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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에서 화가로, 홍성숙이 말하는 ‘우회인생’의 묘미

글 | 허운주 자유기고가 사진 | 박해윤 기자

입력 2012.08.16 14:02:00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직진과 우회(迂廻). 직진은 쉽고, 빠르며 간단하지만 정해진 길이므로 예상 밖의 즐거움이 덜하다. 한편 우회는 어렵고, 느리며, 복잡하지만 길가에 떨어진 돈을 줍는 일만큼이나 뜻밖의 행운을 가져올 확률이 높다. 여기 영국 남자와 결혼해 미국에 살며, 한국 문인화를 그리는 여자가 있다. 다국적 삶의 주인공은 홍성숙 씨다. 화가를 꿈꾸다 간호사가 돼 독일에 간 그는 그곳에서 유럽을 돌며 예술을 배웠다. 그리고 궁극에는 화가가 됐다. 우회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파독 간호사에서 화가로, 홍성숙이 말하는 ‘우회인생’의 묘미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7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벽원 갤러리에서 ‘붓끝으로 음악을 그리다’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연 홍성숙(61) 씨와 남편 마크 크리스토퍼 킴 세턴(61) 씨를 만났다. 홍씨는 먹과 붓을 이용해 한지 위에 서양음악을 표현하고 뉴욕의 경치에 한국적 정서를 담는 등 나름의 독특한 미술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서양음악과 동양화를 접목해서보고 싶었다는 그는 선의 굵기와 농도, 색감 등으로 성악가의 높고, 낮은 음색을 그렸다.
“미국의 한 전시장에서 재즈 음악가들의 연주와 함께 제 그림을 공개한 적이 있었어요. 색다른 시도라며 반응이 꽤 좋았죠. 저는 감상하는 분들이 그림 속에서 음악을 찾고, 또 음악에서 그림을 느끼는 절정의 순간을 경험했으면 해요.”
작품에서 느껴지는 동서양의 조화는 사실 그의 지난 경험과 관련이 깊다. 서독 파견 간호사로, 또 영국인 남편의 아내로 독일, 영국, 미국 등지에서 생활한 그는 중국 그림은 알아도 한국 그림은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화선지에 뉴욕, 롱아일랜드 등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고, 한국과 서양이 반반씩 섞인 그림에는 오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는 홍씨의 남편 은 아내의 그림을 토대로 미국 교사들에게 동양과 한국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한다.

꿈을 찾기 위해 우회로 택하다
홍씨의 인생도 사실 화선지와 뉴욕의 결합처럼 특별한 구석이 있다. 어릴 적부터 빼어난 그림 솜씨를 발휘했던 그는 남몰래 미대 진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월급으로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더군다나 홍씨에겐 8명의 형제가 더 있었다. 철이 들며 집안 사정을 이해하게 된 그는 현실적인 고민 끝에 간호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꿈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로부터 ‘간호사가 되면 독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독일에 가서 돈도 벌고, 그림도 실컷 그리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자격증을 딴 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취직한 것도 모두 독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서울의 병원에서 근무한 지 1년이 넘어가던 무렵 그는 거짓말처럼 동료 37명과 함께 서베를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만 해도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서베를린에는 총성이 끊일 날이 없었다. 한 치 앞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미술에 대한 꿈 하나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파독 간호사에서 화가로, 홍성숙이 말하는 ‘우회인생’의 묘미


독일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오전 병원 근무가 끝나면 오후에는 곧장 독일문화원으로 달려가 독일어 공부에 매달렸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그리움과 외로움이 수시로 밀려들었다. 괜한 결심을 한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었다. 차츰차츰 그는 자유롭게 독일어를 구사하게 됐고, 베를린 시내 곳곳을 활보하며 재미를 찾는 여유까지 생겼다. 경제적으로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갓 스무 살을 넘긴 홍씨가 고향 집의 가장 노릇을 했다. 당시 독일 간호사 월급은 평범한 한국 직장인의 5배 정도였는데, 홍씨는 동생들의 학비조로 매달 꼬박꼬박 돈을 부쳤다. 10년간 계속된 그의 뒷바라지 덕분에 동생들은 하나둘 학교를 마치고 번듯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향 전남 장흥 바닥에서 그는 ‘홍씨네 효녀 넷째 딸’로 소문이 자자했다.
마음 한편에 늘 그림에 대한 열정을 품었던 그는 중간중간 휴가가 주어질 때마다 유럽, 그리스, 이스라엘 등지를 돌며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이며, 조각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렇게 무려 10년간 외국 곳곳을 경험하며 그는 차곡차곡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쌓아나갔다. 이렇게 쌓인 견문은 훗날 작품 활동에 큰 토대가 됐다.



파독 간호사에서 화가로, 홍성숙이 말하는 ‘우회인생’의 묘미

마크 크리스토퍼 킴 세턴·홍성숙 씨 부부가 그림을 사이에 두고 서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한국에 사는 영국 남자

파독 간호사에서 화가로, 홍성숙이 말하는 ‘우회인생’의 묘미


독일에 머물던 그는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병원 재계약을 앞두고 언제나 한국을 찾았다. 그해에도 어김없이 한국 땅을 밟았는데, 아는 사람으로부터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상대방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26세 영국인 청년. 불교에 심취해 잠시 일본에 머무르기도 했다는 그는 당시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성균관대 외국인 졸업생 1호가 됐다.) 고민 끝에 만났지만, 홍씨는 파란 눈의 외국인 청년을 진지한 연애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독일로 돌아간 홍씨에게 청년은 끊임없이 러브레터를 보냈다. 그러다 말겠거니 싶었으나 계속되는 편지 앞에서 점점 호기심이 생겼다. 그 남자의 나라 영국은 어떤 곳일까? 영국 사람들은 어떻게 영어를 발음할까? 궁금증이 밀려왔던 그는 영국에서 1년간 영어를 배웠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만난 청년이 지금의 남편 세턴 씨다. 장거리 연애는 애틋해서 더 달콤했다. 남편이 학부 공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두 사람은 결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으나 홍씨의 부모는 외국인 사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래도 남편이 유교철학을 배웠잖아요. 큰절을 넙죽 하더니 정약용 선생을 존경한다고 성심성의를 다해 설명하더라고요. 그때 부모님 마음이 풀어지신 거죠.”
외국인과 결혼할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한 적이 없었다던 홍씨. 그러나 인연의 끈은 두 사람을 부부로 이어줬다. 결혼과 동시에 한국에 들어온 홍씨는 독일 상공회의소와 갤러리를 오가며 바쁘게 삶을 꾸려나갔다. 그 사이 아이 둘이 태어났고, 남편은 아내의 내조에 힘입어 석사 과정에 매진할 수 있었다.
10년간의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한국에 발을 붙인 홍씨.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다시 외국으로 이끌고 있었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남편에게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어요. 남편도 그동안 고향이 그리웠는지 무척 가고 싶어 했고요.”
그는 어디든 떠날 수 있고,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단단한 내공을 지닌 여자였다. 딱히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그렇게 영국으로 건너간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옥스퍼드대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기숙사는 마치 작은 지구촌 같았다. 그 세계에서 홍씨는 독일인 친구를 만나 육아를 분담했다. 가끔 독일인 친구가 아이를 봐주는 날이면 모처럼 그림을 그리러 화실에 나가기도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박사학위를 받은 남편 세턴 씨에게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아들 제레미 성훈(29)이 아홉 살, 딸 에밀리 가영(26)이 일곱 살 때 일이었다.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 같은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물을 빨아들이는 식물처럼 한국말을 배웠고, 나라와 언어에 대한 편견 없이 밝게 자랐다. 어느 정도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는가 싶었는데 불과 2년 만에 온 가족이 미국행 비행기를 또 타게 됐다. 뉴욕주립대에서 남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 까닭이었다. 홍씨는 자녀들이 다 컸을 무렵 뉴욕주립대에서 미술을 전공해 50세에 늦깎이 졸업장을 받았다. 지금은 인근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있다. 롱아일랜드 스토니브룩에 둥지를 튼 가족들은 그곳에서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엄친아, 엄친딸 키운 비결

파독 간호사에서 화가로, 홍성숙이 말하는 ‘우회인생’의 묘미


홍씨의 아들과 딸은 소위 말하는 엄친아, 엄친딸이다. 아들 성훈 씨는 뉴욕주립대 의대를 졸업한 뒤 뉴욕의 한 암센터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고, 딸 가영 씨는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현재 국제앰네스티 미국 이사 자격으로 태국에서 근무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당시 학원 대신 어린이병동과 문화단체 등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던 아이들은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했다. 사람들은 홍씨의 자녀 교육법을 궁금해하지만 정작 본인은 “특별한 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아이들에게 특별히 더 가르친 건 없었어요. 다만 아빠는 강의를 하고, 엄마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을 뿐이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실천하더라고요.”
아이들의 자립심을 기대하며 대학 등록금조차 대주지 않은 홍씨였지만 나름의 원칙은 분명했다. 첫째 가족과 대화를 나눌 것, 둘째 남들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부모의 철학을 잘 따라줬다.
딸 에밀리 가영 씨는 어머니의 전시회를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왔겠거니 싶었는데, 종종 있는 일이란다.
“에밀리가 가끔씩 한국을 드나드는 모양이에요. 태국에서 봉사활동에 필요한 돈이 떨어지면 강남 SAT(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학원에서 강의를 한다고 해요.”
생각에 그치지 않는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 그것은 수십 년 전 베를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홍씨의 그것과 똑 닮아있었다.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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