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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곡가 윤일상, 이제 스무 살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를 갈구하다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현일수 기자

2012. 04. 17

김범수의 ‘보고 싶다’,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쿨 ‘해변의 여인’…. 숱한 히트곡을 만든 MBC 서바이벌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2’의 멘토 윤일상이 책을 냈다. 제목은 ‘나는 스무 살이다’. 스무 살, 그때의 열정 그대로 착실하게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을 채비 중인 그를 만났다.

작곡가 윤일상, 이제 스무 살


올해로 데뷔 21주년을 맞은 작곡가 윤일상(38). 그는 ‘나는 스무 살이다’의 출간 기념 북 콘서트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만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못한 말이 많았다”고 했다.
윤일상은 외가가 클래식을 하는 집안이라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그의 어머니에 의하면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앉아 편곡을 하던 아이”였다고. 여덟 살 때 동생이 태어나자 그 기쁨을 곡으로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발견했지만, 아들이 음악인이 되는 것은 반대했다. 윤일상은 “어머니가 외출하면 몰래 피아노를 쳤다”고 회상하며 “피아노에 대한 사랑, 집착, 음악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면 제로가 되죠. 언제나 우리는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로가 가장 안 좋아요. 어떤 숫자를 곱해도 제로잖아요.”

영향받는 게 싫어서 가요 잘 안 들어
누구에게나 무명 시절은 있다. 윤일상도 마찬가지. 1996년 쓴 영턱스클럽의 데뷔곡 ‘정’은 발표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빛을 보기까지 수많은 거절이 있었다. 트로트와 댄스 음악을 접목한 시도가 당시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 그러나 이 곡이 히트하자 많은 작곡가가 그런 스타일의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젊은 작곡가는 주류 음악계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그에게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가수의 가볍고 감각적인 노래는 어떻게 들릴까.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어린데 그 나이에 인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요. 저도 어릴 땐 유치한 가사 많이 썼어요. 유치하다고 해서 주옥같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유치원생이나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다 가치가 있죠. 나중에 역사에 남을 수도 있고요. 무시당해야 할 창작품은 없습니다.”

작곡가 윤일상, 이제 스무 살

책 출간 기념으로 ‘음악이 흐르는 북 콘서트’를 연 작곡가 윤일상이 사회를 맡은 작가 조연심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는 윤일상이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은 거의 듣지 않는다고. 벌써 20여 년 된 오랜 습관이다.
“표절 방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음악인으로서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가요나 팝을 집중해서 듣지는 않죠.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안 들었고, 친구가 음악을 듣고 있으면 다 들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나러 가기도 했어요. 사실 직업적으로 완전한 감상이 잘 안 돼요.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라인, 코드, 일반인이 못 듣는 여러 소리가 들리고 듣는 순간 분석하게 되거든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앙드레 가뇽의 편안한 음악을 듣고도 저는 잘 수가 없어요. 계속 코드를 분석하고 악기에 대해 생각하고, 저 톤을 어떻게 내지 생각하니까 잠을 이룰 수가 없죠. 요즘에는 곡을 써두고 사운드하운드(음악 검색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가끔 체크를…, 헤헤헤.”
반평생 음악으로 먹고살았다. 그는 “어떻게 평생 노래로 먹고살 수 있느냐”는 청중의 물음에 “답은 간단하다, 잘하면 된다”고 했다.



작곡가 윤일상, 이제 스무 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게 쉽지 않죠. 그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나올 것이고. 나만의 재능이 무언가, 제 자신이나 멘티에게도 물어보는데 확신과 믿음을 놓지 않고 미친 듯이 노력하면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습니다.”
그의 데뷔 21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앨범 ‘I’m 21’에는 이은미, 김범수 등 그와 인연을 쌓은 가수뿐 아니라 영국의 오페라 가수 폴 포츠가 참여해 화제가 됐다. 2002년 윤일상이 만든 김범수의 ‘보고 싶다’ 영어 버전인 ‘I’m missing you’를 폴 포츠가 다시 부른 것. 그는 윤일상을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만든 김범수의 ‘하루’가 2001년 한국 최초로 미국 빌보드에 진출해 싱글 차트에서 51위를 했어요. 뉴욕 차트에서는 잠깐이지만 1위도 했고요. 데뷔 21주년에 의미를 두고 ‘보고 싶다’를 클래시컬하게 편곡해서 잘 부를 수 있는 분을 찾다가 평소 좋아하던 폴 포츠에게 연락했더니 함께 작업하겠다고 해서 영국으로 날아가 하루 녹음하고 왔죠.”

독신주의 무너뜨린 미모의 아내

작곡가 윤일상, 이제 스무 살

1 생일 케이크를 받고 즐거워하는 윤일상. 2 이날 행사에는 윤일상의 아내 박지현 씨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객석에는 그의 아내도 와 있었다. 윤일상은 2010년 5월 일곱 살 연하의 박지현(31) 씨와 결혼했다. 가수 김연우의 결혼 소식에 “결혼 같은 걸 왜 하느냐”고 물을 만큼 무심했던 윤일상. 늘 “음악과 결혼했다”고 공언하던 그도 아내의 사진 한 장에 마음이 바뀌었다.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서 ‘윤일상’을 검색하면 ‘윤일상 아내 미모’라는 연관 검색어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부모님께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더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말씀드렸어요. 음악 분야에만 오래 있다 보니까 평범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죠. 어느 날 친지가 여자 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해서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어요. 저는 이름이 알려진 터라 상대는 제 얼굴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볼 수 있으니 저도 먼저 사진을 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2장을 보내왔는데, 보는 순간 ‘예쁘다, 안 예쁘다’가 아니라 ‘와, 결혼해야겠네’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이벤트를 잘 못하는 성격인데, 와인도 미리 골라놓고 셰프에게 맛있는 메뉴도 물어보고 준비했어요. 와이프가 지금은 저를 잘 아니까 그때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아내와 처음 만난 날 결혼하자고 말했다.
“미친 놈인 줄 알았겠죠. 아내가 너무 당황해서 ‘더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사람 인연이 묘하죠. 연결 고리가 계속 생겼어요. 김건모 공연장에서 만났는데 아내의 친구가 저를 좋게 봤어요. 착하고 진지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장난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해주었죠. 네 번째 만남에서 정식으로 청혼했어요. 결혼해달라고, 전화로(웃음). 아내가 ‘저도 좋아요’ 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 안에 상견례를 끝내고 6개월 뒤에 결혼했죠. 2세 소식은 아직 안 주시네요. 아이가 생기면 낳아야죠. 몇 명이든.”
윤일상은 올해로 38세다. 출간 기념 행사가 있기 이틀 전이 그의 생일이었다. 아내 박씨는 “우리 신랑 고생 많은데 앞으로 더욱 사랑할게”라고 했고 윤일상은 “I love you more”라고 답했다.
음악을 할 때는 평소의 윤일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측근들의 증언이다. 곡을 쓰면서 많이 운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곡을 쓸 때 제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죠. 음악과 대면하면 모든 게 안 보이고 거기에만 집중하거든요. 곡 쓰다가 갑자기 거울을 보진 않잖아요. 아내랑 처음 만났을 때 이은미 누나의 ‘녹턴’이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곡을 완성하고 가이드 녹음(본 녹음 전 작곡가나 다른 가수가 노래를 불러 녹음하는 것)한 노래를 틀어놓고 아내와 첫 키스를 했어요. 그래서 제게는 더 의미가 있는 곡이었죠.”
음악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라 때때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했다.
“‘나는 음악가가 될 거야’가 아니라 ‘당연히 음악가가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음악 외적인 부분은 전혀 몰라요. ATM으로 입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결혼하고 처음 알았어요. 아내에게 ‘자기도 알았어?’ 하니까 15년쯤 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작곡을 안 했으면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했을 것 같아요.”
그는 일단 음악에 집중하면 잠자는 것도 잊는다. 52시간 동안 자지 않고 음악 작업에만 몰두한 적도 있다.
“잠깐 앉았다 일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새벽 6~7시인 적이 많아요. 약속 장소로 가다가 곡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작업실로 향하기도 했죠. 딱 10분만 하고 가자 마음먹었는데 일어나 보면 3시간이 지난 거예요. 본의 아니게 인간 이하의 대접도 받고 ‘약속도 안 지키는 놈이야’라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웃음).”

장점 배가시키는 윤일상식 훈련법

작곡가 윤일상, 이제 스무 살


‘위대한 탄생 시즌2’에서 멘티들을 혹독하게 가르친 그의 훈련법은 “장점을 배가시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진로에 대해 고민해요.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이 일에 미칠 수 있느냐’를 물어봅니다. 그럴 자신이 있으면 그때부터는 ‘열심히 하는 것에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중요하죠. 멘티들에게도 ‘우리 서로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지지 말자’고 약속했어요. 실제로 죽을 만큼 열심히 했고요. 프로그램에 나간 건 한 50분의 1 정도예요. 누군가는 저음이나 호흡, 감정이 장점일 수 있어요. 고음이 부족하다고 고음만 연습하다 보면 두려움만 생깁니다. 장점을 배가시키려 노력하다 보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어느 순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윤일상의 멘토는 누굴까.
“아내일 수도 있고, 저랑 같이 있는 멘티일 수도 있죠. 수없이 많이 만나는 분들이 멘토입니다. 존경하고 닮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 류이치 사카모토, 이영훈 작곡가, 유재하 선배님. 훌륭한 음악을 하고 훌륭한 삶을 사는 모든 분이 멘토가 아닐까 싶어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소속사이자 현재 윤일상이 속한 내가네트워크 최윤석 대표이사는 과거 가수와 프로듀서로 그와 만났다가 평생의 친구로 발전한 사이. 최 대표는 윤일상의 결혼식 사회를 보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지켜본 친구 윤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윤일상 씨는 오랫동안 업계에 몸담았지만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피를 가진 친구는 아니었어요. 의외로 소박하고, 스타의 느낌보다는 작가의 피가 훨씬 더 많이 흐르는 사람이고요.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사람들이 그를 덜 알아볼 때가 있겠지요. 저는 사람들이 윤일상이라는 작곡가를 ‘생을 다할 때까지 음악에 미쳐 있던 작가’라고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윤일상은 “슬픈 발라드를 쓰려면 처절하게 슬픔에만 집중해야지 대중성이나 그 외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펑펑 울면서 곡을 써야 그 곡의 슬픔이 조금은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댄스 음악을 만든다면 미친 듯이 춤을 출 수 있어야죠. 이런 노래가 오래가는 음악이 되고 진정성이 담겨 있겠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대중을 생각하기보다 이걸 왜 하는지를 생각하고 그 콘셉트에 맞춰 최대한 집중해야 1백년 가는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스무 살이 갓 넘었으니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죠. 최고의 절정기는 최고의 곡을 썼다고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죽기 직전까지 음악을 할 거니까, 그 순간을 맞을 때까지 노력해야죠.”

참고도서 | 나는 스무 살이다(대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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