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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With specialist | 아이 받는 여의사의 진료실 토크

분만실에서 A형 남편이 최고인 이유

입력 2013.01.09 11:30:00

산모가 힘줄 때는 남편도 같이 이를 꽉 물고, 산모가 숨 쉴 때는 같이 호흡하고. 잠시 쉴 때면 차가운 손수건으로 산모 이마의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마른 입술도 부지런히 축여주고.
자신의 입술까지 터져가며 열심히 분만실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그 남편은 평소 산전 진찰 때에도 자상하게 잘하더니 제일 중요한 순간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분만실에서 A형 남편이 최고인 이유


오랜만에 겨울비가 내린 출근길 택시 안. 분만실 수간호사의 목소리는 숨이 넘어간다. 산모가 갑자기 출산이 진행되고 있으니 빨리 와달라는 것. 며칠간 쌓인 눈이 녹으며 살짝 얼어버린 보도, 염화칼슘과 눈이 뒤범벅이 돼 미끄러운 아스팔트, 이럴 때일수록 병원 앞 사거리 신호등은 왜 이리 긴지. 그대로 택시에서 내려 허둥지둥 뛰어가다 두 번이나 미끄러질 위기를 넘기며 사거리 횡단보도 두 개를 단숨에 주파해 병원에 도착했다.
후다닥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용쓰는 소리가 나오는 가족분만실로 들어가니 한창 산모는 힘주기 중이고 남편은 침대 머리맡에서 “조금만 더~ 하나, 둘, 셋, 끄~~응!!!” “옳지! 조금만 더!” 하며 추임새를 딱딱 맞게 잘 넣어주고 있다. 이제 거의 분만의 순간이 다가와 분만 준비를 시작하니 갑자기 예비아빠가 내게 묻는다. “선생님, 저 나가 있을까요?” “왜요? 이제 기다리던 아기가 나올 텐데 안 보시려고요?” “도저히 못 볼 거 같아서요….” “하하하, 머리맡에서 산모 힘주는 거 도와주다 보면 아기가 나와요. 탯줄도 자르셔야죠.” “(기어가는 목소리로 주저주저하며) 아, 네.”
아기의 머리가 산모 회음부에서 들락날락하더니 막판 힘주기 한 번에 드디어 쏘옥 머리를 내민다. “여보, 우리 용용이가 나왔어!” 아빠의 환호성과 함께 갓난아기의 첫 울음 소리가 터지고 산모 배 위에 아기를 올려놓자 산모가 “안녕, 용용아, 엄마야~” 하고 인사를 한다. 2012년은 흑룡의 해라서 ‘흑룡’ ‘깜용’ ‘미르(용의 순 우리말)’ ‘용용’이란 태명이 유난히 많았다. 우리 병원에서 내가 받은 ‘용용’이만 10명이 넘으니. 2013년 계사년에는 어떤 태명이 나올지 궁금하다.
잠시 후 아빠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붙잡고 탯줄을 자르고, 산모가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며 신기해한다. 그 순간 아빠의 눈이 시뻘게지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맺힌다. 얼른 비디오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하며 흐르는 눈물을 가리는 척하지만, 잠시 후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닌 어른의 소리가 들린다. “으헝헝~.”
감격에 겨워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이 아빠도 아마 혈액형이 A형, 그것도 트리플A인가 보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긴 싫지만, 많은 산모와 보호자를 대하다 보니 그 차이가 느껴진다. 우선 A형 아빠의 특징은 ①밥 굶어가며 같이 진통하고(임신 초기 입덧도 같이한 그들이다) ②분만할 때 마음 아파서(실은 무섭고 겁나서) 들어가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 분만실에 들어와 탯줄 자를 때는 부들부들 떨고 ③아기가 나오면 그때부터 완전 감동의 도가니로 눈물이 줄줄, 가끔 으헝~헝 ④심지어 아기에게 노래도 불러준다. “생~일 추~카~합~니다~” 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산모에게 수고했다고 뽀뽀도 해주고. 그래서 A형은 ‘소세지(소심하고 세심하고 **맞다)’인가 보다. 하기야 분만실에서만 보면 ‘오이지(오만하고 이기적이고 **맞다)’인 B형보다 훨씬 바람직한 남편이다.
온 세상 남편들이 모두 A형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10년 전, 20년 전보다 훨씬 감수성 넘치는 신세대 아빠들이 많은 것을 보면 미래엔 여성의 감성을 지닌 남자들이 성공하고 여성들에게 인기도 훨씬 많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나저나 A형 남편의 하이라이트. 다음 날 아침 회진 시 밤새 산모 곁에서 모유 수유 도와주다가 탈진, 기절해 있다.

분만실에서 A형 남편이 최고인 이유


이용주 아란태산부인과 소아과의원 원장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15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직장맘이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밤낮으로 새 생명을 받고 있다. 또한 인터넷, SNS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등을 통해 올바른 산부인과 지식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여성동아 2013년 1월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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