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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선수 양영자 라켓을 고쳐 쥐다

15년 몽골 선교 마치고 귀국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5.15 11:08:00

1980년대 중반 한국 탁구계에 양영자·현정화라는 ‘환상의 복식조’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물리치며 우승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퇴 후 해외 선교로 진로를 바꾼 양영자가 15년 만에 돌아와 20년의 결혼 생활과 연년생인 두 딸 소식을 들려줬다.
탁구 선수 양영자 라켓을 고쳐 쥐다


1981년 국가대표 탁구 선수로 선발돼 1989년 은퇴하기까지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전무와 함께 ‘탁구의 여왕’으로 불리던 탁구 선수 양영자(48)가 돌아왔다. 탁구계를 떠나 선교사로 변신한 그가 남편과 15년간의 몽골 선교를 마치고 귀국한 것. 은퇴 당시 탁구계의 대들보가 사라졌다며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산 그였기에 근황이 더없이 궁금했다.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 탁구 편에서 명예 감독으로 깜짝 출연해 ‘탁구 얼짱’으로 불리는 서효원 선수와 깜짝 매치를 벌이는 그를 볼 수 있었다. 현정화 전무의 애제자로 알려진 서효원을 상대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선보인 그에게 많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몽골에서 탁구 가르치며 하나님 사랑 전해
▼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 탁구 편에서 서효원 선수랑 경기를 해본 소감은.
“몽골에서 지내는 동안 탁구를 놓고 있었다면 엄두가 안 났겠죠. 하지만 그곳에서도 탁구를 통해 선교 활동을 해서 감을 잃진 않았어요. 촬영 현장에서 즉석 매치를 하게 된 건데, 서 선수가 자기 라켓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나이 든 선배가 얼마나 하겠느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웃음).”

▼ 현역 시절 모습 그대로라서 놀랐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몸이 안 좋아서 한의원을 자주 다녔어요. 아픈 사람은 자기 체질이 뭔지를 아는 게 중요해요. 체질대로 먹으면 살도 안 찌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더라고요. 몽골에 가서 처음에는 적응을 못해 많이 아팠는데 그러면서 음식의 중요성을 느꼈죠. 선수 생활을 할 당시 수화기만 들어도 무겁다고 느낄 정도로 팔에 통증이 심했거든요. 테니스 엘보였죠. 병원에 갔더니 탁구를 그만두면 나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한창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도저히 그만둘 수 없어서 6년간 진통제의 힘으로 버텼죠. 어느 순간 진통제의 약효도 사라져서 찾게 된 것이 기도원이었어요.”

▼ 기도원에서 안수 기도를 받고 건강이 좋아졌다고 들었어요.
“기적이었죠. 원래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믿게 된 건 1984년 기도원에서 안수 기도를 받고부터였어요. 안수 기도를 받고 팔이 싹 나았거든요.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죠. 탁구라는 달란트를 주신 게 하나님이고, 그분을 위해 살겠다고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금메달을 딴 것도 하나님이 한 게임 한 게임 도와줬기 때문이죠.”



탁구 선수 양영자 라켓을 고쳐 쥐다


▼ 선교지인 몽골에서는 어떻게 지냈나요.
“내몽골에서 남편은 성경을 몽골어로 번역했고, 저는 탁구를 가르치면서 사역을 했어요. 외몽골과 내몽골은 말은 같지만 문자가 달라요. 남편은 내몽골 고유의 문자로 성경과 동화책을 번역했어요. 중국 땅인 내몽골에서는 아이들이 탁구를 잘해도 국가대표 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그곳에서 장래가 보이는 아이들을 데려왔어요. 2011년 전국체전에서 준우승한 이은혜(17·안산 단원고)와 이시은(17·귀화 예정)인데, 이 친구들을 한국 국가대표로 키울 생각이에요.”

▼ 특별히 몽골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곳을 생각하다 몽골로 정한 것은 공산 국가인 몽골이 1990년대에 개방됐거든요. 개방되고 난 뒤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을 복음으로 빨리 채워주고 싶었어요.”

▼ 한국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언어도 기후도 다르지만 문화 충격이 가장 컸죠.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거나, 공산주의 사회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것 네 것에 대한 개념이 없더라고요. 약속에 대한 개념도 없고요. ‘어디에서 몇 시까지 만나자’가 아니라 언제든 찾아오면 그게 약속인 거예요. 처음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힘들었죠.”

▼ 선교지에서 잊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가자마자 2년 동안 몽골어를 배웠어요. 공부를 마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죠. 몽골어를 배운지 몇 개월 안 돼서 잘 못할 때였어요. 버스에 타면 한국 돈으로 1백원짜리 버스표를 줘요. 그걸 무심코 손으로 돌돌 말다가 버렸는지 어쨌는지 없어진 거예요. 그날 따라 표 검사를 해서 제가 걸리게 생긴 거죠. 일단 버스에서 내렸는데 밖에 경찰차도 있고 그당시는 휴대전화도 없고, 몽골어로 ‘나 표 샀다’는 말은 못하겠고 정말 무서웠어요. ‘내가 1백원 때문에 유치장에 가야 하나’ 싶어서 두려웠죠. 어떻게 잘 해결되긴 했지만요(웃음).”

탁구 선수 양영자 라켓을 고쳐 쥐다


▼ 선교사인 남편(이영철·51)과는 어떻게 만났나요.
“선수 생활을 마치면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힘들 때 저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 남편이에요. 제가 은퇴하고 제일모직에서 탁구 코치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던 남편(당시 연합뉴스 국제부 기자)을 만났죠. 선교사가 되려고 준비하던 남편과 1992년 5월 결혼했어요. 남편은 이듬해 회사를 그만두고 총신대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1995년에 함께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그곳에서 WEC국제선교회를 알게 됐고, 6주간 교육을 받고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됐어요.”

▼ 탁구 선수와 기자의 만남이 평범하진 않네요.
“남편과는 같은 신앙을 가진 게 큰 연결 고리였어요. 그래서 결혼도 했지만요. 결혼 생활 안에서 종교라는 목적이 같았고, 사역을 하면서 척박한 곳에서 힘들 때 함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면서 사랑을 확인했어요. 남편에게만 맹목적으로 의존하면 서로 힘들어져요.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면 부부간의 사랑도 더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 여전히 두 분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남편이 축구를 좋아해서 함께 경기도 보고,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도 타고 그랬어요. 결혼기념일에는 공원에 가서 손잡고 기도하면서 걸었죠.”

사춘기 때 아이들 곁에 못 있어서 아쉬워
▼ 연년생인 두 딸(이반재·19, 이윤재·18)은 어떻게 지냈나요.
“아이들이 몽골에 간 게 너덧 살 때라 몽골 유치원도 다니고,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가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했어요. 큰딸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한국에 있었죠. 큰아이는 대학에 진학했고, 둘째는 고3이에요. 반재는 드라마, 뮤지컬 같은 걸 좋아해 학교에서 연극도 하더라고요.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았어요. 우는 연기를 하는데 ‘우리 딸인데도 이런 면이 있나’ 할 정도로 놀랐죠. 윤재는 공부도 운동도 좋아해 학교에서 축구·배구 대표 선수도 할 정도죠. 워낙 오래 떨어져 지내서 아이들이 혼자서도 잘해요. 그래서인지 짐은 오래전에 내려놓은 느낌이죠. 아이들이 사춘기일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게 아쉬워요. 아이들과 6년을 떨어져 지냈는데 처음 2년은 저도 아이들도 정말 힘들었어요. 힘든 시기를 극복해줘 엄마로서 그저 고맙죠.”

▼ 대견하겠어요.
“그럼요. 둘째는 얼마 전 필리핀 단기 선교를 다녀왔는데, 자기도 나중에 그런 곳에서 사역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단맛 쓴맛 다 본 어린 아이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싶다고 해서 속으로 놀랐죠. 큰아이는 작년에 인도의 고아원을 다녀왔어요. 근데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꼭 돌아오겠다’고 한 모양이에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들의 그런 마음이 참 귀하다고 생각했죠. 제가 키웠다고 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시기에 떨어져서 지냈는데, 신앙적으로 귀한 마음을 가지고 자라 줘서 고맙고 아이들의 멘토가 돼준 목사님에게도 고마워요.”

▼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떻게 지냈나요.
“그동안 저희 부부가 사역을 잘하고 올 수 있도록 후원해준 교회에 인사를 하러 가고 연단에도 섰어요. 안식년이라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선교지에 있을 때는 가끔 남편이랑 영화나 책을 보고 글도 썼어요. 여기 와서는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죠.”

탁구 라켓 영원히 놓지 않을 것

탁구 선수 양영자 라켓을 고쳐 쥐다


▼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실 건가요.
“한국에서의 안식년이 1년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탁구를 가르치고 싶어요. 아이들과 청소년기를 같이 보내지 못한 데 대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 몽골에서 틈틈이 쓴 글을 책으로 낼 계획도 있다면서요.
“선수 시절의 꿈과 좌절, 우울했던 감정 등 자전적 내용을 담을 생각이에요. 모든 사람에겐 아픔이 있게 마련인데,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공감하면서 소망을 갖게 된다면 좋겠어요.”

▼ 탁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목표가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게, 요즘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대라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까 ‘꼭 이거 아니어도 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정신력의 문제 같기도 한데, 탁구로 꿈을 이루고 싶다면 되든 안 되든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 양영자에게 탁구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달란트, 선물이에요.”

▼ 탁구 선수 양영자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아직 그런 분들이 계실까요? 만약 계신다면 분명 40,50대일 텐데(웃음). 선교지에서 15년을 보냈지만 그곳에서도 탁구 라켓을 잡고 사역을 했어요. 결국 저는 탁구인의 한 사람이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탁구를 통해서 사역할 거고요. 탁구는 매력 있는 스포츠예요. 경쾌함이 있거든요. 삶의 활력이 돼주죠. 건강에도 좋고요. 탁구를 통해 인생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일단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한국 탁구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고요.”

여성동아 2012년 5월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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