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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딴따라’ 박진영 키운 박명노 윤임자 부부

“학교생활 답답해하는 아들 나이트클럽 데려간 아버지 친구들 몰고 오면 아낌없이 해 먹인 어머니”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김형우 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6.15 10:03:00

그저 춤 잘 추는 딴따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춤과 노래, 튀는 행동엔 자신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로 후배 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박진영.
이런 그의 뒤에는 틀에 박힌 삶을 강요하지 않은 부모가 있었다.
개성 넘치는 외모부터 인생을 멋지게 사는 법까지 다 물려준 박명노·윤임자 부부 이야기.
‘진짜 딴따라’ 박진영 키운 박명노 윤임자 부부


최고의 댄스 가수, 히트곡 제조기, 천재 프로듀서…, 한국 대중가요계의 중심에 서 있는 뮤지션 박진영(40). 그의 어머니 윤임자(68) 씨가 5월 7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대중예술 부문)을 수상했다. 윤씨는 수상 소감에서 “(아들이) 어릴 때부터 장난이 심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춤추는 걸 가장 좋아해 미국에 살 땐 매일 동네 흑인 친구들과 몰려다녔다. 사고도 많이 쳐서 잠 못 자고 애태운 적도 많았지만 ‘저러다 말겠지’ 하고 믿고 내버려뒀는데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보통 부모들은 자식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 싶으면 조바심을 내며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으려고 한다. 박진영의 부모는 달랐다. 자신들의 잣대로 아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박진영이 21세기형 지식인이 될 수 있었던 건 이런 부모의 열린 교육 덕분이다.

모범생이었던 부모, ‘내 아이만은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 다짐
박진영의 아버지 박명노(72) 씨와 어머니 윤임자 씨로부터 아들 키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이들이 다니는 서울 명동의 향린교회를 찾았다. 박씨 부부는 수십 년 전부터 이 교회 신도였는데 경기도로 이사한 후에도 매주 빠짐없이 나온다고 한다.
박씨 부부는 두 시간 가까운 예배 시간 동안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얼핏 보면 박진영이 엄마를 쏙 빼닮은 것 같지만, 아버지의 얼굴 곳곳에서도 박진영이 보였다. 두 사람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엔 교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특강까지 듣는다고 한다. “엄청나게 성실하고 모범적인 분들”이라는 게 교회 지인들의 설명이다.
박씨는 고려대 출신, 윤씨는 서울교대 1회 졸업생이다. 두 사람 모두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윤씨는 이게 오히려 박진영을 놓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친정어머니가 서울대 사대 출신으로 제가 다니던 학교(한양여고) 교사셨어요. 저도 진영이처럼 음악·미술을 좋아하고 달리기를 잘했지만 그런 끼를 발현할 기회가 없었죠. 늘 가르마를 곱게 타서 옆에 핀을 예쁘게 꽂고 엄마와 함께 등교를 했어요. 학교에 도착해 엄마와 헤어지고 나면 얼른 핀을 빼서 뒷주머니에 꽂는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탈이었죠. 말하자면 저는 ‘억눌린 박진영’이었던 거예요(웃음). 그래서 ‘내 아이는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시키고, 중요한 일은 스스로 선택하게끔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자 집에 늘 클래식 팝송 등 음악을 틀어놓았다. 그덕분인지 박진영은 어려서부터 소리에 민감했다. 특히 쌀 씻는 소리 같은 반복적인 리듬을 좋아했다고 한다.
“진영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제가 밥을 하려고 쌀을 씻으면 뒤뚱뒤뚱 걸어와서 춤추는 시늉을 하며 좋아하는 거예요. 진영이가 즐거워하니까 저도 신이 나서 쌀이 으깨지도록 씻곤 했죠.”
유년기에는 남들 다 보내는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보낼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맞다. 네 살 때 누나 어깨 너머로 한글을 스스로 깨쳤다. 윤씨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글을 배운 적이 없는 아들이 길을 가다가 날아온 휴지 조각을 주워 들고는 ‘품목허가’ ‘상표등록’이라고 또박또박 읽더니, “엄마 이게 무슨 뜻이야 ”라고 물었던 것을.
“아이큐가 153이에요. 피아노도 누나가 배울 때 조금씩 배웠는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초등학교 다닐 때 전교생 앞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했죠.”
어린 박진영에게 최고의 배움터는 자연이었다. 늘 친구들과 산과, 들, 개울을 헤집고 다니며 병정놀이를 했다.
“아버지는 군자금(용돈)을 대고, 저는 밥을 해 먹였어요. 우리 집에 오면 과자도 많고 밥도 잘 해 먹이니까 항상 친구들이 모여들었죠. 진영이가 어릴 때부터 사교성이 좋고 친구들을 끌고 다녔던 게 그 영향이 아니었나 싶어요.”

‘진짜 딴따라’ 박진영 키운 박명노 윤임자 부부

1 2 박진영의 아버지 박명노 씨와 어머니 윤임자 여사. 3 박진영이 어릴 때 가족 사진. 누나는 결혼해서 캐나다에 살고 있다. 4 박진영은 부모의 외모를 딱 절반씩 닮았다.



“공부 안 해도 좋지만 무슨 일을 하더라도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마라”



‘진짜 딴따라’ 박진영 키운 박명노 윤임자 부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에서 박진영이 축하공연을 했다. 이날 박진영은 자신의 옷 가운데 가장 점잖은 옷을 골랐으나 이에 맞는 얌전한 양말은 찾지 못했다고 익살을 떨었다.



박명노 씨가 해외 지사로 발령 나면서 온 가족이 미국 생활을 하게 됐다. 박진영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어른들은 영어가 서툴러서 고생을 했는데, 박진영은 오히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박진영은 얼마 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으로 1.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 2. 엄마가 피아노를 치게 한 것 3. 미국에서 2년 반을 산 것 4. 그때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만난 것 5. 2년 반 동안 영어를 배운 것을 꼽았다. 그의 부친 역시 미국의 교육 환경이 박진영에게 잘 맞았다고 말한다.
“진영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금 학년에서는 더 배울 게 없으므로 월반을 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저희가 학교에 찾아가서 사정한 것도 아니에요. 학교 측에서 아이의 능력을 파악해 시간 낭비 하지 않게끔 해준 거죠. 계속 그 학년에 머물렀더라면 지루해서 공부에 싫증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점은 미국식 교육의 장점이라고 봐요.”
어린 박진영은 음악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했지만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은 지켰다. 숙제도 미리미리 해놓고,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볼 정도로 집중력이 강했다. 이런 습관은 성인이 돼서도 이어져 스무 살 무렵 돈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기 위해 20억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6년 만에 이를 달성했다. 박진영은 그 돈으로 지금의 JYP 사옥(서울 청담동)을 샀고,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평생 돈 걱정 없이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
“숙제를 해놓아야 더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부터 했어요. 어릴 때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제 할 일을 먼저 해놓는 스타일이었죠.”
박씨는 아들에게 평생 “공부하라”는 주문을 한 적이 없지만 “어떤 일을 하든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아버지의 훈육 덕분에 박진영은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미국에서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끼고 살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위인전, 동화책 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박진영은 JYP 사옥에 서재를 마련해놓고 원더걸스 2AM 2PM 등 소속 가수들에게도 책을 읽힌다. 권장도서 목록도 있고, 책을 읽은 후에는 독후감을 쓰게 한다. 연습생들은 성적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연습을 중단시킨다. 어떤 직업을 갖든 사회인으로서 자기 삶을 꾸려갈 기본적인 지식과 양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면 결과적으로 항상 옳아

‘진짜 딴따라’ 박진영 키운 박명노 윤임자 부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에 참석한 박진영의 표정이 밝다. 왼쪽은 조카.



아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스피드광이었던 박진영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치는 일도 잦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고도 많이 쳤다. 중학교 때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도 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학교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것 때문에 힘들어 했어요. 특히 아이 몸집이 큰 편이라 책상과 붙어 있는 의자에 몸을 구겨 넣는 게 괴로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진영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으면 제가 클럽에 데려다주고 실컷 춤을 추게 했어요. 대신 술 담배는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그러곤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아이가 나오면 다시 차에 태워 집에 데려 오곤 했어요.”(박명노)
박진영의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건국대 부속 중학교를 거쳐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원외고에 합격했다. 하지만 박진영은 남들이 다 바라는 외고 진학을 포기했다.
“합격통지서를 받고 나서 진영이가 학교에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했어요. 학교를 돌아보니 공부를 많이 시키는 분위기예요. 진영이가 감옥 같아서 싫다고 하더라고요. 진영 아빠가 그 자리에서 ‘정 아니겠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진영이를 키우면서 그때그때 아이의 느낌을 존중해줬는데, 결과적으로는 항상 옳았던 것 같아요.”
아들이 의외의 선택을 할 땐 항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용돈을 올려 달라고 할 때도 한 번도 떼를 쓴 적이 없다. 돈이 더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대고 올려 주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지금까지 진영이가 했던 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2007년 상반신 누드를 공개했을 때예요. 저희도 놀랐고, 집안 어른들도 전화하셔서 난리가 났죠. 그래서 진영이를 불러서 물어봤더니 ‘엄마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녀가 불평등 해. 달리기를 한다고 치면 남자는 그냥 뛰는데 여자는 눈을 가리고 뛰는 것과 같아. 그걸 바로 잡으려면 성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허물어야 해. 나는 그걸 바로 잡기 위해 몸으로 시위를 하는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인데 제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웃음).”
대원외고 대신 배명고에 진학한 박진영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는 학창생활을 보냈다. 학생회장 선거 때 자신을 뽑아주면 한턱 크게 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실제 회장에 당선되자 친구들을 나이트클럽에 데려가 놀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 다음 날 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박진영은 학생주임실로 불려가 야구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사고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쳤어요. 오죽하면 진영 아빠가 ‘사고 처리 반장’이겠어요. 늘 조마조마하고 사람 노릇 못하면 어떡하나 애타는 심정이었죠. 그런데 본성이 착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는 않았고, 좀 잘못된 길로 간다 싶어도 참고 기다리면 신기하게도 스스로 알아서 제 자리로 돌아왔어요.”

‘진짜 딴따라’ 박진영 키운 박명노 윤임자 부부

평생 모범적으로 살아온 박진영 부모는 교회에 다니며 기부와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박씨 부부는 아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건 학창 시절 한때고, 성인이 되면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그런 기대를 접게 된 사건이 있었다. 윤씨는 이 일을 계기로 음악 하겠다는 아들의 선택을 100% 존중하게 됐다고 한다.
“고3 때 시험 공부를 한다며 친구와 도서관에 간다고 나갔는데,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제가 찾으러 나갔죠. 그런데 웬걸, 그 밤중에 4차선 아스팔트 위에서 친구와 춤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거예요. 한데 그 표정이 굉장히 행복해 보였어요. 몰래 숨죽여 지켜보면서 ‘진영이는 저 길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진영이가 가수로 사업가로 성공한 것도 좋지만 그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게 부모로선 가장 뿌듯해요.”

평범한 결혼 생활 기대했지만 싫다면 혼자 사는 것도 안 말려

박명노 씨는 한국산업은행을 거쳐 동부그룹 전무, 동부주택할부금융 대표 등을 역임했다. 한때 교편을 잡았던 윤임자 씨는 교직을 그만둔 후에는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은 한국미술협회 소속의 정식 화가다. 교회 지인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봉사와 기부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윤씨는 최근까지 적십자 봉사 활동과 함께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보내는 활동을 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도 여성 재단, 교회 등에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진영이가 쓰고 남을 정도로 용돈을 많이 줘요. 다른 사람을 돕는 건, 남을 위해서라기보단 우리를 위해서 하는 거죠. 여러 사람이 나눠 받아야 할 축복을 우리가 과분하게 받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두렵고…. 그래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더라고요.”(윤임자)
‘아들 박진영’도 ‘뮤지션 박진영’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한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엄마를 안고 한 바퀴 돈다. ‘지난번보다 살이 쪘네’ ‘살이 빠졌네’ 하며 딸처럼 다정다감하게 부모를 챙긴다.
“우리 마지막 소원은 진영이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사는 거예요. 진영이가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누나가 대학에서 호른을 전공하고 지금은 결혼해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조카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몰라요. ‘그렇게 좋거든 너도 얼른 결혼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건 어려울걸’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결혼 생활에 적합한 스타일이 아니래요. 본인이 원한다면 지금처럼 혼자 사는 것도 자유롭고 좋을 것 같아요.”(윤임자)
마지막으로 자녀를 박진영처럼 창의적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들려달라고 하자 부부는 마치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것처럼 즉시 대답을 내놨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조금은 하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남과 비교하거나 1, 2등을 할 필요는 없어요. 거기에 매달리면 아이 재능이 묻히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심성도 엇나가게 되거든요. 아이의 고민을 잘 살피고, 원하는 걸 찾아서 할 수 있도록 참고 지켜봐주세요.”

여성동아 2012년 6월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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