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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에이미 뜻밖의 심경 고백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

글·김유림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입력 2013.01.16 10:23:00

튀는 행동과 거침없는 말투, 부유한 집안 등으로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에이미. 급기야 지난 9월 마약류로 지정된 수면유도제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수감 49일 만에 출소했다. 이번 사건으로 또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이슈메이커’ 에이미를 만나 그간의 심경, 그동안 내색하지 않았던 마음의 상처에 대해 들었다.
‘악녀’ 에이미 뜻밖의 심경 고백


지난해 방송가는 연예인 및 유명 운동선수들의 ‘우유주사’상습 투약으로 한동안 술렁였다. 그중에는 방송인 에이미(31·한국명 이윤지)도 포함돼 있다. 지난 4월 서울 강남의 한 네일숍에서 마약류로 지정된 수면유도제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로 9월 말 구속 기소된 에이미는 11월 초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3년, 40시간 사회봉사, 24시간 약물치료 강의 수강을 명령받고 49일 만에 출소했다.
그동안 숱한 이슈에 휘말렸던 그지만, 이번 사건은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 사안인 만큼 그가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그는 출소 후 4일 만에 tvN ‘e-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교도소 생활이 더 좋았다”고 말해 또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물론 그 말 뒤에는 “사람이 원점으로 돌아가니까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내가 그동안 해온 나쁜 짓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아기처럼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는 얘기가 덧붙여졌지만, 이후 “교소도 생활이 더 좋았다”는 말이 온라인 뉴스 헤드라인으로 도배되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이 폭주했다. 과연 그는 뭐가 그리 급해서, 보통 연예인들이 말하는 ‘자숙의 시간’도 갖지 않고 서둘러 대중 앞에 섰던 걸까.
12월 초, 한 달간의 기다림 끝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카페에서 에이미를 만났다. 11월 초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는 “교도소 발언 이후 부모님이 너무 걱정을 하셔서 당분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며 거절한 그였다. 또 건강상의 이유도 댔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그는 9월 14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다음 날 급성 C형 간염 증세로 구속집행정지를 받고 병원에 입원했었다. 이후 2주간 병원에서 간염 치료를 받은 에이미는 회복 후 춘천교도소로 이감돼 수사를 받았다. 서울이 아닌 춘천지검으로 송치된 이유는 4월 그가 네일숍에서 프로포폴을 투여받은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 경찰에 신고한 사람의 주소지가 춘천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소중함 깨닫게 해준 교도소 생활

‘악녀’ 에이미 뜻밖의 심경 고백


지금도 그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건강을 회복 중이다. 사건 후 몸무게가 많이 불어서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동도 시작했다고 했다. 이날 그는 “막 운동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며 머리카락이 다 마르지 않은 상태로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회색 터틀넥에 굽 낮은 스니커즈, 화장기 없는 얼굴 등 그동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튀는 에이미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먼저 그에게 최근 이슈가 됐던 “교도소 생활”에 대해 물었다.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차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두렵고, ‘내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하는 반성도 됐고요. 한 방에 30대부터 60대 후반 여성까지 9명이 생활했는데, 다들 잘해주셨어요. 49일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동안 제가 누리고 살았던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죠. 창밖으로 보이는 꽃과 하늘, 구름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고요. 또 아침 저녁으로 따뜻한 물이 나오면 봉지커피를 타서 마셨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죠. 무엇보다 가족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사실 저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며 살았어요. 심지어 가족에게도요. 그런데 제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저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더라고요. 엄마가 하루가 멀다 하고 면회를 오셨는데, 가림막을 앞에 두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어요. 엄마 손을 잡고 싶은데 잡지 못하니까…. 출소하던 날 엄마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더욱이 그는 자신의 불찰로 유치원 원장인 어머니까지 비난을 받자 더욱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늘 밝고 당당한 모습만 보였기에 그동안 사람들은 그의 화려하고 부유한 생활에만 촉각을 곤두세웠을 뿐, 그의 내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어린 시절 외로움의 시작은 부모의 이혼에서 비롯됐다. 더욱이 중학교 3학년 때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자신이 우겨서 간 유학이라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으며 속으로 삭이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친구들 앞에서도 밝은 모습만 보이려고 애썼다.
“사람들 앞에서 늘 행복한 척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 모습만 보이려고 애쓰다 보니 혼자 뒤로 돌아섰을 때는 허전함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힘든 일이 있으면 커튼 뒤에 숨어 몰래 우는 성격이었죠.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그런 제 성격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왜 나쁜 생각을 하고 부정적으로만 살았는지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죠.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들 때 프로포폴에 의존했던 나약한 저 자신이 너무 밉고, 반성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독한 외로움과 피로 이기려 손댄 ‘우유주사’
그가 처음 프로포폴을 접한 건 4년 전 한 피부과에서다. 당시 유명 연예인들이 침대에 누워 프로포폴을 맞으며 잠이 든 모습을 봤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프로포폴에 대한 규제가 심하지 않았던 터라 그 역시 ‘피로 해소제’ 개념으로 프로포폴을 맞으면서 잠이 들곤 했다.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방송을 해야 할 때,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이 많을 때, 프로포폴은 달콤한 휴식(?)을 선사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로포폴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했지만 이후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받았다.
“죽은 것처럼 나 혼자 누릴 수 있는 고요함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무런 고민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거든요. 당시 쇼핑몰 관련 소송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이 많을 때였어요. 이 약이 마약류로 지정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리석게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지 몰랐고, 죄를 짓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어요. 어떤 말도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죄를 뉘우치고, 앞으로 모범적인 모습으로 살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살 거고요.”

‘악녀’ 에이미 뜻밖의 심경 고백


그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현재 그의 소속사 에이트웍스 이호찬 이사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수감 중 알게 된 것. 에이미는 “1년 가까이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 부모의 마음으로 이끌어주신 분이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제가 자숙하지 않고 출소하자마자 인터뷰를 한다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사님 때문이에요. 그동안 이사님이 제게 해주신 게 얼마나 많은데, 저는 매번 사고만 치고 아무런 도움이 못 돼 드렸거든요. 빨리 방송에 나가 제 입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대중의 용서를 구하고 싶었어요. 그게 이사님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방송에만 나오지 않는 게 자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빨리 인정할 건 인정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떻게든 2012년이 가기 전에 이 사건을 털어버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고, 그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말하면 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하지만 이 역시 그동안 내가 보여준 경솔한 행동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누구의 탓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생각이 짧았고 지나치게 직설적인 성격 탓에 오해도 많이 산 것 같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에이미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에 미국 유학까지 마친, 누가 봐도 부러운 ‘알파걸’이었다. 하지만 방송을 시작하면서 화려한 유명세를 누림과 동시에 대중의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주립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2008년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그 방송이 바로 케이블 채널 올리브에서 방영한 ‘악녀일기 시즌3’다. 당시 시청자들은 일반인임에도 연예인 못지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묘한 질투심과 대리만족을 느꼈다. 결국 그는 다수의 팬과 또 다수의 안티 팬을 자양분 삼아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올랐다.
“방송은 우발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어느 날 친구들과 카페에 모였는데, 마침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학교 졸업하고 한국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 일도 안 하고 뭐 하냐’며 엄마가 잔소리를 하셨죠. 당시 이것저것 배우면서 저도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해가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런 말을 하시니까 서운하면서도 반항심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그날 모였던 지인 중 한 명이 방송국 PD였어요. 제가 엄마랑 통화하는 걸 듣고는 캐릭터가 독특하다면서 자기가 아는 사람을 찾아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난 분이 ‘악녀일기’ PD였어요. 그분이 제게 ‘방송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는데, 순간 ‘우리 집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방송일이니까 한번 해봐야겠다’는 오기가 들더라고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매우 엄하신데, 케이블 방송이고 제가 영어이름으로 나가면 모르실 거라고 생각하고 덜컥 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어른들이 아시고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1년 가까이 할아버지 얼굴을 뵙지 못했을 정도예요.”

“외롭고 힘든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요”

‘악녀’ 에이미 뜻밖의 심경 고백


‘악녀일기’ 이후 그는 바로 KBS ‘해피선데이-꼬꼬관광 싱글싱글’에 출연해 방송인으로서 입지를 굳혀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룹 ‘신화’의 이민우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공개 연애 8개월 만인 2009년 5월 두 사람은 결별했다. 이후 에이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별 이유에 대해 “이민우가 변명을 늘어놔서”라고 말한 게 화근이 돼 신화의 멤버 김동완과 인터넷상에서 설전을 벌이며 또 한 번 대중의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이후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1백20평 저택을 방송에서 공개하면서 “돈 자랑 그만 하라”는 안티 팬들의 시기 섞인 악플에 시달렸고, 201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쇼핑몰의 이익 배분 문제를 두고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일로 그는 2년 가까이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무리하게 시도한 성형수술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새롭게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민하지 않고 눈 앞트임 수술을 받았는데, 네티즌들은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의 얼굴을 두고 “눈, 코, 지방 주입까지 다 했다. 얼굴 망쳤다” 등의 맹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그는 얼마 안 돼 눈 복원수술을 받았다.
이쯤 되면 방송을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을 보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보람을 찾으려 애썼다고 한다.
“힘든 일이야 너무 많았죠. 그럼에도 방송을 놓지 못한 건, 단 몇 분 안 되는 팬들이라도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누가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아요. 사인을 할 때도 주저리주저리 제 마음을 담아서 거의 편지 수준으로 사인을 해드려요. 누군가로부터 관심받고 있다는 거, 사랑받고 있다는 행복함 때문에 방송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당장은 힘들겠지만,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방송이 있다면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요즘 그는 법원에서 명령받은 사회봉사 활동을 위해 전국의 소년원을 찾아다니며 라디오 진행 및 멘토링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다. 잘못을 속죄하는 의미로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는 맑고 순수한 눈동자의 아이들을 보면서 애잔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벌써 몇 차례 소년원에 다녀왔는데,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눈에 밟혀요. 얼마 전 프리허그를 할 때는 제가 아이들을 안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저를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힘겨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면 좋겠어요.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진 못했지만 사회봉사 활동이 끝난 뒤에도 꾸준히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싶어요.”

여성동아 2013년 1월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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