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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속 큰 에너지 품은 아역 배우 안서현

수줍음 많던 꼬마, 천재 소녀 연기까지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입력 2012.04.17 09:46:00

아역 배우 안서현은 영화 ‘하녀’에서 말없이 눈빛 하나만으로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주는가 하면 드라마 ‘곰배령’에서는 해맑은 웃음으로 보는 이들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드라마 ‘바보엄마’에서 천재 소녀 역을 맡아 또 한 번 변신에 나섰다.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안서현이 궁금하다.
작은 몸속 큰 에너지 품은 아역 배우 안서현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작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쓱 내민다. 낯선 공간을 살펴보는 커다란 눈 속에는 조심스러움이 비쳤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하는 경쾌한 인사에 스튜디오 분위기는 금세 밝아졌다. 드라마 ‘바보엄마’의 천재 소녀 박닻별을 연기하는 안서현(8)이다. SBS에서 3월 17일부터 방영된 ‘바보엄마’는 3대에 걸친 모정을 다룬 작품으로 최문정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안서현은 2010년 이정재, 전도연 주연의 영화 ‘하녀’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훈의 딸로, 2011년 드라마 ‘드림하이’에서는 수지가 연기한 고혜미의 동생 고혜성으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얼마 전 종영한 채널A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하 곰배령)’에서는 유호정(정재인 역)의 둘째 딸 현수 역을 맡아 맑고 투명한 여덟 살 아이를 연기한 데뷔 5년 차 배우다.
이번 인터뷰는 서현이와 함께 아버지 안상섭 씨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서현 양이 했지만, 그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은 안씨가 도움을 줬다. 보통 아역 배우들은 어머니가 매니저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현이는 아버지가 그 일을 맡았다.
안씨는 또래 아이에 비해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서현이가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걱정돼 상담 차 연기학원에 간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연기학원의 6개월 과정 중간에 들어간 터라 3개월만 배웠는데 서현이가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을 뿐더러 최우수학생으로 수료할 만큼 재능을 보였다. 당시 연기학원 강사였던 배우 임동진 씨의 추천으로 서현이는 난생처음 카메라 앞에 설 기회를 얻었다.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서현이의 재능을 직감했다고.
“아이가 카메라를 대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죠. 화면에 나오는 걸 보니 부모로서 욕심이 나더라고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안씨는 처음에는 아내에게 비밀로 하고 서현이를 데뷔시켰지만 나중에는 아이 스스로 연기 욕심을 내비쳤다고 했다. 배우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니 서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칸의 여왕’ 전도연이 롤 모델
보통의 아역 배우들이 연기학원을 수료한 뒤 오디션이나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연기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서현 양의 부모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익숙해지는 것이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소문해서 독립영화나 단편영화 촬영장을 찾아다니며 현장 관람을 부탁했다. 현장의 분위기와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도록 서현이에게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평범한 어린아이가 있을 곳은 아니지만 서현이는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이 일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촬영 현장 용어에도 익숙해졌다. 현장이 곧 학교인 셈이었다.
“그 덕분에 서현이는 감독의 요구 사항을 빨리 알아채요. 현장이 익숙하니 그곳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상황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더군요.”
아버지 안씨의 말을 들으며 촬영 중인 서현이를 바라봤다. 분명 감기 기운이 살짝 있어 힘들어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활짝 웃는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취하는 다양한 포즈에서 프로다운 모습이 비쳤다.
신작 드라마 ‘바보엄마’에서 안서현이 연기하는 닻별은 IQ 200의 천재소녀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엄마 때문이라 탓하며 엄마를 극도로 싫어하는 역이기도 하다. 3월 13일 열린 ‘바보엄마’ 제작발표회장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서현은 많은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내 몸속에 있는 엄마의 차가운 피를 다 뽑아버리고 싶어!”라며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역이지만 해맑기만 한 배역은 아닌데다, 캐릭터 자체가 무거워 많은 아역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받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서현이에게 닻별이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고 있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닻별이 같은 또래 친구를 만난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서현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힘들겠다고 말했다.

작은 몸속 큰 에너지 품은 아역 배우 안서현

배역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표정과 느낌을 선보이는 안서현은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배우다.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일단 저는 닻별이처럼 천재도 아니고요(웃음), 게다가 저는 밝은 성격인데 닻별이는 어둡거든요. 그래서 친해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대학생도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천재 소녀를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은 없을까. 하지만 서현이는 오히려 뿌듯했다고 한다.
“수학 공식을 칠판에 가득 적어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내용은 어려우니까 잘 모르고, 열심히 쓰면서 외웠어요. 의자에 올라가서 외운 내용을 막 적는데 쓰다 보니까 좀 틀렸어요. 그래도 어려운 거 다 쓰고 나니까 기분 좋았어요. ‘내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요즘 촬영할 때 가장 힘이 돼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망설임 없이 “현주 엄마요”라고 대답했다. 닻별이는 아빠를 좋아하고 엄마를 미워하지만 촬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은 엄마 영주 역의 배우 김현주라 정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제까지 5년간 다양한 작품에서 선배 배우들과 함께 일해왔으니 기억 속에 남는 배우도 여럿이고, 닮고 싶은 배우도 있을 법했다. 서현이는 망설임없이 2010년 영화 ‘하녀’에 함께 출연한 전도연을 꼽았다.
“엄마 역을 맡은 서우 언니보다 전도연 언니랑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언니가 잘 챙겨주기도 했는데요, 추운 날이면 함께 차로 데려가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셨어요. 연기하는 모습도 옆에서 많이 봤는데 멋있었어요. 꼭 도연 언니처럼 멋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영화 ‘하녀’를 찍을 때 서현이는 불과 여섯 살이었다. 하지만 촬영 현장에 대한 기억은 또렷했다.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느냐고 묻자 한겨울에 촬영한 수영장 장면을 꼽았다.
“물속은 따뜻했지만 수영복을 입고 있다가 밖으로 나왔더니 몸이 덜덜 떨렸어요. 너무 추워서 담요를 덮으려 했는데 감독님이 덮지 말라고 하셨어요. 덮었다가 다시 물에 들어가면 더 추울 거라고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면서도 서현이 얼굴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다 좋았던 기억뿐이란다. 이어 지난겨울 혹한 속에 진행된 ‘곰배령’ 촬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강원도에서 ‘곰배령’을 촬영할 때도 눈이 많이 와서 힘들었어요. 새론 언니(은수 역)랑 눈 위를 걷는 장면이었어요. 처음에는 발목까지만 눈이 쌓여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걷다 보니까 무릎까지 빠지는 거예요. 나중에는 발이 눈 속에 박혀서 나오질 않자 언니가 낑낑 끌어서 꺼내줬어요.”
여덟 살짜리와 지난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너무나 차분하게 또박또박 대답을 해서 인터뷰 내내 감탄사만 연발했다.



“아이들에게 인기 ‘오만나’ 공주가 바로 저예요”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현 양은 바쁜 촬영 일정으로 25일밖에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지난해에 출연한 작품만 다섯 편.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은 것도 학교에 자주 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인터뷰한 날은 촬영이 잡히지 않아 학교에 다녀왔다며 뿌듯해했다.
“새 학년이 시작돼 설레지만 못 가는 날이 더 많아서 속상하기도 해요. 저도 친구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는데, 학교에 못 가니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거든요. 학교 공부도 재미있는데…”
서현이가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 국어, 수학. 수업을 받을 기회는 적지만 성적은 좋은 편이다. 학교 측의 배려로 교과서를 항상 차 안에 두고 틈나는 대로 진도에 맞춰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에 자주 가지 않으니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다고 하자 서현 양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본다며 활짝 웃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EBS에서 방영된 ‘키득키득 실험실’이라는 프로그램에 ‘오만나’ 공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오만나’ 공주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아이돌 가수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단다.

촬영이 없는 날 평범한 초등학생 서현이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단 하나 다른 점은 저녁 공부. 일정이 없는 날에는 저녁 식사 뒤 두세 시간가량 꾸준히 대본을 읽고 지문을 꼼꼼히 살펴본다.
“연습이 가장 중요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대본을 외우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요. 지문을 읽고 감정을 잡는 데 오래 걸리니까 될 때까지 연습해요.”
대본 연습뿐 아니라 자신이 나온 장면을 꼼꼼히 리뷰하는 것도 습관처럼 한다. 자기가 나온 장면을 보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판단해 발전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처음 방송에 나온 저를 봤을 때는 부끄러워서 막 숨었어요. 그런데 이제 제 모습을 보면요, ‘저 장면에선 저렇게 하면 안 되지’ ‘이 장면은 잘했다’ ‘표정은 저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의 세계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훈련
연기에 관한 소신을 말할 때는 똑 부러진다. 도대체 무엇이 이 여덟 살 꼬마 소녀를 연기의 세계에 푹 빠지게 했을까.
“선배님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아요. 가까이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작품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요.”
아직 어린 나이라 부모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만 워낙 일찍부터 연기를 시작해 현장이 익숙한 서현이는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촬영장에서도 부모를 찾지 않고 선배 배우들 곁에 꼭 붙어 있다. 아버지 안씨가 일찍부터 자립하는 법을 가르친 덕이다.
“부모도 일이 있고, 중학생인 오빠도 있으니 서현이만 챙길 수는 없잖아요. 나중에는 부모 없이도 활동해야 하고요. 그래서 일찍부터 홀로 서기를 하도록 했어요. 지금은 스스로 준비하는 데 익숙해요. 서현이는 자신이 들어갈 장면이 되면 알아서 옷과 소품을 챙겨요. 저는 일정 관리만 해주고 촬영장에 데려다주는 일만 하고요.”
‘곰배령’의 현수 역을 제외하고는 서현 양이 맡은 역은 대부분 자기 또래의 평범한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럴 때 세상 경험이 적은 어린 배우가 어떻게 새로운 캐릭터를 소화해낼까, 그리고 연기가 끝난 뒤 어떻게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지 궁금했다. 아버지 안씨는 먼저 배역에 대해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한다고 설명했다.
“새로 대본을 받으면 ‘이 역은 네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말해줘요. 그다음에 함께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죠. 이번 닻별이 역도 그랬죠. 그 역에 대해 설명해주고 아이의 의견을 물어봐요. 늘 그렇게 작업을 해서 그런지 아무리 충격적인 역을 맡아도 촬영이 끝나면 금세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치열한 연기자의 세계에서 문근영이나 유승호처럼 아역 배우로 성공한 뒤 자연스럽게 성인 연기자로 옮겨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바른생활’. 서현 양의 부모 역시 다작을 하는 배우보다는 훌륭한 인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배우가 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여러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는 것도 대단한 일이죠. 작품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시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잘해나가는 중인 듯하다. 서현 양은 함께 출연했던 사람들과 촬영을 마친 뒤에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낸다고. ‘드림하이’에 같이 출연했던 그룹 2PM의 옥택연과 미쓰에이의 수지하고 각별한데, 특히 택연과는 지금까지도 자주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란다. 드라마 ‘곰배령’에서 할아버지 역을 맡았던 최불암 씨 역시 친손녀처럼 서현이를 아껴줬다. 어리고 귀여운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촬영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바르고 항상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많은 선배 연기자와 촬영 스태프까지 예뻐했다고. 서현 양은 받은 사랑만큼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일찍 데뷔한 아역 배우들이 그렇듯 나이에 비해 조숙해 보이는 안서현.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런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과일이요!”라고 대답하며 “3분 만에 복숭아를 다섯 개나 먹었어요!”라며 해맑게 자랑한다. 촬영이 끝난 뒤 소품으로 썼던 튤립이 활짝 핀 걸 보고 예쁘다 쓰다듬으며 말을 거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여덟 살짜리 꼬마일 뿐이었다. 그러다 카메라 앞에 서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많은 사랑을 받던 아역들이 어른이 된 뒤 조용히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 그래서 서현이의 꿈이자 목표는 오래도록 좋아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다. 꽃이 한 번 피었다 지면 다음 해 다시 꽃망울을 터트리며 사랑받는 튤립처럼 꾸준히 좋은 작품으로 사랑받는 연기자가 되길 바란다.

여성동아 2012년 4월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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