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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 100단 김종태의 작심 공개 남편 마음 사용 설명서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3.09.13 14:37:00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남이라면 몰라도 한 이불 덮고 자는 남편이 그렇게 느껴질 땐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까지 든다. 다음 카페의 유명한 이야기꾼 김종태 씨의 ‘숨어서 보는 내 남편의 아찔한 일기장’을 열면 그런 남편의 속마음에 떡하니 들어가게 된다.
처세 100단 김종태의 작심 공개 남편 마음 사용 설명서


여름휴가를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커플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부부와 마주쳤다. ‘커플 티셔츠라니 참 다정하기도 하지, 우리 집 커플 티셔츠는 신혼여행 다녀와서 어쨌더라?’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뒷모습을 다시 봤다. 그런데 남편의 티셔츠 등판에는 ‘아내 말을 잘 듣자’라는 문구가, 아내의 등엔 ‘주는 대로 먹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기대했던 아름다운 뒷모습과는 다른 반전이다. 남편은 왜 그 굴욕적인 티셔츠를 입고 공공장소에 나와야 했을까.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고주망태가 돼 집에 들어갔던 것일까. 비상금을 들킨 후 속죄를 강요당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설마 진심으로 아내 말을 잘 듣고 싶어서?
그 남편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알 것 같은 남자, 김종태(46 ) 씨를 지난 8월 초 서울 서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그가 펴낸 ‘숨어서 보는 남편의 아찔한 일기장’(인서트)이라는 책에는 가사 분담에서 벗어나기부터 용돈 타내기, 성(性)스러운 생활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내들이 알면 뒤로 넘어갈, 가정에서의 처세술이 깨알 같이 실려 있다.

가족은 아군인가 적인가
김씨는 거의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의 평균치 가장이다. 대학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후 회사에 들어가 20여 년 만에 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중학교 시절 만나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와의 사이에 딸 둘(20, 18)을 두고 있다. 그는 스스로 가족 내 서열을 7위로 규정한다. 아내와 두 딸, 강아지 백호, 거북이 두 마리에 이은 마지막 순서다. 이미 모계사회가 된 대한민국에서 남편들이 살아남는 법은 비굴해지고 능글맞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속속들이 처세술을 공개했으니, 아내에게 쫓겨나지는 않았을까.
“책이 나온 뒤 집에 가져간 날 밤에 자다가 깨서 보니 책과 아내가 없어졌더라고요. 밤새 아이 방에서 다 읽은 것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는데, ‘뭐 별거 아니네’ 하면서 지나가더라고요. 일단은 잘 넘어간 것 같아요(웃음).”
그에게 가족은 가장 가까운 아군이자, 무서운 적이다. 가사 분담에 조금만 소홀하다 싶으면 바로 그녀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아내의 직격탄보다 더 무서운 건 “아빤 전생에 대장금이었을 거야. 얼마나 요리를 해댔으면 지금은 음식 만드는 데 손 하나 까딱 안 하잖아.” “아빤 전생에 청소부였을 거야. 지금은 쓰레기 한번 안 치우는 것 같아.” “아빤 전생에 가구였을 거야. 지금도 침대에서 꿈쩍 안 하잖아”라는 딸들의 뒷담화다.
이렇게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허를 찌르는 아내, 딸들과의 전쟁에 임하려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그의 필살기는 ‘최대한 피곤한 척하기’다. 진이 빠진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지금까지 일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빨리 이불 펴.’ 하지만 이런 작전도 남발하면 약효가 떨어진다. 눈치 빠른 아내에게 들켜 쓰레기봉투 들린 채 다시 내쫓기기 십상이다.
집안에서의 권력자는 단연 아내다. 그로서는 월급을 통째로 가져다주는 자신보다 아내가 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그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건 자신의 용돈을 쪼개고 쪼개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면 그 돈이 고스란히 아내의 주머니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애틋해지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20년 동안 풀지 못한 미스터리다.
“딸들은 엄마와 싸울 때 ‘아빠와는 대화가 되는데 엄마와는 말이 안 통한다. 엄마는 좀 논리적으로 말하면 좋겠다’고 불평을 하죠. 그럴 때는 제 편인 것 같다가도 저와 아내가 말다툼을 하면 100% 엄마 편을 들어요. 엄마와 딸은 핏줄로 연결됐다지만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잖아요. 엄마가 애틋하고 짠하면 아빠도 그런 것 아닌가요?”
그가 또 한 가지 사소하게 분노하는 것은 아내가 딸들에게 자신들의 러브 스토리를 왜곡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실상은 아내가 먼저 그를 좋아했음에도 아이들은 그 반대로 알고 있다고.
“저와 단둘이 있을 때는 자신이 먼저 좋아한 걸 인정하다가도, 아이들에겐 제가 군대 시절 보낸 편지 같은 걸 보여주며 ‘아빠가 엄마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고 이야기했더라고요. 아이들은 이제 그걸 진실로 믿고 있어서 제가 아니라고 하면 ‘아빠 그렇게 살지 마!’라고 해요. 억울하기 짝이 없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다. 아내와 딸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그도 반항과 복수라는 것을 한다. 최대한 티 안 나게. 예를 들면 밤 11시까지 귀가하라고 하면 약속을 지키는 척하면서 10분 정도 늦게 들어가기, 아내가 해놓은 맛있는 반찬 먹는 척하다가 안 먹기, 샤워하고 수건 2장씩 쓰기 같은 것들이다. 둔한 아내들은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섬세한 복수다. 하지만 그의 가족만의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의 술안주를 탐하는 아이들에게 경고를 하고자 둘째 딸이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에 ‘딸에게 보내는 연서’라는 제목으로 ‘아빠의 성인용 간식을 몰래 훔쳐 먹지만 않는다면 수명이 연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장문의 글을 올렸다가 선생님이 성인용 간식을 술·담배로 오해해 아이를 교무실로 부른 적도 있다.

그들이 성스러운 생활에 임하는 자세

처세 100단 김종태의 작심 공개 남편 마음 사용 설명서




중년 남성들의 술자리 단골 메뉴 중 하나가 ‘아내의 샤워 소리가 야생 진드기보다 무섭다’는 둥 부부의 섹스 라이프에 관한 것이다. 남편의 일기장에 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어느 날 아내가 달력에 쳐놓은 동그라미를 가리키며 그에게 “저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보디랭귀지로 대화한 날’을 달력에 체크해 놓은 것이었다. 아내가 남편의 무관심을 환기시키려고 시위용으로 표시를 한 것인데, 그걸 보고 삐딱해진 김씨는 아내가 없는 사이에 몰래 동그라미를 몇 개 더 그려 넣었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내가 혀를 끌끌 찼다.
“덜렁 하나밖에 없는데 거기에 더 그려놓으면 그걸 누가 모르냐?”
김씨는 부부간의 공감이 극에 달하면 뇌에서 애착 호르몬이 분비돼 우정이라는 감정이 비롯되고, 그러면 육체적인 자극을 갈구하는 신경전달물질 페닐에틸아민이 감소한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간 성관계 횟수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근거도 ‘아내 친구 남편(아친남)’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다. 그런 일에 수더분한 편인 그의 아내도 꼭 친구들은 만나고 온 후에는 잔소리가 심해진다고 한다.
“아친남들은 아내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기도 하고, 기념일이 아닌 날에도 샴페인과 꽃을 들고 퇴근해 감동을 안기기도 하고, 친정어머니보다 더 자상한 시어머니를 선물하기도 하더라고요. 마술사들 같아요(웃음). 그중 가장 당황스러운 건 ‘누구 남편은 평균 주 3회를 한다더라’ ‘어떤 언니는 매일 밤 베개 들고 도망 다니기 바쁘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제 주위 남자들의 이야기는 그것과 전혀 달라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다는 친구도 있고, 국경일마다 한다는 친구도 있고. 그래도 그들은 나은 편이에요. 올림픽에 비하면. 그래서 아내에게 얘기했죠. ‘어차피 당신 친구들의 실상은 대외용과 다를 것이다. 당신도 부풀려서 얘기해라. 그럼 그 집에서도 십중팔구 부부싸움 날 거다’라고요.”
부부의 성스러운 생활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남편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멘토에게서 코칭 받기를 멈추지 않았다. 야한 속옷을 입고 기다리거나 밤늦게 화장을 하거나 술상을 봐놓고 기다리거나 하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내와 친구의 전화 통화를 엿듣게 됐다.

아내 우리 남편 징하다. 어쩜 그렇게 안 하고 살 수 있니?
친구 우리 남편도 안 해!
아내 그래서 나랑 자고 싶으면 3만원 내고 자라고 했어.
친구 그거 우리가 내야 되는 거 아냐? 아쉬운 건 우리잖아!
그는 얘기를 듣고 난 후 아내에게 조금 미안해졌다고 했다. 물론 그가 앞서 과학적 근거를 들어 주장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죄책감과는 다른 감정이다. 자연의 섭리를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인 데 대한 도의적인 책임감과 비슷한 것이다.

대한민국 남편들이 꿈꾸는 행복
그는 얼마 전 평일 오전에 회사에 월차를 내고 오이도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 시간에 구두를 신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등 뒤로 안타까운 시선들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저 아저씨 회사에서 잘렸나 봐.’ 그가 구두를 벗어서 손에 들자 ‘어머어머, 뛰어내리려는 거 아냐?’ 정상에 올라 휴대전화를 꺼내 주변 경관을 찍자 ‘가족들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려나 봐.’…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지만 우리 시대 가장들이 처한 모습의 한 단면이다. 지독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 채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모습은 애처롭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우 같은 아내, 토끼 같은 자식과 먹고살기 위해 또다시 일터로 향한다. 물론 더 욕심을 낼 수도 있겠지만 김종태 씨가 생각하는 행복은 입에 밥칠, 술칠 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수입을 유지하는 것, 아내·두 딸과 재미 삼아 티격태격하는 중에 때로는 성스러운 하루하루로 인생을 채워가는 것 정도로 소박하다. 아이들이 공부를 좀 더 잘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몸무게 4.5kg에 머리카락이 한창 자란 상태로 태어난 큰딸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랐던 걸 떠올리면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지금 이대로 행복해요.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와 살아서인지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막상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더 그렇죠. 제가 어릴 때 할머니에게 어느 날 ‘1백원만 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할머니가 ‘오늘은 50원밖에 없으니 나머지 50원은 내일 주마’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50원을 받아들고 기분이 좋아서 ‘우리 할머니 최고, 제가 나중에 효도할 테니 꼭 오래 사셔야 해요’라고 말했죠. 그런데 그날 저녁 할머니가 부엌에서 저녁을 차리다가 넘어지더니 밤새 끙끙 앓으시는 거예요. 잠결에 낮에 가졌던 고마운 마음은 싹 사라지고, ‘졸리는데 왜 그래, 짜증 나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날 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께 너무너무 죄송했고, 그 일이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늘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니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느새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남편의 속마음을 알려고 했을 뿐인데 끝내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그들 마음속 가장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가족을 향한 눈물처럼 순수한 사랑이라고 믿고 싶다. 설마 악어의 눈물은 아니겠지!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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