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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열세 번째 | 스포츠에 빠진 여자들

“위험하다 말려도 포기할 수 없는 재미가 있죠”

여자 야구 최강자 꿈꾸는 구리 나인빅스 여자 야구단

글 | 권이지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2.11.16 11:12:00

야구장에 나타난 언니들. 응원석이 아닌 그라운드에 유니폼을 입은 채 결연한 표정으로 등장한 그들의 손엔 글러브와 배트가 들려 있다. 왜 하냐고 물으니, ‘깡!’ 하고 배트에 공 맞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전율이 일기 때문이라고.
“위험하다 말려도 포기할 수 없는 재미가 있죠”


프로야구 붐과 함께 취미로 야구를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2012년 현재 사회인 야구 동호회는 2천7백여 개, 인원은 7만 명을 넘어섰다. 그중 대부분의 팀이 남자들로 구성돼 사회인 야구는 ‘남자들만의 스포츠’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니폼에 헬멧을 갖추고 손에는 글러브와 배트를 들고 부채꼴 경기장에서 치고 달리는 여자들도 있다. 2007년 전국 16개 팀, 2백여 명의 선수와 함께 출범한 여자야구연맹은 2012년에는 28개 팀이 참여하는 첫 스폰서 대회인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가 열릴 만큼 그 규모가 커졌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하늘이 파랗게 열린 개천절 오전, 경기도 안산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운동장에서는 사회인 야구 리그 중 하나인 ‘해양리그’가 열렸다. ‘깡! ’ 하는 명쾌한 알루미늄 배트 소리와 함께 남자들만큼이나 기백이 넘치는 여성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여자 야구 팀 나인빅스(감독 최수정)다. 20대에서 40대, 대학생부터 주부, 직장인까지 직업도 다양한 40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2005년 6월 창단된 이 팀은 2007년 KBO총장배 전국여자야구대회 준우승, 2011년에는 우승을 거머쥔 실력파다. 이들은 여자 야구를 넘어 남자들로 구성된 13개 팀과 함께 ‘해양리그’를 치르고 있다. 남자 중심의 팀에 여자 선수가 한두 명 끼어 있는 경우는 있어도 모두 여자들로만 구성된 팀은 나인빅스가 유일하다.
이들은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나와 기초 훈련을 한다. 캐치볼부터 시작해 배트에 맞아 땅으로 빠르게 굴러오는 공(혹은 높게 뜬 공)을 안정적으로 잡아 던지는 수비 연습, 배트를 들고 스윙 폼을 점검하는 간단한 타격 연습 등 기본 훈련을 소화한다. 어떤 폼이 잘못됐는지 확인해주는 것은 코치 김은영(38) 씨의 몫이다. 그는 최수정(37) 감독과 함께 서울대 베이스볼아카데미와 심판아카데미를 수료했다.
“공을 던질 때 팔꿈치가 너무 내려와서 릴리스 포인트(공을 손에서 놓는 위치)가 불안정해! 그러면 제대로 송구가 안 돼! ”
코치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다들 자신의 차례가 오기까지 손을 들며 던지는 자세를 고민한다. 체력 좋은 남자들이라도 금세 지칠 만큼 강도 높은 훈련이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되자 심판이 최 감독을 부른다. 곧 첫 경기가 시작됨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날 나인빅스는 두 팀을 상대로 두 번 경기를 했다. 그중 첫 번째 경기를 관전했다. 1회 초 볼넷 두 개로 두 명의 선수가 나갔지만, 주루사 및 땅볼 타구 두 개로 아쉽게 득점 없이 끝나고 말았다. 1회 말 나인빅스 팀 수비. 연속 안타로 5실점을 해 이대로 무너지나 싶었다. 하지만 2회 말엔 전혀 다른 모습. 3루수 쪽으로 빠르게 튄 공은 미리 가서 자리 잡은 3루수의 글러브에 안착한 뒤 그의 손끝을 통해 1루수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결과는 아웃이었다. “수비만큼은 남자들에게 지지 않는다”라는 최 감독의 말이 실감났다. 결과적으로 이날은 두 경기 모두 패했지만, 나인빅스는 ‘해양리그’에서 10월 초까지 이날 경기를 포함 3승 9패 1무의 성적을 거두며 선전하고 있다.

수술대에 세 번 오르고도 포기할 수 없는 스포츠

“위험하다 말려도 포기할 수 없는 재미가 있죠”

곱지 않은 시선도, 반대도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모두 잊을 수 있다는 나인빅스 선수들.



선수들이 야구가 좋다는 마음만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룰을 숙지하고, 타격·수비 등 어느 정도 훈련이 돼 있어야 경기에서 뛸 수 있는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꾸준히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인빅스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 야구 팀은 ‘인턴 선수’ 제도를 통해 초심자들에게 야구의 맛을 보여준다. 인턴 선수는 정해진 기간 동안 출석률, 연습 소화 정도 등을 감독과 코치에게 확인받고, 인턴 기간이 끝난 뒤에는 팀원의 동의를 얻은 뒤에야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 만큼 깐깐한 규칙을 적용한다. 버티는 사람만이 주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음에도 한 팀이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주위 사람들의 ‘반대’다. 야구라는 운동의 격렬함과 남자들의 스포츠라는 편견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가 심하다는 것. 일부 멤버 중에는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와 반대로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8년간 야구를 해온 팀원도 있다. 창단 멤버이자 현재는 명예감독인 변기명(41) 씨다.
야구 경기 관전을 즐기던 그는 2004년 TV에서 일본 팀에 53대 0으로 패한 여자 야구 대표 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나도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즉시 인터넷 검색을 해 TV에 나온 팀이 최초의 아마추어 여자 야구 팀이던 ‘비밀리에’라는 것을 알고, 당장 합류했다. 이듬해에는 뜻이 맞는 사람들 12명과 함께 나인빅스를 창단해 지금까지 이끌어 오고 있다. 그의 든든한 지원군은 남편. 처음 야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세 살 아이를 주말마다 친정집에 맡겨야 했지만 남편은 ‘내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는 변씨의 신념을 이해해줬다. 이제 열한 살이 된 아들은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엄마의 든든한 팬이다.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야구를 해온 터라 야구 인생에서의 시련은 공에 맞았을 때 정도다.
“2007년에 야구를 하다가 미간에 공을 맞았어요. 이틀이 지나니 멍이 양쪽 눈가로 내려왔죠.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무척 민망했어요. 오해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2주 정도는 매 맞는(?) 아내가 된 채로 직장 생활을 했어요(웃음).”
좋아하는 일을 위해선 희생해야 할 것도 있는데 바로 주말이다. 사회인 야구 리그는 주로 주말에 집중적으로 열려 주전급 선수들도 출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너도나도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경기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야구를 시작한 뒤 다니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주 5일제가 보장되는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직하면서 그는 임원들에게 주말 휴일만큼은 사수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밝혔다.
주말 하루를 온전히 바쳐야 하는 취미지만, 야구는 해보면 그만큼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응원만 할 때는 몰랐는데, 캐치볼이 능숙해지고 더 나아가 첫 타석에 들어선 순간 야구를 포기할 수 없게 된다고. 타석에서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질을 읽어내고, 수 싸움을 벌이고, 상대의 공을 치거나 마운드 위에서 상대 타자를 삼진 혹은 범타로 돌려보냈을 때, 전율이 인다는 것. 야구로 인해 수술대에 세 번 올랐지만 야구를 포기하지 않은 김은영 코치는 여자 야구의 또 다른 장점을 꼽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열 살도 더 어린 친구들에게 정겹게 ‘언니’라는 소리를 들어볼 일이 얼마나 될까요? 나이에 상관없이 한 주제로 친해지게 되는 경험은 많지 않잖아요.”
평일에도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가거나 개인 훈련을 받는다는 이들의 열정 덕분에 ‘여자가 무슨 야구를 해?’라는 차가운 시선이 점차 따뜻한 시선과 응원으로 바뀌고 있다. 여자 야구 선수들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이를 돕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여자 야구의 미래는 밝다.

여성동아 2012년 11월 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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