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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열 번째 | 내 생애 최고의 여행

“교직 던지고 세상이라는 학교로…”

세 아이와 5백45일간 33개국 여행한 옥봉수·박임순 부부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입력 2012.08.16 14:07:00

옥봉수·박임순 부부에게 ‘대화’란 ‘대놓고 화내는 것’ 그 이상이 아니었다.
집은 마치 숙식만 해결하는 하숙집 같았다. 깨진 가정을 붙이고자 가족은 세계 여행을 택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더 큰 세상으로 떠난 부부는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교직 던지고 세상이라는 학교로…”

1 독일 호숫가 마을 감무구트에서.



‘3백50명 중 2백15등.’
2004년 중학교에 들어간 큰딸 윤영의 첫 성적표다. 중학교 윤리 교사였던 박임순(50) 씨와 체육 교사였던 옥봉수(50) 씨 부부에겐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는 서로의 다름에 끌렸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아이에게 성적보다 인성을 중시하고 학원보다 자연을 가까이하자는 교육관이었다. 하지만 딸이 받아온 성적에 이런 교육관은 무너졌다.
“교사 자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생각에 창피했어요. 우리 부부는 남들과는 다를 거라고 믿었는데, 막상 아이의 성적표를 받고 나니 저도 다른 어머니들과 다를 바 없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공부 방법을 잡아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박임순)
학교에서는 진로 지도 교사로 학부모들에게 아이의 미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박씨였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속이 탔다. 부부간 말다툼도 늘어 언성을 높이는 나날이 이어졌다. 세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딸은 시험 전날만 되면 불안함에 떨었다. 아이의 귀가가 점점 늦어지더니 결국 가출까지 했다. 계속되는 다그침과 반항. 박씨는 “그땐 집이 꼭 하숙집 같았다”고 회상했다.
“남편도 아이도 집에 돌아오면 모두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밥 먹을 때만 모였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죠. 저는 밥을 하면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된 기분이었어요.”
삭막한 시간은 큰딸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산산이 조각난 가정. 먼저 말문을 연 건 남편 옥씨였다.
“정면 승부를 하자고 했어요. 지금의 아이들은 ‘학교 밖 세상’에서 더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아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세계 여행을 제안했죠.”
부부는 22년간 몸담았던 학교를 그만뒀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이던 세 아이는 ‘휴학’ 대신 ‘자퇴’를 택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다. 미치도록 절박했다. 부부의 손에 남은 건 퇴직금 2억 여원. 그렇게 다섯 식구의 독한 여행이 시작됐다.
“집에서는 마음먹으면 가족간에 한마디도 안 하고 몇 달이고 지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내내 붙어 있어야 하니 그럴 수가 없었죠. 문제가 생기면 서로 대화로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고, 그 기간이 일주일에서 하루, 몇 시간에서 몇 분으로 차츰 줄어들었어요.”(옥봉수)
집에서는 싸우면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여행 중에는 그럴 수 없었다. 5백45일간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유럽 33개국을 누비며 치열하게 싸우고, 격렬하게 화해했다. 인도 공항에서의 노숙, 아프리카에서 목숨 걸고 한 히치하이킹, 아르헨티나에서 소매치기에 저항하다 바지가 찢어진 일, 미국 국립공원에서 2달러 내고 남자 셋이 8분간 몸을 씻은 일 등 셀 수 없이 많은 일화만큼 평생을 공유할 추억도 쌓였다. 강을 건너고 비를 피하는 법을 배웠고,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운 가족은 진정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삶에서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함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교직 던지고 세상이라는 학교로…”

2 네팔 푼힐 전망대에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봉을 배경 삼아. 3 아프리카 탄자니아 세렝게티 사파리를 누빈 지프차에서. 4 브라질 이과수 폭포. 5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앞에서 낙타와 함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삶 깨달아

“교직 던지고 세상이라는 학교로…”

옥봉수·박임순 부부는 ‘가정과 교육 세움터’에서 진정한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가족들의 멘토가 되고 있다.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한국 부모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니 아이의 끼와 재능이 다시 보였다. 학교에서의 ‘모범생’이라는 기준은 세상에선 중요치 않았다. 인도의 재래시장에서 선물을 살 때였다. 아이들은 가격을 깎겠다며 사흘 밤낮으로 시장을 찾아 흥정을 계속했다. 처음 가격의 20%. 작지만 큰 성과였다. 큰딸 윤영은 엄청난 친화력으로 외지의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대화를 이끌줄 아는 협상의 달인이었다. 둘째 은택은 짐 정리에 능숙해 트렁크에 신기할 정도로 많은 짐을 꾸려 넣는 재주가 있었다. 막내 은찬은 돈의 흐름에 유난히 밝은 재능을 확인했다.
세상의 참맛을 깨달은 아이들은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각자의 길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나가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소통 능력이 뛰어난 첫째는 장점을 살려 병원 코디네이터와 피부관리사, 비만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둘째는 컴퓨터 디자인 설계(CAD) 자격증을 따고 충주 폴리텍 4대학에 진학해 컴퓨터 응용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방위산업체에 근무 중이다. 글로벌 CEO가 꿈인 막내는 세무회계 기초 자격증을 취득해 세무회계 사무실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옥씨는 “아프리카 오지부터 유럽의 선진국을 둘러본 것 자체로 ‘산 공부’였다”고 말했다.
“여행하며 본 나라들에서 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봤어요. 세계의 변화가 눈에 보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보이더라고요.”
‘교육자 기질’을 버리지 못한 부부는 여행에서 돌아와 세상 경험을 바탕으로 ‘가정과 교육 세움터’라는 부모교육센터를 설립했다. 진정한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아프리카는 다시 꼭 가보고 싶다”던 부부는 “세 아이가 돈을 모아서 나중에 신혼여행을 새로 보내주겠다고 했다”라며 밝게 웃었다. 예전의 위태로운 가족은 이제 없다. 세계 여행으로 가족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행복’이었다.



참고도서 |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북노마드)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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