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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인 박웅현 우리 삶에 돌직구를 던지다

글·구희언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입력 2013.08.23 11:26:00

광고와 책으로 대중에게 울림을 준 광고인 박웅현이 인생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소나기보다 가랑비 같던 그와의 시간.
광고인 박웅현 우리 삶에 돌직구를 던지다


‘사람을 향합니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생각이 에너지다’… 광고인 박웅현이 누군지 모르더라도 이 문구들을 보면 ‘아, 그 광고!’ 할 것이다. 26년째 광고를 만들어온 TBWA KOREA의 박웅현(52) ECD(임원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책은 도끼다’ ‘인문학으로 광고하기’ 등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한 그가 인문학 강연에서 삶의 태도와 방향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담은 책이 5월 ‘여덟 단어’(북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그는 이 책에서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란 여덟 개 단어를 토대로 삶에 대한 단상을 풀어냈다.
26년 차 광고인의 연륜을 넘어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에게서 삶이라는 퍼즐의 힌트를 찾을 요량으로 7월 11일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열린 강의 현장을 찾았다. 평소 주례를 서달라는 후배들에게 “파워포인트로 해줄까” 할 정도로 프레젠테이션에 익숙한 그지만, 이날만은 완전 비무장 상태였다. 그는 청중이 무작위로 던진 질문을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채운 후 각 질문을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답했다.
단상에는 박웅현 혼자 서 있었지만, 답변할 때는 세계를 주름 잡는 광고인이자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어낸 인생 선배로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고, 때로는 ‘당의 명령’으로 통하는 아내의 한마디에 깨갱 하는 소탈한 가장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날의 퍼즐 조각을 꺼내놓는다. 돈오점수(頓悟漸修 :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점진적 수행 단계가 있음을 이르는 말)할 수 있는 힌트를 찾아보자. 단, 그가 책에서도 말했듯이 큰 기대는 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네 인생은 강의 몇 번과 책 몇 권으로 변할 만큼 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웅현입니다. 광고하는 사람이고요. 26년 동안 광고를 만들었고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운이 좋아서예요. 싸이처럼 춤추며 즐겁게 해드리진 못하겠지만,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릴 수는 있어요. 소크라테스가 ‘질문은 영혼의 산파술’이라고 했죠.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준비한 말만 하지만 질문을 받으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물론 제 생각이 정답은 아니에요. 하나의 의견, 참고사항일 뿐이죠. 어떤 멘토라도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거든요.

광고인 박웅현

▼ 직업관이 궁금해요.
광고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광고인의 일이고, 저는 그 일을 잘하고 싶어요. 1차적으론 광고주에게 좋고, 2차적으론 사회에 좋겠죠. 도덕 교과서를 쓰려고 광고를 만들진 않아요. 그랬다면 사기꾼이게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가 나가고 채용에 나이 제한이 없어졌어요.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에는 도전한다’는 여성가족부에서 슬로건처럼 쓰고, ‘사람을 향합니다’도 지금까지 쓰이죠.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진심이 짓는다’ ‘생각이 에너지다’ 등 인생철학이 담긴 메시지가 생명력이 길더라고요. 광고는 삶을 한 발짝 앞서 보여줍니다. 미술관의 예술작품이나 책은 열 발짝을 앞서도 ‘저게 뭘까?’ 하면서 따라가지만, 광고는 세 발짝만 앞서도 채널이 돌아가요. 그래서 광고를 그 시대의 거울이라고 하죠.



▼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건 머릿속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완성된 문장으로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정리하려고 노력해보세요. 다른 사람의 멋진 말을 기억해두는 것도 좋죠. 기억하려면 감동하는 게 제일 좋아요. 회사에서 주니어 사원들에게 어떤 책을 주고 ‘이 책을 팔아보라’고 하면 반 이상은 단순한 정보만 줘요. 저자가 누구고 어떤 내용이다. 그걸로 팔리겠어요? 사람은 머리로만 움직이지 않거든요. 마음의 울림, 감동이 있어야 해요. 차라리 ‘이 책을 읽고 많이 울었다’고 하는 게 나아요. 평소에 밑줄 긋고 많이 메모해두세요.

광고인 박웅현 우리 삶에 돌직구를 던지다


▼ 직접 만든 광고 중 다시 보기 쑥스러운 것도 있나요.
지금 만든 광고도 오글거려서 못 볼 때가 있는데, 예전에 만든 광고는 얼마나 오글거리는 게 많겠어요. ‘KTF적인 생각이 대한민국을 움직입니다’ 하는 광고가 있는데 그건 못 보겠어요. 아이돌 가수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음료 광고도,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2년만 지나면 채널을 돌리고 싶어 할 것 같아요(웃음).

▼ 광고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요.
기타 회사 두 곳이 있었어요. 한 곳은 ‘우리는 기타를 만든다’고 했고 다른 한 곳은 ‘우리는 음을 만든다’고 했어요. 기타를 만든다고 한 회사는 망했죠. 광고인으로서 스스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일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일까 생각하면 후자예요. 대부분의 광고회사가 지향하는 지점도 그럴 거예요.

사회인 박웅현
▼ 이미 충분히 성공한 것 같은데, 더 바라는 게 있나요.
성공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누가 물으면 잘살아왔다고 답할 거예요. 바라는 것은 없고, 그저 밥 먹을 때 꼬리 칠 걱정 안 하고 잘 때 내일 일 겁내지 않는 개처럼 살려고 해요. 제겐 지금 하는 프로젝트, 지금 이 자리가 중요해요. 집에 가면 자는 게 중요하고, 다음 날 아침 수영하러 가면 그게 중요하겠죠. 하루하루 충실히 살고 싶지, 꿈꾸거나 내일을 계획하고 싶지는 않아요. 오늘을 충실히 살면 그게 쌓여서 5년 후 내가 되는 거죠. 노조도 정년도 없는 이 업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경쟁력을 키우는 것뿐이에요. 그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세요.

▼ 가치관을 억압하는 직장 상사 때문에 고민이에요.
옳은 답은 없을 것 같아요. 고민하세요. 선택하세요. 그리고 자신이 한 선택을 옳게 만드세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뜻대로 모든 걸 펼칠 순 없잖아요. 언젠가 거쳐야 할 가시밭길은 반드시 있고, 어떤 삶이든 진 땅은 있어요. 저도 고민 끝에 다잡아서 광고인의 길로 왔고, 이 길을 옳게 만들려고 계속 가고 있죠. ‘삶의 가치관을 너무 많이 침해한다’ 싶으면 놓되, 놓은 뒤에는 그게 아예 없었던 것처럼 독하게 마음먹으세요.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열었다면 다른 문은 벽이라고 생각하세요. 힘들어서 회사를 옮긴다고 샤방샤방 ‘Happily ever after’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괜히 옮겼어…’ 생각하는 건 미련한 짓이죠.

▼ 회의 중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의 중 싸우는 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3~5년 차의 싸움과 10년 차의 싸움은 달라야 해요. 변심이 아니라 지혜죠. 3년 차 후배가 문자로 ‘너무 힘들어요’ 하기에 ‘네가 겪은 질곡은 너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이나 윗것의 문제이니 자책 마라’고 했어요. 12년 차 후배가 같은 말을 하기에 문자 하나 보냈어요. ‘싸워라’라고. 12년 차는 그럴 나이입니다. 회의 중 갈등은 필연적이죠. 줄 수 있는 최대치를 주되,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들의 한계인 거예요. 그런 일이 있다면 ‘이 팀장은 여기까지구나’ 메모해두세요. 열 번 정도 적을 즈음이면 윗사람이 바뀌었거나 상황이 달라져 있을 거예요. 좌절의 깊이를 기억했다가 반면교사로 삼아야죠. 이제 웬만한 칼은 지금의 저를 찌르지 못해요. 그런 저를 만든 8할 이상은 반면교사였어요. 젊은 시절 힘들었던 걸 후배에게 주기 싫다는 생각이었죠. 이 위치에 왔다면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예요.

▼ 나보다 뛰어난 후배(학생)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스님들이 죽비를 내리칠 상황에서 ‘나도 저랬어’라는 생각을 너무 깊이 하면 내리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후배가 나보다 뛰어나면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계급장 떼고 1:1로 토론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내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죠. 선배는 무조건 후배보다 옳고, 선생은 무조건 학생보다 옳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세요. 선생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다시 보니 이게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게 학생을 대하는 훨씬 진지한 태도 같아요.

▼ 현실도피를 꿈꿔도 될까요.
안 될 것 같아요(웃음). 설령 하고 싶다 한들 도피가 되겠어요? 모든 문제의 가장 좋고 빠른 해결책은 정면돌파예요. 피하면 더 꼬여요.

▼ 하고 싶은 일과 돈 가운데 뭘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을까요.
나이브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양심을 걸고 말하자면 돈을 따라가면 돈은 오지 않아요. 잘하는 일, 하고픈 일을 하다 보면 돈이 따라오죠. 연봉 때문에 고민이라면 하고픈 걸 하는 게 맞고, 성공할 확률도 높다고 생각해요.

인간 박웅현

광고인 박웅현 우리 삶에 돌직구를 던지다


▼ 이상형이 궁금해요.
이상형이 있기엔 위험한 나이 아닌가요(웃음). 이성이 아닌 사람이라면 눈빛이 단단한 사람이 좋아요. 표정은 편안한데 자기 중심이 있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게 마련이죠.

▼ 성격이 침착한가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가요.
후자예요. 전 나이 드는 게 좋아요. 젊을 때는 천방지축 야생마였죠. 제 일이 차분하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스티브 잡스에게 확고한 자기장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도 자기 마취를 해야 해요. 스티브 잡스는 때때로 자기장대로 해석해서 욕도 먹었지만, 그처럼 뭔가 이루려면 자기장이 없어서는 안 되죠.

▼ 옷 입을 때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나요.
옷에 대한 주권은 당(아내)이 갖고 있고 인민(박웅현)은 그 결정에 따를 뿐이죠(웃음). 머리 민 것, 귀 뚫은 것도 당의 결정이었어요. 1990년대 중반에 머리 빠지니까 밀라고 해서 밀었고, 2000년대 들어서 광고인이니 귀도 뚫고 수염도 길러보라고 해서 그 말에 따랐어요. 지금은 당이 옷에 대한 권력을 작은 당(딸)에게 이양했어요. 작은 당이 인민을 살펴보고 ‘노땅 같다’ ‘젊어 보인다’ 판단을 내리죠. 지금 입은 옷은 가로수길에서 샀는데, 티셔츠는 자라에서, 모자는 뒷골목에서 샀어요. 안경도 비싸지 않아요. 훈련을 받아서인지 옷을 보는 눈이 조금은 늘더라고요.

▼ 슬럼프 극복법이 있나요.
없어요. 그냥 견뎌요. 몸에 병이 없길 바라지 말듯, 슬럼프가 없길 기대하지 마세요. 몸에 병이 있는 건 당연한 거예요. 병을 디폴트(default)로 가지고 간다는 느낌으로, 슬럼프를 삶의 범퍼로 생각하세요. 동물들은 눈비가 오면 맞고, 상처가 나면 낫길 기다리다, 정 안 되면 동굴에 들어가 마지막을 준비하죠. 그런 걸 배우세요. 만약 누군가가 슬럼프를 견디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해도, 그것이 내 방법은 아니니까요.

▼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제가 무작정 ‘현대물리학’이나 ‘동양사상’ ‘서양미술사’ 같은 걸 추천하면 도움이 될까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너무 믿지 말고 주변의 고수를 활용하세요. 서울대 추천 100권, 언론사 추천 100권도 믿지 마세요. 객관적으로 좋은 책이라는 것일 뿐, 내가 받아들이는 건 정말 다르니까요. 그걸 잘 아는 건 친구나 선후배, 부모님과 동생이겠죠.

가장 박웅현

▼ 소중한 사람과 현명하게 거리 두는 방법은 뭘까요.
저는 너무 이타적인 척하지 않고 살기로 했어요. 김훈의 ‘화장’에 아내가 아파하는 걸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냉정하게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잘살려면 아내와 딸, 두 사람은 챙겨야 행복하겠더라고요. 어머니까지 세 여자가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요. 힘이 남으면 후배도 챙기고 여기 계신 분들도 챙기겠죠. 소중한 사람과의 거리는 그렇게 정리하면 조금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자는 아무것도 없이 약속 하나로 함께 사는 사람이고, 아이는 자기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니 포기하지 않고 디폴트로 놔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죠. 더글러스 태프트 전 코카콜라 회장이 신년사에서 ‘우리 삶은 건강과 영혼, 가족, 친구, 일이라는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과 같다’고 했어요. 저글링을 하다 보면 떨구는 공도 있겠지만 그게 가족이나 건강, 영혼, 친구여서는 안 된다고요. 멋진 신년사 아닌가요.

▼ 딸이 쓴 책에 보면 아버지가 중학생일 때 술을 권했다던데.
아이는 부모 생각보다 많은 걸 안다고 생각해요. 술을 궁금해하게 두지 말자 싶었고, 마시고 실수하더라도 아빠한테 하는 게 낫겠지 싶었는데, 별로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아요. 하하하. 딸이 쓴 책(‘인문학으로 콩갈다’)에도 나오는데, 내가 낳았을지언정 아이가 나와는 다른 생명체임을 인정하는 게 부모로서는 중요한 것 같아요. 무책임해지세요. 덜 사랑하시고요. 아이가 내 생각대로 컸으면 하는 건 오만이에요.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박웅현이 딸을 아주 훌륭하게 키웠냐 하면, 빈틈투성이이긴 하지만 대체로 잘 자란 것 같아요. 모든 잔디밭이 빽빽할 수만도 없고, 어디에도 질지 않은 땅은 없으니까요.

여성동아 2013년 8월 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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