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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Life in NewYork

해산물 킬러 부부의 굴 예찬

푸드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사진 | 이미령, 로랭 달레

입력 2012.06.29 14:39:00

해산물 킬러 부부의 굴 예찬


로랭과 나는 해산물을 참 좋아한다.
“나와 내 자식들의 피에는 노르만족의 피가 흐르고 있지. 내 이름 달레(Dallet)에서 달(Dall)은 노루아(Norrois :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로 라 발레(La Valle′e : 프랑스어로 골짜기)라는 뜻이야. 노르망디 센 강 유역 계곡에 정착하기 시작한 덴마크계 북유럽 사람들이 프랑스에 동화하면서 프랑스식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추정되지. 노르만족은 바다와 모험을 사랑한 민족들이었어.”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시댁에서 플라토 드 프뤼 드 메르(Plateau de fruits de mer : 프랑스어로 ‘해산물 쟁반’이라는 뜻)를 먹으면서 시아버지가 하신 말이다. 시아버지는 굴을 먹을 때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면 노르망디의 바다와 항구까지 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시아버지가 눈을 감고 입안에 있는 굴을 오물거리며 천천히 맛을 즐기는 사이 우리 부부는 순식간에 석화를 먹어치웠다. 로랭이나 나나 한자리에서 15개 정도는 쉽게 끝낸다. 로랭은 바다를 사랑하는 노르만족의 피가 흘러서 그렇고, 나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태어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해산물이라면 둘 다 유별나게 밝힌다.
프랑스 파리 15구 콩방시옹(Convention)에 살 때는 일요일마다 장을 봤다. 일주일에 4일 동네에 장이 서지만 직장에 다니는 우리는 아쉽게도 주중에 장을 볼 수 없다. 오후 3시면 언제 장이 섰냐는 듯 말끔히 치워진다. 장이 설 때마다 골목은 혼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파리지앵들은 불평이 없다. 웬만한 동네마다 이런 장이 서니 멀리 갈 필요 없이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슈퍼마켓보다 시장을 선호하는 이유다. 우리 부부도 예외일 수 없다.

일요일 점심은 빵과 싱싱한 생굴로
장보기에서 석화는 늘 빠지지 않는다. 12개에 6~7유로 정도 하는데 시장에서 파는 석화는 대부분 싱싱하다. 우리는 어부가 직접 파는 해산물을 선호한다. 어느 나라나 어부들은 비슷하다. 착한 미소와 청량한 목소리. 새벽부터 차를 몰고 장사하러 왔을 텐데 피곤한 기색 없이 큰소리로 호객하는 어부들을 보면 경이롭다. 도대체 저 환상적인 에너지는 몸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이 파는 해산물도 팔딱팔딱 살아 뛰어오르는 듯하다. 비릿한 바다 냄새 그윽한 진열대에 에메랄드 빛 해초들이 넘실댄다. 그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석화만 봐도 군침이 돈다. 굴의 상태가 궁금하다고 하면 유쾌한 어부는 묵직해 보이는 석화 하나를 망설임 없이 집어든다. 그러고는 오묘한 바다빛으로 반짝대는 석화 껍데기 두 개가 앙다물고 있는 아귀를 작은 칼을 이용해 순식간에 열어젖힌다. 그 속에는 즙이 가득하고 살이 탱탱하다. 껍데기가 열리는 순간 은은한 바다 향이 풍겨 나온다. 어부가 그것을 건네주면 얼른 받아들고 먹는다. 서너 번 씹으며 부드러운 질감을 즐긴 후 껍데기에 남즙까지 후루룩 마신 뒤의 기분이란! 어부가 석화 껍데기까지 열어준 것이 미안해서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일요일 점심 식단으로 24개의 석화를 산다. 일인당 12개씩. 보통 프랑스인들은 빵과 석화로 한 끼를 때울 때 그 정도쯤은 간단히 먹는다. 영양은 풍부하고 칼로리는 낮은 최고의 건강식이다.
생굴로 식사를 할 때 보통은 그냥 먹지만 약간의 레몬즙을 곁들이거나 비네그레트를 준비하기도 한다. 작은 그릇에 품질 좋은 레드와인 비네거를 적당량 부어 레샬롯(L’e′chalote : 작은 양파)을 잘게 썰어 넣는다. 레샬롯은 큰 양파의 5분의 1 정도 크기로 맛은 마늘과 양파를 섞은 것처럼 독특하다.

해산물 킬러 부부의 굴 예찬

1 프랑스 파리 15구의 시장에서 치즈를 권하는 상인. 2 해물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즐겨 먹는 홍합 요리. 3 파리에서는 거의 매일 동네 장이 열린다.



뉴욕에서 맛있는 굴을 찾아 헤매다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굴은 유럽 전체의 95% 이상을 차지한다. 13만t이 넘는다고 한다. 3백70만t을 생산하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유럽 최대 굴 생산국인 만큼 굴 종류도 다양하다.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굴의 98%는 레 쥐트르 크뢰즈(Les-hui^tres creuses : 껍데기가 움푹 파인 석화)이고 크기에 따라 0번부터 5번으로 분류한다. 나머지 2%는 레 쥐트르 플라트(Les- hui^tres plates)라고 부르는 껍데기가 납작한 굴인데 제일 큰 것이 0번으로 9단계로 나뉜다. 이렇게 번호로 석화의 크기를 구분하니 어디 가도 번호만 대면 같은 크기의 석화를 살 수 있어 아주 편하다. 우리 부부는 프랑스산 굴 중에서도 특별히 노르망디나 브르타뉴산 석화를 선호했다.
그런데 뉴욕으로 이사 온 후 문제가 생겼다. 프랑스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던 싱싱하고 맛있는 석화를 좀처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뉴욕은 파리에 비해 동네 시장이 적다. 유니언 스퀘어 마켓(union square market) 같은 로컬 푸드 중심 시장이 뉴욕 곳곳에 있으나 파리처럼 동네마다 들어서지는 않는다. 우리가 거주하는 미드타운에서 14번가에 있는 유니온 스퀘어 마켓이나, 16번가의 첼시 마켓까지 가려면 택시나 전철을 타야 한다. 파리에서 슬리퍼 끌고 옆 골목 시장에서 장을 보던 우리에겐 번거롭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파리에서 석화를 먹던 습관을 버리기 어려워 할 수 없이 타임워너센터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에 갔다. 유기농 슈퍼마켓인 홀 푸즈(Whole Foods)에서 꽤 괜찮은 식자재를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기대하고 갔다. 해산물 코너에서 코네티컷산 블루포인트라는 석화 한 종류만 팔고 있었다. 생김새가 볼록한 것과 납작한 것이 뒤섞여 있는 데다 프랑스에서처럼 크기에 따라 번호로 구분돼 있지 않아 뒤죽박죽이었다. 그래도 반가워서 얼른 24개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 뉴욕에서 처음 만난 석화를 쌓아놓고 열심히 껍데기를 여는 남편 대신 나는 생굴이 들어가는 샐러드를 준비했다. 일명 살라드 폴 로 쥐트르(Salade folle-aux-hui^tres). 준비는 간단하다. 여러 가지 샐러드 재료를 물에 씻어놓는다. 보통 색을 내기 위해 서너 가지 채소를 섞는다. 직접 재배하는 허브 두 종류를 가늘게 채친다. 그 위에 생굴을 얹는다. 샐러드 드레싱으로는 소스 에그레트(Sauce Aigrette: 크림, 소금, 후추, 레몬주스, 잘게 썬 파슬리를 섞어 만든다). 생굴 본연의 싱싱한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샐러드다. 그런데… 어째 굴 맛이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맛이 아니다. 아예 아무 맛이 없다!



해산물 킬러 부부의 굴 예찬

동네 시장에서 장사하는 할아버지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당근도 씹다 보면 당근 본연의 맛이 나오는데 이건 굴이 아니라 물컹물컹한 인조 프로틴을 씹는 것 같아.”
내가 불만을 털어놓자 로랭도 동의했다. 생굴로 먹기엔 굴의 품질이 너무 떨어졌다.
“석화 한 개에 1달러 29센트인데 너무하는 거 아닌가? 코네티컷의 블루포인트 석화가 유명하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살도 좀 심할 정도로 통통해서 우물거리기 부담스럽네.”
내가 계속 투덜거렸다. 그날 이후 동네 마켓에서 산 굴들은 계속 우리를 실망시켰다. 첼시 마켓에서 종류별로 석화를 구입해보았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는 굴을 포기했다. 뉴욕의 오이스터 바(Oyster Bar)에 가면 왜 항상 달착지근한 칵테일 소스나 매콤한 타바스코가 들어간 자극적인 소스를 서빙하는지 이해가 됐다. 생굴 자체가 맛이 없으니 그런 자극적인 소스를 듬뿍 찍어 먹어야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이다. 미국에 와서 홍합이 참 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굴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컸다. 뉴욕에서 유명하다는 생굴 바를 여러 군데 찾아다녔지만 늘 기대에 못 미쳤다.
“브롱크스에 있는 시티 아일랜드(City Island)에 가면 맛있는 가재나 굴, 조개를 먹을 수 있다고 하던데 거기 가볼까?”
로랭의 제안에 우리는 주말을 이용해 시티 아일랜드까지 가서 생굴을 맛보았다.
“여기 생굴들은 정말 통통하네. 즙은 적고 텍스처가 축축 늘어져. 이상한 기분이야. 아무리 스틱으로 건드려도 그냥 퍼질러져 있네. 혹시 싱싱하지 않은 거 아냐? 이렇게 기운 없는 굴들은 본 적이 없어. 9월에서 4월까지 굴은 괜찮지 않나?”
이곳에서도 실망한 나는 파리 15구 시장에서 먹었던 석화들을 떠올렸다. 즙이 풍부하고 탱탱한 살! 입에 넣었을 때 후각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바다 향! 껍데기를 열자마자 살짝 살을 건드리면 거의 자동으로 수축하는 긴장된 근육! 한마디로 바다에서 방금 집어 올린 듯한 팔팔 살아 있는 석화가 그리워졌다. 열심히 찾았지만 불행하게도 미국 뉴욕에서 만난 석화들은 ‘석화 킬러’ 이미령·로랭 부부의 입맛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해산물 킬러 부부의 굴 예찬

1 미국 코네티컷산 블루포인트 석화. 인조 고기를 씹는 것처럼 식감이 좋지 않고 먹기에 부담스러웠다. 2 뉴욕 브롱크스 시티 아일랜드의 석화. 텍스처가 축축 늘어져 신선도가 의심스러운 데다 즙은 너무 부족했다. 3 뉴올리언스산 석화. 괴물처럼 크고 살은 터져나올 정도로 통통한데 맛은 실망스러웠다. 4 적당히 살이 오르고 풍부한 즙을 지닌 신선한 프랑스산 석화.



향기로운 바다 내음에 시원한 수박 맛까지 오묘하도다
다르타냥(D’Artagnan)이라는 회사에서 공급하는 구마모토라는 석화가 있다. 이 굴은 크기가 아주 작고 살이 얇으며 즙이 많고 바다의 깊은 맛을 내서 프랑스 아르카숑(Arcachon)에서 먹어본 4번 크기의 생굴과 상당히 비슷한 맛이 났다. 그러나 우리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
“신선한 생굴 특유의 풀 플레이버(full flavor)를 즐기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여기 굴들은 너무 짜거나 물컹물컹해서 씹는 감도 없고 아니면 너무 통통해서 목에서 넘기기가 부담스러워.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한 살이 영양이 풍부한 즙에 넉넉히 잠겨 있는 그런 굴을 찾을 수가 없네.”
로랭이 말했다.
“맞아. 처음엔 향기로운 바다 내음을 풍겼다가 입에서 오물거리다 보면 시원한 수박 맛도 나는 그런 달콤하고 고소한 굴들….”
내가 대꾸했지만 로랭은 말이 없었다. 그도 프랑스산 굴을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구마모토 석화는 괜찮은 것 같아. 일본 규슈 지역의 구마모토 만이 원산지래. 1945년에 미국으로 들어왔다는 거야. 지금은 워싱턴 만에서 양식을 하고. 가볍고 산뜻하니 꽤 맛있어. 뒤끝도 깨끗하고. 왜 굴들의 샤도네이(포도 품종의 하나로 주로 화이트와인을 만든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지 알겠어.”
실제로 구마모토 생굴을 샤블리(부르고뉴 화이트와인)와 곁들여 먹어보고 상당히 놀랐다. 뉴욕에 와서 수도 없이 실험을 해보았지만 구마모토만큼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준 굴은 찾기 어려웠다. 한번은 미국 친구들로부터 뉴올리언스에 가면 미국 최고의 굴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큰 기대를 했는지 뉴올리언스를 여행하며 그곳 굴을 맛 보고는 대실망을 하고 말았다. 뉴올리언스산 굴은 괴물처럼 크고 살이 쪘다. 석화 껍데기를 열자마자 굴의 ‘똥배’가 터져나올 듯했다. 먹기도 전에 부담스러웠다.
“우리 코네티컷에 직접 가보자. 친구들이 코네티컷 굴이 정말 맛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 시식해본 코네티컷 굴은 블루포인트가 유일하니 직접 굴 생산지에 가서 먹어보는 거야. 어때?”
우리는 의견만 맞으면 쉽게 결단을 내린다. 드디어 지난 4월 코네티컷에 다녀왔다. 다음 호에 계속.

해산물 킬러 부부의 굴 예찬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2년 7월 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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