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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곽정은의 베드 토크

남자가 침대에서 절망할 때

일러스트·이영

2013. 04. 03

친밀하고 격정적인 섹스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무리 뜨겁던 커플도 어떤 이유에서든 섹스 트러블을 겪게 마련이다. 오늘은 남자의 절망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남자가 침대에서 절망할 때


“섹스할 때 아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은 지 오래됐어. 아내랑 할 땐 차라리 길을 지나다 마주쳤던 섹시한 여자의 모습을 떠올려. 나를 절망하게 하는 건 변함없이 소극적인 그녀의 태도야. 언제나 뭔가 제안하는 사람은 나였거든. 아내는 못 이기는 척 따라오긴 하지만 이젠 내가 먼저 제안하는 것도 지겨워. 이런 얘기를 아내에게 한번 해보라고? 내가 지금까지 안 해봤겠어?”
모임에서 만난 40대 남자가 조금은 우울한 얼굴로 털어놓은 말에서 절망의 기운이 전해졌다. 그는 아내가 오르가슴을 느끼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사는 내내 한 사람이 식사 메뉴를 정해왔다면 그것만도 귀찮고 피곤한 일일 텐데, 점심 메뉴도 아닌 섹스의 그 많은 순간을 한 사람이 리드해왔다니…. 그리고 솔직히 그의 아내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렇게 따라만 가는 게 즐거웠느냐’고 말이다.
침대 위에서 남자를 절망하게 하는 건 또 있다. 공감이나 이해는 여성들만의 특권이라는 착각이 침대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남자는 그저 사정만 하면 행복하잖아’라고 생각하는 여자 앞에서, 그 어떤 남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다른 욕망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남자들의 신체 메커니즘이 발기-사정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라인으로 돼 있다고 해서 섹슈얼한 욕구까지 단순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렸다. 십수년을 함께 살며 잠자리를 같이하지만 과연 그와 당신은 서로의 몸을 완벽히 읽어내고 있을까? 오히려 너무 가까운 이에게는 자신의 성적인 욕구나 판타지를 말하기 힘든 법이다. 그의 몸에 대해 먼저 알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그이는 늘 섹스할 때 서둘러서 고민이야’라고 말할 일은 없지 않을까. 당신이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그의 느낌에 공감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기 몸의 비밀 지도를 꺼내 당신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시작하려 할지 모른다. 늘 똑같은 동네 어귀만 돌다 오는 익숙하고 심드렁한 산책이 아니라, 둘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장소로 떠나는 여행 말이다. 그러니 요즘 들어 그와의 섹스가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면 “당신 요즘 왜 그래?”가 아니라 “자기야 내가 이렇게 해주면 어때?”라고 당신이 먼저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보라.
남자를 절망케 하는 마지막 한 가지. 자신의 육체가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되는 순간이다. 예전만큼 강한 존재가 아니라는 슬픈 자각을 하는 순간 남자는 절망한다. 하지만 이것은 남자들 스스로 풀고 극복해야 할 문제다. ‘왜 꼭 남자는 강해야 해?’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수만 있어도 괴로움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마냥 길고 격한 피스톤 운동이 사실은 여자의 쾌감에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페니스 그 자체보다 전희와 후희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절망을 줄일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남자의 절망, 그 속에는 언제나 여자가 있다. 하지만 남자의 절망을 해결해줄 열쇠 또한 여자에게 있다. 이 사실을 두 남녀가 이해하기만 해도 우리가 당면한 많은 절망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얕은 절망이 섹스 트러블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오늘밤 그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여보자. “자기, 오늘 정말 멋져.”

섹스 칼럼니스트 곽정은은 …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라고 믿는 ‘한국의 캐리 브래드쇼’. 한국 사회의 갑갑한 유리천장을 섹슈얼 담론을 통해 조금씩 깨나가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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