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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여행자는 왜 하코다테에서 발길을 멈추나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3.06.04 14:52:00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가 빛을 발하는 듯한 불야성(不夜城). 세계 3대 야경으로 꼽히는 빛의 도시 하코다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로는 하코다테의 매력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빛과 바다와 하늘이 빚어낸 성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여행자는 왜 하코다테에서 발길을 멈추나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가는 길.



하코다테는 홋카이도 최남단 반도형 지형의 도시다.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분위기가 공존하고 예스러운 정취와 현대적 화려함이 공존한다. 시내를 걷다가 뭔가 아쉬운 듯 뒤돌아보면 어느새 시야 가득 바다가 들어와 마음을 달래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하코다테 여행자들의 쏟아지는 찬사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황금연휴(일본의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최대 열흘간 이어지는 휴가)의 시작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사람들의 평가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러한 표현에 부족함을 느낄 만큼 매력적인 도시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는 ‘성지와 같은 도시’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고 싶다. 그 이유는 앞으로의 여정에서 밝힌다. 이처럼 하코다테는 한두 가지 수식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다양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지닌 도시다.
삿포로 역에서 JR하코다테혼센(函館本線)을 타고 동쪽으로 맞닥뜨리는 곳에 홀연 바다가 나타난다. 태평양이다. 이 태평양을 왼편으로 바라보며 하코다테에 다가갈수록 바다와 말 모양의 봉우리 고마가타케(駒ケ岳)를 여러 각도로 즐기면서 두 시간여를 달리는 것도 하코다테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하코다테 역에 도착하면 현대식 건축물이 여행객을 맞는다. 2003년에 신축된 역사(驛舍)로 그 자체가 관광 명소다. 역을 빠져나오면 바로 오른쪽에 여행객의 허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인 아사이치(朝市) 식당가가 나온다. 글자 그대로 새벽 시장이지만 점심 식사 때까지 열려 있는 식당이 대부분이고, 초저녁까지 여는 곳도 꽤 있다. 하코다테는 예로부터 해산물이 풍부하고 음식이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나는 흰 쌀밥에 투명한 주황색 연어알을 수북하게 올린 ‘이쿠라동(연어알 덮밥)’을 단숨에 비우고 숙소로 향하며 이튿날 동선을 궁리했다.

여행자는 왜 하코다테에서 발길을 멈추나

1 오시마토베쓰 역 건물 안에 있는 성모자상. 2 옛 하코다테 공회당과 모토마치 거리.



시간이 멈춰버린 곳 트라피스틴 수녀원·트라피스트 수도원
날이 밝자마자 향한 곳은 토라피스치누라 불리는 수녀원이었다. 이곳 시민들의 주요 이동 수단인 노면전차의 선로와 전선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도시의 새벽 풍경은 한 폭의 서양화처럼 이국적이다. 장난감처럼 귀여운 노면전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트라피스틴 수녀원에 도착했다.
트라피스틴(Trappistine: 일본어로는 토라피스치누로 읽음) 수녀원은 1898년 프랑스에서 온 8명의 수녀들에 의해 설립된 일본 최초의 관상여자수도원(기본적으로 수도원 안에서 기도와 관상, 노동을 중심으로 한 생활을 함)이다. 트라피스틴은 이 수도회 그룹이 생긴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지명으로 남자수도회는 트라피스트라고 불린다. 이곳 수녀님들이 수익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 파는 마다레나 케이크와 버터쿠키는 방문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수녀원 안에는 잘 정돈된 정원과 유럽의 성을 연상케 하는 지붕 모양의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오른편에는 수녀원의 생활 모습과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실과 수녀원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판매하는 매점이 있다. 나 역시 성모상 목걸이와 버터쿠키를 구입한 뒤 정원으로 나와 조금 걷다 보니 5월 초임에도 유달리 추웠던 지난겨울 탓인지 벚꽃나무마다 꽃망울이 물방울을 잔뜩 머금은 채 만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뜰 중앙 왼편에 자리한 성모상 앞에서 잠시 고개 숙여 기도를 올리고 돌아 나올 즈음 어느샌가 빨갛고 노란 원색 우산의 긴 행렬이 보였다. 수녀원을 서둘러 빠져나와 남자 관상수도원인 트라피스트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 트라피스트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원은 신자가 기증한 토지 위에 세워졌는데, 프랑스로부터 9명의 수도사가 들어와 수녀원보다 2년 빠른 1896년 10월 문을 연 일본 최초의 가톨릭 수도원이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하코다테에서 열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무인역 오시마토베쓰(渡島當別) 인근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열차 등 교통편이 불편해서인지 아니면 시내에 다른 볼거리가 많아서인지 수녀원에 비하면 이곳을 찾는 방문객 수가 훨씬 적다.
사실 관광객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란 항상 예상하지 못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설렘이 있기에 가치가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차에 올라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내 우체국 간판이 유달리 눈에 띄는 오시마토베쓰 역에 도착했다. 조그만 역사에는 트라피스트 마을임을 실감케 하는 성모자상 등의 장식이 눈에 띄었다. 역사를 빠져나오자 방금 전 나를 싣고 온 열차가 둥글게 휘감아도는 바닷가 옆 철로 저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여느 어촌 마을의 간이역과 다를 바 없는 적막함이 엄습해왔다. 명성에 비해 너무나 한적한 분위기에 의아해하면서 역사 앞 가게에 들어가 수도원의 위치를 물었다. 노부부가 일러준 대로 바다를 바라보며 걸어 올라간 언덕 위에 펼쳐진 정경은 내가 인터넷을 통해 보고 상상하던 풍경보다 훨씬 아름답고 성스러웠다. 입구에서 수도원의 상징적인 건물이 있는 곳까지 500m쯤 이어지는 길이 자를 대고 쭉 그어놓은 듯 뻗어 있고, 그 양옆에 늘어선 아름드리 가로수는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장엄했다. 아름답지만 위엄 있는 정경이란 바로 이런 분위기를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넓은 부지 위에 자리 잡은 수도원과 탁 트인 초원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주변 환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내에 위치한 데다 담장과 건물로 가리워져 있던 아담한 수녀원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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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라피스틴 수녀원 정경.





괜스레 경건해지는 내 자신을 느끼면서 여느 때보다 느린 걸음으로, 그마저도 때때로 멈추면서 늘씬하게 쭉쭉 뻗은 가로수 길을 따라 아득히 먼 언덕 위에 위엄 있게 자리한 수도원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그대로 바다로 빠져버릴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열심히 사진기에 담았다.
수도원 건물을 향해 난 ‘천국의 계단’을 연상케 하는 계단 밑에 매점과 작은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매점에 들어가 마음씨 좋아 보이는 점원에게 소프트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하고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따스한 미소로 답해주는 그 점원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도사였다. 평소 수도사들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황금연휴라 매점 일이 너무 바빠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수녀원에서 사온 쿠키 한 개를 건네자 그는 답례로 아이스크림에 꽂아 팔던 과자를 두 손 가득 집어주었다. 수도원에서 생산한 우유와 버터로 만든 이 과자는 아이스크림 스푼 대신 사용하도록 고안됐는데, 이곳 특산품이기도 하다. 이 친절한 수도사는 내게 수도원을 둘러싼 담장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기를 권했다. 수도원을 방문하고도 정면만 보고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수도사가 일러준 대로 따사한 봄볕을 받고 있는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자 오래된 창고 건물들이 담장 위로 보이기도 했고 더 안으로 들어가자 수도사들이 농사짓는 밭도 볼 수 있었다. ‘아, 이곳에서 감자 같은 농작물을 기르는구나’ 하며 눈길을 돌리자 ‘루루드 동굴’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생각보다 깊숙한 곳에 있어서 도중에 발길을 돌려 다시 한 번 가장 높은 언덕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드넓은 초원과 먼 바다가 ‘이곳을 찾은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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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에 ‘남작’ 칭호가 붙은 까닭
긴 여운을 남긴 채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뒤로하고 수도사가 일러준 역전 뒤편의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옮겼다. 수도원에서 역전으로 향하는 길과 달리 도중에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크고 허름한 건물에 단샤쿠(男爵) 감자자료관이 있고, 그 곁에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료잔소(龍杉創)가 있다. 입구 카운터 옆에 첼로가 놓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고, 전면 유리창을 통해 오시마토베쓰 역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19세기 말 영국 유학을 떠난 한 일본 청년이 현지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부친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감자꽃 만발한 들녘과 영국에서 먹던 감자 요리 등 감자는 그에게 연인과의 추억을 더듬는 상징이 됐다. 텅 빈 가슴을 메우려는 듯 하코다테 근교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아이리쉬코브라라는 품종의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훗날 이 감자에 ‘남작’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이는 일본은행 총재를 지낸 그의 부친에 이어 그도 남작의 지위를 물려받은 까닭이다. 그는 신앙심이 깊었던 사랑하는 여인의 뜻에 따라 92세에 가톨릭 신자가 됐고, 95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가와타 유키치(川田龍吉)다. 사후 발견된 유품에는 애인의 머리카락과 90여 통에 이르는 편지가 나왔다고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기에 더욱 가슴 아픈 것일까. 감자자료관에서 애잔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동서양 건축물의 만남 모토마치의 하치만자카
가슴 뿌듯한 경험과 이야기를 가득 안고 하코다테로 돌아오는 열차의 차창을 살짝 올려보았다. 기분만큼 상큼한 바닷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역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 유명한 야경을 보기 위해 택시를 타고 하코다테 산으로 향했다. 도중에 친절한 운전기사의 권유로 곧장 로프웨이 승강장으로 가는 대신 문화재급 건축물이 늘어서 있는 모토마치(元町)에 하차해 로프웨이 승강장까지 걸어갔다. 하치만자카(八幡坂)라고 부르는 언덕을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서양 교회들이 늘어서 있다. 유달리 눈에 띄는 옛 하코다테 공회당 쪽으로는 기념품 상점과 카페, 오래된 일본 전통 건축물들이 늘어서 대비를 이루었다. 로프웨이를 타기 전에 반드시 모토마치에 와서 이 골목길을 걸어야 하코다테의 진수를 본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로프웨이에 몸을 실었다. 하코다테 산의 높이는 334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원래 섬이었다가 오시마 반도와 연결된 곳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1945년까지 입산 금지 구역이었던 덕에 자연환경이 잘 보전돼 있고 약 6백 종의 식물과 1백50종의 새가 서식하고 있다. 둘레가 9km에 이르는 이 산을 다 돌아볼 시간이 없어 로프웨이를 타고 전망대가 있는 정상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아직 노을이 지기에는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미 전망대에 자리한 카페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황금연휴인 데다 모처럼 비 온 뒤 맑게 갠 날씨가 야경을 즐기기에 최적이었다. 해가 지는 동안 여기저기서 환성과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나는 코코아 한 잔으로 몸을 데운 뒤 옥상으로 올라가보았다. 옥상에서는 하코다테 항과 쓰가루 해협을 양분한 하코다테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봄바람이라 하기에는 몸을 움츠리게 할 만큼 차가운 기운이 몰아쳤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쪽으로 바다를 낀 하코다테 시내를 내려다보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진청색 하늘과 불빛, 그리고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코다테의 야경은 절정을 이루어 모든 이를 환호케 했다. 나도 그들 틈을 비벼대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홍콩, 나폴리와 함께 세계 3대 야경으로 꼽히는 하코다테의 야경은 그렇게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한 여성 관광객은 하코다테의 매력을 서양식 건물과 일본 전통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어디서나 아름다운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것이라 했다. 거기에 어릴 적 선물받은 트라피스트 쿠키의 맛이 지금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하코다테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한 편의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감흥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코다테를 떠나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코다테 언덕 곳곳에 산재한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을 누리지 못한 것뿐이다.

여행자는 왜 하코다테에서 발길을 멈추나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홋카이도의 문화 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여성동아’ 지면에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Life in Hokkaido’를 연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홋카이도의 관광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3년 4월 홋카이도관광대사로 임명됐다.

여성동아 2013년 6월 5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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