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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 고민정 사랑에 살다

글·구희언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3.09.03 09:26:00

‘결혼한 아나운서’보다 ‘시인의 아내’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고민정 KBS 아나운서의 향기롭고 아름답게 사는 법.
시인의 아내, 고민정 사랑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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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저녁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화제는 ‘고민정 개념 발언’이었다. 누리꾼들은 고민정(34) KBS 아나운서가 KBS 2TV ‘가족의 품격-풀하우스’에 나온 부분을 캡처해 퍼 나르며 ‘개념녀’라 칭송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시인 조기영(45) 씨와 7년 열애 끝에 2005년 한글날 결혼한 고 아나운서는 슬하에 두 살배기 아들 은산이가 있다. 이날 방송에서 그는 명품 가방이 없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물질에 끌려다니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명품 가방 1백만원짜리 하나 사느니 10만원짜리 10개 사서 들고 다니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소신 발언으로 박수를 받았다.
이후 일부 매체에서 ‘고민정 아나운서 남편 수입은 제로’라는 식의 기사를 냈다. 자극적인 제목 탓에 남편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불거졌다. 같은 날 밤 고 아나운서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 사람의 꿈을 접게 할 순 없었다’라는 제목의 글로 심경을 밝혔다. 그는 ‘꿈도, 미래도 없던 대학생에게 아나운서라는 꿈을 제시해주고 헌신적으로 도와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라며 ‘가능성을 발견해주고 꾸준히 곁에서 선생님 역할을 해준 남자’라고 적었다. 이날 기자도 그 글을 접하곤 ‘이 사람 대책 없이 우직하고 솔직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만나보고 싶었다.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궁금했다. 블로그에 쓴 글을 읽었다고 하자 그는 “남편이 말렸는데 올린 글이다”라며 웃었다.

저녁노을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삶
“그날 방송을 잘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고민정 남편 수입 없음’이라며 남편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기사가 나와서 화가 났어요. 옆에서 남편이 피식 웃으면서 ‘맞는 말인데’라고 해서 더 속상했죠. 아이가 생긴 뒤로는 ‘가족’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거든요. 그 글을 올리면서도 변명 같아 보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진심을 얼마나 알아줄까 걱정도 됐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올린 글이었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그 글이 다시 기사화되고, 저희를 괴롭히던 기사는 묻혔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셔서 감동했어요. 남편과 저도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한 3일 천국이었죠.”
아이돌 가수가 광복절을 맞아 “광복절 의미를 기리자”고 발언하면 ‘개념 아이돌’에 등극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당연한 삶이 ‘개념’으로 취급되는 사회 분위기를 그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조금 부담스럽기는 해요. 사람들은 저를 초월한 사람으로 여기더라고요. 저도 여자고 사람인데, 좋은 거 갖고 싶은 욕망과 갈등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전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에게 물질에 구속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고, 그렇기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송에서는 서민을 위한다고 말하고 정작 자기 삶이 그렇지 않은 건, 제가 생각하는 언론인의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결코, 제가 도의 경지에 다다라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최근 그는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마음의숲)라는 산문집을 냈다. 2010년 낸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된 후 주변에서 책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새 출판사에서 새 제목으로 나온 만큼 이전과 달라진 자신의 삶과 가치관, 아이 엄마 고민정의 이야기 등이 추가됐다. 말이 개정판이지 거의 새로 썼다. 책을 펼치고 그 실함에 놀랐다. 한입 베어 물면 앙금이 입안 가득 들어차는 빵 같았다. 그는 “주변에서 방송하는 사람이 책을 냈다니 ‘시인인 남편이 써줬느냐’는 반응이더라”고 했다.
“남편이 작가라서 그런지 저는 글 쓰는 일을 귀하게 여겨요. 글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거든요. 작가라는 타이틀은 자기의 생을 걸고 글 쓰는 사람에게만 붙을 수 있는 호칭 같아 주변에서 ‘고민정 작가님’ 하면 무안하고 쑥스러워요. 책도 대충 쓴 느낌을 주기 싫어서 퇴고 기간이 길었죠. 방송 일보다도 더 힘들었어요. 다듬을수록 아쉬운 부분이 나오고, 불만족스럽지만 기일은 맞춰야 하고…. 그 덕에 책 마무리로 한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어요.”
2004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지금은 KBS 1FM ‘국악의 향기’와 KBS 1TV ‘국악 한마당’을 진행하고 있는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아나운서는 나이 들수록 찾아주는 사람은 없고 이미지가 소비되는 직업이잖아요. 남편에게 ‘누구를 바라보고 가야 할까’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마침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죠. 장금이가 한 상궁 덕에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해서 더 큰 사람이 되잖아요. ‘나한테도 한 상궁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네가 한 상궁이 되면 되잖아’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그동안 욕심을 부렸다는 걸 깨달았죠. 후배들에게도 멋있는 선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참 괜찮은 방송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러려면 아나운서들이 재능을 발현해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쓴 것도 그 일환이었죠.”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는 친정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그는 “남편이 여행을 싫어하는데, 사진 속 이 남자는 저만 믿고 배낭 하나 메고 오지를 한두 달씩 다녔다”며 “완성된 책을 훑어보며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는 2010년 책을 낼 당시부터 생각해온 제목이라고.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 제목이에요. 제가 바로 위 두 오빠와 나이 차가 많은 막내딸인데, 어머니는 막내가 대학생이 되면 화장품도 같이 쓰고, 옷도 빌려 입고, 여행도 함께 다니고 싶으셨나 봐요. 그런데 막상 그 딸은 대학 가서 화장도 안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다니다 재빨리 결혼한다고 하니 속이 많이 상하셨을 거예요. 어느 날인가 남편이 먼저 잠들고, 혼자 멍하니 있는데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고요. 글을 쓰다가 마지막에 ‘엄마한테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 사람을 더 사랑해서 미안해’라고 적었는데 마침표를 찍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복합적인 감정이 그 문장 하나에 담긴 것 같았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짠한 문장이에요. 나중에 제 아이들에게도 듣게 될 말이고요.”
‘글쟁이’ 남편은 아내의 책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남편이 원래 제 방송이든 책이든 평이 박해요. 그런데 이번에는 머리글을 읽더니 ‘좋더라’ 하더라고요. ‘웬일이야’ 싶어 물으니 ‘내 얘기라서 그런가? 좋던데’라며 웃더라고요. 저는 방송 모니터링부터 인생 조언까지 남편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에요. 이 사람을 만난 지 15년 정도 됐는데,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남편의 말이 맞을 때가 많아서 속으로만 ‘항상 당신이 옳아’라고 생각했거든요. 트위터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굉장히 고민하고 올리는 편인데, 파업 당시에도 글을 올리려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갈 걸, 괜히 올려서 미움 받는 게 아닐까’라고 했더니 남편이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지금에 와서 그때를 회상하면 그렇게 행동한 게 제 가치관과 맞는 일이었죠. 이제는 전적으로 남편의 의견을 신뢰하고 있어요. 서로 입바른 소리를 하는 편이라 남편은 제가 그렇게 무섭다네요. 저는 남편이 제일 무서운데(웃음).”
그는 남편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학창 시절부터 이 사람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많았어요. 풍족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따르는 걸 보면서 참 멋진 사람인가 보다 막연히 생각했죠. 개인적으로 알고 얘기를 나눠보면서 세상에 대한 열린 시각이 존경스러웠어요. 더 깊이 안 뒤로는 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때 어머니가 간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존경스럽다고 생각했거든요. 남편을 만나곤 부모님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살면서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프러포즈도 받지 않았는데 혼자 속으로 결혼을 결심하고 만남을 이어갔죠.”
열한 살 연상의 가난한 예술가와 결혼하겠다는 막내딸의 의사를 존중해준 부모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평소 ‘집에는 결혼할 남자만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해왔기에 남편을 데려갔을 때 부모님도 아무나 보여줄 아이가 아닌 걸 아셨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며느릿감을 데려오면 마음에 들더라도 일단 반대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엄마보다 아내와 사는 날이 더 길 텐데, 제 반대조차 이겨내지 못하면 험한 인생을 어떻게 이겨낼까 싶어요. 이게 인생에서의 첫 관문이라 생각하고, 마음에 들어도 일단 반대할 거라고 남편에게도 말해둔 상태죠(웃음). 연애와 결혼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련은 어떤 식으로든 닥치게 마련이거든요.”
그가 시인의 아내로 산 지도 어느덧 9년째. 그는 “마냥 로맨틱하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비루하지만도 않은 삶”이라고 했다.
“모든 부부가 그렇듯 저희도 행과 불이 섞인 삶을 살아요. 저는 ‘시인의 아내’라는 말이 참 좋아요. 그런데 시를 즐겨 읊는 감수성 풍부한 문학소녀는 아니죠. 남편의 불만도 그거예요. 제가 시를 외우지 않는다는 것(웃음). 그래서인지 9월에 남편이 낼 소설‘달의 뒤편’에 저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사람은 시를 읊어요. 예술가의 아내라는 건 어찌 보면 세상에 때 묻지 않고 철들지 않은 남자와 평생을 사는 거잖아요. 하지만 둘 중 하나는 각종 고지서를 체크하고 도장 찍고 돈을 내러 가야 하죠. 남편이 가는 길과 세상에서 요구하는 길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때론 힘들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싸우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이런 게 사람 사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균형을 맞추며 살다 보니 스릴도, 보람도 있고요.”

시인의 아내, 고민정 사랑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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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남편은 희귀병인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다. 원인을 모르니 해결책도 없다. 그의 발병 사실을 알고서도 마음을 바꾸지 않은 고 아나운서. 그의 번뇌는 책 속 ‘감당할 수 있겠니’ 편에 절절히 녹아 있었다.
“이런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을 왜 안 했겠어요. 철모르는 20대가 시인이라는 타이틀에 홀딱 넘어가서 한 결혼은 절대 아니거든요. 만약 그랬다면 3년도 못 채웠을 거예요.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남편이 아팠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하늘의 뜻인지 그때는 정말 이겨낼 자신이 있었어요. 마지노선은 ‘휠체어까지는 괜찮을 것 같아’였어요. 아플 때도 곁에 있어준 것 말고는 해준 게 없었어요. 이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에 슬퍼하지 않고,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 덕인지 그때부터 남편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더라고요.”
한때 남편은 생계를 위해 시 쓰기를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려 했다. 남편을 말린 건 아내였다. “가정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부란 서로 가는 길은 달라도 목표는 같은, 철길 같은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붙을 필요도, 한 사람이 희생할 필요도 없죠. 저는 이 사람을 위해 돈을 벌거나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다행히 돈이 들어오는 것뿐이죠. 이 사람이 천재적인 재능이 있지만 아직 빛을 못 본 작가이거나 최고의 작가가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크게 상관없어요.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여한 없이 하고픈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최선의 내조라고 생각해요.”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과 나 그리고 은산이
엄마가 되고부터 가족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졌다는 그는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과 기분 좋은 의무감이 생겼다”며 웃었다.
“오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의 글을 썼어요. ‘은산아, 엄마는 네가 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라고요. 어쩌면 아이가 아니라 제게 하는 말일지도 몰라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겸손함을 잃지 말라는 의미에서 쓴 말이죠. 그리고 물은 고여 있지 않고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흘러가잖아요. 은산이가 생명 같은 희망과 웃음,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바람에서 적었어요. 저는 늘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함께 큰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기어 다니기만 하던 아이가 서서 걷는 걸 보고 ‘너와 내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는데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걷기 연습을 하는 동안 엄마는 아무것도 못 했구나’ 싶어 반성했죠. 그렇게 아이와 저 그리고 ‘큰아들’ 남편까지 세 사람이 서로 배워가며 살고 있어요(웃음).”
대학교 4학년이 돼서야 선크림이 뭔지 알았고 평소에도 화장을 과하게 하지 않는다는 그의 파우치에는 팩트와 입술에 바르면 붉은 기가 도는 립 밤, 머리 끈이 전부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꾸미지 않고도 향기 나고 아름답게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즐겁고 행복하게, 자신을 위해 살라”고 조언했다.
“‘가족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라고 한탄하기 전에 TV나 잡지를 보다가 예쁜 게 눈에 띄면 기억했다가 사거나 좋은 곳을 찾아가는 소소한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가끔 너무 사고 싶은 옷이 있으면 지르고, 근사한 곳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는 거죠. 일상에서 그런 식의 희열은 한 번쯤 필요한 것 같아요. 즐겁게 사세요. 그래야 그 즐거움이 가정에도 활력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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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협찬·호텔 더 디자이너스 홍대(02-326-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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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정수영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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