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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시골 카페의 국제화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글·사진 | 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2.10.04 11:01:00

나요로 시 무인역 옆에 자리 잡은 카페 닛싱. 이곳에 오면 늘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이 머물고 있다. 이들은 일본 안에서 한국 문화와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을 카페 닛싱의 매력으로 꼽는다.
시골 카페의 국제화

우프 프로그램을 통해 홋카이도까지 찾아온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우리 가족이 홋카이도 작은 도시 나요로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9년째로 접어들고, 무인역 옆에 카페 닛싱을 연 것도 다섯 해가 되어간다. 그동안 지역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전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특별한 인연으로 우리 카페를 찾아온 외국의 젊은이들이 있다.
첫 인연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청년 마리오(Mario Groslinger)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며 한국어와 일본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하던 그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어학연수를 했고, 그때 같은 어학연수 목적으로 가 있던 우리 학교(나요로시립대학) 학생들과 친해진 인연으로 홋카이도까지 오게 됐다.
마리오가 한 달 정도 머물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예전에 민박 시설로 사용했던 낡은 건물의 방 한 칸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는 영하 10℃를 밑도는 추위 속에서 난방도 사양하면서 뜨거운 물주머니 하나만 껴안은 채 이불을 몇 겹 뒤집어쓰고 추위를 견뎌낼 만큼 씩씩한 청년이었다. 또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에 유머 감각까지 뛰어나 카페 손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한국말이 꽤 유창했던 그는 평소 중요한 장면마다 불끈 쥔 주먹을 가슴에 대며 “맡겨주세요! ”를 외치곤 해서 우리 가족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카페 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일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는데 알고 보니 현장 연수라는 대학 학점을 받기 위해서였다. 나는 흔쾌히 그를 위한 현지 지도교수가 돼 그가 충실히 어학연수를 했음을 인정하는 서류에 사인을 해주었다.
마리오는 일본에서 연수를 마친 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가 한국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얼마 전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인사동에서 다시 만난 마리오는 몰라볼 만큼 살이 붙어 있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내 자기가 너무 잘해 주니까”란다. 홋카이도 카페에서 연로한 나의 모친을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다니던 마리오. 졸업 후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고향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노인 복지 시설에서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며, 삶과 일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시골 카페의 국제화

1 나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하고 있는 마리오. 2 스위스 로잔에서 온 레일라(오른쪽 끝)와 우리 가족. 3 호기심 많고, 한국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좋아했던 레일라.



한국 음식이라면 뭐든 “정말 맛있어요”를 외치던 레일라
나는 2010년 1년간 런던 대학 객원교수로 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카페 닛싱에서 외국의 젊은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제적인 농업체험조직 우프(WWOOF: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를 통해 카페를 찾아왔다. 우프는 원하는 나라에서 농업 분야의 일을 하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고 그 나라 언어와 문화 등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으로, 서구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카페 닛싱도 우프에 등록해 지원자들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에만 스위스, 미국, 홍콩에서 4명의 젊은이들이 짧게는 2주일, 많게는 두 달간 카페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을 거들었다. 9월 중에는 미국에서, 내년 1월에는 프랑스에서 오는 지원자가 예약돼 있다. 머무는 동안 이들과 가족처럼 지낸 덕분에 나중에 다시 개인 여행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부족한 일손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카페에서 우프 지원자를 받을 때 영어나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사람으로 제한하는데, 이유는 우리 가족의 외국어 공부를 위해서다. 특히 프랑스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일본으로 돌아와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한 아들 호현은 프랑스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어서, 프랑스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며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그들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 등을 접하고 있다.
우프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처음 카페 닛싱을 찾아온 외국인은 스위스 로잔에서 온 레일라(Leila Chakroun)였다. 아버지는 튀니지, 어머니는 벨기에 출신으로 양친 모두 의사이며 여동생도 의학을 선택했지만 레일라는 지구 환경에 관심이 많아 로잔 대학에서 환경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 가을 학기부터 1년간 교토 대학에 유학 중인데 2월 말 휴가를 내 우리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 모든 일에서 호기심이 왕성한 그는 특히 한국 음식을 좋아했다. 어떤 음식이 나와도 그릇이 반질반질해지도록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아내가 김치를 담그거나 새로운 요리를 할 때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적극 가담했고, 맛을 보면서 연신 “정말 맛있어요”를 외쳤다. 소녀 같은 레일라는 나를 “아빠! 아빠!”라 부르며 애교를 부리곤 했다. 한 달 남짓 머물다가 교토로 돌아간 뒤에도 틈만 나면 일본의 각지를 돌아다녔고, 한국 여수 엑스포를 관람하고 서울을 둘러봤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지금 연구실 벽에는 레일라가 여수에서 보내온 ‘아빠’로 시작된 내용의 그림엽서가 그녀의 환한 미소처럼 나를 반긴다. 레일라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스위스로 귀국하기 전에 그를 만나러 온 친구 안나와 함께 카페 닛싱을 다시 찾아왔다. 알고 보니 안나 역시 한국과 인연이 많았다. 안나의 남자 친구가 한국광이어서 그 덕분에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안나가 애완용으로 키우는 토끼 이름이 ‘떡볶이’, 강아지는 ‘김치’라는 것이다. 홋카이도의 작은 도시에서 이처럼 한국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신나는 일인지 모른다. 안나 커플은 조만간 다시 카페 닛싱을 찾아올 것 같다.

시골 카페의 국제화

1 홋카이도 북부 슈마리나이 호수로 소풍 갔을 때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리디아(맨 왼쪽). 2 리디아가 직접 그려준 아이스크림 입간판. 3 카페 닛싱의 주방에서 설거지를 돕는 하메드.





리디아가 그려준 아이스크림 간판
레일라가 돌아가자 미국 북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아트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리디아(Lidia Churakova)가 찾아왔다. 러시아계 미국인인 리디아는, 활달한 레일라와 달리 말수가 적고 틈만 나면 산책과 독서를 즐기는 조용한 성품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우리 카페 앞에 세울 아이스크림 입간판을 그려주고, 카페 입구에 깔려 있는 조약돌을 색색으로 칠해 손님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틈만 나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다른 젊은이들과 달리 리디아는 한곳에 머무는 것을 더 선호했다. 왜 먼 홋카이도까지 왔느냐고 물었더니 아름다운 자연 속에 머물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에도 그런 장소는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이곳까지 왔을까 하는 궁금증은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카페에서 한 달여를 지낸 뒤 미국으로 돌아간 리디아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카페에서 알게 된 지인들에게 편지와 함께 아기자기한 선물을 보내왔다. 그가 칠해준 조약돌과 아이스크림 간판이 가을 빗물에 촉촉히 젖어드는 모습을 보며 문득 다정다감했던 리디아를 떠올린다.

이슬람 문화를 가르쳐준 ‘미소 천사’ 하메드
지난여름 두 달 동안 우리 가족 곁에는 이란계 미국인 하메드(Hamed Nouri)가 있었다. 이란에서 태어난 하메드는 부모와 함께 9년 전 미국으로 이주해 현재 북텍사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있고, 아버지도 같은 대학의 교수라고 했다. 그가 우프 프로그램을 신청했을 때 우리 카페에는 이미 오기로 한 사람이 정해져 있어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했지만 하도 원하기에 영어 교사 조건으로 받겠다고 했다.
하메드는 성실한 영어 선생님이었을 뿐만 아니라 독실한 이슬람교도였다. 매일 아침 영어 공부를 위해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어느새 이슬람에 대한 것으로 채워졌다. 하메드 덕분에 이슬람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일출에서 일몰까지 금식을 하며 하루에도 다섯 번씩 기도를 하는 라마단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이 하메드의 스케줄에 맞춰 생활해야 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졌다. 비늘 없는 생선은 먹지 않고 오직 김과 쌀밥만 먹는 그가 안쓰러워 적지 않은 고민도 했다.
하메드는 독실한 신앙심 때문에 학교생활에서도 몇 차례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부전공으로 예술을 공부하고 있는데 필수과목인 누드 모델 스케치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또 졸업 후 만화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 올 계획인데 학교 측에 누드 스케치 과목을 수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을 미리 받아냈다고 한다. 성인 여성과는 악수조차 거부하면서도, 연령에 따라 여성과의 스킨십이 허용된다는 이유에서 우리 딸 서현과는 틈만 나면 뒹굴며 놀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때때로 우리 가족을 어리둥절하게 한 하메드지만 가족 간의 사랑은 감동적이었다. 그가 머무는 동안 미국의 부모와 형으로부터 동영상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들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오히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메드네의 끈끈한 가족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소 천사’인 하메드의 인생 철학은 ‘긍정’이었다. 긍정적인 사고만이 행복의 근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이슬람교도도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겠다는 삶의 목표를 갖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 만화를 공부하려는 목적도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를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로 표현해서 잘못된 선입관이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메드가 떠난 뒤 홍콩에서 여학생이 왔고, 이달 말에는 미국에서 또 다른 젊은이가 방문을 희망하고 있다. 이들이 카페 닛싱을 찾아오는 이유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일본 안에서 한국 문화와 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즉 일본에서 한국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카페를 선택하는 큰 이유라고 했다.
그 덕분에 요즘 우리 가족은 ‘인연’이라는 진주 목걸이를 엮어나가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홋카이도 나요로 시의 무인역 옆에 자리 잡은 카페 닛싱. 이곳에 오면 늘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이 머물고 있다. 홋카이도신문 구도 기자의 표현대로 국제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닛싱 카페는 어느 대도시 못지않다. 또 하나의 진주를 엮는 마음으로 내일을 맞는다.

시골 카페의 국제화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여성동아 2012년 10월 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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