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주부 A씨(38)는 남편 B씨(46)와 부부싸움을 했다. 같은 날 오후, A씨는 아들 셋(8세·5세·3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닷새가 지난 8월 10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한 모텔. 경찰이 205호 문을 두드렸다. 방문을 연 A씨는 침대 옆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방 안은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한쪽에는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세 아이는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경찰은 A씨에게 “약을 먹였냐”고 물었다. A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을 깨우려 뻗은 경찰의 손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것이 닿았다. 아이들은 모두 숨진 상태였다. 충격적인 살인 사건의 범인은 바로 어머니 A씨였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경찰서는 자신의 세 아들을 살해한 혐의(직계비속 살인)로 8월 10일 주부 A씨를 긴급 체포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돈 문제로 남편과 다투고 집을 나가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6일 저녁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대체 왜 그는 생때같은 아이들을 자기 손으로 죽인 걸까.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를 묻자 A씨는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죽으려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장에서 붙잡힌 A씨의 주머니에서는 노끈이 나왔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후 별다른 조치 없이 아이들의 시신 옆에서 나흘간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B씨는 “아내가 병원에서 치료받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진술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일을 ‘6일’에서 ‘7일’로 말하거나, 아이들을 죽인 시점을 ‘잠들어 있을 때’라고 했다가 ‘깨어 있을 때’라고 하는 등 진술을 번복하며 극도의 공황 상태를 보였다.
졸지에 세 아들을 잃고 가정이 무너져버린 남편 B씨는 한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차라리 나를 죽이지, 내가 미우면 나를 죽여야지 어떻게 아이들을 데려가서 그런 짓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건은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이 사건은 범행을 저지른 A씨의 남편 B씨가 지상파 방송 공채 출신 탤런트라는 사실이 알려져 더 큰 관심을 끌었다. 1999년 결혼해 세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린 B씨는 사극 드라마와 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해온 탤런트다. 지난해까지 작품 활동을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다. 공채 출신 중견 탤런트라는 말에 같은 성씨의 비슷한 연배 탤런트 여러 명의 실명이 거론됐고, 몇몇 탤런트의 자식들은 직접 나서서 “기사에 나온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라며 해명하기도 했다.
바람 쐬러 나간다며 아이 셋 데리고 잠적
다시 사건이 일어난 8월 5일로 돌아가보자. 사건의 발단은 ‘아내 A씨의 금전 문제’였다. B씨에 따르면 아내는 친정 식구와 지인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생활비 명목으로 빌린 돈이 10만원 대에서 1천만원대로 늘어났고, 최근에도 A씨의 친언니가 “꿔간 돈을 갚아라”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A씨는 남편의 지인에게도 “빚이 있다”며 수차례 목돈을 빌렸다.
B씨가 아내의 태도를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3년 전부터였다. 갑자기 큰돈을 요구하면서 “옛날에 필요해서 빌린 거라 이번만 막으면 아무 일 없다”는 식으로 자세한 이야기를 꺼렸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덜덜 떨거나, 밖으로 나가서 통화하는 일이 잦았다. 아내가 대부업체 등에 돈을 빌린 정황을 B씨가 직접 확인한 것만 다섯 군데. 돌려막기였다. B씨는 돈의 사용처를 물었지만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부는 빚 상환 문제로 크게 다퉜고, 돈 문제를 추궁당하자 A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애들하고 바람 쐬러 왔어요. 있다가 밤에 갈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식사해요. 나도 생각 좀 하고 애들도 놀리고. 밤에 봐요.’
아내에게서 온 문자. B씨는 아내가 말다툼하고 집을 나갔지만, 따로 짐을 챙기지는 않았기에 곧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다음날이 되도록 귀가하지 않았다. B씨는 8월 7일 서울 관악경찰서 봉천지구대를 찾아가 실종 신고를 했다.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휴대전화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됐다. 위치 추적 결과 전화가 걸려온 곳은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의 한 가게. 가출 후 숙박하던 모텔 맞은 편 가게 주인에게 A씨가 휴대전화를 빌려 쓴 것.
“아저씨, 휴대전화 좀 빌려주세요.”
과자를 사고 가게를 나선 A씨가 다시 들어와 가게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빌린 휴대전화로 아이들의 유치원 선생님과 통화했다. 탐문 수사를 하던 경찰은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10만원을 송금해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가게 주인은 “아이 셋을 데리고 있던 여자가 과자와 먹을 것을 사고 전화를 썼다”며 “지갑에 돈이 있는데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눈치였다”고 밝혔다.
경찰에서 A씨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돈을 빌려 썼다”고 진술했지만, 남편 B씨는 “생활비가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며 상반된 주장을 했다. 그는 작품 두 편에 출연하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라며 “잘은 못 살아도 그냥 밥 먹고 유복하게 아이들 키우고 사는 집이었다”고 밝혔다.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범행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고 넋이 나가서 (아내를) 증오했다”던 B씨는 “내가 죄인이다. 지금은 다 용서했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존속 살해 범죄는 외국에도 존재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죽이는 건 일반적인 범죄에서 벗어난 형태라 가해자의 감정 상태가 불안한 경우가 많다”라며 “아이 엄마가 우울증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 정신적으로 쇠약해질 수 있다”고 했다. 아이를 죽인 뒤에도 A씨가 아이들의 시신과 함께 생활한 데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죽을 생각이 없다면 도주했을 확률이 높은데, 자살 시도까지는 하지 않았더라도 본인도 죽을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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