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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앓는 다섯 살 서연이 엄마와 함께 쓰는 희망일기

“오랜 병원 생활도 이겨낸 딸, 가슴속에 희망의 씨앗 심어주고 싶어요”

글 | 임지영 자유기고가 사진 | 홍중식 기자

입력 2012.06.15 11:23:00

생후 8개월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 때문에 입원 후 열 번이 넘는 수술을 거치면서 병원에서 말을 떼고 걸음마를 배운 서연이. 지난해 MBC ‘휴먼다큐 사랑-엄마, 미안’ 편을 통해 소개된 서연이의 사연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1년, 서연이네 이야기가 ‘풀빵엄마’ 노경희 작가와 김령하 화가의 손을 거쳐 어린이를 위한 장편 동화로 엮여 나왔다. 그동안 서연이는 어떻게 지냈을까.
희귀병 앓는 다섯 살 서연이 엄마와 함께 쓰는 희망일기


“와, 엄마! 여기 노양(노랑) 꽃이야. 서연이 노양 꽃 좋아하는데!”
신록이 무르익은 남산공원. 엄마 손을 잡고 푸릇푸릇 돋아난 잔디를 밟는 다섯 살 서연이 발걸음에 제법 힘이 실린다. 원인 모를 체내 출혈 때문에 위 전부와 소장 일부를 잘라낸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찬 움직임이다.
“엄마, 서연이 높이 들어줘!”
형형색색 야생화도 구경하고 나비도 쫓던 아이가 팔을 쭉 뻗어 보이자 엄마 유경주(33) 씨는 걱정이 앞서 말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씩씩한 서연이가 대견한 표정이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체구가 조금 작다는 것 외에 하등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아이. 하지만 서연이는 생후 8개월부터 원인 모를 출혈이 계속돼 수술을 18번이나 받았고 아직도 정확한 출혈 부위를 찾지 못해 수시로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하는 희귀병 환자다. 이 안타까운 사연은 지난해 MBC ‘휴먼다큐 사랑-엄마, 미안’ 편에 소개돼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방송이 나간지 1년, 그 사이 서연이는 들판의 꽃들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자라 있었다. 얼마 전에는 서연이의 얘기를 골자로 한 창작 동화 ‘엄마, 미안’이 발간되기도 했다. 이 책은 2011년 대한출판문화협회로부터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됐던 ‘풀빵엄마’의 노경희 작가, 김령하 화가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해 엮어낸 감동 스토리다.
꼬마 서연이가 어린이 병동에서 겪은 모험과 우정,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쓴 동화는 실화의 감동에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 더욱 극적으로 구성됐다. 책을 쓴 작가는 서문에서 ‘고통은 우리가 선택한 일도 책임질 일도 아니지만, 그 불행 앞에 무릎을 꿇느냐 미소를 잃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친정엄마께 책을 갖다 드렸더니 읽고선 펑펑 우셨어요. 저도 읽어봤는데 노경희 작가님이 정말 잘 쓰셨더라고요. 다른 아이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 딸이 이런 아이로 비치는구나 하고 색다르게 와 닿는 한편, 이제 서연이를 통해 힘을 얻고 희망을 보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후 6개월, 구토와 고열로 시작된 희귀병

희귀병 앓는 다섯 살 서연이 엄마와 함께 쓰는 희망일기


유경주 씨는 대학 동기인 남편과 결혼해 서연이의 언니 오빠인 이란성 쌍둥이를 얻을 때만 해도 앞으로 펼쳐질 삶의 고난은 조금도 예감하지 못했다. 2007년 사이좋은 쌍둥이에게 동생을 선물할 생각으로 막내 서연이를 임신했다. 사내아이처럼 우람한 체격으로 태어난 서연이는 생후 6개월까지도 평균을 웃도는 체중에 건강한 아이였다. 쌍둥이를 모유로 키웠기에 서연이 역시 모유로 키울 생각이었다. 유난히 크고 까만 눈동자에 일상의 고단함도 잊게 만드는 ‘살인 미소’를 지닌 아이였다.
하지만 생후 6개월 무렵, 구토와 고열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심한 감기이거니 했지만 증상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감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한 달 만에 중이염과 폐렴으로 악화됐고 서연이는 8개월 만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MRI를 비롯해 이런저런 검사를 실시했지만 끝내 원인을 찾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토하는 횟수는 점점 늘었다. 처음에는 식도 이상을 의심하던 담당의가 나중에는 뇌종양을 의심하고, 결국 그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자 판단을 보류했다. 9.5kg이었던 체중이 한 달 만에 7.2kg으로 줄어들었다. 지방에서 근무 중인 남편에게는 간간이 전화 통화로 서연이의 소식을 전할 뿐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2008년 12월, 난데없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어린 딸을 둔 엄마의 가슴은 한겨울 혹한보다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듬해 1월, 음식물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는 서연이를 위해 주사기로 필요한 영양제를 공급하는 TPN 치료가 시작됐다. 아이의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바늘을 목과 가슴에 꽂는 날이면 엄마의 가슴도 찢어질 듯 아팠다. 어른이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치료를 서연이는 잘 버텨줬고 엄마는 그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당시 친정이 있던 강원도 강릉 소재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 결과를 놓고 ‘상태가 일시적으로 호전될 수는 있으나 완치는 장담할 수 없다’는 소견을 들려주며 서울로 가서 다시 한 번 검사받을 것을 권했다.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혼자서 아픈 딸을 데리고 있어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났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유씨는 쌍둥이를 친정에 맡기고 서연이만 데리고 서울로 왔다. 온 가족이뿔뿔이 흩어져 사는 신세가 됐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날부터 검사와 수술, 치료만이 반복되는 답답한 생활이 시작됐다. 알고 보니 서연이가 입원한 7층은 퇴원을 기약할 수 없는 환자들이 모여 있는 장기 병동이었다. 유씨는 아이의 첫 생일인 돌만큼은 병원에서 치를 수 없다는 생각에 서연이를 강릉으로 데리고 가 친정에서 돌을 맞게 한 뒤 4월에 다시 입원시켰다. 처음 서너 달을 예상했던 입원 기간은 일 년을 넘기고, 서연이가 병원에서 맞는 생일도 한 해 두 해 늘어났다. 서연이는 걸음마도 말도 병원에서 모두 배웠다.
“누가 ‘서연이 집이 어디야?’ 하고 물으면 여기(병원)가 서연이 집이라고 대답했어요. 그 병동에는 서연이처럼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고, 아이들이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엄마들 또한 의학 지식이 아주 풍부했어요. 어떤 엄마들과는 친자매보다 더 친하게 지내기도 했죠.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니까 같이 병원에 있는 사람들끼리라도 마음의 위안을 주려 했던 것 같아요.”



남편 없이 혼자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던 날
희귀병 앓는 다섯 살 서연이 엄마와 함께 쓰는 희망일기


2009년 11월, 생후 17개월밖에 되지 않은 서연이는 위의 절반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필 이날 남편은 출장길에 올랐다. 막내딸의 생사가 걱정된 남편은 수술 중 전화로 상황을 계속 물어왔고 유씨의 마음은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처음엔 남편 없이 동의서를 써야 하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났어요. 나 혼자 어떡하라고. 혼자서 이 어린 딸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나 하고 말이죠. 행여 수술 중 잘못되더라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데, 그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수술을 마친 아이는 유난히 연약해 보였다. 온전하지 못한 장기로 앞으로 얼마나 살게 될지 엄마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서연이는 배에 꽂힌 관을 통해 영양소와 특수 분유를 공급받았는데 그나마도 투여량이 조금 많다 싶으면 전부 토해냈다. 한번 시작된 구토는 쉽게 멈추지 않았고 구토가 계속된 후에는 여지없이 혈당이 떨어지는 응급 사태가 발생했다.
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약해지곤 했지만 아이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매달렸다.
하지만 때때로 세상을 원망하는 순간들도 찾아왔다. 서연이가 아프면서 여덟 살이 된 쌍둥이까지 잔병치레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왜 나에게만 이런 가혹한 시련이 주어졌을까’ 신세 한탄을 하는 날도 많았다.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모른 채 원망만 앞서는 날들이 많았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하지만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엄마인 제가 울면 아이들은 어떡하겠어요. 마음을 몇 번이나 고쳐먹죠.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요.”
서연이는 또 한번의 대수술을 받았다.“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남아 있는 위를 전부 잘라낸 것. 아직까지 병명도 원인도 찾지 못한 채, 잘려 나간 서연이의 위는 서울대 병원에 연구용으로 보관 중이다.
지난해 방영된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는 감염이 우려되는 상처 부위를 계속 긁어 끝내 피를 낸 서연이가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자 “엄마 미워! ”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사슴 같은 눈망울로 엄마를 올려다보며 “엄마, 미안해” 하는 모습이 방영돼 온 국민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투정을 부릴 법도 하건만 아이는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를 위로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보는 내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슬픔에 압도당했다”는 반응을 시청자 게시판에 올리며 서연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연이를 후원할 수 있는 방법들이 공지되는가 하면 서연이를 위한 응원 글도 여기저기서 넘쳐났다. 엄마와 서연이는 곳곳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에 힘을 얻었다.

희귀병 앓는 다섯 살 서연이 엄마와 함께 쓰는 희망일기

서연이가 병원에서 검진 받아야 할 항목이 늘면서 서연이네 가족은 최근 강릉에서 경기도 남양주로 이사왔다.



아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
더디긴 하지만 서연이의 성장은 지속적이다. 요즘 유씨는 달짝지근한 맛밤 과자를 입에 달고 살려 하는 서연이와 하루에도 몇 번씩 실랑이를 벌인다. 유씨는 배가 고프다며 더 먹겠다고 하는 아이를 말려야 하는 게 가장 마음 아프다고 말한다.
“저처럼 아픈 아이를 둔 한 엄마와 가깝게 지냈는데 그분이 이런 충고를 해주셨어요.‘안고 싶을 때 안을 수 있는 아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라’고요. 그분의 아이는 끝내 세상을 떠났거든요. 아이가 아프다고 걱정하며 흘려보내는 일 분 일 초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였어요. 비록 서연이가 완전히 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지금 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얼마 전 서연이를 후원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은 서연이에게 태어난 지 두 달 된 강아지 두 마리를 선물했다. 서연이는 강아지들에게 직접 ‘몽실이 최서연 별모양 도토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지금껏 함께 산 기간이 일 년이 채 안 되는 서연이네 가족은 드디어 올봄, 경기도 남양주로 이사해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특히 병원 신세를 오래 진 서연이는 엄마 아빠, 언니오빠와 함께 생활하면서 집과 가정이 주는 기쁨은 어떤 것인지를 만끽하고 있다.
남양주로 이사를 한 결정적인 이유 역시 서연이 때문이다. 올해부터 병원에서 검사해야 할 항목이 더 늘어나 서울대병원까지 좀 더 수월하게 오고가기 위해서다. 새로운 환경에서 엄마 유경주 씨도 요즘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연이가 자연 속에서 언니 오빠, 강아지들과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면 믿기 힘들 정도로 행복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연이의 상태가 나날이 호전되는 기분이다.
한편 유씨는 아이가 자랄수록 새로운 고민에 휩싸이고 있다. 서연이가 언젠가 건강한 아이로 낳아주지 못한 엄마를 원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또 서연이에게 더는 해줄 것이 없을 때 아이에게 그동안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처럼 아이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어요.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꿈이 이뤄지고 희망을 찾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찾아온다’고 말해줘야죠. 제가 아픈 서연이를 통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꿈을 보고 희망을 찾은 것처럼요.”

여성동아 2012년 6월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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