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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증기기관차 타고 ‘홋카이도의 보석’을 찾아가다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3.03.06 14:40:00

홋카이도의 명물 중 하나인 증기기관차는 일본 국내외 철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겨울철에만 한시적으로, 그것도 적은 횟수만 운행돼 타지 못했던 이 낭만적인 증기기관차를 탈 기회가 왔다. 게다가 도중에 데시카가 초(弟子屈町)를 둘러볼 기회까지 얻었으니, 행운이 겹친 셈이다.
증기기관차 타고 ‘홋카이도의 보석’을 찾아가다

‘SL 겨울의 습원호(冬の濕原號)’라는 명칭을 지닌 증기기관차. 사진제공·데시카가 초



불행 중 다행이랄까. 홋카이도는 혹한의 기나긴 겨울 때문에 인간의 개발이 지연됐고 그 덕분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수려한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 특히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국제 도시인 삿포로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구시로(釧路) 시를 중심으로 한 동쪽 지역은, 곳곳이 동식물의 보고라 할 만큼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문득 아프리카 남서부 칼라하리 사막의 보석이라 불리는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가 떠오른다.
그런 홋카이도의 보석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는 구시로에서 아바시리(網走)까지 160km에 달하는 철도 노선인 센모센(釧網線)이 제격이다. 센모센은 포장 안 된 산길을 묵묵히 굴러가는 달구지처럼 구불구불한 구시로 강가를 따라 달린다. 이 구간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知床)를 비롯해 아칸(阿寒), 구시로 습원(釧路濕原) 등 3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몇 년 전 여름 이 지역을 자동차로 돌아본 적은 있지만 철도 여행은 처음이라 출발 전부터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다. 더욱이 이번 여행은 일반 열차가 아닌 홋카이도의 겨울 풍물 중 하나인 ‘증기기관차(SL冬の濕原號)’를 탔다. 일본 국내외의 철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열차는 겨울철에만 한시적으로, 그것도 적은 횟수만 운행돼 좀처럼 탑승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철도 회사의 배려로 이 낭만적인 열차에 탑승하게 된 데다 덤으로 도중에 데시카가 초(弟子屈町)를 둘러볼 기회까지 얻었으니, 행운이 겹친 셈이다.

구시로에서 센모센을 타다
삿포로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구시로에 도착한 것이 저녁 6시 무렵. 나는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사 들고 센모센 열차에 올라탔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구시로 역을 열차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주린 배를 채우는 동안 차창 너머 구시로 시내의 불빛이 시야에서 멀어진다. 객차에 타고 있던 몇 안 되는 여행객과 통학생들이 대부분 하차한 뒤 나는 기관사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10년 동안 이 노선만 운행했다는 기관사는 도쿄나 삿포로 같은 대도시 지하철의 기관사들과 달리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계절로는 봄을 가장 좋아하며 주변에서 자생하는 각종 산나물을 채취할 수 있어 좋다고도 했다. 도쿄에서 공부하던 시절 10여 년간 만원 전차에 시달리며 통학하던 기억이 생생한 나로서는 기관사의 말에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기관사는 연신 손가락으로 열차 내외의 표식들에 대한 지적과 확인을 되풀이하면서 “한국에도 이런 한두 칸짜리 로컬 선과 무인역이 많이 있는가?” 하고 내게 물었다.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마슈(摩周) 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데시카가 초의 직원 스즈키 유키(鈴木裕樹) 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스즈키 씨는 지난 연말 우연히 삿포로 역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센모센 증기기관차 운행과 관련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데시카가 초 주변의 아름다운 곳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동의하면서 여러모로 취재 편의를 제공했다.

증기기관차 타고 ‘홋카이도의 보석’을 찾아가다

1 다이아몬드 더스트 현상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이벤트. 2 두루미가 오는 역으로 유명한 가메누카 역.



스즈키 씨는 데시카가 초에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인 마슈호(摩周湖)에서의 별 구경과 스노슈(눈 위를 걷기 위한 특수 신발)를 신고 호수 걷기 등의 이벤트에 참가하도록 계획을 세워주었다. 이런 계획은 폭설과 함께 세찬 눈보라가 몰아쳐 포기해야 했지만 대신 그에 못지 않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마슈 역에 도착해 숙소로 향하던 도중 나는 거리 표지판을 보고 불쑥 이오잔(硫黃山) 유황의 독특한 냄새를 뿜어내는 분기구(噴氣口)에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스즈키 씨가 흔쾌히 그곳으로 안내해 준 것이다. 인적 없는 산길에 반쯤 구름에 가린 달빛을 받으며 검푸른 분기구 앞까지 다가갔을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경이를 느꼈다. 스즈키 씨도 한겨울 한밤중에 그곳에 가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여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오잔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만약 그 자리에 쇼팽이 있었다면 새로운 즉흥환상곡이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분기구에 한 발짝만 더 다가가면 그대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혔지만 막상 분기구 바로 옆 용암 바위에 손을 대보니 온돌처럼 따뜻해서 추위로 잔뜩 움츠렸던 몸이 펴지는 듯했다.



증기기관차 타고 ‘홋카이도의 보석’을 찾아가다

1 굿샤로 호의 백조들. 2 가와유 마을의 야외 족욕장. 3 가와유 역사.



이오잔에서 예상치 못한 체험을 한 뒤 행복감에 젖어 숙소가 있는 가와유(川湯) 온천 마을로 향했다. 여장을 풀기 무섭게 스즈키 씨는 마을 한복판에 있는 하천 쪽으로 안내했다. 수북이 쌓인 눈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다이아몬드 더스트’ 현상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이벤트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영하 12℃ 이하의 추운 날씨에 지상에서 상승하는 공기와 상층부의 공기가 만날 때 먼지만 한 입자들이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날은 기구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은 주머니를 매달아 인공적으로 다이아몬드 더스트 현상을 일으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노천 온천 쪽에 있었다. 확 트인 공간에 온천수가 철철 넘쳐흐르고 여기서 누구나 발을 담글 수 있도록 시설을 해놓았다. 눈치 빠른 스즈키 씨가 얼른 호텔로 달려가 족욕용 타월을 가지고 왔다. 이 지역은 곳곳에 무료로 족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널려 있었다. 다음 날 방문한 가와유 온천 역 건물 내에도, 유명한 관광지 굿샤로 호(屈斜路湖) 부근에도 뜨끈뜨끈한 온천수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족욕탕이 있어 여행객들의 피로를 녹여준다.
가와유는 홋카이도에서도 손꼽히는 온천 지역답게 눈에 띄는 웬만한 건물은 모두 온천 시설이다. 일단 공기 중 진한 유황 냄새가 온천 지역임을 실감하게 했고 강한 산성 성분에 65℃ 가까운 뜨거운 온천수가 샘솟는다. 가와유 온천 지역이 속한 데시카가 초는 아칸, 굿샤로, 마슈 등 3개의 칼데라 지형을 기반으로 한 원시적 경관의 아칸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다. 특히 인구 8천 명 남짓한 이곳 가와유 온천 마을 주변에는 세계적인 투명도를 자랑하는 마슈 호 및 유황 냄새와 함께 저지대에 고산 식물이 자라는 특이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이오잔, 주변의 산봉우리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는 굿샤로 호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또 원시적인 숲이 도시를 감싸고 있어 그런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소개하는 국립아칸공원 생태박물관이 마을 안에 있다. 이 지역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하기로 하고 예정된 여행을 계속해보자.

악천후의 실망감 달래준 메밀소바
이튿날 새벽 뭔가 창문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떠 밖을 내다보니 강한 눈바람이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만큼 희뿌연 눈보라를 이쪽저쪽으로 몰고 다니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기대에 부풀었던 증기기관차를 타보기는커녕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나 텅 빈 온천탕을 유유자적 탐닉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스즈키 씨가 마슈 호에서의 체험 행사가 중지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신 몇 차례 철도 회사에 증기기관차의 운행 여부를 문의했다. 오전 중 구시로로 나가는 모든 열차의 운행이 중단됐으나 다행히 증기기관차는 정상 운행한다는 전갈을 받고 안도하며 세찬 눈보라를 뚫고 굿샤로 호로 향했다. 호수에는 혹한을 피해 가늘고 긴 목을 자신의 등 속에 파묻고 있는 백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만큼은 백조의 호수가 우아하기는커녕 삭막하고 안쓰러울 뿐이었다.
몇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스나유(모래사장에서 뜨끈한 온천수가 나오는 곳)에 발을 넣었지만 이번엔 세찬 비바람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추위를 피해 들어간 기념품 판매점에서 온천수로 익힌 달걀과 커피를 먹으며 몸을 푼 뒤, 스즈키 씨의 안내를 받아 메밀 농사를 짓는 후지모토(藤本) 씨 부부가 직접 요리를 해주는 소바집 ‘도락’에 도착했다. 겨울이 지나면 소바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실제 30년 가까이 지켜온 진한 국물 맛이 혀를 즐겁게 해주었다. 맛있는 소바로 배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이번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할 가와유 역이었다. 드디어 이곳에서 증기기관차를 탄다!
이미 이 역에는 증기기관차를 타려고 몰려든 철도 마니아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기관차가 도착해 석탄과 물을 보충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카메라들이 고풍스러운 기관차의 자태를 찍기에 바빴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증기기관차 타고 ‘홋카이도의 보석’을 찾아가다

4 카페 오차드글라스. 5 카페가 있는 객차.



스즈키 씨와 헤어지기 전 차 한 잔을 마시러 역사 내 카페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인역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고풍스러운 역사 안쪽에 ‘오차드글라스’라는 정감 넘치는 카페가 있었다. 주인 다케야마(武山) 씨는 이 역사가 무인역이 되던 26년 전부터 현재까지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카페에서 나와 역사 반대편에 가보니 ‘아시유’라는 간판이 걸린 공간에 족욕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가득했다. 분명 이곳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외지인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온정을 베푸는 듯했다. 알뜰한 구경을 하고 뿌듯한 가슴으로 귀로에 선 많은 여행객들을 태운 기차는 카페 주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렁찬 기적 소리와 함께 구시로를 향해 출발했다. 증기기관차에는 오징어 등을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난로가 마련된 객차도 있고, 운치 있는 카페처럼 꾸민 객차도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정작 눈이 휘둥그레지는 구경거리는 열차 밖에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선로 주변에는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수많은 인파가 늘어서 있었다. 또 증기기관차가 구시로 습지를 달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슴 떼를 보았던가. 인간은 그들을 구경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우리 안에 갇힌 인간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증기기관차 타고 ‘홋카이도의 보석’을 찾아가다

6 소바집 ‘도락’의 주인인 후지모토 할아버지. 7 들꽃과 어우러진 여름철 이오잔. 사진제공·데시카가 초



‘두루미가 오는 역’에서 붉은 노을 바라보며
끝없이 펼쳐진 습지를 배경으로 서쪽 하늘에 노을이 깔릴 즈음 열차는 가메누카(かめぬか)라는 무인역에 도착했다. 구시로 습지 안에 있는 이 역은 가메누카라는 명칭보다 ‘두루미 역’으로 더 유명하다. 실제 역사 현판에도 ‘두루미가 오는 역’이라고 쓰여 있다. 순간 ‘아, 여기가 두루미 역이구나’ 하고 과거 이 역을 소개한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두루미 역은 구시로 습지 동쪽 끝에 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이곳 역원들이 먹이가 부족해 절멸 위기에 있던 두루미들을 위해 겨울 동안 먹이를 놓아주기 시작한 이래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그 수가 1천3백 마리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역무원들이 철수해 무인역이 됐지만 대신 지역 주민들이 먹이 주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인간의 노력에 보답하듯 그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사실 인간이 두루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푼 것처럼 보이나 본래 그들의 터전이던 습지를 개발 명목으로 빼앗아버린 인간에게 문제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여하튼 겨울이면 구시로 습지를 가로지르는 이 코스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떼를 지어 중국인들이 열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조용하던 차 안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이들도 두루미를 보기 위해 이 코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두루미를 직접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증기기관차가 한바탕 시원스럽게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가메누카 역에서 멀어질 무렵 어느새 서쪽 하늘의 노을이 더욱 검붉게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다.

증기기관차 타고 ‘홋카이도의 보석’을 찾아가다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여성동아 2013년 3월 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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