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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땅콩’ 김미현 제2의 인생

지도자로 변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는 요즘…

글·김유림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3.01.15 15:44:00

미국 LPGA 8승의 주인공 ‘슈퍼땅콩’ 김미현이 17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필드를 떠났다. 지금껏 악바리 근성으로 최선을 다해 달려온 그지만, 마지막이란 수식어 앞에서는 아쉬움과 허탈함이 공존할 수밖에 없을 터. 이제 선수 타이틀을 내려놓고 지도자로서, 엄마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김미현을 만났다.
‘슈퍼땅콩’ 김미현 제2의 인생


김미현(36) 프로골퍼를 만나러 인천 송도로 가는 길, 정왕 IC를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함박눈이 내렸다. 김 프로의 아버지 김정길 씨가 3년 전부터 운영 중인 ‘김미현 골프월드’ 골프 연습장에 도착했을 땐, 어느새 타석은 흰 눈으로 뒤덮여 설원을 방불케 했다. 추운 날씨에도 골프 레슨에 여념이 없던 김미현 프로는 짧게 자른 머리 때문인지 아담한 체구임에도 당차 보였다.
2012년 10월 25일 김미현은 LPGA 하나외환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최종 합계 8오버파 224타) 필드를 떠났다. 이날 미국 LPGA 투어 측은 김미현을 위해 은퇴 기념식을 열어줬다. 마이크 완 LPGA 회장이 직접 선수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 그만큼 미국 LPGA 투어에서 김미현이 남긴 업적(통산 8승)은 대단하다. 이날 마이크 완 회장은 “김미현이 샘 그룹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도네이션(미국 캔자스 주 토네이도 피해자에게 10만 달러를 기부)을 한 이후 여자 골프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박세리, 박지은과 함께 세계 여자 골프계에 강한 임팩트를 남긴 선수”라고 칭찬했다. 또한 이날 네 살배기 아들 예성이는 김미현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면서 뽀뽀 세례까지 안겨줘 그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김미현은 은퇴 후 바로 지도자의 삶을 시작했다. ‘김미현 골프월드’에서 골프아카데미를 개설해 프로골퍼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은퇴 후 잠깐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새로운 일을 벌인 이유를 묻자 김미현은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내년에 시작할까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동계 훈련을 못하잖아요. 동계 훈련이 다음 1년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선수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거든요. 현재 가르치는 학생이 3명밖에 안 되지만, 저를 믿고 온 친구들을 위해 하루빨리 훈련에 임해야겠다 싶었어요. 또 여자들이 결혼 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면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저 역시 그동안 바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안 하면 그게 더 힘들 것 같아서 일부러 서둘러 아카데미를 오픈했어요(웃음).”
하지만 막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 또 다른 부담감이 생겼다. 아이들의 인생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김미현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도 있는데, 부모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이 선수 생활을 할 때와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프로골퍼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원하는 위치에 직접 올라가봤기에 누구보다 그 길을 잘 알고, 어린 학생들에게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비록 선수 생활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김미현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해 운동으로 끝난다. 요즘도 수영을 비롯해 자전거 타기, 퍼스널 트레이닝(PT) 등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씩 운동하며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아이들 강습에 쏟고 있다.
“남들은 좀 쉬엄쉬엄하라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 연습이란 게 설렁설렁해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개인적인 시간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죠. 사실 그걸 잘 알기에 아카데미를 오픈하기 전 고민도 많이 했는데, 다른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지금껏 제가 익힌 기술과 노하우를 그냥 묻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릎 재수술에 희망 걸었지만 회복 안돼

‘슈퍼땅콩’ 김미현 제2의 인생


그동안 김미현은 선수로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199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 통산 11승을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1999년 미국 LPGA 투어에 진출해서는 데뷔 첫해 스테이트팜 클래식과 벳시킹 클래식에서 승리를 거두며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통산 획득 상금만 해도 8백62만 달러(약 96억5천만원). 키 155cm의 단신이 일궈낸 위대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그의 내면에는 누구보다 강한 집념과 열정이 가득했다. 어려서부터 승리를 향한 남다른 열정을 보인 그는 추운 겨울에도 볼이 잘 맞지 않으면 덥다며 반팔 티셔츠를 입고 경기에 임했다. 이번 은퇴 경기에서도 다리 부상으로 절뚝거리면서도 끝까지 경기에 임해 동료 선수들과 갤러리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그가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부상 때문이다. 2007년 추벽증후군 판정을 받고 왼쪽 무릎 수술을 받은 그는 지난 1월 무릎 재수술에 발목 수술까지 받고 6개월간 재활에 모든 걸 걸었다. 하지만 상태는 그리 호전되지 않았다. 추벽은 슬개골과 무릎 연골 사이에 자리한 얇은 띠로, 외상이나 반복적인 자극에 의해 염증이 생기고 두꺼워져 섬유성의 띠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두꺼워진 추벽은 주변 연골을 손상시키고 통증을 유발한다.
추벽이 상한 이유는 무리한 운동 탓이 크다. 특히 왼쪽 무릎에 무리가 가는 스윙 연습을 많이 한 데다 작은 체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습량도 늘 최대한으로 잡았다. 결국 그는 피곤하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고, 무릎이 약하다 보니 밸런스가 깨져 골반에도 무리가 가고, 발목도 자주 삐끗했다. 발목 수술을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1월에 수술 받을 때만 해도 다시 투어에서 활동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재활도 열심히 했죠. 하지만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일상적인 생활은 가능하지만 힘든 훈련을 버티지는 못하는 상태가 된 거죠. 재활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골프만 생각하면서 바쁘게 달려왔는데, 쉬는 동안 다른 길도 보게 됐거든요.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면 더 미루지 말고 지금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아직 제 안에 열정이 식지 않았을 때 뭐든지 시작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또 그동안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늘 마음이 안 놓였는데, 선수 생활을 하는 한 계속 그래야 할 텐데, 그 점 역시 은퇴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어요.”
LPGA 진출 이후 줄곧 미국 플로리다에서 생활한 그는 시합이 있을 때마다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긴 뒤 짧게는 1주, 길게는 2주 정도 집을 비워야 했다. 물론 아이를 낳은 뒤에는 시합에 참가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는 최대 1년에 34주, 즉 2백40여 일씩 집을 떠나 호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미현은 “시합 중에 유독 아이 걱정이 많이 든다. 아이가 넘어졌다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며 어쩔 수 없는 모성애를 드러냈다.



‘슈퍼땅콩’ 김미현 제2의 인생

1 돌배기 때 처음 장난감 골프채를 잡은 예성이는 엄마를 닮아 골프에 재능을 보인다고 한다. 2 3 김미현이 은퇴를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들 때문이다. 골프아카데미 강습으로 여전히 바쁘지만 나머지 시간은 모두 예성이를 위해 쓰려 한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푹 쉬어야 하는데, 아이가 있으니까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오전에 아이와 놀다가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아이가 낮잠을 자면 그때 연습하러 나갔어요. 플로리다가 워낙 더운 지방이기도 하지만, 특히 그 시간대는 태양이 너무 강해 일반인들은 외출도 자제하는 시간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 시간이 아니면 안 되니까 얼굴이 새까맣게 타더라도 필드에 나갈 수밖에 없었죠(웃음).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부리나케 샤워를 하고는 다시 아이와 시간을 보냈어요.”
김미현은 은퇴를 결심한 또 다른 이유로 과거에 비해 시들해진 승부욕을 들었다. 과거에는 경기에서 지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던 반면,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자신을 이기는 후배들이 마냥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독기가 빠져서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필드에 나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 눈빛이 달라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경기를 즐기게만 되더라”고 고백했다.
공백기가 길었던 것도 사실이다. 2007년 미국 투어에서 여덟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서서히 내리막을 탔다. 2007년 우승도 3년 8개월 만의 일이었고, 그전에는 ‘이제 김미현의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그에게는 여자로서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2008년 네 살 연하의 유도 선수 이원희와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김미현과 이원희 선수는 별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미현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상태다. 서로를 위해 말을 아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부부 관계에 대한 내용은 인터뷰에서 빼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현재 이원희는 용인대 유도학과 교수겸 여자 유도 국가대표 코치로 활약 중이다.
스타 선수가 우승에서 멀어지면 슬럼프가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김미현은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정신력까지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멘탈’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신하던 그다.
“사람들은 제가 작은 키와 왜소한 체구를 핸디캡으로 여길 거라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무릎이 좋지 않아 2002년 체중을 10kg 정도 뺐는데 그때도 사람들은 체력이 약해져서 안 될 거라고 했어요. 오히려 그때 평균 성적만 보면 예전보다 더 좋았어요. 우승을 못했을 뿐 2등, 3등도 여러 번 했거든요. 그해 상금 랭킹에서 4위를 차지했고요. 우승을 2번이나 했던 선수들도 제 뒤에 있었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우승을 못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다는 거죠. 그래도 저는 남들의 시선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골프에 천부적 소질 보이는 아들
털털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말투 때문인지 김미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어쩌면 많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과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양 갈래 머리의 귀여운 이미지의 김미현을 떠올리지만, 어느덧 서른 중반에 접어든 김미현에게서 진중함과 강인함이 느껴졌다. 그 역시 “남들은 내가 여성스럽고 깍쟁이인 줄 아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박)세리가 꾸미는 것 좋아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며 웃었다.
김미현은 은퇴와 동시에 14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앞서 지난 한 해 수술과 재활로 한국에서 머물렀던 그는 처음에는 오랜만의 한국 생활이 낯설기도 했지만, 1년 정도 지나자 한국 문화에 또 익숙해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딸 뒷바라지를 하느라 떨어져 지낸 부모님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놓인다고.
“골프를 시작한 순간부터 어머니의 인생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어요. 언제나 저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하셨죠. 미국에서는 손자까지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도 6년 전 사업 때문에 한국에 먼저 들어오시는 바람에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는데, 이제 가족들이 다 모여 사니까 마음 편해요(웃음).”
요즘 부모님은 손자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특히 아버지 김정길 씨는 골프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손자 예성이를 보면서 벌써부터 ‘제2의 김미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신다고 한다. 김미현 역시 아들이 좋다고만 한다면 골프 선수로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돌 지나자마자 장난감 골프채를 잡기 시작했는데, 스윙하는 것을 보면 놀랄 때가 있어요. 엄마가 운동하는 걸 봐서인지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포즈를 완벽하게 취하더라고요(웃음). 예성이 임신하고 5개월 될 때까지 대회에 출전해서인지 배 속에서부터 골프 감각을 익힌 게 아닐까 싶어요. 아이가 워낙 힘도 세고, 구르고 뛰고 하는 운동을 좋아해요. 어린이집 가기 전에도 골프 하고 가겠다고 하고요(웃음).”
김미현은 그동안의 삶을 돌아봤을 때 후회는 없다고 했다. 골프밖에 모르는 삶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하기에 미련은 없다. 이제 그의 앞에는 자신이 이룬 성공의 비결을 후배들에게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전수해주는 일만 남았다. 끝으로 김미현은 자녀를 골프 선수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조바심 내지 말고, 아이를 믿고 지켜봐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13년 1월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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