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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FE IN HOKKAIDO

미국 청년 제러드와 커피 장인 후지와라

홋카이도를 사랑한 두 남자

글·사진 | 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2012. 12. 04

소아과 의사가 꿈이던 미국 청년은 지금 홋카이도 산골 마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노래를 부른다. 화가는 거센 바닷바람을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언덕 위에 카페를 열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최상급 커피를 선보인다.

미국 청년 제러드와 커피 장인 후지와라

삿포로 중심가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아마가이 내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나요로 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돈베쓰(頓別)라는 강이 나온다. 아이누 말로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강 또는 늪으로 흘러가는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강 중류에 나카톤베쓰(中頓別) 마을이 있다. 지난달 소개한 일본 최북단 역이 있는 왓카나이까지가 100km 남짓한 거리이며 전체 면적의 80%가 산림으로 뒤덮여 있는 인구 2천 명 정도의 아담한 산골 마을이다.
이곳에 최근 홋카이도에서 화제 인물인 미국인 제러드 보센(Jared Boasen·33) 씨가 살고 있다. 음악가이자 산악인인 그는 일본인 사토미(仁美) 씨와 결혼해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일본 초·중·고 영어 보조교사로 일하는 ALT(Assistant Language Teacher) 시스템을 통해 일본에 왔는데, 일부러 홋카이도 산골의 오지 마을을 자원했다고 한다. 일본에는 ATL 시스템을 통해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내가 근무하는 나요로시립대학 영어 담당 교수도 20년 전 이 시스템을 이용해 홋카이도에 들어왔다 일본에 정착한 캐나다인이다.
제러드 부부는 몇 년 전 스키를 타러 왔다가 우연히 카페 닛싱의 간판을 보고 들어온 것을 계기로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서양 레스토랑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한국 음식을 한다는 말에 반색하던 제러드 씨의 모습을 내 아내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아내가 카페 닛싱에서 종종 콘서트 같은 이벤트가 열린다고 하자 이를 들은 사토미 씨가 자기 남편이 노래를 한다고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젠가 카페에서 콘서트를 열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난 10월 실현됐다.
사실 나는 이 콘서트에서 제러드를 처음 만났다. 연주가 끝난 뒤 우리는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가치관에 호감을 느꼈고, 그 뒤로 우리 가족이 그가 사는 곳을 방문하고 그가 우리 카페에 찾아오는 등 인연을 이어갔다. 제러드는 카페에 올 때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Boasen이라는 라벨까지 붙인 벨기에 스타일의 진한 맥주와 그의 아내가 만든 요리를 가져왔다. 그가 만든 맥주를 마시며 구수한 목소리로 불러주는 그의 노래에 취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그의 사람 됨됨이와 따뜻한 마음에 취해갔다.

미국 청년 제러드와 커피 장인 후지와라

1 걸쭉한 목소리로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는 미국인 제러드 보센. 2 최근 제러드 씨가 발매한 음반의 재킷. 3 자가배전(自家焙煎: 직접 로스팅)과 아트 갤러리를 강조한 아마가이의 안내판. 뒤로 카페 건물이 보인다.



의술 대신 음악으로 사람을 치유하다
대학 입학 전까지만 해도 제러드는 자신이 당연히 의사가 될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워싱턴주립대 재학 중 자신의 삶의 가치와 보람은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방향을 전환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예기치 못한 발병. 그는 테니스, 농구, 야구, 수영, 골프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대학 진학 후에는 육상부 소속 세단뛰기 선수로 활약했다. 그런 그에게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간판헤르니아(디스크)가 발병했고, 이로 인해 운동을 포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누워서 수업을 들어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꼼짝없이 누워 지내는 동안 그에게 힘이 돼준 것은 노래와 기타였다. 어릴 적부터 그의 가족에게 노래는 생활의 일부였고, 덕분에 병상에서 제러드는 본격적으로 기타와 노래 연습을 했다.
졸업 후 그는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해군병원 이비인후과에서 2년간 연구보조원으로 일한 것을 시작으로 캘리포니아대(USCD)에서 2년, 다시 모교로 돌아와 2년간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 무렵 홋카이도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그가 근무하던 연구실에 홋카이도대 교수가 온 것이고, 둘째는 일본으로 가기 위해 ALT 자격 신청을 하는 동안 그가 틈틈이 연주 활동을 하던 카페에 젊은 일본인 여인(아내 사토미 씨)이 찾아온 것이다. 이처럼 우연과 필연을 거쳐 제러드는 홋카이도 산골 마을 나카톤베쓰까지 오게 됐다. 그리고 누구도 생각하지도 활용하지도 않던 천혜의 자연을 자신의 공간처럼 즐기고 개척하면서 외지인들을 불러들여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청소년들에게 영어와 스포츠를 가르치고, 곡을 만들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 나카톤베쓰의 자연을 노래한 자작곡 CD를 발매하면서 그의 존재가 일본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연주 스케줄이 빡빡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다. 최근에는 한국 방문 일정도 잡혔다. 12월 1일 경기도 양주 송추계곡 입구에 새로 문을 연 카페 베르힐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게 된 것. 제러드는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한 지 하루 만에 한글 자음과 모음을 외우고 웬만한 문장을 읽어낼 만큼 언어적 감각이 뛰어나다. 요즘은 내가 들려준 송창식의 노래에 반해 한국어 가사를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걸쭉한 막걸리 같은 제러드의 음색이 초겨울 송추계곡에 첫눈처럼 소복소복 쌓일 것이 기대된다.

바다를 품은 카페 아마가이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당신이 좋아할 만한 그림 같은 카페가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카페 지하에는 아틀리에가 있고, 홀에는 5천 권이 넘는 장서와 곳곳에 주인이 그린 그림이 장식돼 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코발트색 바다를 시야 가득 담으며 ‘특별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말만 듣고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곧장 카페 홈페이지를 열어 고양이가 생선 살 발라내듯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일반 카페와 달리 홈페이지 내용이 상세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이제나저제나 방문할 기회만 노리던 차에 드디어 때가 왔다. 지인이 카페 주인인 후지와라 슌(藤原瞬) 씨에게 방문 약속을 해놓고 직접 안내까지 해주겠다고 했다. 카페 ‘아마가이(天海)’는 삿포로 중심부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운하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들로 유명한 관광지 오타루(小樽)에서 이시카리(石狩) 만을 따라 달리다 보면 바닷가 언덕 위에 갈매기처럼 우아하게 서 있다. 바닷가를 배경 삼아 있어서인지 꽤 육중한 건물임에도 오히려 아담하게 느껴졌다.
우리 일행이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카페가 문을 열기 전이었으나 후지와라 씨는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첫인상으로 내심 ‘내 또래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나보다 열한 살이나 위였다. 2층 메인홀에 올라서자마자 첫눈에 들어오는 정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말문이 막혔다. 밖에서 보던 바다와는 전혀 다른 바다가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마치 극장의 대형 스크린 앞에 선 듯 시선이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통나무와 널빤지로 장식한 실내는 자연미가 넘쳤고 3층까지 뚫린 천장이 주는 개방감에 속이 탁 트이는 듯했다. 또 벽마다 가득 꽂힌 책, 완성된 그림과 작업 중인 캔버스, 은은히 실내를 감도는 클래식 선율까지 짜 맞춘 듯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마치 1백 호짜리 아름다운 바다 그림을 통유리 액자에 넣어놓은 작품 같았다. 때마침 늦가을 갈대와 함께 구름 사이로 거친 바람에 뒤집어지는 코발트빛 바다를 감상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이 순간 누군가 내게 “영화 ‘남과 여’에서 본 바닷가보다 아름다운가?”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커피 맛의 깊이와 한(恨)을 이해한 미술가 후지와라

미국 청년 제러드와 커피 장인 후지와라

아마가이 지하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후지와라 씨.



넋을 잃고 실내를 둘러보는 사이 후지와라 씨가 커피 메뉴를 가지고 와 우리에게 종류별로 각기 다른 맛을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는 직접 주방에서 커피를 내려 가지고 왔다. 운이 좋았는지 한동안 다른 손님이 오지 않아 우리는 후지와라 씨로부터 그와 관련된 예술과 커피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간추려보면 이렇다. 그는 10대에 예술가를 꿈꾸며 도쿄로 갔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독창적인 퍼포먼스와 조각, 그리고 최근 몰두하고 있는 유화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며 홋카이도뿐만 아니라 도쿄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작가가 됐다.
그가 도쿄를 떠난 것은 30대가 되기 직전으로, 삿포로를 거쳐 지금의 이시카리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커피 장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즉 생산자와 생산지에 대한 까다로운 선별, 커피콩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커피 보관 창고의 온도는 늘 17℃로 유지하는 정성, 일관된 맛을 내기 위한 초 단위의 정밀한 배전(커피콩을 볶는 일) 기술을 고수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스페셜티커피’의 자격을 얻는 데 성공했다.
후지와라 씨는 커피 전문가가 되기 위해 4년간 전국의 유명하다는 커피 장인들을 두루 만나고 스스로 연구를 거듭하며 그동안 사용한 커피 원두만 1t에 이를 것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카페 아마가이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커피콩을 볶는 배전기계다.
커피 이야기에서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다시 화제가 한국으로 넘어갔다. 후지와라 씨는 조용필의 노래 가운데 특히 ‘한 오백년’을 좋아하며, 문인으로는 김지하 시인을 좋아한다 했다. 내가 “한 오백년에서 ‘한(恨)’의 의미를 아느냐”고 묻자 알고 있다고 했다. 단지 억울함이나 슬픔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이해는 정확했다. 실제로 그의 책장에는 제목에 ‘한’이 들어간 작품 등 한국적 정서를 다룬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다. 책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1990 HAN’이라고 타이틀이 붙은 작품이 바로 곁에 놓여 있었다. 그는 ‘한’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작품들이 실린 전시도록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가 마치 한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듯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카페 아마가이는 거센 바닷바람과 눈발 때문에 11월 말에 문을 닫았다가 이듬해 봄 다시 문을 연다. 이 기간 동안 후지와라 씨는 작품 제작에 몰두한다. 겨우내 눈보라가 워낙 심해 교통이 끊기는 일이 다반사여서 일주일 치 식료품을 사다 놓고 작품에만 몰두한다고 한다. 카페가 긴 겨울잠에 들어갈 시기가 또 코앞에 다가왔음을 아쉬워하듯 갑자기 카페에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을 배웅하며 후지와라 씨는 내 손을 꼭 잡고 다시 만날 것을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 손길을 통해 그가 정성껏 내린 커피에서 발하는 향과 맛이 그윽하게 내 몸에 퍼져왔다. 카페 문을 나섰을 때는 짙푸른 바다를 코발트빛으로 물들이던 아침 햇살은 거짓말처럼 간데없고, 어느새 커다란 창가에는 우리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 굵디굵은 빗물만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국 청년 제러드와 커피 장인 후지와라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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