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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패밀리 영화 같은 그들의 삶

글·구희언 기자 | 사진·REX 제공

입력 2013.06.04 11:01:00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왕 즉위식에 참석하려 세계 각국 로열패밀리가 모두 모였다. 각각 한 편의 영화 같은 이들의 러브 스토리와 근황을 알아봤다.
로열패밀리 영화 같은 그들의 삶


왕정 2백 주년을 맞이하는 네덜란드가 1백23년 만에 남성 군주 시대를 열었다. 1890년 사망한 빌럼 3세 이후 당시 열 살이던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한 이래 1백23년 만에 네덜란드의 남성 군주가 된 인물은 빌럼 알렉산더르. 그전까지는 3대째 여왕이 왕위를 이어왔다. 33년간 재임한 그의 어머니 베아트릭스 여왕이 퇴위 서명을 하며 네덜란드는 마침내 ‘퀸’이 아닌 ‘킹’의 시대를 열었다. 4월 30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왕세자의 국왕 즉위식이 열리는 암스테르담에는 첫 손님인 벨기에 필립 왕세자와 마틸드 왕세자비를 시작으로 전 세계 왕족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현직 국왕은 즉위식에 초청하지 않는 외교 의례에 따라 18개국 왕족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왕궁이 있는 수도 암스테르담은 왕가의 색인 오렌지빛으로 물들었고, 축하 인파 수만 명은 “후라, 후라!(만세, 만세!)”를 외쳤다.

18개국 왕실 하객 모여
유럽 왕실 중 가장 젊은 국왕인 네덜란드 알렉산더르 국왕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는 높다. 그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폐하라고 부르기 싫으면 부르지 않아도 된다. 알렉스(알렉산더르의 애칭)라 불러달라”며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때 그는 ‘필스(맥주의 종류) 왕자’로 불리기도 했다. 폭음과 요란한 파티를 일삼아 ‘왕실의 문제아’였던 그는 1993년 대학 졸업 후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떨치려 애썼다. 이미지 개선에 한몫한 것은 아내 막시마 왕비다. 막시마는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아버지가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 시절 장관을 지냈다는 사실 때문에 왕비감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베아트릭스 여왕이 결혼을 지지하며 논란은 잦아들었다. 그는 꾸준히 네덜란드어를 배워 약혼 발표 기자회견 때 완벽한 네덜란드어를 구사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 막시마는 결혼 전 국제은행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빈민을 위한 소액 대출을 지원하며 봉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부부 슬하에 공주만 셋(카타리나아말리아, 알렉시아, 아리아느)이라 다음 왕위는 다시 여왕이 물려받을 전망이다.
로열패밀리 영화 같은 그들의 삶


벨기에의 필립 왕세자와 마틸드 왕세자비는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부부로 꼽힌다. 가난한 지방 귀족의 딸이던 마틸드는 2002년 유럽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히던 필립 왕세자와 결혼하며 1백69년 벨기에 역사상 최초의 벨기에 태생 왕비가 됐다. 이들의 결혼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부 왈롱 지방과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부유한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화합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다. 둘은 집안만큼이나 성격도 달랐는데, 내성적이고 차분한 필립 왕세자와 달리 마틸드는 외향적이고 활동적이었던 것. 둘의 결혼 생활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부부는 4남매(엘리자베트 공주, 가브리엘 왕자, 엠마뉘엘 왕자, 엘레오노르 공주)를 낳고 여전한 금실을 과시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의 사랑도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다. 가난한 미혼모였던 메테마리트는 1999년 호콘 왕세자를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예비 신부가 평민인 데다 미혼모라는 점, 네 살짜리 아들 마리우스의 왕위계승권 문제, 예비 신부의 전 애인이자 아이의 생부가 폭행 및 코카인 소지죄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국민은 크게 우려했다. 결국 결혼 직전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열어 메테마리트의 과거를 사죄하기에 이른다. 한편 왕세자의 아버지 하랄 5세는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는데, 그 자신이 평민이었던 소냐 왕비와 결혼하려 9년 동안이나 왕실과 국회의 허락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2001년 결혼한 부부는 2004년 잉리드 공주를, 2005년 스베레 왕자를 낳았다. 메테마리트는 결혼 후 유엔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로 선정됐고, 아프리카 주민을 위한 자선 활동과 소외 계층 문제 해결에도 앞장서고 있다.
남자판 ‘신데렐라’로 불리는 스웨덴의 다니엘 왕자와 왕위 계승자 빅토리아 공주 부부도 등장했다. 8년 연애 끝에 2010년 결혼한 두 사람의 사랑에는 큰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왕실과 국민의 반대였다. 2002년 우울증을 앓던 공주가 섭식장애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자 스톡홀름의 한 체육관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피트니스 강사이던 다니엘을 만난 것. 진한 시골 사투리를 쓰고 장발에 야구모자와 청바지 차림을 즐기는 다니엘에게 첫눈에 반한 빅토리아 공주는 주위의 반대에도 “왕위보다 다니엘을 더 사랑한다”고 밝히고 결혼했다. 결혼 후 왕실에서 ‘촌뜨기 개구리 왕자’를 ‘세계 일류 신사’로 탈바꿈시키려 대형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은 물론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딸을 얻었다.
영국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 콘월 공작부인 부부도 이날을 축하하려 암스테르담을 찾았다. 찰스 왕세자는 33년 전 열린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 즉위식에도 참석한 바 있다. 커밀라 콘월 공작부인은 전보다 훨씬 젊고 날씬해진 모습으로 화제가 됐는데, 회춘 비결은 ‘벌침’이라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그가 케냐산 벌침에서 추출한 천연 봉독으로 침을 맞고 있으며 시술 비용은 한 차례에 55~1백65유로(약 8만~24만원) 사이라고 보도했다. 평소 그가 즐기는 요가와 필라테스도 젊음에 한몫한다고.

로열패밀리 영화 같은 그들의 삶




‘럭셔리 메리’와 중동의 왕비 공주들 패션 대결
2002년 네덜란드를 선두로 마치 유행처럼 노르웨이, 덴마크, 스페인 왕세자들이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결혼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은 물론이다. 예비 신부들이 과거사 때문에 ‘신고식’을 거하게 치렀지만, 2004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와 결혼한 메리 왕세자비는 대학교수의 막내딸로 평범하게 자라 무난히 왕가에 입성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요트 선수로 참가했던 프레데릭 왕세자가 한 술집에서 메리를 만나 첫눈에 반한 것. 메리의 아버지 존 도널드슨은 한국에서 카이스트 교환교수로 있을 당시 프레데릭 왕세자의 결혼 허락 편지에 대한 답변을 국내에서 제일 좋은 한지에 써 보내기도 했다. 한편 2007년 메리 왕세자비는 연간 생활비 2백만 유로(약 26억원)의 세금을 한 해가 가기도 전에 다 써버려 비난을 받았다. 전용 미용사와 메이크업 담당자, 스타일리스트, 개인 비서를 둔 그는 명품 의류와 모피코트를 좋아하고 핸드백과 구두에 관심이 많다고. 현지 언론은 쇼핑 중독 증세를 보이는 그에게 ‘럭셔리 메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화려한 만큼 탁월한 패션 감각도 연일 화제인데, 한국에는 ‘패셔니스타’뿐 아니라 ‘근엄이’ 엄마로도 유명하다. ‘근엄이’는 아기답지 않게 근엄하고 진중한 표정의 2005년 태어난 크리스티안 왕자에게 붙은 별명이다.
이날 중동 국가에서 여성으로는 드물게 왕성한 대외 활동을 통한 국가 개혁을 주도해 ‘중동의 힐러리’로 불리는 카타르의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왕비와 모로코의 랄라 살마 공주는 화려한 패션으로 볼거리를 선사했다. 이 밖에 리히텐슈타인의 알로이스 왕세자 부부, 태국의 마하 와치라롱꼰 왕세자 부부, 브루나이 하지 알 무흐타디 왕세자와 펭기란 아낙 사라 왕세자비 부부,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아들 아스투리아스 공 펠리페 왕자와 레티시아 왕자비 부부도 즉위식 만찬에 참석했다.
한편 적응장애로 장기 요양 중이던 일본 마사코 왕세자비도 남편 나루히토 왕세자와 11년 만에 외출해 즉위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마사코 왕세자비가 왕실 공무 때문에 외국을 찾은 건 2002년 호주와 뉴질랜드 방문 이후 처음이다.

여성동아 2013년 6월 5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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