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과 ‘고지전’부터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 까지 홈런을 날리며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한 배우 류승룡(42). 올해만 4개 이상의 광고를 찍었고, 얼마 전에는 그의 목소리가 적용된 로봇청소기가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2012년은 그에게 최고의 해가 될 것 같다.
9월 말 류승룡은 이병헌과 함께 영화 ‘광해’로 찾아왔다. ‘광해’는 조선의 15대 왕 광해를 다룬 최초의 영화이자 실제로 ‘광해군 일기’에서 광해가 사라진 15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을 더해 만든 팩션 사극이다. 이 작품은 왕이 될 수도, 돼서도 안 되는 천민이 왕의 대역을 맡아 궁에 들어왔다 진짜 왕이 돼가는 모습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에서 류승룡은 하선이 왕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킹 메이커’ 허균 역을 맡았다. 허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작가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혁적 인물.
꿈, 지금의 류승룡을 달리게 한 원동력
9월 15일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린 영화 ‘광해’의 토크 콘서트에 류승룡이 나타났다. 그는‘광해’의 한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엿을 하나씩 나눠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영화에서 잔소리를 하는 허균에게 왕의 옷을 입은 하선이 야식으로 ‘엿을 드시오’라고 건네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 그 모습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카사노바 장성기가 언뜻 비쳤다. 영화가 끝난 뒤 등장한 그는 여성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내내 유쾌한 분위기로 토크 콘서트를 이끌었다.
류승룡은 20대를 주로 연극과 뮤지컬 ‘난타’ 무대에서 보냈다. 난타 1기 멤버로 2004년 2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난타가 진출할 때까지 7년 정도 한국과 해외를 드나들며 ‘난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난타’ 무대에서 내려온 뒤 류승룡은 2004년 ‘아는 여자’로 단역 데뷔하며 스크린에 얼굴을 비쳤다. 그 이후로는 다양한 장르에 출연했다. 또 다른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역을 맡아도 그 역과 꼭 맞는 모습을 이끌어내는 류승룡은 ‘천생 배우’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의 연기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배우를 하겠다고 했지만 집이 가난해 무대에 오르는 시간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꾼으로 건설 현장을 전전한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다.
▼ 어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나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를 가느냐 마느냐, 중장비 자격증을 따서 생계를 잇느냐 마느냐 같은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했어요. 삶이 어려웠으니까요.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미술, 음악, 놀이 치료 하는 것처럼 연극을 통해 치료를 받았어요. 연기하는 동안은 행복했고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어떤 배우가 되려고 한 게 아니라 연기가 좋아서 하다 보니 배우가 된 거죠.”
류승룡은 20대 때 자신은‘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와 닮았고, 불혹이 된 지금은 ‘광해’의 허균과 닮았다고 고백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는 류승룡은 더 많은 나를 보여주기 위해 촬영에 임한다.
▼ 작품의 스펙트럼과 캐릭터의 폭이 넓은데요.
“영화를 시작한 지 10년이 안 됐어요. 영화는 총 28편을 했는데, 지금까지 해마다 평균 4~5편 정도 한 것 같아요. 이 장르를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생소했거든요.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닥치는 대로 했죠. 여러 작품을 하다 보니 캐릭터를 소진하게 되는데, 저는 그게 두려웠어요.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출연했을 때 이준익 감독님께 ‘정재영이 한 작품 할 때 저는 다섯 편은 해야 생활이 된다. 하지만 두렵다. 이 캐릭터를 소진하면 총알이 다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제 고민을 털어놨어요. 그러자 감독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셨죠.”
▼ 이준익 감독이 어떤 조언을 했나요?
“‘승룡아, 땅을 파! 땅은 더 깊게 파면 팔수록 맑은 물이 나와. 손톱이 빠지고 피가 나도록 땅을 더 파. 그러면 네가 원하는 더 맑은 물이 나올 거야’라고 하셨죠. 이준익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캐릭터든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하고 역에 몰입하면 또 다른 제 안의 제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 결국 노력이 중요하다는 거네요.
“하고 싶은 걸 위해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나 리듬체조의 손연재 선수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어요. 음악가들은 엄청난 물리적 시간을 연습에 투자하잖아요. 나 또한 연기에 투자하는 시간 동안 그들보다 치열할까, 아닐까 생각하다 보니 ‘게으르면 안 되겠구나, 열정적으로 해야겠다. 겉멋 들면 안 되겠다’ 생각했죠.”
▼ 지금까지 가장 치열한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뭘 하든 치열히 했어요. 초창기 ‘난타’ 할 때는 1년 동안 거의 노 개런티로 출연하고, 하루에 12시간씩 매일 연습했어요. 스스로 물어봤죠. ‘내가 왜 그리 힘들게 연습할까? 돈 때문에? 유명해지려고?’ 그런 것 같진 않아요. 도전의식이 생긴 거죠. ‘난타’라는 이름을 고유명사로 만들고, 세계에 알리고,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는 걸 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원하던 목표까지 딱 이루고 그만뒀죠(웃음). 연출도 했는데 여섯 팀 정도 키웠습니다.”
도전, 지금의 류승룡을 깎아낸 조각칼
▼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두려워해요.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가서 벼룩쇼를 본 적이 있어요. 벼룩은 원래 자기 몸의 70배 높이, 약 30cm 정도 뛰어요. 그렇게 높이 뛰는 벼룩을 어떻게 훈련시키느냐. 벼룩을 일단 유리잔에 넣어요. 벼룩이 나가려고 막 뛰겠죠? 그런데 벼룩이 뛰다 보면 유리잔 천장에 머리가 닿잖아요. 10분 정도 뒤에 잔을 치우면 더 이상 뛰지 못하고 딱 유리컵 높이만큼만 뛰어요. 검지만 한 샷 잔부터 500ml 맥주잔까지 여러 컵에 벼룩을 넣어두었다가 노래를 틀고 컵을 치우면 그 속에 있던 벼룩들이 컵 높이만큼 뛰는데 그게 춤처럼 보이는 거죠. 저는 사람들의 잠재력은 30cm라 생각해요. 자라면서 환경이나 사람들의 시선, 자존심, 노력하지 않음, 게으름이라는 컵에 갇혀 스스로 능력을 그만큼 제한하는 거죠. 부딪힐 거라는 두려움만 떨쳐내면 자기가 뛸 수 있는 능력만큼 뛰어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 만약 하다가 안 되는 게 있다면요?
“늪에 빠지면 허우적거릴수록 더 빠지잖아요? 그러면 더 고민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요. 게다가 저는 고민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포기가 빨라요. 고민해서 해결될 것 같으면 빨리 고민해서 해결해요. 포기할 건 얼른 포기하고요. ‘가정이 부유하지 않다?’ 이런 건 내가 고민해서 해결되진 않잖아요. 제 몸 비율이 5등신이에요. 재봤거든요(웃음). 키 높이 깔창 깔았어요(웃음).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 거니 고민하지 않아요.”
포기하지 않고 연기를 하게 한 원동력이 있나요?
“억지로 하거나, 재미있지 않으면 못하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미치도록 재밌고 즐겁지 않으면 원동력이 생기지 않아요. 자의냐 타의냐, 수동이냐 능동이냐에 따라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겠죠.”
▼ 슬럼프가 온 적은 없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슬럼프에 빠질 겨를이 없었어요. 쉬는 시간 없이 지금까지 쭉 왔거든요. 형식적인 대답 같지만 연기가 재밌고 현장에 가면 힘이 나요. 동료들과 작품을 만들기 위한 퍼즐을 맞추는데 그게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어요. 현장에서 계속 재미를 느끼다 보니 슬럼프를 느끼지 못했죠.”
가족, 지금의 류승룡을 지탱하게 한 뿌리
해외를 돌고, 늦게 뜬 편인 데다 개인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류승룡은 아내와 두 아이를 공개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프레인 TPC의 여준영 대표는 류승룡을 일컬어 “아내 알기를 하늘처럼, 아이 알기를 금은보석처럼 하는 사람”이라 칭할 정도다. 연습과 촬영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가정에 쏟는 편이라는 것. 그의 ‘가족’은 범위도 넓어서 부모, 형제, 처자식뿐 아니라 그 가족의 가족들까지며, 누구 한 명 소홀히 하지 않고 살뜰히 챙긴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가족이란 지금의 류승룡을 있게 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광해’에서 허균은 광해군의 닮은꼴인 천민 하선에게 왕 대역을 시키면서 킹 메이커 노릇을 했는데, 배우 류승룡의 인생에 멘토는 누구인가요?
“가족이죠. 제가 어릴 때는 집이 좀 부유한 사람이더라도 연기한다고 하면 터부시하고 ‘딴따라’라고 비하하던 시절이었어요. 저는 허락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요. 별다른 지원은 없었지만(웃음). 연기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부모님은 제가 나온 영화를 개봉 당일 조조로 꼭 보세요. 이번에도 ‘광해’를 보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수고했다. 울었다. 꽉 찼더라. 고생했다. 사랑한다’고요.”
▼ 아내의 내조가 큰 도움이 됐죠?
“제가 빈손으로 생활하며, 난타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아이 엄마를 만났어요. 그것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드니까 노동판에서 일했죠. 아내가 그래요, ‘내가 돈 벌 테니 오빠는 그 일 그만두고 연기해야지’라고요. 저는 연극 연습 끝나면 막노동하고, 게다가 연기로서 물질적으로, 외적으로 이뤄놓은 것 하나 없는 사람인데, 아내가 가능성을 본거죠. 지금 이 자리엔 없고 아이 보고 있어요(웃음). 첫눈에 반한 건 아니고 열일곱 번째 봤을 때 반했어요. 아내가 ‘광해’를 못 봤는데, 다음 주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둘이 함께 조조 보러 가려고요.”
▼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본 아내의 반응도 궁금한데요. 아무래도 카사노바 역이니까.
“영화 보고 와서 저를 보며 ‘쯔쯔쯔’ 혀를 찼어요. 그런 역인지 몰라서 깜짝 놀랐대요. 그 영화를 아내가 학부모들과 봤더라고요. 다들 그랬대요. ‘출산율이 늘어날 것 같다’고요. 아무래도 부부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아내가 혀를 찰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2012년 상반기를 휩쓴 류승룡은 요즘 시나리오가 쏟아져 어떤 작품을 고를지 고민이 많아졌다고 한다. CF 섭외 요청도 많아졌다. 나이키의 ‘Find your Greatn
ess’ 시리즈에 목소리를 내보내기도 했고, SK텔레콤과 이베이, 옥션, 어바웃 CF도 촬영했다. 사람에게 전성기가 있다면, 류승룡에게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 셈이다.
류승룡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는 다 가진 남자처럼 보였다. 자신의 일에 애정이 넘치고, 흥행 배우라는 타이틀도 얻었고, 가족들에 대한 무한 신뢰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넘쳐나는 차기작 시나리오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가졌으면 질투가 날 법도 한데, 그에게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가 지금에서야 누리게 된 것들은 류승룡,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스페셜 에디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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