는 그 단어에 충실합니다. 따로 계획해서 작업하지 않아요. 계획에 집중하면 그 밖의 더 좋은 장면이 보이지 않아서죠. 댄서들과 대화하며 산책을 하다 보면 적당한 장소가 보입니다. 이 장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상상해요. 너무 터무니없는 내용보다는 일상생활과 관련 있는 것들 위주로요. 콘셉트를 들으면 댄서들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합니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댄서는 이를 온몸으로 느끼는 포즈를 보여주고, 저는 그 장면을 찍고요.”
매터는 자신의 사진 속에 ‘와우 요소’를 담는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와우 요소란 사람들이 사진을 봤을 때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는 극적인 장치를 뜻한다. 사람들이 일상을 보다 즐겁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앞으로도 와우 요소를 더 많이 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와우 요소가 눈에 띄는 사진은 미국 시카고에서 촬영한 ‘Double Take’다. 길을 가다 맘에 드는 여성을 발견한 남성의 모습을 찍은 작품으로 노력과 우연이 잘 어우러져 있다. 남녀 댄서가 횡단보도를 걷는 행인 사이에서 높게 뛰어오르는 장면을 촬영하기까지 20분 정도 소요됐는데, 난도는 최상급에 속했다.
“횡단보도에는 최대한 사람들이 많아야 했어요. 불과 몇 초밖에 안 되는 순간에 모델을 맡아준 앤젤라(여성 댄서)와 드미트리어스(남성 댄서)가 동시에 높이 뛰어야 했어요. 행인에게 방해받지 않아야 했고요. 저는 앤젤라에게 상대를 유혹하는 표정을, 드미트리어스에게는 놀라움과 흥분 어린 표정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는데, 힘든 촬영이었지만 두 사람의 도움 덕분에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죠.”
그는 차기작으로 자신의 경험을 살린 프로젝트 ‘Athletics Among Us’를 준비하고 있다.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담을 예정이라고 한다.
“야구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노력이야말로 목표를 성취하는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다음 프로젝트 속 운동선수를 보며 자신이 선택한 길이 무엇이든 간에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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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시공아트)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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