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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딸 노소영 관장과 딸 최민정

부전여전, 모전여전 3대가 잇는 꿈

글 | 장혜정 객원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입력 2012.08.16 15:40:00

시골의사 박경철은 말했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그래서일까. 부모와 함께 같은 길을 걷거나, 부모가 걷던 길을 이어 걷는 자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SK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딸 최민정 씨도 마찬가지다. 이제 갓 스물한 살인 이 당찬 아가씨는 어머니 노소영 관장이 그랬듯, 과거 북방정책(北方政策)을 꾀했던 외할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한·중 교류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딸 노소영 관장과 딸 최민정

7월 15일 ‘상생 영 리더십 포럼’을 마친 노소영 관장이 딸 최민정 씨와 함께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온종일 흩뿌리듯 보슬비가 내리던 7월 15일. 오후 5시쯤 서울 연세대학교 동문회관 지하 1층에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51) 관장이 도착했다. 오늘은 그가 둘째 딸 최민정(21) 씨와 함께 준비한 ‘상생(相生) 영 리더십 포럼’이 열리는 날이다. 블랙 팬츠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차려입은 노 관장은 50대 나이가 무색하도록 날씬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는 미리 마중을 나온 스태프들과 함께 딸 민정 씨가 먼저 와 있는 5층 행사장으로 향했다.
소규모 연회장에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보름간 열리는 포럼의 오리엔테이션 자리였다. 노 관장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한국과 중국의 대학생들이 양국의 상생과 발전에 관한 뜻깊은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한국과 중국의 상호협력에서 차세대 리더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축사를 통해 “젊은이들의 글로벌 과제는 이제 세상 전체를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라며 “그 시작을 동아시아에서 해보자”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10명씩 선발된 학생들은 7월 15일부터 29일까지 14박15일간 학술 포럼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등 석학들의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함께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며 친목을 다진다.
이처럼 뜻깊은 포럼을 개최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 베이징대학교에 재학 중인 민정 씨의 아이디어가 결정적이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민정 씨는 청소년 신분으로 중국 내 반한(反韓) 정서를 극복하고자, 직접 한국과 중국 학생들을 모아 동아리를 만드는 등 양국의 화합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만든 동아리는 ICU(Intercultural Union)라는 NGO(비정부기구)로 발전했는데, 이 단체에 약 2천 명의 다국적 학생들이 모여 중국의 인권신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들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쓰촨성에 도서관을 짓고,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생활 정착을 위해 일자리 카페를 준비하는 등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가꾸려 노력 중이다.
5년 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민정 씨. 그가 처음부터 한·중 교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에는) 지적 호기심으로 중국에 관심을 가졌다”며 “그러나 역사의 맥을 같이 하는 한국과 중국이 동양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서양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을 떼놓고 한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그렇게 한·중 융합의 방법과 목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고민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 외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그러니까 민정 씨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8년 7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소련,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과 국제협력을 맺겠다는 이른바 7.7선언을 공표했다. 북방정책으로 대표되는 이 선언은 공산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국교 정상화 및 경제력 성장을 꾀하자는 취지였는데, 이 정책에 따라 한국은 1990년 소비에트연방,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오늘, ‘한·중 관계는 정치, 경제,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상 유례 없는 발전을 일궜다. 자료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민정 씨는 한·중 관계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편 노 관장 또한 아버지를 통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한·중 교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이해하게 됐다고.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왜 북방정책을 폈는지, 혹시 경제적 부흥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통일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은 것. 노 전 대통령은 남북 통일을 위해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거부감 없이 빗장을 풀려면, 먼저 그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대답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는 노 관장은 그의 표현대로 ‘주머닛돈 탈탈 털어’ 중국문화교류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중국문화교류원의 첫 사업으로 이번 포럼을 개최했다.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
한·중 협력과 교류. 궁극적으로는 ‘통일’이란 한뜻 아래 묶인 노 관장과 민정 씨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딸이 그렇듯 서로 똑 닮은 구석이 있었다. 대통령의 딸이자 재벌가 며느리인 노 관장은 곱고 우아한 ‘꽃길’을 걷는 대신 늘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고민했다. 재계 여성들의 봉사단체를 이끌어 북한 어린이와 여성을 돕고자 한 것도, 미디어와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예술 영역을 개척한 것도, 통일의 꿈을 위해 한·중 교류를 도모한 것도, 모두 ‘도전’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딸 민정 씨도 안주와는 거리가 멀다. ‘재벌 딸’의 신분을 감춘 채 고등학교 때부터 편의점, 레스토랑, 와인바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빙을 하고, 와인 잔을 깨뜨려 사장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이 된 뒤로는 단 한 번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대학 학비는 장학금으로, 생활비도 과외비로 해결할 만큼 자립심이 강했다. 얼마든지 편하고, 쉬운 길이 보장돼 있었지만 그는 기꺼이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흔들리거나 꺾일 리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서 하는 고생’의 귀중한 가치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꽃을 기르듯 딸을 키웠을 노 관장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배우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는 이유로 이토록 당찬 둘째 딸의 일탈을 눈감아줬다.
외할아버지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게서 딸로 3대째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매사가 순탄치만은 않을 그 과정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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