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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미 황능준 부부의 운명 같은 사랑

돈 버는 아내, 전업주부 남편

글 | 진혜린 자유기고가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2.08.14 15:42:00

17년 전, 서른셋 처녀와 서른넷 총각이 연애 6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결혼을 했다. 신붓감 1위라는 방송국 아나운서와, 소규모 출판사 직원의 만남이었다. 언뜻 보면 안 어울리는 조합 같지만 서로의 빈틈을 속속들이 채워주며 남들에게 부러움 사는 부부로 살아왔다. 그래서 부부의 인연은 따로 있나 보다. 한국 최초로 여성 야구 중계 캐스터를 맡아 아나운서계의 신화가 된 윤영미 아나운서와 든든한 내조자인 남편의 17년 결혼생활 속으로 들어가보자.
윤영미 황능준 부부의 운명 같은 사랑


“여보! ”
남편을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가 단호하다. “여보”라는 흔한 호칭 한마디에 “빨리 와. 뭐 하고 있어? 아직 안 끝난 거야?” 등 느긋한 남편을 재촉하는 아내의 급한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내가 음악을 들을 때 남편은 TV를 본다. 그래서 남편은 음악 소리 좀 줄이라고, 아내는 TV 좀 끄라며 실랑이를 벌인다. 아내는 야행성인 반면 남편은 이른 새벽 하루를 시작한다. 아내는 일 욕심이 많고 치열하지만 남편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이다. 아내는 느린 남편을 보고 애가 타는데, 남편은 빠른 아내를 보면 위태롭다. 이처럼 성격도 취향도 다르다 보니, 이들 부부가 하루에도 열댓 번씩 부딪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은 부부 싸움의 불씨가 되지는 않는다. 뭐 하나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을, 17년 동안 합을 이뤘던 세월이 각자의 모난 면을 갈고 다듬어 서로에게 어울리는 한 쌍으로 빚어냈다.
“성격 차이로 헤어진다고 하는데, 그런 거 없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살다 보니까 저는 조금 느리게, 남편은 조금 빠르게 바뀌면서 서로 닮아가는 것 같아요.”
화성과 금성만큼 다른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것도 신통방통한 일이지만 잘나가는 아나운서가 영세한 출판사를 다니던 박봉의 회사원을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 더 용하다. 우리에겐 여자 아나운서들이 나름의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남자와 결혼하는 풍경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라고 모두 의사, 변호사, 준재벌과 결혼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이들의 결혼 소식이 더 부각돼서 그렇지, 실제로는 평범한 분들과 결혼하는 아나운서들이 많아요(웃음).”

1백 번 소개팅 끝에 고르고 고른 신랑감, 경제력만 빼고 모든 게 완벽해

윤영미 황능준 부부의 운명 같은 사랑


윤영미(50) 아나운서가 남편 황능준(51) 씨와 결혼할 때 나이 서른셋. 사랑만으로 결혼 상대자를 선택했다고 하기에는 이미 세상에 대해 알 만큼 알 나이다. 더구나 춘천 MBC에서 근무하다 SBS로 이직하고, 1994년에는 국내에서 여성 최초로 프로야구 중계를 진행할 만큼 똑 소리 나는 그녀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운명 같은 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결혼 전 10년간 소개팅이나 선을 1백 번쯤은 봤을 거예요. 보통 아나운서들이 소개받는 남자들은 소위 돈 잘 벌고,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가 안정된 사람들이에요. 물론 제가 소개받은 남자들도 그랬고요. 그래서 경제적인 상황이나 직업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다들 비슷비슷했으니까요. 제가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남편 될 사람은 크리스천이고 성품도 반듯하며 가정적인 사람이었으면 싶었거든요. 그런데 돈 잘 벌면서 자상한 남자가 별로 없더라고요. 또 다른 조건에 부합돼도 크리스천이 아니거나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았죠. 마냥 싫은 사람이 아니라면 조건만 보고 결혼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소개받아 만난 사람과 한 번 이상 만난 기억이 없을 정도로 까다롭게 고르고 또 골랐다. 그러다 어느 지인이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준다고 했을 때 조건만 듣고는 ‘흥, 가당치도 않지! ’ 하며 거절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거절한 ‘가당치도 않은 남자’에게 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단다. 그 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지인과 만나는 자리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 지금까지 그녀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조건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상 만나보니 성격도 온화하고, 자상하기까지 한 게 딱 제가 바라던 사람이더라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참 인상이 좋았어요. 신앙심도 깊고요. 단지 경제적인 조건이 좋지 않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조건 하나만 포기 하면 된다’ 싶으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더라고요.”
1백 번의 소개팅으로도 열리지 않던 철옹성 같은 그녀의 마음은 ‘딱 하나만 빼고 모두 완벽한’ 남자를 만나 그 빗장을 열어주었다. 뒤늦게 인연을 만난 두 사람은 몇 시간만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보고 싶을 만큼 급격히 가까워졌다. 출근 전에 만나 아침을 함께 먹고 각자 일터로 흩어졌다 점심 시간을 쪼개 데이트를 즐겼다. 오후 근무가 끝나면 저녁에 또 얼굴도장을 찍어야 마음이 편했다. 하루 세 번 데이트를 꼬박 6개월이나 했다.



윤영미 황능준 부부의 운명 같은 사랑

1 부엌 메모판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메모들. 2 윤영미 아나운서 부부는 중학생인 아이들과 친구처럼 다정하다.



“어느 날은 방송을 마치고 아나운서실에 들어가니 남편이 다른 아나운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방송국이라는 곳이 아무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데가 아니잖아요. 남편은 방송국에 출입할 수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신기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참 배짱 있어 보였죠. 아나운서들만 떠나는 행사나 여행 등에도 낯가림 없이 참여해 자상하게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동료 아나운서들이 모두 부러워했어요.”
윤영미 아나운서는 우스갯소리로 ‘잘생긴 외모’에 반했다고도 했고, ‘돈은 내가 벌면 그만’이라고도 했다. 실제 만난 그녀의 남편은 반듯한 외모에 듬직한 풍채를 자랑한다. 물론 결혼 후 지금까지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했지만 지금 와서도 “윤영미가 시집을 잘 간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단다.
“돈은 잘 벌어와도 남편 얼굴 볼 새가 없대요. 그런 반면 저희 남편은 술도 잘 안 마시고, 친구들에게 휘둘려 다니지도 않고, 빚을 지거나 보증을 서거나 하는 일 없이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왔거든요. 정말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이들과도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좋은 아빠고요. 무엇보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니까 좋아요.”

재력가와 결혼한 다른 아나운서들과 비교하며 속상한 적도 있어
뻔한 월급 사정이야 결혼 전에 이미 각오한 일이지만 그녀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남편이 영세 출판사라도 직장 생활을 하던 몇 년간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 후 사업을 준비하다 초반에 일이 꼬이자 무리해서 사업을 시작하는 대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을 작은 회사에 다니다 3년 전 신학 공부를 시작하며 아예 돈벌이와 인연을 끊었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는 고리타분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아내 혼자 경제적 부담을 떠안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다. 이쯤 되면 아내는 ‘음매, 기 살아’, 남편은 ‘음매, 기 죽어’ 해야 하는 상황일 것 같은데, 이 부부가 사는 모습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각자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알게 모르게 전업주부 남편이 1백만 명을 넘어섰대요. 남편이든 아내든 누군가가 벌면 그뿐이죠. 그런데 나이들면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게 힘들고 버거울 때가 있더라고요. 2년 전 SBS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그 부담은 더 커졌고요. 이제는 그 짐을 남편과 조금 나눠 갖고 싶어요.”
아내의 투정에 남편은 그 인상 좋은 얼굴로 ‘허허허’ 웃을 뿐이다. 사실 남편은 먹고살 만큼만 갖고, 남는 것은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주의다. 그래서 돈에 대한 미련도 집착도 없다. 작은 욕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눌 만큼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다. 그가 아내에게 반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내를 두 번째 만났을 때 목소리 기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성경이나 책을 읽어 녹음하는 봉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뭔가를 남과 나누려는 모습을 보고 만난 지 2주 만에 프러포즈 했죠(웃음).”
황씨는 아내를 처음 봤을 때 똑 부러지게 실속을 챙길 줄 아는 야무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남몰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남자의 눈에도 썩 괜찮은 여자로 보였을 법도 하다.
윤영미 아나운서 또한 남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다. 그래도 ‘남들만큼’은 여유를 부리며 살고 싶은 마음에 속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녀가 말하는 ‘남들만큼’이라는 게 ‘다른 여자 아나운서들만큼’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으리라.
“아시다시피 아나운서 중에는 재력가와 결혼한 사람들이 꽤 있어요. 명품 핸드백과 옷, 좋은 차를 보면서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죠. 그런 동료들을 보면서 비교가 되는 데다 방송 출연을 위해 광장시장에서 천을 떼다 비슷한 옷을 맞춰 입기도 하면서 그런 부분이 자꾸 스트레스가 돼 돌아오더라고요.”
그렇게 10년을 살다 보니 다른 점, 나쁜 점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니 그럼에도 자신이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장점만 보려고 하는 거죠. 돈 번다고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도 모르고 사는 남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마 중학교 3학년, 2학년인 아들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는 드물걸요? 남자아이들은 아빠와 데면데면해진다고 하는데, 저희 집은 제가 질투 날 만큼 셋이 똘똘 뭉쳐 지내니까요(웃음).”

늘 곁에 있어준 아빠 덕에 반듯하고 씩씩하게 자란 두 아들

윤영미 황능준 부부의 운명 같은 사랑


아빠는 아이들과 팔씨름을 하고, 농구도 하고, 시험 결과를 놓고 토론도 한다. 형제끼리 싸움이 나도 가장 먼저 아빠한테 달려와 하소연을 하는 아이들. 이제 “허리둘레 말고는 아빠가 이기는 게 없다”고 할 만큼 키가 훌쩍 자란 두 아들은 아빠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남편이 아이들 곁을 지켜주었어요. 남도 아닌, 친척도 아닌, 아빠가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됐어요. 그때는 완벽한 ‘전업주부’였죠(웃음).”
일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윤영미 아나운서의 남편은 17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다’는 내용이 기사화된 적이 있었지만 실제 남편의 전업주부 생활은 3년 남짓이다. 마침 사업을 시작하려다가 물거품이 되자, ‘못 버는 돈 벌려고 허송세월하느니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자’는 생각으로 집에 들어앉았던 것. 물론 그 밖의 시간에도 ‘돈 벌어다 주는 남편’으로는 빵점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이 될 때까지 아빠와 살 비비고 살았던 아이들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뿌듯할 만큼 반듯하게 자라줬다.
윤영미 아나운서는 집에서 듬직한 남편이 버팀목이 돼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그녀가 있다고 말한다. 직장 생활을 하며 대학원도 졸업했고, 프리랜서 활동의 기반이 되고 있는 넓은 인맥을 형성한 것도 남편이 집을 지켜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일에는 철저하게 아나운서로 살았지만 주말에는 아내와 엄마로 지냈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시험이 당장 내일이래도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했죠(웃음). 놀고 공부하기, 먹고 공부하기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제 신조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도리어 ‘내일 시험이라 공부해야 한다’고 아이들이 저를 마다할 정도가 됐어요.”
남편은 남들이 정해놓은 ‘남자 노릇, 남편 노릇, 아빠 노릇’을 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정한 ‘남자 노릇, 남편 노릇, 아빠 노릇’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윤영미 아나운서는 “내가 번 돈이니 내 맘대로 쓰겠다”며 생색내지 않는다. ‘당신이 한 게 뭐 있느냐’고 따져 묻기에는 그에게 남편이, 또 아이들에게 아빠가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배려 덕분에 남편은 올 초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의 한 탈북자를 위한 교회에서 사역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내는 적지 않은 나이에 그 어렵다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서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졌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부부이기에 서로 존중해야 하는 각자의 삶’인가 보다.
아무리 존중하고 배려해도 부부싸움은 있을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이들은 그마저도 삶의 재미 중 하나다.
“원래 여자가 남자보다 말을 더 잘하잖아요? 거기다 아나운서니까 저보다 말을 서너 배는 더 잘할 거 아닙니까. 말로 덤벼봤자, 승산이 없는 거죠(웃음). 아내는 우리 집에서 여왕님이에요, 여왕님(웃음).”
남편의 말처럼 ‘말’을 업으로 삼고 있는 아내의 당찬 성격을 이겨낼 재간이 없단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조금 다르다.
“아니에요. 제가 남편한테 잡혀 사는 줄 알면 다들 깜짝 놀랄 거예요. 평소 남편 눈치를 얼마나 보고 사는데요. 또 남편이 ‘버럭’ 할 때면 저도 아무 말을 못한다니까요. 보기에는 안 그래도 성격이 불 같은 면이 있거든요.”
서로가 서로에게 주도권을 뺏겼다는 재미있는 부부다. 그만큼 서로를 위해 부러 져주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날 줄 안다는 뜻이리라.
“여자 나이 쉰 살이 되면 재미있는 것도, 즐거운 것도 없이 밋밋해지기 쉽거든요. 그런데 저는 마흔이 넘어가면서 제 삶이 더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졌다고 느꼈어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아지고요. 제 삶과 활동을 통해 이 나이에도 더 행복하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27년 관록을 자랑하는 베테랑 아나운서인 아내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에 가장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이는 남편이다. 물론 남편의 삶을 경제적인 이유로 속박하지 않고 뜻을 이루게 도와준 이도 아내일 것이다. 이들의 박수는 비록 제 박자로 척척 들어맞지는 않아도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세상에는 남편과 아내 노릇에 대해 불필요하게 많은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능준 목사는 인터뷰 도중 “남들은 아내가 돈 많이 벌어와서 좋겠다고들 한다”며 “살아보면 꼭 그 말이 맞는 것만은 아니다”고 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내려놓으니 윤영미·황능준 부부만큼 행복해 보이는 부부도 없었다. 여름비를 맞으며 나란히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뒷모습은 행복한 삶의 또 다른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었다.
윤영미 황능준 부부의 운명 같은 사랑

윤영미 황능준 부부는 아내는 돈을 벌고 남편은 가정을 지키는, 여느 부부와는 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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