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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열한 번째 | 이게 바로 천생연분

“미담이가 없었다면 대학 생활, 교사 활동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우리는 한 몸, 시각장애 영어 교사 김경민·안내견 미담이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2.09.19 13:55:00

시각장애를 딛고 숙명여대 조기 수석 졸업, 임용고시 합격 후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는 김경민 씨. 그의 곁에는 언제나 듬직하게 그를 보호해주는 안내견 미담이가 있다. 침착하고 인내심 강한 미담이는 김씨에게 길을 안내해줄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도 활짝 열게 해줬다.
“미담이가 없었다면 대학 생활, 교사 활동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병원에서 녹내장 수술 등 26번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열세 살 때 끝내 실명한 선천성 시각장애인 김경민(24) 씨. 하지만 그는 장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업에 열중한 끝에 숙명여대를 7학기 만에 수석으로 조기 졸업하고, 서울시 영어 교사 임용 시험도 한 번에 통과해 현재 서울 홍제동 인왕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김씨가 장애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안내견 미담이의 공이 크다. 둘의 운명적 만남은 2007년 김씨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뤄졌다.
“그전까지는 학교가 집에서 가까워서 부모님이 저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셨는데 대학생이 돼서까지 부모님께 의존할 순 없었어요. 이제 독립 보행을 해야겠다 싶었죠. 과거 안내견 관련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나도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차였죠. 사실 개를 무서워하는데 안내견은 물지 않고 짖지도 않는다고 해서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 신청을 했어요.”
래브라도 리트리버 암컷인 미담이를 처음 만나던 날, 김씨는 자신에게 달려와 점프를 하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 미담이의 행동에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미담이의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에 매료됐고,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하는 대학 생활은 당초 걱정과 달리 재미있고 보람찼다.
“막상 대학생이 되니 심적인 부담이 컸어요. 비장애인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지금껏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런 부담감을 덜어준 게 바로 미담이예요. 미담이 덕분에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잘 모르는 친구들과도 미담이가 대화의 매개체가 돼 금세 친해지고요. 대학 생활 동안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그 밑바탕을 미담이가 만들어줬어요.”
미담이는 김씨의 학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반심리학 수업에서 행동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미담이가 받은 훈련 과정, 일 수행 능력 등을 리포트로 제출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일반심리학 교수님과 초반에는 약간 트러블이 있었어요. 교수님이 미담이가 위험한 동물이 아니라는 걸 모르셨는지 제게 메일을 보내셨더라고요. ‘앞으로 개 관리를 잘하면 좋겠다.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다 교수 책임이니 개를 안전한 곳에 묶어 두든가, 아니면 데려오지 않는 게 좋겠다’라는 내용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저도 교수님께 미담이가 얼마나 안전한 동물이고, 제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밝히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죠. 나중에 리포트를 제출했을 때 교수님이 미담이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신 것 같아서 기뻤어요(웃음).”
남들보다 두세 배 열심히 공부하며 모범적인 대학 생활을 해나간 김씨는 2010년 가을, 미담이와 함께 학사모를 썼다. 문과대 대표로 졸업장을 받으러 단상에 오를 때도 미담이와 함께였고, 박수도 함께 받았다. 의류학과 학생들이 미담이를 위한 학사복을 특별히 제작해줬다.
“많은 학생들이 미담이를 향해 박수를 쳐줬을 때 정말 감사했어요. 미담이가 없었다면 학교생활을 이렇게 잘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미담이가 없었다면 대학 생활, 교사 활동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활달하고 애교 많은 미담이 덕분에 김경민 씨의 삶도 한결 밝아졌다.



미담이에게 전염된 긍정 바이러스
요즘 미담이는 김씨와 함께 중학교를 다니며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점심 식사 후 미담이와 학교를 한 바퀴 돌 때면 미담이가 핥아주기를 기다리며 복도에 일부러 누워 있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미담이를 보려고 교무실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덕분에 김씨는 학생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미담이 역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김씨는 “미담이도 3년 반이나 대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잘 아는 것 같다”며 웃었다.
“솔직히 학생들을 만나기 전에는 두려움이 컸어요. 제가 가진 장애 때문에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 동료 선생님들, 직장 상사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괜한 걱정을 했다 싶어요. 미담이가 중간 역할을 훌륭히 잘 해준 덕분이죠. 이제는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문제 학생들도 잘 다룰 수 있을지 이런 고민을 많이 해요.”
김경민 씨는 미담이를 자신의 신체 일부라고 말한다. 그만큼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다. 같이 놀자고 달려들 때면 자식처럼 귀엽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힘든 날이면 다정한 친구처럼 마음의 위로가 돼주는 미담이. 무엇보다 김씨는 미담이를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제가 밝고 긍정적이지만 미담이를 만나기 전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세상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 차 있었죠. 완전히 시력을 잃은 후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찾아왔는지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어요. 세상을 향한 두려움도 컸고요. 하지만 미담이를 만나고부터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가장 힘겹고 매 순간이 도전인 20대를 미담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끝으로 김경민 씨는 안내견에 대한 에티켓을 강조했다. 보행 중에는 안내견을 만지거나 (혀끝으로 내는) 소리를 내거나 먹을 것을 주면 안 된다는 것. 보행에 방해를 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행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미담이를 예뻐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봐주세요” 하며 환하게 웃었다.

여성동아 2012년 9월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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