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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복서 이시영의 국가대표 도전기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8분

글·권이지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연합뉴스 제공

입력 2013.01.17 09:33:00

2분씩 4라운드. 상대의 빈틈을 찾아 한 방 날려 승리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8분.
사각의 링 위에 여배우는 없었다. 이시영의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 동행 취재기.
여우 복서 이시영의 국가대표 도전기


12월 10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배우 이시영(31)의 이름이 올랐다. 제66회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겸 2013년 국가대표 1차 선발대회에 출전한 그가 승승장구하며 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첫 연예인 출신 국가대표 선수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많은 이들이 이튿날인 12월 11일 열린 결승전에 주목했다.
이시영은 2010년 초 MBC 단막극에서 권투선수 역을 맡아 챔프 홍수환 관장의 체육관을 찾았다가 복싱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드라마는 무산됐지만 그는 복싱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0점짜리 선수였지만, 악바리 근성과 피나는 노력 끝에 2010년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2011년 아마추어복싱대회 신인왕, 2012년 서울시 복싱대표선발전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2011년부터 잠실복싱클럽으로 적을 옮긴 이시영에 대해 배성오 관장은 “단기간에 실력이 급성장했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지만, 독한 구석도 있다. 매일 러닝을 해서 체력을 기르고 시간만 나면 연습에 매진해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평했다. 배 관장은 아웃복싱 위주로 지도했다. 긴 팔과 다리를 지닌 선수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상대가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장거리 펀치 등으로 공격한다. 아웃복싱을 선택한 것은 체격적 조건도 있지만 여배우로서 혹시라도 얼굴을 다칠까봐서다.
데뷔 초기 이시영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악역으로 출연하고, 또 성형 전 사진이 공개되며 비호감 연예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복싱을 시작하고 그 실력과 열정을 인정받은 순간 대중의 시선도 달라졌다. 여배우답지 않은 털털하고 솔직한 모습이 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배우’란 타이틀을 지닌 이시영이 복싱을 계속하는 것은 모험이었다. 전 소속사에서 그의 복싱 도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연예인의 외형은 자산인데 그 자산에 큰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서다.
이시영은 결승전을 치르고 일주일 후 보도자료를 통해 소속사를 옮겼다고 발표했다. 그의 새 둥지는 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 고준희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그의 새 소속사는 이시영의 뜻에 따라 그가 운동하는 것을 적극 지원해주기로 했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드라마와 영화에서 러브콜도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차기작을 검토하며 휴식기에 돌입한 그는 2013년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와 ‘이야기’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12년 12월 11일 오후 1시 울산경영정보고 체육관에서 열린 48kg 이하급 결승전 현장.
각 2분씩 4라운드로 진행된 치열한 순간의 재구성


여우 복서 이시영의 국가대표 도전기


PM 01:00 경기 시작 전
“청코너 잠실복싱클럽 소속 이시영!”
체육관을 둘러싼 많은 이들의 환호와 함께 대기실 문을 열고 이시영이 경기장에 등장했다. 민낯에 파란색 헬멧을 쓰고 검은색에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운동복을 입은 채 나타난 그의 걸음걸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복싱을 시작한 뒤 체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매일 8~10km씩 러닝을 하며 맹연습을 해온 그. 체지방은 대부분 잔근육으로 바뀌었다. 배성오 관장은 몸이 식지 않도록 이시영의 어깨와 팔을 수건을 둘러 마사지해주며 긴장을 풀도록 도왔다.



여우 복서 이시영의 국가대표 도전기


PM 01:07 2라운드 종료
준결승까지 이시영은 전승. ‘결승’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은 이런 것일까. 홍코너 전남과학기술고 박초롱의 기세가 만만찮았다. 준결승까지 살아 있던 펀치는 태풍이 땅을 만나 그 세력이 약해지듯 힘이 빠져나갔다. 몸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마음이 조급한지 몇 번이고 역습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점수 차는 점차 벌어졌다. 라운드 사이의 짧은 휴식 시간, 이시영의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PM 01:09 3라운드 중반
경기는 종반을 향해 갔지만 상황은 이시영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결승 상대인 박초롱은 빠른 발놀림을 이용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한 이시영의 외곽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왼손잡이의 장점을 살린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상대를 감싸며 이후 공격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PM 01:14 경기 종료
“땡땡땡!”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10:4의 스코어. 이시영의 유효 공격은 단 4회였다. 심판은 박초롱의 손을 들어줬다. 판정패. 이시영은 박초롱을 두 팔로 안고 승리를 축하해줬다. 패배를 인정했다. 얼굴을 옥죄고 있던 헬멧을 벗고 링을 벗어났다. 얼굴에 아쉬움이 깊게 묻어났다. 다소의 자책감도 비쳤다.

여우 복서 이시영의 국가대표 도전기


PM 01:31 “후회 없는 승부”
상대의 끈질긴 공격으로 몇 차례나 얼굴을 맞았다. 강펀치 몇 방에 얼굴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몰려든 취재진 앞에 온전히 민낯을 내보일 수 있는 여배우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링에서 내려온 모습 그대로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아쉽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다고도 했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몸이 생각보다 둔하게 움직였고요. 그래서 평소보다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승패에 상관없이 이 시간을 내가 버텼다, 견뎠다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무서운 일이 없는 것 같고요. 복싱이 또 하나의 꿈이 된 것 같습니다.”
이시영은 “상대가 잘했고, 저는 아직 강하게 펀치를 날리기엔 마음이 여렸던 것 같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계속 복싱을 할 생각이냐”는 물음에 그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물론이죠.”

여성동아 2013년 1월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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