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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전설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뇌성마비 장애 딸 ‘최고 교수’로 키워낸 모정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정유선 제공

입력 2012.06.15 10:54:00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한 당대 최고의 걸그룹 멤버. 은퇴는 뇌성마비를 앓는 딸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자신의 날개를 떼어 딸에게 달아줬다.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최고 교수상’을 수상한 정유선 교수의 어머니 김희선 씨를 만났다.
걸그룹 전설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뇌성마비 장애 딸 ‘최고 교수’로 키워낸 모정


한국 걸그룹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 대중음악 걸그룹사: 저고리 시스터에서 소녀시대까지-소원을 말해봐’ 전이 열린 인천부평아트센터.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1960년대를 풍미한 걸그룹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71·본명 김명자) 씨였다. 맑고 발랄한 고음과 하모니가 일품이었던 이시스터즈는 ‘별들에게 물어봐’ ‘울릉도 트위스트’ ‘서울의 아가씨’ 등을 히트시킨 당대 최고의 걸그룹. 예정에 없던 그의 방문에 주최 측이 반색한 것은 물론이다.

뇌성마비 앓는 딸 돌보려 연예계 은퇴
“딸 때문에 미국에 갔다 왔는데 남편이 신문에 난 전시회 기사를 오려놨더라고요. 한 번 둘러볼까 하고 갔는데 그렇게 환영해주셔서 카메라도 안 가져갔다가 인터뷰 하고 사진도 찍었죠(웃음). 우리 때만 해도 세 사람이 옷, 머리, 동작까지 똑같이 하는 시대였는데 요즘 걸그룹은 각자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게 부러웠죠. 진열장 안에 요만한 노래 책자가 있는데 거기에 이시스터즈 사진이 있더라고요. 저한테도 없는 귀한 자료였는데, 미국에 사는 언니(김천숙·74)에게 말해주니까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며 아쉬워했어요.”
이시스터즈는 1973년 ‘이시스터즈 10년 결산’ 독집 음반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 무렵 김씨의 세 살 난 딸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고 그는 딸을 위해 미련없이 연예계를 떠났다.
“저희는 10여 년간 가요계 생활을 하며 톱의 자리에 있었고 히트곡도 많아요. 젊은 사람들이 이시스터즈는 몰라도 ‘울릉도 트위스트’는 잘 알더라고요(웃음). 요즘에는 나타났다가 금방 없어지는 그룹도 많잖아요. 수년간 최고의 자리에서 해볼 건 다 해봤던 터라 방송에 미련은 없었어요. 유선이의 재활운동을 도와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죠. 1975년 유선이 동생을 임신했을 때 방송국에서 ‘다시 시작하자’라고 연락이 왔지만 별로 할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오직 유선이 생각뿐이었죠.”
2004년부터 미국 조지메이슨대에서 보조공학을 가르치는 딸 정유선(42) 씨는 얼마 전 교내에서 ‘최고 교수’로 뽑혔다. 최고 교수상은 학생들의 추천에 이어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선발하는데, 정 교수는 추천을 받은 40명 중 최종 7명의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장애인이라고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교수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서 받은 상이라 더 의미가 컸다. 처음 어머니에게 인터뷰 신청을 하러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로 이시스터즈의 히트곡 ‘서울의 아가씨’가 흘러나왔다. 그에게 “장애가 있는 딸을 키워낸 자랑스러운 어머니에 대해 다루고 싶다”며 취지를 설명하자 “내가 한 건 별로 없고 딸이 알아서 잘 큰 거라…”라며 쑥스러워했다.
“유선이는 생후 9일 만에 신생아 황달 때문에 한 달간 입원을 했어요. 원인 불명으로 자연히 나아서 퇴원했죠. 그런데 첫돌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걷질 못하는 거예요. 병원에 가니까 발육이 늦다고만 하더라고요. 두 돌이 지나도 걷질 못하고 언어장애까지 나타났어요. 나중에 병원에서 신생아 황달로 인한 뇌성마비라고 진단하더군요.”
중학교 2학년인 딸의 일기장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일기장에는 ‘부모님은 왜 나를 낳았을까’라며 세상을 원망하는 내용이 잔뜩 적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아이고, 내가 죄인이다’ 싶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나를 이 세상에 낳지 않았으면 고통도 없을 거라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싫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철퍼덕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요.”

걸그룹 전설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뇌성마비 장애 딸 ‘최고 교수’로 키워낸 모정

1 김희선 씨가 이시스터즈 활동 시절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2 1960년대 최고의 사랑을 받은 걸그룹 이시스터즈. 사진 맨 오른쪽이 김희선 씨.



장애 딛고 ‘최고 교수상’ 수상한 딸
한 번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딸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최선을 다했다. 그는 딸을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김씨의 남편은 딸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상처받을까봐 처음에는 말렸지만 장애를 숨겨서는 안 된다는 아내의 생각을 꺾지 못했다. 말이 어눌하고, 고무처럼 휘청대는 다리로 잘 걷지 못해도 일반 학생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딸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딸에게 공부를 잘하면 다른 사람이 무시하지 못한다고 알려줬어요. 대견하게도 공부든 뭐든 악착같이 하더라고요. 학교에서 체력장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연습했죠. 몸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포기하는 법이 없었어요.”
운동회 100m 달리기부터 성당의 성탄절 연극까지 고집 센 아이는 안 해도 될 일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그때마다 부모뿐만 아니라 정씨의 오빠와 남동생까지 전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정씨는 2008년 낸 책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에 쓴 것처럼 가족의 무한한 사랑과 지지 속에서 우뚝 설 수 있었다. 김씨는 “두 아들에게 유선이를 보살펴주라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아마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진심이 딸에게 통한 것일까. 똘똘한 아이로 자란 정씨는 2006년 8월 독일에서 열린 국제 의사소통 보조기기학회(ISAAC)에서 ‘가족 사랑 속에 우뚝 선 나’라는 에세이로 상을 받고 연설까지 했다. 에세이에는 부모님이 베풀어준 끝없는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생각, 또 정씨가 자신의 두 아이에게 주는 사랑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198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주로 유학을 떠난 정씨는 조지메이슨대와 코넬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고 싶어 특수보조공학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1995년 재미교포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둔 그는 조지메이슨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4년부터 학생들에게 보조공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교수가 되기 전인 2003년 모교인 조지메이슨대 교수들로부터 올해의 대학원생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워낙 바쁘다 보니 어머니 김씨와 만날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본다고. 메신저를 하고 전화도 자주 하니 몇 달씩 걸리는 항공우편으로 소식을 주고받던 시절을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1년쯤 있다가 미국 가보면 손자 손녀가 부쩍 커 있고, 또 다음 해에 가보면 더 커 있어서 ‘유선아 네가 효녀다’ 그랬죠. 저희 부부는 매번 손자 손녀를 거저 얻은 것 같다고 그래요. 유선이는 늘 몇 년 후 계획을 세워서 도전해요. 박사학위 공부하면서 아이 낳고 몇 개월간 어떻게 키우고, 그 뒤로는 뭘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짰어요. 건설업을 했던 아버지를 많이 닮았죠. 적극적이고 도전적이고 계획적인 아이예요.”
당대 최고의 걸그룹 멤버를 어머니로 뒀는데 정씨에게도 숨은 끼가 있지 않을까. 김씨는 “가만히 보면 끼는 좀 있는 거 같다”며 웃었다. 강의 시간에 유머도 자주 구사하고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도 있다고. 한 번은 나이가 많은 학생이 수업 중 주의를 줘도 계속 떠들기에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 하는 월드컵 박수를 쳐서 모두를 집중시켰단다.
“딸이 엄마의 어디를 닮은 것 같냐”고 묻자 한참을 미소 지으며 고민하던 그는 “마음이 예쁘고 착하다는 거?”라고 말하곤 다시 생긋 웃었다.
“저는 20대 후반에 활동하면서 외국 출장을 많이 다녔잖아요. 그때부터 아이크림 같은 걸 많이 발랐는데 효과를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유선이가 30대 됐을 때 아이크림을 사다줬어요. 너도 이제부터 바르라고요. 그랬더니 ‘스킨로션 바를 시간도 없는데 이걸 언제 바르고 있느냐’며 응석 부리더라고요.”
칠순이 넘었지만 김씨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청아한 목소리에 탱탱한 피부의 동안이었다. 그는 “따로 관리하는 거 없는데…”라고 하더니 “클렌징을 열심히 한다”고 귀띔했다. 매주 주말 성당에서 부르는 성가가 목소리 유지 비결이라고. 최근에 걸그룹전을 다녀오고 나니 옛날이 그립다고도 했다.
“다시 노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걸그룹전을 보러 가서 오랜만에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그리워지더라고요. 남편이 옆에서 ‘역시 당신 끼가 있어’라고 했죠.”
“지금 같은 걸그룹 전성시대에 이시스터즈가 나와도 성공했을까”라는 질문에는 “그럼요”라고 말하고는 호호 웃었다.
“우리 세 사람의 하모니가 기가 막혔죠. 짜릿한 콜라맛 같은 고음과 가창력은 자신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다른 걸그룹에 비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걸그룹 전설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뇌성마비 장애 딸 ‘최고 교수’로 키워낸 모정


부모,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름
그는 사단법인 색동회 이사이자 동화구연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릴 적 딸에게 동화책을 많이 읽어줬다고. 그때 읽어주던 책은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1976년 김씨는 딸의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전국 어머니 동화구연대회에 나가 입상했다. 당시 동화구연대회에서 입상한 어머니들이 모여 1977년 ‘색동어머니 동화구연가회’를 창립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벌써 36기째 회원을 받았다. 그는 “어린이들은 동화 속에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선이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지를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까 책을 굉장히 많이 읽어줬어요. 어릴 때부터도 책이 장난감이었죠. 그러다 보니까 세월이 흘러서 제가 동화구연가가 됐나 싶어요.”
색동어머니 동화구연가회 소속 어머니들은 보육원, 소아 병동, 재활원 등 소외된 이들을 찾아 동화 구연 봉사를 하고 있다. 남편 정현화(73) 씨는 사단법인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이사를 지냈다. 그가 이사로 있을 당시 딸이 기관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김씨는 현재 사단법인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장애가 있는 아이 부모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라며 “강해지라”고 조언했다.
“아이들 누구나 다 하나씩은 달란트가 있잖아요. 아이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부모가 찾아서 자신감을 심어줘야 해요. 꿈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게 끊임없이 도와주는 거죠.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줘야 하는 존재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돼야 해요.”
김희선 씨 딸 정유선 조지메이슨대 교수

걸그룹 전설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뇌성마비 장애 딸 ‘최고 교수’로 키워낸 모정

정유선 씨(오른쪽)의 가족사진

정유선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에게 사진 자료를 부탁할 겸 이메일로 몇 가지 질문을 보냈다. 다음은 그가 보내온 답변이다.
‘최고 교수상’을 수상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학교에서 소식을 전해 듣고 전화를 곧바로 드렸는데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야호~~’ 하는 힘찬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버지께서는 ‘됐어?’ 하고는 잠깐 침묵하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장하다, 우리 딸’이라고 말해주셨어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죠.”
아이를 키우면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느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정 교수를 위해 연예계를 은퇴하고 딸을 돌봤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처럼, 어릴 때는 정말 엄마라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요. 워낙 어릴 때였고, 어머니께서 한 번도 제게 ‘너를 위해 내 꿈을 포기했다’라고 하신 적이 없었죠. 그래서 거기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물론 평소에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항상 있었죠. 그 당시 제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은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머니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머니와 닮은 점이 있다면요.
“엄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평생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겠지만, 특히나 저랑 엄마는 진짜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이예요. 모녀 사이지만 서로 지킬 것은 지키고 예의도 차리죠. 이번에 어머니께서 미국에 오셨을 때 서로 눈빛을 보지 않고도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걸 알았어요. 예를 들어 제가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먼저 해놓으시고, 어머니께서도 ‘이걸 해야지…’ 하면 제가 그걸 미리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떨 땐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해요. 너무 재미있어서 둘이 깔깔대고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예요. 정말 모녀 사이를 넘어선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원한 친구죠. 한편으로 어머니는 제게 한없이 여린 아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웃음).”
걸그룹 전설 ‘이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뇌성마비 장애 딸 ‘최고 교수’로 키워낸 모정

1 학창시절 정씨 2 어머니김씨와 함께 찍은 사진



여성동아 2012년 6월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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