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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수석 졸업생 진권용 공부의 정석

“초등학교 땐 운동 좋아하던 개구쟁이, 최상위권 학생들은 디테일까지 충실하게 공부”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현일수 기자

입력 2012.07.17 11:32:00

초등학교 6학년 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던 진권용 군이 명문 하버드대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고 돌아왔다. 유학생과 재미교포를 통틀어 한국계가 하버드대 학부 수석을 차지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한편 부러운 것이 사실. 학부모, 학생이라면 누구나 탐낼 법한 그의 공부 비결.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수석 졸업생 진권용 공부의 정석


미국 보스턴에 자리 잡은 하버드대는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투어를 온다. 이 대학 설립자 존 하버드의 동상의 왼쪽 발을 만지면 하버드대에 입학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때문에 구두코가 다 닳아 반질반질해졌을 정도다. 그만큼 하버드대는 모든 학생과 학부모의 로망이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학한다고 해도 전 세계에서 온 우수한 학생들과의 새로운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입학도 어렵지만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올해 하버드대 졸업생은 1천5백52명, 그 가운데 만점(4.0) 졸업자는 단 두 명이다. 이 두 사람 가운데 한국 유학생 진권용(20·경제학과) 군이 수석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소피아 프룬드 상(Sophia Freund Prize)을 받았다. 이 상은 최고 학점자 가운데 교수회의에서 학업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단 한 명에게 수여한다. 이 밖에도 그는 최우등 졸업생(summa cum laude·모든 학업 분야에서 상위 5%에 든 졸업생)에 선정됐고 경제학과 수석(존 윌리엄스 상), 최우수 졸업 논문(토머스 후프스 상)으로 뽑히는 등 4관왕을 차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진군의 이 열거하기도 숨 가쁜 성과들이 남들보다 1년 빠른, 3년 만에 이룬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각종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히 참가해 하버드 금융분석가 모임 회장, 하버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챌린지 팀장 등도 지냈다. 지난해에는 재미한인장학기금에서 선발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수석 졸업, 최우수 졸업 논문상 등 4관왕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수석 졸업생 진권용 공부의 정석


졸업식을 마치고 한국에 온 진군을 직접 만났다. 겉보기에도 딱 모범생 스타일이다. 말끝 흐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어를 생각을 담아 또박또박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진군은 미국 로스쿨 입학자격 시험인 LSAT에서도 1백80점 만점에 1백79점을 받아 지난해 12월 이미 예일대·하버드대 로스쿨로부터 일찌감치 합격 통보를 받았고, 이 중 예일대를 선택했다. “하버드대를 수석 졸업했겠다, 진학 문제도 결정됐겠다, 홀가분하겠다”고 하자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기자를 쳐다봤다.
“학교 다니거나 공부하는 것이 특별히 자유를 속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방된 기분은 아닙니다. 그동안 바쁘게 지내다가 시간이 나니까 오히려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차 싶었다. 그가 공부벌레라는 걸 잠시 잊었던 것이다.
▼ 진군의 수석 졸업이 한국에서는 대대적인 뉴스로 보도됐다. 수석 졸업 소식을 알게 됐을 때 소감이 어땠나.
“졸업식 날(5월 24일) 아침에 통보를 받았다. 약간 기대는 했지만 막상 통보를 받으니까 기분이 또 다르더라. 졸업식 자체는 다른 학생들과 비슷했다. 수석이라고 해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건 아니다. 최우등 졸업자 79명이 졸업생들 중 맨 앞자리에 앉고 별도 입장하는 정도다. 졸업생 행사와 학부모 행사가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졸업식이 끝나고 알렸다. 물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 만점 학점을 받았는데, 하버드에서 흔한 일인가.
“올해 졸업생 중에는 만점자가 두 명이다. 지난해 이례적으로 세 명이었고, 보통 한 명이나 두 명, 아예 한 명도 없는 해도 있다. 인터넷에 ‘하버드에서는 A학점 받기가 엄청나게 쉽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학점을 후하게 주는 경향은 없잖아 있다(웃음). 평균 학점이 3.4 정도로, 다른 미국 대학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학생들 실력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우수하기 때문에 시험 당일 컨디션에 따라 A, A-, B+ 정도는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 그래도 ‘올 A’는 힘든 일 아닌가. 만점이 아니면 견디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인가.
“오히려 완벽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언젠가 B학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공부도 부담감을 갖게 되면 역효과가 난다. 점수에 집착하면 첫 몇 학기 정도는 좋은 학점이 나올 수 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한 번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투수가 처음부터 퍼펙트 게임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마운드에 오를 경우 안타 하나 맞는 순간 평정심을 잃고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만점을 맞은 자신만의 공부 비법이 있다면.
“지름길을 찾지 않는 것이다. 보통 학생들은 시험 때가 되면 요점 정리나 기출 문제 풀이 등을 통해 최소 시간을 투자해 최대 효과를 보려 한다. 물론 그 방법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렇게 해서는 내용을 100% 소화할 수 없다. 요점 정리나 족보로는 습득할 수 없는 10~20%의 학습 내용이 최상위권과 상위권, 중위권을 가른다고 본다. 중요한 부분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디테일까지 충실하게 공부해야 한다. 나는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평소 꾸준히 공부했다. 잠은 보통 4~5시간씩 잤다. 시험 기간이나 논문 제출을 앞두고 48시간 연속 공부한 적은 있지만 그 이상 밤을 새운 적은 없다.”



처음 유학 가서는 영어 못해 소외, 단체 운동 덕분에 언어 장벽 극복
진군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강남학군의 노른자위 대치동 하면 사교육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의 초등학교 시절은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다른 친구들이 하교 후 영·수 학원을 전전할 때 그는 야구단을 만들어 신나게 놀았다. 그런 그가 유학을 결심한 것은 초등 4학년 때 가족들과 미국 동부로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다. ‘한국과 미국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데 나머지 나라들과는 또 얼마나 다를까, 한 문화에 갇혀 사는 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군의 부모도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라”며 선뜻 그의 생각을 지지해줬다. 처음 간 곳은 캐나다 사립 중학교로 어머니가 주기적으로 방문해 뒷바라지를 해줬고, 미국 명문고교 필립스 아카데미에 들어가서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수석 졸업생 진권용 공부의 정석

1 하버드대 졸업생 명부와 졸업 앨범. 2 진권용 군이 수석 졸업자로 결정됐음을 알리는 이메일. 3 졸업 앨범에는 동아리 활동과 학창 생활의 성과들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수석 졸업생 진권용 공부의 정석


▼ 초등학교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
“공부는 그다지 많이 한 것 같지 않다. 운동을 좋아해서 학교 갔다 오면 가방 던지고 야구 하러 가기 바빴다. 저녁 7~8시 돼서 돌아오면 씻고 밥 먹고 자는 게 일과였다. 학교 성적은 중상위권 정도, 한자경시대회나 수학경시대회 등에서 상을 탄 적은 있다.”
▼ 진군을 이렇게 키운 부모님의 특별한 교육 철학이 궁금하다.
“우리 부모님의 교육 철학은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무철학의 철학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이끌어주신 부분이 있지만 그 후부터는 나를 믿고 맡겨주셨다. 내 성격이 좋아하고 원하는 건 아주 열심히 하는데, 남이 강요해서 억지로 하면 성과가 잘 나지 않는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한 것 같다.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라고 말씀하셨다.”
▼ 유학 생활은 처음부터 잘 적응했나.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1학기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였기 때문에 처음엔 말이 안 통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1년 반 정도는 보디랭귀지로 대화하는 수준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안 끼워주니까 소외감이 들었다. 그 친구들로선 한 번 말하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두세 번씩 이야기해야 하니까 불편했을 것이다. 축구·아이스하키·야구 같은 단체 스포츠를 하면서 그런 문제를 극복했다. 단체 운동은 경기에서 이기려면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좋든 싫든 대화를 안 할 수가 없다.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게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다.”
▼ 한국 유학생들은 암기 위주의 학습법에 익숙해 토론식 수업이나 에세이를 쓸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던데.
“그것과 관련해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째, 에세이를 쓰거나 토론할 때 창의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모든 공부의 기본은 암기다. 아무리 창의성이 뛰어나도 지식이 없으면 에세이를 쓸 수 없고, 토론을 할 수 없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적 근거를 댈 수 없기 때문에 논리에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암기한 지식을 기본으로 하되, 이를 종합해서 자기만의 의견을 개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내 경우엔 암기는 잘해서 지식이 풍부했지만 이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고등학교 때 에세이를 쓰면 사실만 나열하다가 끝을 맺곤 했는데,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차츰 나아졌다. 지식을 입력한 후에는 이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는 많이 읽고 써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둘째, 자신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 학생들 대부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 내가 손을 들고 말하면 친구들이 비웃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축구로 말하자면 실축하는 것이 두려워 슈팅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슈팅을 해야 득점 기회가 생기는 것처럼 남들이 웃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계속 개진해야 발전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좀 더 세련되게 자신의 주장을 포장하는 능력이 생기는 법이다. 또 자기는 별로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남들이 듣기엔 그럴 듯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 좋겠다.”
▼ 혼자 생활하는 게 힘들거나 외롭지 않았나.
“캐나다에서는 어머니가 계셨고, 미국에서는 줄곧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만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주변에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동병상련이랄까. 과제가 어려우면 다 같이 어려우니까 학업 스트레스도 나누고, 유대감도 생긴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 하버드대 친구들 이야기 좀 해달라. 모두 우수한 학생들이라 은근히 경쟁심도 있었을 텐데.
“나는 운이 없게도 1학년 때만 4인실이었고 2~3학년 때는 1인실을 썼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사교적이어서 1인실보다 4인실이 더 인기다. 1학년 때 룸메이트들은 생물학, 사학, 수학 등 전공이 다양했다. 생물학 전공 친구는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불었고, 사학과 친구는 아카펠라 그룹에서 노래를 했다. 관심사가 다 다르다 보니 서로에게 배우는 것도 많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경쟁보다는 협동을 먼저 생각한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힘을 합치면 다 같이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학업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혼자서는 도저히 다 소화할 수 없다. 나눠서 준비하고 함께 공부하는 게 절대적으로 이득이다.”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수석 졸업생 진권용 공부의 정석

1 하버드대 로스쿨 도서관 앞에서. 2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메인 캠퍼스를 잇는 찰스강 윅스 보도. 3 졸업식날 학사모를 쓴 진권용 군.



공부보다 훌륭한 한국인으로서 롤 모델 되고 싶어
오는 9월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하는 진군은 졸업 후 국제 통상 및 금융 정책 분야에서 국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한국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인턴을 할 당시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을 만나고 나서 금융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포부보다는 과정에 방점을 찍었다.
“우선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과 전문성을 쌓아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국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훌륭한 목표가 있어도 실력이 없다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서의 롤 모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

▼ 한국 유학생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하던데.
“한국에서 가끔 그런 언론 보도가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의 유학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주변의 한국 유학생들을 보면 한국에서 민사고나 외고 졸업 후 바로 온 학생들도 많은데 거의 모든 학생이 수업도 잘 따라가고,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간혹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친구들을 보고 유학 생활에 실패했다고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건 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유학의 성공과 실패는 중도에 돌아가느냐, 학업을 끝까지 마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중도에 돌아가더라도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거나 진짜 좋아하는 걸 찾았다든가 하는 애초의 목표를 이뤘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 하버드대에서도 힘든 순간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둘러보면 모두 우수한 학생들이다. 중·고교시절 내내 전교 1등은 물론이고 각종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들도 수두룩하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뭘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를 뿐이지, 부족한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니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 아, 물론 나도 새벽까지 시험공부 하고 에세이 쓰고 그런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새벽 3시에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과연 제대로 끝낼 수는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 격언처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생활했다.”
▼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학 가서 친구들을 사귈 때 ‘저 친구가 나를 거절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 또 언어 장벽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친구가 거절하면 다른 친구를 찾아가면 된다. 또 사람은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다 견뎌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다. 미리 걱정하고 움츠러들지 말고 담대하게 생각하고 생활하면 좋겠다.”

여성동아 2012년 7월 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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