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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직장 생활 속 희망 찾았죠”

연극을 사랑한 직장인들의 달콤한 이중생활 극단 ‘틈새’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 2012.05.16 15:13:00

연극이 좋았다. 보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직접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그들을 ‘틈새’로 이끌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지하의 극단 틈새 연습실은 회사 업무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와 몸을 풀고 발성 연습을 하는 직장인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빡빡한 직장 생활 속 희망 찾았죠”


변호사, 판사, 세일즈맨, 성우, 금융인, 교사, 게임 개발자, 간호사, 식당 주인…. 이들의 공통점은 직장인. 극단 틈새를 찾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바로 연극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1997년 설립 이래 21세부터 5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직장인이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곳이 극단 틈새다. 매주 3회 연습에 참여하려 본업을 마치면 각자의 일터에서 부리나케 연습실로 달려온다.
이곳에서 활동한 지 10년째인 김미경(34·기획자) 씨는 현재 연출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그는 “틈새 단원은 나이와 성별 불문은 물론이고 국적, 성격도 불문이다”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프로 극단의 문을 두드려볼 법도 한데 “연극도 좋아하지만 제 직업도 좋아한다”며 “직업을 통해 얻는 성취감도 있어서 지금이 좋다”고 했다.

나이·성별 불문, 국적·성격도 불문
“연극이 소수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희가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명품 가방이나 화장품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지만, 저희는 연극으로 풀어요. 제가 하는 기획 일과 연극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도움이 돼요. 연극이 인간을 탐구하고 알게 되는 작업이다 보니까 직장 생활에서도 클라이언트나 상사, 동료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푸는 방법을 배우게 되죠. 작은 부분을 뜻했지만 이제는 제 생활을 가득 차지해서 더는 틈새가 아니게 된 것, 그게 바로 틈새죠.”
야근을 마치고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연습실에 들어선 이주현(32·IT 세일즈) 씨는 틈새와 인연을 맺은 지 2년이 돼간다. “야근까지 했는데 바로 집으로 가서 쉬고 싶지 않으냐”는 물음에 “피곤하지만 여기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취미는 좋아하는 걸 하는 거고, 업무 중에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도 되잖아요. 그래서 피곤한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오는 거죠. 연극영화과를 가려다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는데, 이제는 자리를 잡았으니까 취미로라도 연극을 하려고 찾은 곳이 여기죠.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직장 동료도 제가 연극 하는 걸 알아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 줄은 모르지만(웃음).”
지난해 9월 올린 극단 틈새의 제31회 정기 공연 ‘안녕 아빠’에서 브로커 겸 멀티맨으로 활약한 그는 연극이 본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연극은 일단 커뮤니케이션이잖아요. ‘야’라는 글자 하나를 읽어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죠. 직장 생활이든 뭐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연극이 삶에 상당히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이지윤(23·어린이집 교사) 씨는 다른 직장인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9월 틈새로 왔다. 직업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이씨는 학원에 다니는 대신 이곳에서 발성과 연기를 공부하고 무대 경험을 쌓고 있다.
“직장인은 퇴근하면 심심하잖아요. 그래서 회식하거나 나이트 가는 식으로 유흥을 즐기게 마련인데, 여기 오면 자기 계발도 되고 스트레스도 풀고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이씨는 극단 틈새가 2월에 올린 연극 ‘그로테스크 디소넌스’에서 여형사 역을 맡았다. 얌전하고 여리여리한 모습과 달리 강단 있는 캐릭터를 맡은 것이 의외라고 하자 그는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였다”라며 “오히려 여성스럽거나 예쁜 척을 해야 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자신을 많이 버려야 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한 발만 내디디면 돼요. 모든 사람의 차이점은 딱 한 발, 이만큼만 디디면 걷는 건 쉽거든요. 눈을 딱 감고 오시거나, 아니면 한번 가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열성적으로 대본을 읽던 백도연(49·요식업) 씨는 극단의 ‘왕언니’다. 백씨는 연습이 있는 날에는 종업원에게 가게를 맡겨놓고 연습실을 찾는다. 극단 활동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했다.
“배우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도 크고 살림도 해야 하니까 연극에 전념할 수가 없더라고요. 나이는 자꾸 먹고 아이가 대학생이 되니까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우울증이 왔어요. 프로 극단을 가기에는 나이가 많고 실력도 부족하다고 느끼며 좌절하던 무렵 틈새를 발견했죠.”
처음에는 당황했다. 전부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카 같은 단원들이 잘 해줘서 따라갈 수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눈병이 나서 부득이 연습에 빠진 날에는 집에서 녹음한 목소리를 몇 번이고 돌려 들으며 연습했다. 5월에 있을 내부 오디션을 위해 연변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도 찾아볼 정도로 열성적이다.
“물론 생업에는 지장이 있죠. 하지만 인생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여기 와서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연습하고 무대에서 공연할 때 희열을 느껴요. 모이면 연극 얘기만 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틈새가 아니었으면 우울증 때문에 저는 지금 병원에 있을지도 몰라요. 제게는 ‘인생의 희망 발전소’인 셈이죠. 여기 있으면 절대 좌절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계속 나아가니까요.”

모든 단원이 배우이자 스태프

“빡빡한 직장 생활 속 희망 찾았죠”

1 2 2011년 근로자연극제에서 은상을 받은 연극 ‘안녕, 아빠’의 공연 장면. 3 2010년 근로자연극제 대상을 받은 연극 ‘말죽거리 악극단’의 한 장면. 두 연극 모두 강제권 씨가 직접 쓴 작품이다.





2001년부터 단원으로 활동한 극단 틈새 대표 강제권(37·게임 개발자) 씨는 “틈새 단원들은 배우일 뿐 아니라 조명부터 소품, 무대, 의상을 만들고 관리하는 스태프 노릇까지 다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수 차례 대본을 직접 써서 무대에 올렸다. 스태프부터 연출, 배우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저희 극단은 ‘틈새’라는 이름처럼 빡빡한 직장 생활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빛을 모토로 삼고 있어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거죠. 제겐 두 개의 가정이 있는데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가정, 그리고 평생 가족처럼 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틈새예요.”
연극에 입문하고픈 직장인에게는 “‘감히 나 같은 게’라는 생각부터 버려라”라고 조언했다.
“모두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라는 생각을 했죠. 지금은 다들 어엿한 배우 소리를 듣고 있어요. 근로자연극제에서 수상한 분들도 있고요.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리세요. 여러분이 꿈꾸는 세계는 여기 충분히 열려 있거든요.”
극단 틈새는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연극 ‘연변 엄마(김은성 작)’를 올린다. 조선족 어머니가 딸을 찾으러 한국에 와서 겪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조선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재조명해 보여줄 예정이다. 이날도 늦게까지 이어진 연습으로 연습실은 자정이 다 되도록 환했다.

여성동아 2012년 5월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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