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행태가 ‘막장 드라마’를 뛰어넘는다. 1년 차 풋내기 검사 전모(30) 씨가 피의자인 주부 A(43) 씨를 조사하다가 유사 성행위와 성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진 것. 검찰이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다. 대검찰청 감찰본부(이준호 본부장)에서 사건 감찰에 착수한 다음 날인 11월 23일 전 검사의 상관인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이 사표를 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이 거세지자 통일부에 파견된 윤대해 검사는 11월 24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실명으로 검찰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평검사 회의를 여는 분위기에서 총장이 큰 결단을 하는 모양으로 가야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는 본심을 담은 문자를 한 방송사 기자에게 잘못 보내는 바람에 11월 28일 사표를 제출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검찰 개혁안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11월 30일 옷을 벗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검찰에 대한 비난 여론은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검사 지위 이용한 성폭행이다 vs 여자가 유혹해서 어쩔 수 없었다
키 155cm, 몸무게 40kg의 여성 A씨는 자녀 셋을 둔 결혼생활 17년 차 주부였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 가정 문제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A씨에게 스트레스성 도벽이 생겼다. A씨는 집 근처 대형 할인점에서 7월 19일에서 8월 16일까지 한 달여간 16차례에 걸쳐 김밥, 옷, 양말, 요구르트, 슬리퍼 등 잡다한 생활용품을 훔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가 훔친 물건 중 가장 비싼 건 7만원짜리 시계였다. 그전까지 A씨는 전과 기록이 없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마트 측이 그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사건을 맡은 전 검사는 한양대 로스쿨 1기 출신으로 제40회 변리사시험 최연소 합격자이기도 했다. 목포지청 소속으로 실무교육차 서울동부지검에 파견된 전 검사는 11월 10일 A씨를 조사하며 검사실에서 유사 성행위를 했다. 이틀 후엔 그를 서울 광진구 구의역으로 불러내 자신의 차에 태운 후 성동구 왕십리의 한 모텔에서 성관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전 검사는 자신과의 통화 사실이 A씨 남편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검사도 유부남으로 아이가 둘 있었다.
검찰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 일명 ‘성검사 사건’을 두고 A씨는 “내가 울자 검사가 달래듯 몸을 만지며 성행위를 강요했고 그것이 성관계로까지 이어졌다”며 검사의 지위를 이용한 성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 검사 측은 “A씨가 조사 중 흐느끼면서 안기듯 달려들어 어쩔 수 없었다”며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의 주장이 맞선 가운데 사건 당시 조사실 밖에서 A씨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A씨가 소위 ‘꽃뱀’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상식적으로 문밖의 남편에게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A씨 측은 “성폭행 당하는 걸 문밖의 남편이 알게 될까봐 소리도 못 냈다. 남편이 홧김에 검사를 폭행하면 보복당할까 두려웠다”고 변호인 측에 심경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두 사람에게 “선처 대가로 성상납을 했다”며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절도죄를 저지른 A씨가 검사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선처’를 호소했기 때문에 대가성이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 다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법원은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전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번 다 기각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12월 17일 전 검사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전 검사를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와 비교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됐다. A씨는 불입건 조치한다고 밝혔다. 안병익 감찰1과장은 “성관계 자체를 가혹행위로 보는 건 곤란하다. 녹취록을 보면 폭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여성 측에 뇌물공여 의사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고 대가성은 인정되지만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A씨 측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뇌물수수 혐의를 유지한 채 직권남용 혐의만 추가한 것을 무리한 법 적용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A씨 측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더펌의 정철승 변호사는 “검찰이 A씨를 꽃뱀이라고 공식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A씨는 검찰의 처분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사건의 본질이 “검사의 지위를 이용한 성폭행”이라고 했다. 다음은 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성추문 검사’가 아니라 ‘성폭행 검사’라고 했는데.
“성추문과 성폭행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추문이라고 하면 남녀 간의 불미스러운 프라이버시 문제로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사건은 검사의 지위를 이용한 성폭행 사건이다. 검찰이 처음부터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검사 한 명의 잘못을 확실히 했으면 됐을 텐데, 잘못을 은폐하는 식으로 나가다 여성이 사건의 원인 제공을 했다는 식으로 몰고 간 부분이 문제다. 이 사건은 가해자와 사건 조사 주체가 한편이다. 검찰의 공식 발표는 그런 점을 감안하고 들어야 한다. 검찰 발표와 피해자 측의 주장이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한다.”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전 검사가 11월 2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 검찰 내부에서 A씨의 사진이 유출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면 검찰로서는 뼈를 깎는 조직 차원의 반성이나 각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검사가 꽃뱀에게 당했다는데 여자 얼굴이나 보자’는 식의 안일한 대처가 화를 부른 것이다.”
▼ A씨가 검사실에서 조사받을 당시 남편이 문밖에 있었다고 하던데, 남편은 A씨가 성행위를 강요당한 사실을 언제 알았나.
“그 부분은 확인해줄 수 없다. A씨가 원하는 것은 사건이 빨리 사람들에게서 잊혀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건에 대해 충격적인 실상이 나오다 보면 계속 이슈가 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 현재 A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과 지인의 집을 전전하는 것으로 안다. 사건 후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본인 사진이 유출된 것을 안 뒤로는 대인기피증도 심해졌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데 얼굴이 알려졌다는 생각에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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