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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권하는 중국 사회

글·사진 | 이수진 중국 통신원 사진제공 | REX

2012. 08. 03

재수 권하는 중국 사회


“성적표 받고는 저렇게 울기만 하네요. 요즘은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봤자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된다고들 하잖아요. 대학 간판에 따라 연봉이 달라진다니 어쩌겠어요. 재수라도 시켜야지.”
딸이 올해 대학 입학 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서 5백90점(7백50점 만점)의 비교적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원하는 대학에 가기엔 부족하다며 재수를 조른다는 판(范)씨의 이야기다.
중국은 9월에 대학 입학을 하기 때문에 예비 대학생들은 8월이면 모처럼 달콤한 여유를 맛본다. 청춘을 저당 잡힌 채 하루 13시간씩 문제집과 씨름하던 고3 시절과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부모 및 친지들로부터 축하 선물도 받고 그간 별렀던 배낭여행도 이때에 간다. 그래서 7~8월은 여행 성수기이자 휴대전화, 노트북 등 각종 전자 기기, 자동차, 명품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판씨의 딸처럼 입술을 깨물며 ‘푸두(復讀)’라 불리는 재수를 선택해, 또 한 번 입시의 문 앞에 서는 학생들도 있다. 올해 가오카오에 응시한 수험생은 9백15만 명. 응시생의 25%가량은 낙방의 쓴잔을 마신다. 통상 낙방생의 3분의 1이 재수를 선택한다. 여기에 점수를 올려 상향 지원하려는 학생까지 감안하면 중국의 재수생은 한해 1백만 명. 1인당 평균 재수 비용을 1만 위안(한화 약 1백80만원)으로만 잡아도 재수 시장의 규모가 1백억 위안(한화 1조8천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주로 학원에서 공부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재수생의 70% 이상이 ‘고등학교 4학년’인 재수생반에 등록한다. 교육 당국은 2002년부터 공립 고교의 재수생반 운영을 금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학교로선 고득점 재수생을 확보하면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데다 큰 수입원이 되기 때문에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그런데 최근 ‘내년부터 재수생은 가오카오 점수가 20점 깎인다’는 등의 루머가 인터넷 블로그, 웨이보(중국의 트위터), QQ(중국의 카카오톡) 등을 달구면서 때 아닌 소동이 일었다. 결국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지만 그만큼 ‘재수’가 중국 사회의 민감한 키워드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재수 권하는 중국 사회

1 2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공부가 명문대 진학·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지름길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입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고교는 재수생 위한 4학년반 운영
교육 당국에 따르면 재수를 하더라도 점수상의 불이익은 없다. 예를 들어 20점의 가산점 혜택이 있는 소수민족 학생의 경우 재수를 선택해도 가산점 혜택을 다시 받을 수 있다. 다만 군인이나 경찰을 양성하는 군사대학(만 20세 이하의 고교 졸업 예정자) 및 공안대학(만 22세 이하), 재학 기간이 긴 의과대학(고교 졸업 예정자) 등은 연령 제한이 있어 사실상 재수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재수를 결정했다면 아예 대학 입학 지원서를 쓰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내년부터 대학 합격 후 다시 가오카오를 치르면 동점자 가운데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이는 가능하면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뺏지 않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이 같은 정책의 등장은 고득점 재수생의 증가 추세와 관련이 있다. 일단 대학에 적을 두고 다시 수능에 도전하는 한국의 ‘반수생’처럼 중국에서도 더 좋은 대학, 더 나은 학과에 가기 위해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학의 간판이 남은 인생을 좌우하는 분위기에서 재수에 목을 매는 극심한 경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재수생이 늘어나면 여기에 치인 재학생들이 다시 등 떠밀려 재수를 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특히 과도한 재수 열기는 한 번의 대학 입시가 인생의 명운을 결정하는, 패자 부활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

이수진 씨는…
문화일보에서 14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 2010년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로서 인민화보 한글판 월간지 ‘중국’의 한글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중1, 초등6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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