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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픽션’ 전계수 감독

“지질하고 순박한 남자의 연애담”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삼거리 극장 제공

입력 2012.04.17 17:44:00

사랑과 연애는 순차적으로 오지 않는다. 때로는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찾기도 한다. 영화 ‘러브픽션’ 전계수 감독이 전하는 지질하고 궁상맞기 그지없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의 연애기.
영화 ‘러브픽션’ 전계수 감독


최근 극장가에 ‘로코(로맨틱 코미디)’ 열풍이 불고 있다. 그중 2월 말 첫선을 보인 하정우·공효진 주연의 영화 ‘러브픽션’은 개봉 10여 일 만에 1백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 후 경쟁작인 ‘화차’의 개봉으로 뒷심이 달리는 모습이지만 ‘겨털녀’ ‘방울방울 해’ ‘스쿨버스’ 등과 같은 유행어가 회자되고 있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전계수(40) 감독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남자의 시각에서 남자가 빠지기 쉬운 연애에 대한 오해를 보여주고자 했다. 영화사에서 붙인 홍보용 카피는 ‘쿨하지 못한 남자의 웃기는 연애담’이지만 정작 그가 붙인 부제는 ‘연애에 대한 남자들의 오해와 편견’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감정의 종류, 즉 설렘과 기쁨, 오해, 분노, 슬픔, 안타까움, 후회 등은 철저히 남자 주인공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영화는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해본 소설가 구주월(하정우)이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자 소설을 위해 연애를 하기로 마음먹으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던 중 독일의 필름마켓에서 만난 희진(공효진)에게 첫눈에 반해 구애를 시작한다. 주월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십분 활용해 고전 문학에나 나올 법한 문장들을 쓴 손편지로 사랑을 고백하지만 희진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자 급기야 술자리에서 시조를 읊조리듯 예스러운 말투로 사랑을 고백한다. 결국 희진은 ‘돈키호테’처럼 저돌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주월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렇다면 주월은 왜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글과 말로 여자의 환심을 사려 했을까. 전계수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을 무기로 내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 초기에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매력을 어필하려고 하는데 주월은 직업이 소설가이다 보니 그 점을 적극 활용하려 한 거죠. 또 주월 자체가 현대적이라기보다 고전적인 인물이에요. 연애에 대한 생각도 클래식하고 고답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 순수한 모습이 결국 희진의 마음을 움직였고요. 주월은 30년 동안 혼자 머릿속에 그려온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희진을 만나는 순간 자신이 꿈꿔온 완벽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 환상이 깨지자 주월은 괴로워하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책하며 반성도 해보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지질함의 극치를 보여줘요(웃음).”

여신의 겨드랑이에 털이 있다면?

영화 ‘러브픽션’ 전계수 감독

두 사람의 사랑에 찬물을 뿌린 건 다름아닌 여자의 겨드랑이 털. 하정우·공효진의 리얼한 연기가 돋보인다.



이들에게 사랑의 방해물은 다름 아닌 겨드랑이 털. 주월과 희진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려는 순간, 덥수룩하게 자란 희진의 겨드랑이 털과 직면한 주월은 강한 충격에 휩싸인다. 이 장면을 본 관객들 또한 당황스러우면서도 두 사람의 리얼한 연기에 웃음이 절로 난다. “영화 ‘색,계’ 탕웨이도 울고 갈 포복절도 겨털 베드신”이라는 네티즌 찬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영화에서 희진은 여자들도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는 알래스카 출신으로 나온다. 과연 ‘겨털’ 에피소드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제가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자를 만난 적은 없고요(웃음). 주월의 연애에 화두를 던질 만한 뭔가가 필요했어요. 대사에도 나오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초상화에 누군가 콧수염을 그려놓은 것 같은 기분인 거죠(웃음). 웃기긴 하지만 완벽한 뮤즈인 줄 알았던 여자가 시커먼 겨드랑이 털을 기른다고 했을 때, 주월이 어떻게 이 여자를 끌어안을 수 있을까를 두고 씨름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주월은 당초 목적대로 희진을 자신의 소설에 영감을 줄 대상으로 이용한다. 타블로이드 신문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살인자와 사랑에 빠진 형사 이야기를 그린 B급 소설 ‘액모부인(腋毛夫人)’의 연재를 시작한 것. 심지어 그는 자신과 희진만이 아는 ‘사랑해’의 동의어 ‘방울방울 해’를 인용해 ‘양방울’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다.
‘겨털’이란 소재만으로 스토리를 끌어가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 전 감독은 희진의 이미지에 ‘스쿨버스’를 더한다. 극 중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희진은 학과 과제물로 매번 남자의 누드를 제출한다. 이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서 희진이 사진 촬영을 빌미로 숱한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놈 저놈 다 태운다’는 의미에서 ‘스쿨버스’로 불렸다는 설정이다.
희진의 이러한 과거를 알게 된 주월은 더 큰 번뇌에 사로잡힌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설령 그렇다 해도 여자의 과거에 집착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끝내 주월은 희진에게 화를 내며 “도대체 난 몇 번째 남자냐”고 따져 묻는다. 주월의 원초적인 행동에 실망한 희진 역시 거침없이 대답한다. “정확하게 얘기해줄게. 서른한 번째야.”

하정우 공효진 열애설은 잘못된 소문

영화 ‘러브픽션’ 전계수 감독


결국 두 사람은 보통 연인들이 그렇듯 집요한 말다툼 끝에 이별한다. 희진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한국을 떠나 아버지가 있는 알래스카로 돌아간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희진의 ‘서른한 번째’란 대답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많이 물어요. 정확한 건 없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하지만 제 개인적인 바람은 사실이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주월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알래스카로 떠나는 게 옳은 선택인 것 같아요. 사실 저만 해도 여자의 과거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연애와 사랑에 미숙한 한 남자가 진정한 사랑으로 인해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전 감독은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 속 장면으로 두 사람이 전화로 다투는 장면을 꼽았다. 배우들의 표정이나 편집의 리듬, 카메라의 흔들림 정도가 마음에 흡족하게 와 닿았다고 한다. 특히 이 장면은 공효진이 공을 많이 들인 신이기도 하다. 영화가 남자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희진의 내면은 처음부터 감독의 관심 밖이었는데, 다툼 신은 유일하게 주월에 대한 희진의 생각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정우와 공효진이란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은 상당히 탄력적이에요. 상대방의 연기를 읽어가면서 자신의 것을 펼쳐 보이거든요. 하정우 씨도 달달한 장면보다 희진에 대한 환상이 한 꺼풀 벗겨진 뒤의 장면을 더욱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두 배우가 뛰어난 연기력으로 시나리오를 120% 이상 잘 표현해줘서 고마워요.”
‘러브픽션’의 내용은 이미 3년 전에 완성된 것으로 전 감독은 처음부터 하정우를 남자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반면 여자 배우는 특별히 염두에 둔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하정우의 추천으로 공효진을 캐스팅했다.
“하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연기의 폭도 넓고, 덩치에 비해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면도 보이고요. 또 술자리에서 만나면 예의 바르면서도 웃겨요. 만나면 즐거운 사람이에요.”
하정우와 공효진은 영화에서 실제 커플처럼 친근한 연기를 선보여 열애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여러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더욱이 공효진은 동료 영화배우 류승범과 10년 넘게 열애 중으로 “(류승범과) 시간이 멈춘 것처럼 잘 지낸다”는 말로 팬들을 안심시켰다. 전계수 감독 역시 두 사람의 열애설이 신경 쓰였던지 한마디 보탠다.

영화 ‘러브픽션’ 전계수 감독


“두 사람은 전혀 그런 사이 아니에요. 공효진 씨가 류승범 씨를 애인으로서나 같은 배우로서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하정우 씨는 동료로는 몰라도 남자로는 별로라 생각하는 것 같던데(웃음).”
‘러브픽션’은 남녀의 연애 패턴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냈지만 관객의 ‘호불호’가 분명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단점으로는 ‘영화 속 영화’로 촬영된 ‘액모부인’ 스토리가 다소 지루하다는 지적이다. 전 감독은 관객들의 이러한 평가에 수긍하는 한편,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한다.
“처음부터 실제와 판타지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의 목적은 연애하는 남자의 환상을 보여주는 거라서 주월의 판타지인 ‘액모부인’의 내용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주월은 소설가이고, 자신의 실제 연애담이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작품에 투영될 수밖에 없어요. ‘액모부인’의 분량을 두고 편집 때까지 많이 고민했는데, 그 정도는 들어가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이번 기회에 상업영화를 하면서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배웠어요(웃음).”

영화 때문에 크게 부부 싸움 한 사연
전 감독 역시 시나리오 작업 중 자신의 경험담을 투입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똑같은 건 아니다. 전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를 포함해서 멜로 영화 만드는 감독은 당연히 자신의 연애담을 에피소드로 활용할 것”이라면서 “기자간담회에서 ‘지나간 여자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그래서 반성하는 의미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을 했다가 아내의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올해로 결혼 2년차인데, 이번 영화 때문에 아내와 크게 싸워 한동안 냉전기를 보냈어요. 다행히 차츰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예전에는 몰랐던 아내의 새로운 예쁜 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오래된 연인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주월이 끝까지 희진을 포기하지 않고 진심을 전한 것처럼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아내가 이 인터뷰를 보면 콧방귀를 뀔 것 같지만…(웃음).”
전 감독은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주월처럼 꽃병을 던지기도 하고, 장기간 낚시를 떠나기도 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일본 나막신 ‘게다’를 신고 춤을 추기도 한다고. 전 감독은 “글이 안 써질 때 심정은 정말 지옥과도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왠지 내 얘기 같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며 웃었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전 감독은 고등학교 때까지 철학자를 꿈꿨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 연극에 빠지면서 인생의 방향이 살짝 틀어졌다. 처음에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후반엔 극작과 연출을 도맡았고, 연극 못지않게 춤 공연도 많이 열었다. 20대를 연극과 춤에 빠져 지낸 전 감독은 졸업 후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IT 회사에 취직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생활한 것. 하지만 친구도 한 명 없는 타국에서 주말에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전 감독은 하루 종일 영화만 보기 시작했고, 급기야 서른 살 되던 해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귀국했다.
이후 독립영화 ‘자웅동체의 불안’ ‘고양이의 꿈’을 연출한 뒤 2003년 ‘싱글즈’ 연출부에 들어가 처음으로 상업영화에 뛰어들었다. 입봉작은 2006년 ‘삼거리 극장’이다. 전작은 ‘영화, 한국을 만나다’의 프로젝트로 구성된 ‘뭘 또 그렇게까지’.
앞으로는 전계수표 ‘로코’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듯하다. ‘러브픽션’ 개봉과 동시에 “로맨틱 코미디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장르는 음악 영화. 지금껏 써놓은 시나리오도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한 게 대부분이다. 한편 ‘러브픽션’ 차기작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준비 중이다.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돼 있고, 조만간 캐스팅 작업에 들어가 빠르면 올 연말 크랭크인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여성동아 2012년 4월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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